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ther’s Piece
20세기 위대한 여성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샬로트 페리앙에게 전하는 딸의 메시지. 존경하는 나의 어머니에게.
사진 선민수
샬로트 페리앙의 사위 자크 바르사크(Jacques Barsac)와 딸 페르네트 페리앙-바르사크(Pernette Perriand-Barsac). 2개의 책상을 엇갈려 놓은 듯한 독특한 디자인의 책상은 벤탈리오(Ventaglio, 1972년), 컬러풀한 슬라이딩 도어가 달린 책장은 누아지(Nuage, 1953년).

샬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 1903~1999년)

아코르도 테이블
디어 샬로트, 나의 어머니. 어머니, 지금 계신 그곳은 어떤가요? 당신이 생전에 이룩하고자 한 생활예술이 실현된 진정한 의미의 유토피아인가요? 지금 조국 프랑스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남편 자크와 함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 와있어요. 우리가 잠시 함께 산 일본과 동해를 사이에 두고 있네요. 이탈리아의 모던 가구 브랜드 카시나(Cassina)에서 만들고 있는 당신의 분신 같은 아름다운 가구 앞에 앉아 있죠. 당신이 처음 가구의 도면을 그리던 때 이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이역만리 타국에까지 당신의 모던 디자인 정신이 전해지고, 당신의 제품이 ‘마스터 피스’로 추앙받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샬로트 페리앙의 딸과 사위가 왔다니 많은 이들이 달려와 우리의 손을 잡고 반가운 인사를 전했어요. 그리고 저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느냐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죠.
내겐 어릴 적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베트남에서 태어났고 세 살에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파리에 살지 못하고 지방 할머니 댁에 맡겨졌죠. 그러다 1953년 일본으로 이주해 함께 살면서 어머니는 내게 큰 존재가 되었죠. 늘 일에 파묻혀 살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당신을 존경해왔습니다. 30년간 당신 곁에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하며 매 순간 당신의 천재성에 감탄했어요.
올해 LC 시리즈가 탄생 50주년을 맞았어요. 사실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걸쳐 완성한 것인데, 르코르뷔지에 사후에 카시나를 통해 생산하기 시작한 지 50년이 되었네요. 나는 이제 솔직히 말한답니다. LC 시리즈는 르코르뷔지에 스튜디오 작품이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작업을 담당한 건 당신이라고요. 그런데 시대가 알아주질 않았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일하면 남자가 더 부각된다는 것, 누구든 충분히 이해해요.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청운의 꿈을 품고 찾아간 당신에게 르코르뷔지에가 “우리는 쿠션에 수를 놓을 일이 없다”며 매몰차게 돌려보냈다는 일화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많이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그해(1927년) 살롱 도톰(Salon d’Automne)에 크롬·알루미늄·유리를 활용한 ‘바 룸’을 연출해 르코르뷔지에를 감동시켰고, 당당히 그의 아틀리에에 입성할 수 있었죠. 유일한 여성 멤버로요. 한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와 당신은 서로에게 운명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LC4 체어
LC 시리즈 가구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디자인 원형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현대 기술과 소통하고 있어요. 50주년이라는 특별한 해를 맞은 올해는 가죽 가공과 크롬 프레임 제작 공정에서 독성 폐기물을 최소화하는 그린 공법을 제안하기도 했죠. 요즘 이 업계에선 환경보호가 아주 민감한 이슈거든요. 쏟아지는 축하 인사, 거장을 기리는 감사의 손길에 응대하며 난 이렇게 대답했어요. “샬로트 페리앙의 가구가 유명하지만 그녀를 단순히 가구 디자이너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요. 당신은 누가 뭐래도 건축가예요. 당신이 활동하던 그 시대에는 ‘디자인’이라는 용어도 없었지요. 당시의 가구는 가구 자체를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건축적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결과물이었어요. 어느 지역, 어떤 공간,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총체적으로 생각해 고안한 것이죠. 메리벨(Meribel, 1953년) 스툴을 예로 들었어요. (바로 눈앞에, 손 뻗으면 닿을 곳에 때마침 스툴이 있었거든요.) 처음엔 다리가 뾰족하고 가는 형태를 고안했지만 1960년대에 는 넓적한 형태도 만들었어요. 일본 전통 가옥의 다다미 구조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잘 버티게 하기 위해서요. 기숙사 가구로 제작한 페탈로(Petalo, 1951년)는 큰 테이블 아래 작은 테이블이 겹겹이 겹치는 디자인이죠. 좁은 공간을 넓게 사용하고 정리하기 편하게 만든 것이에요. 다들 공감했어요.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가구를 디자인한 사람은 거의 건축가였다는 것, 그들이 모더니즘 트렌드를 이끌었으며 핵심 키워드는 ‘기능성’이라고 입을 모았죠.
나는 당신이 왜 금속관을 활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기계화 시대의 미학이라기보다는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환경 창조’에 힘쓴 건축가의 사명 같은 것이었다고. 가구의 가격을 낮춰 부르주아가 아닌 중산층 사람의 삶을 개선해보자는 의도를 담았다고요. 당시 자전거가 보편화되면서 자전거 가격이 낮아졌는데 자전거에 사용하는 금속관을 가구 산업에 접목하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 것이었죠. 하지만 결과적으론 이상적 발상에 그치고 말았어요. 가구 제작 기술은 자전거처럼 대량생산이 불가능했으니까요. 어쨌든 그래도 현대적 가구 디자인과 공정의 혁신을 주도한 것은 분명해요. 물론 금속관이 없어도 당신의 가구 디자인은 빛납니다. 1940년대 이후 일본과 베트남에서 활동할 때 만든 작품에선 나무 소재의 자연스러움이 잘 묻어나죠. LC7 체어나 LC4를 응용한 도쿄 체어 같은. 아시아의 목공 기법을 접목하면서 점차 휴머니즘이 깃들기 시작했고, 후기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조형미를 강조했죠. 아코르도(Accordo, 1969년) 테이블을 볼 때마다 자크가 그래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검은 태양 같기도하고 샐쭉한 달 같기도 하다고, 참으로 시적이라고.
2013년 디자인 마이애미에 선보인 물가의 집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취재 협조 크리에이티브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