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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다

FASHION

신선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가득한 서울은 이제 패션업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 최근 하이더 아커만, 크리스토퍼 케인, 닐 바렛 등 세계적 디자이너가 연이어 서울을 방문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반가운 마음을 안고 <노블레스>가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정의할 수 없는 독창성 Haider Ackermann

하이더 아커만의 첫 단독 스토어가 한국에 오픈했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흥분되는 동시에 두렵습니다. 새로운 대단원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도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인 남동생도 있죠. 이곳에 대한 인상이 남다를 것 같은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나요?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된 동생이 있어서인지 올 때마다 매우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특히 모던 아티스트와 그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동생과 즐겨 봤어요. 이불 작가나 지드래곤 등 분야를 막론하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많은 것 같아요.

최근 선보인 2016년 S/S 컬렉션에 대해 소개한다면? 요즘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이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리아 난민 문제. 그들이 자유를 찾기 위해, 또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깊은 아픔을 느꼈어요. 이런 감정에서 영감을 얻어 폭력성, 난폭함 등의 추상적 개념을 컬러로 표현했습니다. 물론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이런 큰 문제를 옷이라는 매개체에 모두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번 컬렉션에선 다채로운 파스텔 컬러의 활용이 눈에 띕니다. 삶이란 모순의 연속입니다. 파스텔색과 강렬한 디자인, 상반된 두 요소의 결합을 통해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인지 옷이 그런지한 동시에 우아하고, 정제된 동시에 복잡해요. 어떻게 대조되는 아름다움을 한곳에 표현할 수 있죠? 철저한 계산과 의도를 통해 만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당시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 디자인합니다. 근래엔 대비되는 것의 어우러짐에 매력을 느끼는데, 부드러운 것과 강한 것,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이 만났을 때 발산되는 흥분이나 감동에 사로잡혀 있어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하이더 아커만 매장 전경

2016년 S/S 컬렉션

평소 영감을 받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나요? 사실 일상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단편적 영상부터 카페 옆자리에 앉은 여성의 순간적 제스처, 테이블 위의 꽃병까지. 마음을 뛰게 하는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입니다.

2014년부터 남성복을 전개 중이죠. 여성복을 디자인할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사실 여성복을 디자인하는 일이 훨씬 어렵고 복잡합니다. 남성복을 만들 때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덜 하는 편이에요. 그들의 ‘태도’에 중점을 두고 고안하므로 상황에 따라 디테일, 이를테면 소매의 길이나 칼라 모양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반면 여성복은 여성 자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죠. 더욱이 매혹적이고 유혹적인 분위기까지 표현해야 하니 계속 생각해야 하고 고민도 많습니다.

세계의 수많은 언론이 당신의 옷을 정의합니다. 당사자인 당신이 생각하는 하이더 아커만의 옷은? 정의하지 않는 것. 전 무언가 분석하거나 설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즉흥적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옷이라 생각합니다.

디자이너가 안 됐으면 작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죠. 책을 즐겨 읽나요? 요즘엔 무얼 읽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세계로 이끄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어 무용가는 춤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릴 상상으로 빠져들게 하죠. 최근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영화배우로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연인이었던 헬무트 베르거(Helmut Berger)의 자서전을 읽고 있습니다. 그가 산 당시는 데카당스 예술의 시대로 퇴폐적 경향이 짙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로운 시대였어요. 우리가 현재 잊고 있는 ‘자유’라는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감명 깊습니다. 2015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때보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겐 ‘자유’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당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언가요? 사랑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와 함께 있으면 가장 나다워지고, 그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내면의 균형을 찾아요.

디자이너로서 지키는 신념이 있습니까? 신념은 없어요. 다만 늘 원하는 건 내 옷을 입는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옷을 통해 행복을 주는 일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당신은 현재 사람들이 가장 주목하는 디자이너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 없는 먼 훗날 어떤 디자이너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타이틀엔 전혀 관심 없어요. 아직 난 존경하는 과거 디자이너들의 재능을 따라가기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처럼 타고난 재능도 없고요. 그저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또한 같이 일하는 팀이 재능을 발휘하고 성장해 함께 행복한 길로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를 비롯한 우리는 결국 먼지로 돌아갈 테니까요.

하이더 아커만의 2016년 S/S 컬렉션

 

한계에 도전하다, Christopher Kane

한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이번 방한에 특별한 목적이 있나요? 한국에 관심이 많았어요. 요즘 다들 ‘서울’을 이야기하곤 하니까요. 제 옷을 선보이는 분더샵이 오픈 1주년을 맞이했다고 해서 축하도 할 겸 왔어요.

서울의 첫인상은 어떤가요? 분더샵을 본 소감도 궁금합니다. 사실 서울엔 처음 왔는데, 여성들의 옷차림이 너무나 세련돼서 깜짝 놀랐어요. 패션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깊은 감명을 받았지요. 분더샵은 마치 갤러리나 박물관 같아요. 굉장히 실험적인 정신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것 같습니다. 매우 멋져요. 진열된 제품을 보니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 같네요.

평소 아웃사이더 아트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저는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것이 이름부터 생경합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전형적인 의미의 예술인과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을 의미해요. 이를테면 아이들이 그린 그림 같은 거죠. 이 분야의 사람들은 피카소가 누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내면에서 우러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죠. 저는 늘 신선한 것을 원하는지라 자연스레 아웃사이더 아트에 관심이 가요. 그들이 선택하는 컬러 같은 것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크리스토퍼 케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네온 컬러도 거기서 비롯된 건가요? 브랜드를 처음 시작한 10년 전만 해도 네온 컬러를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이를 많이 활용했고, 그러다 보니 브랜드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죠. 전 여기에 아웃사이더 아트에서 영감을 받은 다채로운 컬러를 더하곤 합니다.

