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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rit of Kohler

미분류

욕실의 최첨단 아이콘 콜러는 알아갈수록 품격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브랜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혁신적인 욕실 제품으로 쾌적하고 편안한 욕실 문화를 이끄는 것은 물론 예술적 가치를 찾아 신진 아티스트를 후원하고, 최고급 호텔·리조트 사업을 통해 고급스러운 편의 시설을 제공한다. 어느 가을날 위스콘신 주 콜러 마을을 찾아 그동안 잘 알지 못한 콜러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콜러 디자인 센터 외관

현대적 디자인의 새로운 수전 컬렉션 컴퍼즈드

피커를 장착한 샤워 헤드 목시

블루투스 스피커가 내장된 목시 내부

Prologue
10월의 시카고는 가을이 완연한 모습이었다. 제법 서늘한 공기에 울긋불긋 물든 단풍이 회색빛 도시를 운치 있게 뒤덮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시카고의 하늘을 바라보며 최종 목적지로 데려다줄 버스에 올랐다.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을 출발해 2시간쯤 달린 버스는 대도시의 분주하고 화려한 모습을 지나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 다다랐다. 위스콘신 주 미시간 호 인근에 위치한 콜러 마을.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욕실 시장의 애플’이라 불리는 브랜드 콜러(Kohler)의 본거지다.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서울로 치면 동대문구 정도되는 꽤나 큰 면적(14.58km²)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욕실 문화를 이끄는 글로벌 브랜드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땅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니! 새삼 콜러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 마을의 본래 지명은 리버사이드(Riverside)였다. 1873년, 미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존 마이클 콜러는 5000달러의 자금을 들여 콜러 기업을 세웠다. 그 후 10년간 콜러는 주물 농기구를 제작하는 작은 공장이었으나 1883년 전에 없던 에나멜을 입힌 욕조를 개발하면서 욕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욕실 브랜드로 괄목할만한 성장 가도를 달린 콜러는 새 공장을 세우며 사업을 확장했고, 1900년 리버사이드 마을은 ‘콜러’로 개명하게 되었다. 결국 본사와 공장, 디자인 센터를 비롯해 콜러가 운영하는 대부분의 사업체가 모여있는 ‘진짜’ 콜러 마을이 된 셈. 현재까지 미국에서도 가장 큰 가족 기업으로 꼽히는 콜러의 동네라 그런지 클래식하면서도 ‘가족’ 중심의 포근한 느낌이 든다. 버스를 운전하는 일흔을 넘긴 듯한 어르신의 주름진 얼굴에도 미소가 끊이지 않는 아늑하고 정겨운 콜러 마을에 3일간 머물렀다. ‘2015 콜러 에디터스 콘퍼런스(2015 Kohler Editor’s Conference)’에 참여하기 위해. 콜러의 비전과 제품, 디자인 철학을 콜러 디자인 센터, 아트 센터를 비롯해 콜러가 운영하는 호텔·리조트에서 몸소 체험하고 확인했다.

조너선 애들러가 디자인한 바로코코 퓨처리즘 욕실

The Bold Look of Kohler
“1929년, 콜러 제품은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전시된 적이 있습니다.” 허버트 콜러 회장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콜러의 제품은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답다. 대표 제품인 누미 일체형 양변기만 봐도 건축의 직각 기하 이론에서 모티브를 얻은 심플한 디자인이다. 누가 양변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만들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만큼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브랜드라 디자인 철학의 핵심인 콜러 디자인 센터에 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콜러 마을 한복판에는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인 디자인 센터가 자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늑한 갤러리 같지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콜러의 디자인 컨셉은 물론 전 제품의 라인업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3344m2의 어마어마한 공간이 펼쳐진다. 원래 주민이 여가를 즐기던 대형 홀을 1985년 전시관으로 개조했는데, 1층과 2층을 탁 트인 개방형 구조로 설계한 덕분에 훨씬 넓어 보인다. 특히 수백 개의 양변기와 욕조를 일렬로 배치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벽면이 눈에 띈다. 업계 최초로 욕조와 양변기 도기에 파스텔 컬러 에나멜을 입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양변기와 욕조, 샤워기, 수전 등을 빼곡히 전시한 1층에서 제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콜러 특유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장착한 샤워 헤드, 보기 드물게 티타늄 소재로 마감 처리한 수전 컬렉션 등을 보고만지며 콜러가 추구하는 볼드(비범함) 철학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중앙에 놓인, 말로만 듣던 신개념 샤워 시스템 DTV+를 발견했다. 일반적 샤워 부스처럼 생겼지만 사용자가 원하는 수온과 수압, 물줄기가 나오는 방향 등을 조절할 수 있어 나만의 홈 스파가 가능하다. 또 콜러 앰프와 사운드 타일 스피커를 통해 샤워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원하는 분위기의 조명을 세팅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층으로 올라가면 디자인 센터의 백미인 ‘아티스트 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20여 개의 욕실과 4개의 주방을 독립된 룸으로 꾸몄는데, 각 공간마다 전혀 다른 컨셉의 디자인을 적용해 찬찬히 둘러보기에 좋다. 유명 디자이너가 인테리어를 맡은 각 방은 콜러 제품을 기반으로 화려한 데커레이션을 가미해 누구라도 절로 카메라를 꺼내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코코 퓨처리즘(Barococo Futurism)’에 마음을 뺏겼다. 풍성한 깃털 장식으로 바로코와 로코코 양식을 접목한 욕실은 골드 컬러 콜러 수전을 더해 고전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심지어 뉴욕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작가인 조너선 애들러(Jonathan Adler)의 작품이라니,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박물관이나 갤러리 혹은 쇼룸처럼 특색 있게 꾸며 콜러의 디자인 미학과 혁신적 제품이 자연스레 녹아든 디자인 센터. 오래 머물며 둘러봐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아티스트 에디션 시리즈 중 브리올렛(아래쪽), 카라반 네팔(위쪽)

