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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단단한 걸음

LIFESTYLE

누구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고봉인은 첼리스트와 카이스트 연구원으로서 음악과 과학이라는 두 길을 함께 걷는 중이다. 시작은 다소 느렸지만 그의 발자국은 깊게 각인될 것이다.


지난 10월 27일 첼리스트 고봉인의 연주를 보기 위해 찾은 공연장.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공연 시간에 늦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맞물려 심장이 100m 달리기 선수처럼 요동쳤다. 공연장에 도착해 헐떡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에 앉아 있으니 불이 꺼지고 첼로의 선율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팽팽한 실처럼 잔뜩 긴장한 마음이 흐느끼고 다독여주는 듯한 첼로의 손길에 점점 느슨해졌다. 주위 관객도, 마치 배우처럼 다채로운 표정을 지으며 연주에 몰입한 첼리스트도 음악으로 하나가 되어갔다. 그는 분명 관객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이 공간에 첼로와 그만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연주에 집중했다. ‘과학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냉철한 연주를 할 거라고 지레짐작한 것일까. 하지만 차가움과는 거리가 먼 감성적이고 따뜻한 연주였다.
여덟 살 때 파블로 카살스의 첼로 연주를 듣고 운명적으로 ‘내 악기다’라고 느낀 고봉인은 그 이듬해부터 첼로를 시작했다. 남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3년 뒤인 1997년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콩쿠르 첼로 부문 1위를 수상하며 국내외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만 14세에 다비트 게링가스의 최연소 제자로 입문해 독일 베를린 국립 음악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2000년 크론베르크 첼로 마스터클래스에서 입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는 기쁨만큼이나 어릴 적 꿈이던 생물학자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감도 밀려왔다. “독일 유학 시절 여러 공연을 다니면서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등의 음악가와 친분을 쌓았어요. 그분들은 오로지 음악에 몰두하기보다는 학업에도 충실하며 인생을 폭넓게 경험하라는 조언을 해줬죠. 그 말을 듣자 불현듯 음악을 시작하기 전 아버지처럼 생물학자가 되고 싶던 제 꿈이 생각났어요. 스스로 자문했죠. ‘지금의 난 음악으로 행복하지만 만약에 40~50대가 되어 과학을 공부하지 못한 걸 후회하면 어쩌지?’ 그러다 ‘그럼 과학과 음악 모두 함께 해보자’라고 결심하게 된 거죠.” 그래서 고봉인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로런스 레서를 사사하며 첼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리고 2014년엔 프린스턴 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박사 학위도 취득해 지금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문연구원으로 유방암 줄기세포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신이 내려준 재능이 있다 해도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터.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을까? “체력적 한계를 느낄 땐 정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를 포기하고 사는 것보단 두 가지를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겠다’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건 아마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연습과 실험을 거듭하는 성실함 때문인 듯 싶다. “연주회를 앞두고 있다고 연습을 한꺼번에 몰아서 하진 않아요. 생물학 연구도 매일 조금씩 하고 있고요. 아침에 일어나 어떤 실험을 할지, 무엇을 연주할지 미리 생각해요.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 후 2시간씩 연주하고 다시 실험실에 돌아와 연구를 하죠.”
음악과 과학이라는 두 가지 길을 쉼 없이 교차한 끝에 그는 7년 만에 연주회를 열었다. 지난 9월과 10월에 한 차례씩 공연을 했는데, 여기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음악가 윤이상의 곡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는 것. 9월 공연에선 ‘독주 첼로를 위한 활주’를, 10월 공연에선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 Ⅰ’을 1부에 선보였다. 그중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공간 Ⅰ’은 2005년 연주회에서 선보인 이후 11년 만에 다시 연주한 곡. “그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예전엔 연주하면서 다음 단계를 생각하느라 바빴는데 지금은 음과 음 사이, 쉼표를 어떻게 표현할지 신경 쓸 수 있는 내적인 시간이 생겼어요.음과 음을 잇는 사이 제 감정을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그런 여유 때문일까? 이번 공연에서는 다이내믹하고 유려하게 흘러가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섬세하게 이어졌고, 음악을 통해 하나의 명상록을 써 내려가는 듯 연주했다. 이쯤에서 그와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베를린 유학 시절 우연히 윤이상 선생님의 삶을 그린 TV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음악은 알고 있었지만 그분의 세세한 인생사까지는 몰랐거든요. 다큐멘터리를 보니 동백림 사건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겪으셨는데도 좌절하기보다 오히려 그 경험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베를린에 있는 윤이상재단을 찾아가 그의 발자취를 좇을 정도로 윤이상 음악에 빠져든 고봉인은 2003년 통영에서 열린 경남국제콩쿠르 결선에서 윤이상의 첼로 협주곡을 선택해 2위에 입상했다. 2008년엔 평양에서 열린 윤이상 연주회에 남한 연주자 중 최초로 초청받아 윤이상 관현악단과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그 연주회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넘어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에요. 평소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들과 윤이상 선생님의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었고요. 그때 새삼 음악의 위대함을 느꼈죠.” 과거의 순간을 회상하며 다소 들뜬 그의 표정에서 윤이상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음악가 윤이상처럼 되고 싶은 걸까? “첼리스트로 한계를 두기보다는 음악가 혹은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제 연주를 듣고 관객이 ‘아, 저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 같다’, ‘사랑의 아픔도 절절히 겪어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생의 결이 묻어나는 연주를 하고 싶어요.”
그동안 실험에 몰두하느라 공연에 대한 갈증을 느낀 만큼 내년엔 많은 연주를 펼칠 예정이라고. 아직 전부 공개할 순 없지만 그의 타임 스케줄엔 많은 연주 일정이 잡혀 있는 듯했다. 그중 하나가 내년 9월에 열리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 기회가 된다면 뜻이 맞는 음악가들과 체임버 뮤직도 선보이고 싶다고. 그의 바람대로 2017년엔 과학자로서 그리고 음악가로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