크리스토퍼 케인의 2016년 S/S 컬렉션

2016년 S/S 컬렉션도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아웃사이더 아트를 바탕으로 잊혀진 사람 혹은 주목을 덜 받는 사람을 수면 위로 부각해 그들을 영웅처럼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았어요.

그래서 독특한 소재가 많이 보이는 건가요? 이번 시즌의 컨셉이 ‘Crash and Repair’입니다. 이 주제를 고민하다 자연스레 PVC 플라스틱과 케이블 타이를 활용하게 됐어요. PVC 소재를 레이스와 결합하거나, 케이블 타이로 헤어피스나 브레이슬릿을 만들었죠. 독특한 소재로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다 보니, 의외의 결과물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추천 아이템이 있다면요? 프린지를 목 부분에 활용한 옷, 케이블 타이로 만든 액세서리, 형형색색의 스니커즈는 어떨까요? 패션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무척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10대부터 나이가 많은 여성까지, 전 연령대를 아울러서요.

당신이 꿈꾸는 여성상이 있나요? 어떤 특정 인물을 마음에 두고 있진 않아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만들길 원하고, 또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죠. 대신 제 옷을 입었을 때 누가 봐도 “어, 크리스토퍼 케인의 옷을 입었네!”라고 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내년 봄, 분더샵 청담점에 숍인숍 형태의 매장을 열 계획이에요. 런던에 자리한 플래그십 스토어의 컨셉을 적극 활용할 생각입니다. 그 매장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프리폴 컬렉션과 남성 컬렉션, 그리고 내년 2월에 런던에서 선보일 컬렉션 준비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낼 거예요.

 

현대적 감각을 제시하다, Neil Barrett

브랜드 닐 바렛을 정의하는 단어 3개를 꼽는다면? 그래픽, 모노크롬 그리고 모던.

그래서인지 2016년 S/S 컬렉션에서도 그래픽적 패턴이 눈에 띄는군요. 전 세계의 아이코닉한 패턴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스트라이프, 레오퍼드, 인도네시아의 염색 기법으로 만든 바틱(batik) 패턴까지. 그중 서양의 카무플라주와 아랍 문화권의 카피예(keffiyeh) 스카프 체크 패턴을 믹스한 카피예 카무플라주 패턴이 마음에 들어요. 어디에서 많이 본 듯하지만 동시에 새롭죠.

다양한 문화권의 패턴을 뒤섞는 방식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특정 패턴만 보고도 그것이 탄생한 지역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전 그런 패턴을 다소 생소하게 만들고 싶었고요.

닐 바렛을 런칭하기 전 구찌와 프라다에서 남성복 디자이너로 활약했어요. 자신만의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요? 운 좋게도 꽤 어린 나이에 꿈의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대로 그곳에서 은퇴하고 싶지는 않았고, ‘거대한 하우스의 보호에서 벗어나 나만의 것을 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하게 됐죠. 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거대한 하우스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것은요? 패션은 짧은 시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비즈니스(time intensive business)라는 것, 또 완벽한 컬렉션을 만들기 위해선 작은 것도 꼼꼼히 확인해야 하고,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일의 강도가 엄청나다는 것’이요.(웃음)

자연스레 당신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지는군요. 매일 아침 7시 15분에 일어나 집에 방문하는 트레이너와 함께 운동을 합니다. 9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 30분 정도를 제외하곤 9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요. 퇴근 후엔 친구와 식사를 하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요.

닐 바렛의 2016년 S/S 컬렉션

바쁜 스케줄 속에서 디자인적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저는 감각적으로 타고났어요. 같은 것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인지하죠. 행운이라 생각하고 이를 즐기는 편입니다. 그만큼 저를 둘러싼 일상의 모든 것이 영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형태와 빛, 향과 소리 모두요.

컨템퍼러리 패션을 만들어내는 당신의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제이미 XX, 솔 클랩 그리고 FKA Twigs의 음악!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분위기를 조성해주죠. 그리고 예술. 올여름 LCD(Leading Cultural Destinations) 시상식의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었어요. 올 한 해 동안 펼친 전 세계의 모든 미술 전시 중 훌륭한 것을 선별해야 했는데, 자리에 앉아 세계 미술관을 투어하는 듯한 경험이 꽤 인상 깊었죠.

운동복 소재로 만든 슈트부터 다양한 문화권을 아우른 패턴까지. 당신은 대비(contrast)를 즐기는 디자이너인 것 같아요. 이질적인 요소를 모아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어떤가요? 끊임없이 욕심을 부려요.(웃음)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은?’ 혹은 ‘나에게 지금 없는 것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죠. 그리고 그 답은 늘 새로운 컬렉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16년 S/S 컬렉션에서는 무엇이 거기에 해당하나요? 지금껏 패턴을 의상 전면에 담은 적이 없는데, 이번 시즌엔 그런 의상을 발견할 수 있어요. 신선한 프린트였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다소 복잡한 패턴이지만 컬러는 네이비 블랙과 흰색으로 제한해 깔끔합니다.

2016년 S/S 컬렉션을 토대로 봄에 적절한 데일리 룩을 제안한다면? 여자들은 프린지 디테일을 활용해 스타일에 재미를 준다면 좋겠어요. 남자라면 절대 구겨지지 않는 니트 티셔츠에 도전해보세요. 아침부터 밤까지 근사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보장합니다!

에디터 이혜미 (hmlee@noblesse.com) 한상은 (hanse@noblesse.com) 김지수 (kjs@noblesse.com)
사진 정태호, 김춘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