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침, 골판지
2016 대구아트페어에서 독특한 재료로 자신만의 예술적 결을 쌓고 있는 작가들인 심향, 손파, 김완을 만났다. 갤러리팔조의 소속 작가로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는 것 외에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일상에서 흔한 실, 침, 골판지 등 재료의 본질을 끈질기게 탐구하며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김완, 심향, 손파 작가(왼쪽부터)
‘Starfield’, 2016
실은 관계다_ 심향 작가
실은 연결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리적으로 지극히 단순한 형태지만, 연결이라는 속성을 통해 무수한 존재와 관계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계명대학교에서 서예를 전공한 이후,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려온 심향은 5년여 전부터 한지에 실을 꿰매고 엮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작품명은 ‘스타필드(Starfield)’. 그녀는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세상 모든 존재의 가치를 별로 표현해왔다. 그녀의 별이 진짜 별과 다른 점은 혼자 반짝이지 않고, 수많은 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 반짝이거나 덜 반짝이거나. 혹은 드러나지 않아 반짝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거나. 자유롭고 불규칙하게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 실의 모양새를 보면, 마치 얽히고설킨 세상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럼에도 따뜻하고 친근하다.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작가의 온화한 시선이 작품에 깊이 녹아든 까닭이다. “세상에는 유난히 반짝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죠. 덜 반짝이는 이가 있기 때문에 반짝이는 이의 빛은 더욱 빛나 보입니다. 즉 상대적인 거죠. 요즘은 나보다 잘난 남들과 비교 하느라 자존감을 잃고, 삶의 좌표마저 잃고 사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그 자체로 빛나는 소중한 사람이다!’, ‘스타필드’ 시리즈를 통해 제가 전하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는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그녀의 작품이 전시될 특별전 이름은 ‘Personal Structure: 개인적 구축-시간, 공간, 존재’. 존재에 대한 심향 작가의 온화한 시선을 수놓은 ‘스타필드’가 베니스라는 공간에서 그 자체로 빛나길 기대한다.

1 ‘Untitled’, 2016 2 ‘Untitled’, 2016
침은 극복이다_ 손파 작가
한겨울, 밀양 얼음골. 날카로운 추위는 따놓은 당상인 이곳에서 작가는 철저히 눈을 가린 채 산을 오르고 계곡을 지나 원점으로 회귀하는 한나절을 보냈다. 하루 온 종일 끼니라고는 초콜릿 두 조각이 전부. 눈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바짝 타오르며, 이제껏 내가 알던 내가 아닌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 그러면서 나를 깨뜨리는 시간. 김아타 선생의 독특한 워크숍을 통해 나를 깨뜨리고 고정관념과 집착을 벗어던져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도 하고, 이름도 얻었다. 선생이 직접 지어주었다는 이름의 뜻은 깨뜨릴 파(破). 그의 이름처럼 손파는 세상 모든 재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깨뜨리는 작가다. 팽팽한 고무 타이어를 갈기갈기 잘라 널어놓고, 촘촘하게 엮인 마대를 한 올 한 올 풀어헤치고, 적나라하게 잘린 소뿔을 켜켜이 쌓아 올리며, 뾰족뾰족 날 선 식칼을 용접해 이어 붙인다. 현재는 한방 침을 빼곡히 꽂아 의자, 항아리, 말머리 등을 만든다. 대구아트페어 오프닝 직전까지 현장에서 침을 꽂고 있던 작가는 의자 모양의 작품에 무려 300만 개 이상의 한방 침을 꽂았다고 한다. 작가는 왜 소뿔, 칼과 침 등 날카로움의 극단에 선 재료,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는 재료에 매료된 것일까?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 것을 피하는 대신 온몸으로 달려들어 그것을 해체하고 재조립함으로써 전혀 다른 형태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 그것이 무척 짜릿한 쾌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해체된 존재는 더 이상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게 공포와 두려움은 극복된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동양적 요소인 한방 침이 지닌 치유와 극복의 개념을 서양의 땅에서 독특한 퍼포먼스로 선보일 예정이라니, 현지에서의 반응이 사뭇 궁금해진다. 물질에 대한 호기심과 과감한 도전, 그것의 독창적인 변형 이상으로 그의 작품성을 결정짓는 건 요즘 미술 시장에서 보기 드문 성실함이다. 꼼수의 개념미술 대신 근면성실의 미학이 담긴 예술.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한 에너지가 손파의 작품에 꿈틀거리는 이유는 재료의 본질을 꿰뚫고자 한 그의 치열한 행동과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손파라는 이름 앞에 현대 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재료의 물성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탐구정신, 과감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그는 르네상스 인간에 가깝다. 예술가는 숙명적으로 과학, 철학, 물리학, 의학, 수학을 파고들 수밖에 없는 골치 아픈 학자인 동시에 용접공이 될 수 있음을 그는 보여준다. 때론 과격하고 도발적인 날 선 재료를 통해 강렬하고 대담한 화두를 던지며 세상의 모든 고정된 감각을 과감하게 깨뜨린다. 그게 손파다.

‘Lightscape’, 2016
골판지는 상처다_ 김완 작가
‘공교롭게도’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가 그다지 공부를 시키지 않던 곳이어서 무료한 학창 시절에 철학 책과 붓을 끼고 살았다는 김완. 형편이 넉넉지 않아 공장에 다니며 틈틈이 그림 그리고, 공모전 나가 상 받고, 이후 미술 학원 차려 그럭저럭 살다가 문득 생활이 아닌 예술을 해야겠다 싶어 서른다섯 살 되던 해에 영남대학교 미술학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세상을 적당히 회유한 서른다섯 살이 듣는 강의는 이제 갓 사회로 걸음마를 뗀 스무 살의 그것과는 달랐다. 늦깎이 대학 생활은 그에게 ‘나란 무엇인가’를 묻게 했고, 예술이 삶에 스며드는 짜릿함을 맛보게 했으며, 작품에 존재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펼치는 방법을 찾게 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예술을 하던’ 끝에 만난 것이 골판지다. 골판지는 선(線)인가, 면(面)인가? 선이면서 면이다. 무수한 칼질로 선을 그을수록 여실히 드러나는 거친 단면, 그것은 상처다. 김완이 찾은 골판지라는 존재의 본질은 바로 ‘인생의 상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상처에 머물지 않고, 작가가 어루만지고 쓰다듬은 끝에 아름다움으로 나아간다. 치유가 된다. “골판지에 무수한 칼질로 상처를 낸 것에 그치지 않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아름답고 단단하며 정교하게 만들어갑니다. 색을 입히고, 빛을 넣고, 어둠으로 더욱 깊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우리 인생을 돌아볼 때, 그 상처는 보다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 즉 터치(touch)를 통해 우리 모두는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간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개인전을 치르게 된 김완은 입체이면서 회화의 성격을 지닌 골판지로 지금까지 작업한 것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시도를 준비 중이다. 골판지를 이용한 설치미술을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 즉 ‘만지다(touch)’에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것이다. 상처는 결국 아물게 되어 있다. 때론 상처가 깊을수록 더 단단하게 살이 차오른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김완의 작품도 그렇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의 작품이 더욱 단단하게 차오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