아티스트 에디션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는 모습

Art is Our Priority
이튿날 오전 8시 30분, 콜러 공장 투어가 시작되었다. 콜러 공장은 디자인 센터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천천히 공장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길목에 줄지어 선 사람 형상의 작은 동상이 시선을 잡아끈다. “단순한 동상으로 보이죠? 이건 콜러가 후원한 아티스트의 작품입니다.” 공장 투어 가이드는 잠시 후 공장에 가면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을거라고 귀띔하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길가에 놓인 작품을 감상하며 걸으니 야외 갤러리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 공장까지 가는 발걸음이 경쾌해진다. 콜러의 욕조와 양변기, 수전 등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 투어는 3시간가량 이어진다. 24시간 운영하는 공장에서는 거칠고 투박한 기계 공정도 볼 수 있지만, 펄펄 끓는 용광로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섬세한 작업에 몰두하는 숙련된 장인들의 모습을 보니 경이로운 전율이 흐른다. 하루에 180여 개의 양변기가 장인의 손을 거치는데, 본을 뜨고 유약을 바르고 말리는 전 과정을 어린아이 다루듯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니 콜러의 우수한 제품력이 괜한 명성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공장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공장에 웬 아티스트냐고? 콜러는 그 어떤 브랜드보다 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다. ‘볼드 아트’라는 컨셉으로 예술가와 지속적으로 협업한 아티스트 에디션 시리즈를 선보이고, 이 제품을 들고 한국·대만·홍콩 등을 돌며 순회 전시를 열기도 한다. 신진 작가를 후원하는 ‘아트·인더스트리 프로그램’은 단연 독보적이다. 1974년부터 콜러와 존 마이클 콜러 아트 센터(John Michael Kohler Art Center)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신진 작가의 창작 활동을 돕고 있다. 장기 레지던시(2~6개월), 단기 워크숍, 투어 등이 있고 숙박은 물론 재료와 장비 등 작가가 작업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무료로 제공하는 놀라운 혜택이 주어져 매년 경쟁이 치열하다고. 공장 한편을 공방 삼아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은 장기 레지던시에 선발된 신진 작가. 그들의 작업 흔적은 콜러 마을 곳곳에 퍼져 있는데, 존 마이클 콜러 아트 센터에서도 그들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기에 위스콘신 주 동부 시보이건(Sheboygan)에 위치한 아트 센터에 잠시 들렀다. 전시도 전시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의외의 공간인 화장실에 작가들의 작품을 반영한 점. 아트 센터 내 총 6개의 화장실을 일부러 찾아다녔는데, 문을 열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바닥과 벽면의 타일은 물론 세면대, 양변기를 캔버스 삼아 화려한 그림을 입혀 누군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화장실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 공공 화장실에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다니! 손을 씻는 일조차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정교한 그림을 감상하며 난생처음 화장실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트·인더스트리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된 작가가 디자인한 콜러 아트 센터 내 화장실

Other Kohler Business
이번 콘퍼런스 내내 우리는 아메리칸 클럽에 머물렀다. 이름만으론 그 정체를 눈치채기 어려운 아메리칸 클럽은 디자인 센터와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5성급 호텔이다. 콜러는 욕실·주방용품 외에도 레저, 부동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한다. 아메리칸 클럽도 마찬가지. 흔히 생각하는 도심 호텔의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조용한 교외 저택의 모습을 띠고 있다. “1918년에 지은 아메리칸 클럽은 콜러 공장에서 일하는 유럽 이민 노동자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숙박은 물론 영어와 미국 시민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배웠죠.” 데이비드 콜러 사장의 설명처럼 콜러는 먼 곳에서 이주한 직원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이 클럽을 지었고, 1981년에 이르러서야 241개의 객실과 5개의 레스토랑을 갖춘 호텔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고풍스러우면서 앤티크한 실내, 본관과 별관 사이에 조성한 아늑한 정원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유유자적 책 한 권 끼고 휴식을 취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콜러를 말하면서 골프 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위스콘신 주에 위치한 세계적 골프 코스 블랙울프 런과 휘슬링 스트레이츠를 콜러가 운영하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특히 블랙울프 런은 1998년 박세리가 ‘맨발의 투혼’으로 US 여자 오픈 우승을 차지한 그 골프장이라 우리에겐 더욱 친숙하다. 욕실용품을 만들며 세계적 골프코스를 운영하는 기업이 된 건 사뭇 놀랍다. 데이비드 콜러 사장은 “사업 내용은 다르지만 원칙은 같습니다. 디테일에 신경 쓴 거죠. 골프 리조트나 호텔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메리칸 클럽에 묵는 고객의 편의를 위해 우리는 골프 코스를 직접 오픈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142년의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욕실 문화뿐 아니라 특유의 섬세한 감각과 심미안으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품격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콜릿 브랜드까지 런칭했다는 콜러가 또 어떤 도전으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에디터 문지영 (jymoon@noblesse.com)
사진 제공 콜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