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lue of Craft
크래프트 맥주와 증류주, 칵테일 등이 각광받는 요즘. 크래프트에는 소량생산과 장인정신이라는 의미가 따라붙어 더없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고급 주류 문화를 이끌던 와인은 경쟁 상대의 등장에 살짝 긴장한 눈치다. 업계의 솔직한 심정에 대해 잰시스 로빈슨이 입을 열었다.

보르도 와인잔은 잘토 제품으로 Noblesse Mall에서 판매한다.
약간 부아가 치민다. ‘크래프트’라는 용어 때문이다. 크래프트 와인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으면서 어쩌다 장인이 빚은 듯한 미덕을 풍기는 크래프트라는 형용사가 온갖 수제 맥주와 증류주에 쓰이게 되었는지.
내가 언급하는 와인의 90% 이상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개인 업자가 만들기에 크래프트 와인으로 손색없다. 포도밭의 환경과 재배하는 품종에 맞춰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에 온갖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이들이다. 내가 알기로 수제 맥주나 증류주 생산자 가운데 모든 재료를 직접 재배하는 경우는 없다. 더욱이 와인 양조 공정은 맥주나 증류주에 비해 산업화가 훨씬 ‘덜’ 되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와인의 생산량은 대단히 한정적이다. 수제 맥주나 증류주는 재고가 바닥나면 좀 더 만들면 그뿐이다. 와인에 비해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와인은 1년에 딱 한 번 만들 수 있으며, 생산량이 정해져 있다. 그 양은 포도원의 규모와 재배 품종(이 또한 묘목을 심어 수십 년간 공을 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해 가을 포도 수확 시기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내 말이 마치 푸념처럼 들린다면 어쩌면 평생 와인에 빠져 살아온 내가 점점 위협을 느끼기 때문일 수 있다. 닐슨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판매량은 와인 판매량을 훨씬 웃돌아 그 증가율이 무려 20%를 넘는다. 필자가 사는 영국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와인이 다른 주류에 점차 잠식 당하고 있으며 특히 수제 맥주, 증류주, 칵테일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는 걸 차츰 실감한다.
<옥스퍼드 맥주 대백과>의 저자 개릿 올리버는 미국 시장의 크래프트 맥주 동향을 이끄는 인물인데, 지난해에 아일랜드 남부에서 열린 케리골드 발리멀로 리터 러리 푸드 & 와인 페스티벌에서 연사로 나서서 꽤 흥미로운 연설을 했다. 발효된 포도 주스가 어쩌다 맥아 보리를 발효한 맥주에 대세를 양보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다.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하게 설명했지만, 실상은 와인을 폄하하는 내용이었다. 올해 열린 발리멀로 페스티벌에서는 매력적인 30대의 두 여성, 보일 자매를 만났다. 와인 애호가인 그들은 와인에 대한 지식이 매우 방대했다. 하지만 본업은 맥주 양조업자. 수전과 주디스 보일은 펍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고향인 킬데어 주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로 아일랜드의 가장 유명한 여성 성인 이름을 딴 ‘브리지드 에일’을 만들고 있다.

화이트 와인잔은 잘토 제품으로 Noblesse Mall에서 판매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 아일랜드에는 대형 맥주 양조장이 5개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60개 이상이며, 대부분 규모가 작고 힙스터가 운영하거나 최소한 젊은 애호가가 주인이다. 이러한 관심의 이동은 증류주업계에서도 똑같이 진행 중이며, 아일랜드에서는 증류주업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아일랜드의 기후가 너무 추워 포도 재배에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더욱 힘을 얻는 것 같다).
수전 보일이 본격적으로 주류업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와인과 사랑에 빠진 대학 시절이라고 했다. 배우가 되려고 연기 공부를 했다는데, 그녀는 현재 <에일이야기>라는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나는 수전에게 아일랜드의 주류 시장에서 와인과 맥주 사이에 일종의 경쟁 구도나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는지 물었다. “아일랜드산 와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갈등은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여행 경험에 비춰볼 때 “호주와 뉴질랜드의 와인업자는 오히려 맥주 없이는 와인도 존재할 수 없다고 여긴다”며, “서로 상생 관계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이 만든 맥주 중 지난해에 개릿 올리버가 더블린에서 주최한 만찬에서 선보인 맥주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다. 와인과 사과주 등 각기 다른 침전물로 숙성시킨 아주 특별한 비영리 맥주였다고.
사실 크래프트 맥주와 증류주가 와인과 갈등을 빚을 필연적 이유는 없다. 오히려 와인업자 가운데 맥주와 증류주에도 손을 대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 분명한 건 이로 인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알코올 음료의 종류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데이브 브룸이라는 증류주 전문 작가가 있다. 그는 과거 호주 마거릿리버 지역에서 와인 생산에 뜻을 두었지만 결국 경쟁 부담이 훨씬 적은 분야에서 증류주에 관한 지식을 피력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편이 쉽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업계에서 ‘목구멍 다툼’이라 불릴 정도로 와인과 크래프트 맥주, 증류주 사이에 형성된 팽팽해진 경쟁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에게 물어보았다.
“와인의 매력이 줄어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일부 맥주와 증류주는 와인 양조 방식에서 몇 가지 교훈을 얻어 그걸 똑같이 적용할 정도죠. 크래프트 맥주의 유행은 미국에서 시작했는데, 이는 대규모 맥주 양조업자가 쏟아내는 저질 맥주에 대한 반향이었어요. 이러한 흐름이 증류주업계에도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 크래프트 증류주업자 중 상당수는 과거에 맥주를 생산했고 또 일부는 와인업자이기도 했어요. 증류주의 경우는 맥주와 조금 상황이 다른데, 소비자의 유명 브랜드에 대한 반발이 덜하며, 생산 목적이 제품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는 것이죠. 이는 현재 전 세계적 추세입니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가 규모가 작고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 무조건 고품질로 여겨 크래프트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점에 대해서는 그도 나처럼 불만을 표한다. “맥주와 증류주에 붙는 크래프트라는 수식어에는 벌거벗은 임금님의 새 옷 같은 요소가 존재합니다. 일단 제품의 컨셉에 반한 소비자가 스토리가 너무 근사하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제품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 것이죠. 이제 크래프트 제품을 대할 때 소비자는 ‘이게 정말로 기존 브랜드 제품 가격의 2배에 달하는 가치가 있을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아는 증류주 브랜드 중 상당수는 대량생산이지만 재료와 전문성 면에서 소규모 가내수공업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최고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음을 필자도 잘 안다. 그러나 일반 대중이 대량생산한 와인이 수천수만의 소규모 크래프트 와인만큼 품질이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긴 쉽지 않다. 가령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한 1등급 레드 와인은 그 양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대략 샤토 라피트만 따져봐도 한 해 생산량이 12병들이 4만 상자에 이른다. 그렇지만 수량이 많다고 이 와인을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샤토 라피트야말로 고급 중의 최고급 와인이니까. 매년 12병들이 상자를 수백만 개씩 팔아치우는 옐로테일, 갈로, 블로섬힐 같은 와인이야말로 진정한 공산품이다.
최근 와인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주류 사업을 전개해온 미국의 컨스털레이션 브랜즈가 와인보다 맥주 사업에 중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컨스털레이션 브랜즈가 세계 와인 유통업체 서열 2위인 만큼 나로선 상당히 슬픈 일이지만, 분명히 주지해야 하는 사실이다.

잰시스 로빈슨
영국 출신의 세계적 와인평론가이자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글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사진 김흥수 코디네이션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