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Bring Art to Life

LIFESTYLE

노블레스 컬렉션은 폭넓은 시각으로 더욱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가치를 제안하고, 작품 소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아트 플랫폼입니다. 12월에는 <꽃·책·상>이라는 전시를 통해 이지숙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작가는 조선시대 책가도 양식을 회화가 아닌 흙으로 빚은 뒤, 오방색을 더하고 자기 취향의 기물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킵니다. 오래도록 곁에 두고 아낀 책 한 권과 아름다운 꽃을 통해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지숙 작가의 잔잔한 시선을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지숙
이지숙 작가는 20년 넘게 도예 작업에 매진해왔다.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책가도 작업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 11월 22일부터 12월 20일까지 청담동 네이처포엠에 위치한 노블레스 컬렉션에서 작가의 개인전 <꽃·책·상>이 열린다. 책가도 작품과 오브제 작품 20점을 선보이는 전시에 앞서 작가에게 독특한 작업 방식과 작품에 담긴 의미를 물었다.

20년 넘게 꾸준히 도예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도예 특유의 넉넉함과 따뜻함을 좋아해요. 예컨대 회화는 보통 흰 바탕에 선부터 하나하나 그려야 하잖아요. 어떻게 작업할지 구상한 다음 치밀하게 작업하는 식이죠. 반면 흙이라는 재료는 꼭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고 정하지 않아도 작업할 수 있어요. 흙을 움켜쥐었을 때 나오는 형태에서 자연스레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때로 흙 자체가 제가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기도 하죠.

초기작은 현재의 책가도 작품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초기에는 인물 형상을 만들었어요. 주로 웅크리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빚었죠. 당시엔 제 작업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좋아하는데, 정작 제 작품에는 그것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불확실한 미래,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확신이 없어서 고민하기도 했고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서른 살 무렵 ‘공책’이라는 독서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물도 – 총균쇠, Acrylic on Terracotta, 97×97×6cm, 2017, ₩15,000,000

그 독서 모임이 작가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독서 모임에 나가기 전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어요. 전공 서적이나 미술 관련 책, 가벼운 에세이 몇 권 읽은 게 다였죠. 그래서 처음엔 독서 모임에 나가는 게 굉장히 고되더라고요. 기대와 달리 책이 어떤 메시지를 주지 않아 막막하기도 했고요. 물론 지식을 쌓는 측면에선 많은 도움이 됐지만, 마음으로 느껴지는 게 없었다고 할까요. 그래도 10년을 꾸준히 버텼어요. 그러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었는데, 그때 비로소 책이 와 닿더라고요. 미술 작품을 보거나 좋은 경험에서 느낀 감정의 조각들이 한데 모이는 기분이었죠. 그 후에는 어떤 책도 버릴 게 없더라고요. 책 읽기의 재미를 깨친 거죠. 읽은 책 중 좋았던 걸 책가도 작품에 등장시킨 것도 그즈음이고요. 저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책을 통해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이렇게 보면 제 책가도 작품은 ‘책 권유도’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것도 대부분 책가도 작품입니다.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엔 흙을 다져 흙판을 만듭니다. 거기에 형태를 더하죠. 그게 어느 정도 건조되면 칼로 조각조각 나눠요. 가마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조각이 가로세로 60cm가 넘으면 안 되거든요. 그리고 1000℃로 소성(가마에서 벽돌 따위를 구워 만듦)합니다. 나무 합판 위에 구운 조각들을 올려놓고, 형태에 따라 외곽선을 그어 나무판을 잘라요. 그리고 그 위에 조각을 이어 붙이죠. 이 과정에선 조각과 같이 구운 흙가루와 접착제를 짓이긴 것을 사용합니다. 빈 부분을 메우고, 소성 과정 중 휘거나 돌출된 부분은 사포로 갈아내고요. 마지막으로 아크릴 물감으로 색을 칠합니다.

일반적으로 도자기를 만들 때 1200℃ 이상에서 소성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 낮은 온도로 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맞아요. 일상에서 쓰는 도자 접시나 컵을 만들 땐 채색하고 유약을 바르기 위해 초벌로 소성하고, 1250℃ 이상에서 재벌 소성하죠. 그런데 1250℃의 불맛을 본 도자는 흙보다 돌의 성질에 가까워져요. 강도가 세지만, 차갑다고 할까요. 하지만 1000℃에서 구우면 흙의 물성과 따뜻함이 남아요. 튀어나온 부분을 갈고,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하는 작업에도 더 적합하고요.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보통 도예 작업에선 사용하지 않는 재료니까요. 저는 텍스처를 그대로 드러내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유약이나 도자 안료를 바르면 그 두께 때문에 디테일을 살리기 어려워요. 반면 아크릴물감에 물을 섞어 쓰면 두께감 없이도 색이 잘 올라가죠. 흙을 1000℃ 정도로 소성하면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남아요. 여기에 아크릴물감을 칠하면 반절은 흙이 먹고, 반절은 표면에 발립니다. 이걸 사포로 갈면 색이 옅게 배어 있는데,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칠하면 색이 중첩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또 다른 깊이가 생기고요. 여러 채색 재료를 사용해봤지만, 아크릴물감이 가장 만족스러웠어요.

부귀영화 – 영혼의 미술관, Acrylic on Terracotta, 33×62×3cm, 2017, ₩5,000,000

부귀영화, Acrylic on Terracotta, 왼쪽부터_ 104×35×3cm, 109×42×4cm, 105×47×5cm, 107×42×5cm, 2016, 각각 ₩8,000,000

립스틱이나 차통 등 현대적 오브제를 배치한 책가도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 걸 작품에 넣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가도는 조선 후기에 그린 그림이에요. 남성의 방을 꾸미는 장식적 용도로 쓰였죠. 책에는 ‘내가 이만큼 학식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책과 함께 배치하는 사물은 주로 진귀한 것이었어요. 저는 전통 책가도의 형태를 빌리면서도 현대적 오브제를 배치한 새로운 책가도를 만들고 싶었어요. 향기로운 차, 립스틱, 핸드백, 자기함 등 옆에 두고 싶은 사물을 그렸죠. 과거 남성의 전유물인 책가도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여성의 책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에 모란꽃이 자주 등장합니다. 모란꽃을 다른 정물과 함께 배치하기도 하고, 아예 모란꽃을 주제로 한 작품도 있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모란꽃은 부귀영화를 상징합니다. 사람들이 일상의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즐겨 그리죠. 저는 부귀영화가 대단한데서 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재를 사는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행복이 진정한 부귀영화죠.

부귀영화 – 모란과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Acrylic on Terracotta, Acrylic on Terracotta, 132×43×5cm, 2017, ₩9,000,000

출품작 중 책상에 올려놓을 만한 작은 오브제 작품도 눈에 띕니다. 저는 예전에 입체 작업을 주로 했어요. 하지만 작품의 보관 문제와 새로운 감상법을 고려하면서 2차원적 평면성을 지닌 작품을 만들게 됐죠. 책가도 작품도 그중 하나고요. 그러다 2년 전 오브제 작업 제안을 받았어요. 이를 계기로 다시 입체 작업을 시도했는데 흥미롭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조금씩 제작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 큰 작업을 못하게 되면, 오브제 작업이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지금은 작품에 담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하지만 언젠가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시기가 올 것 같아요. 그때는 좀 더 시적인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열심히 작업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게 먼저겠죠?

※전시 일정 : 11월 22일~12월 20일(일요일·공휴일 휴관), 노블레스 컬렉션
※문의 : 02-540-5588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진행 안요진, 임슬기, 명혜원  사진 김제원(인물)  디자인 마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