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고전을 부르다
세계적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가 영화음악의 명곡을 고른 새 앨범 <시네마>를 발표했다. 우리를 사로잡은 영화음악을 향한 그의 애정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가 <노블레스>를 통해 새 앨범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Decca/ⓒ Giovanni De Sandre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는 늘 만남과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다시 헤어지지 말자며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는 ‘Mai Piu’ Cosi’ Lontano’와 안녕이라고 말할 때가 됐다고 노래하는 ‘Time To Say Goodbye’가 ‘안드레아 보첼리’ 하면 우리의 귓가에 자동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어릴 적 사고로 잃은 시력 때문에 무대에서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하는 그의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과 함께 말이다. 1958년 이탈리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그가 이처럼 세계적 테너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타고난 목소리의 오묘한 매력에 있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딛고 정상에 섰다는 (어쩌면 흔한) 영웅적 신화의 그림자가 그에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그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다. 함께 노래한 팝 가수 셀린 디옹은 그의 목소리를 이렇게 극찬했다. “만약 신이 노래한다면,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와 같을 것이다.” 그의 몸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온 소리가 때로는 아침의 잔잔한 호수처럼 서정적이고, 때로는 몇 미터가 넘는 높은 파도처럼 드라마틱한 스펙트럼을 지녔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무릇 신이 인간에게 그런 존재인 것과 같이. 그가 한 곡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는 그렇게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을 선사한다. 그래서일까? 안드레아 보첼리가 불멸의 영화음악을 노래한 새 앨범 <시네마(Cinema)>는 전혀 낯설지 않다. 앨범을 듣는 순간, 그가 아주 오랫동안 이 노래들을 흥얼거렸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에게 앨범 <시네마>는 수십 년간 키워온 꿈의 실현이었다. 이제 그의 바람은 하나다. “이 불멸의 ‘고전’이 (앨범을) 듣는 모든 사람의 경험과 추억, 감정의 일부분이 되어 자신만의 사운드트랙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 Universal
첫 영화음악 앨범이라고 알고 있어요. 영화음악만 선별한 앨범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영화음악에 언제나 흥미를 느끼고 있었어요. 마침내 <시네마> 앨범을 통해 수십 년간 키워온 꿈이 실현되었습니다. 훌륭한 예술적 영감의 원천인 영화음악 프로젝트를 꼭 진행하고 싶었거든요. 영화음악은 매우 자유롭고 창의적입니다. 작곡가가 영감에 따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광활한 초원 같다고 할까요. 또한 사랑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를 아우르죠. 이번 앨범은 영화음악 세계에서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선곡을 반영했어요. 정말 사랑하는 곡을 특별히 골랐으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앨범은 저 자신에게도, 대중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겁니다.
혹시 영화관에 대한 어린 시절의 특별한 추억이 있나요?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텔레비전은 온 가족을 위한 특별한 볼거리였고, 우리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자들까지 이 새로운 발명품 앞에 모여 몇 개 안 되고 선택권도 없는 프로그램을 시청했죠. 영화관도 일종의 가족 행사로, 열심히 일한 부모님이 여가를 보내는 방식이었어요. 저는 어릴 때 전쟁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을 꿈꿨죠. 커가면서 점점 사랑 영화에 끌리게 됐지만요.(웃음)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노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더군요. 수록곡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겠어요. 최고의 곡에 집중하려고 했죠. 저를 감동하게 하는 멜로디를 노래하는 것이 필수였어요. 그래서 기억 속을 파고들어 제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성장하게 하고,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웃게 한 영화음악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제 목소리의 특징을 잘 살려주는, 특별히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Maria’,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The Music of the Night’처럼요. 제가 늘 존경하는 프랭크 시내트라, 마리오 란자 등 우리 가슴속에 와 닿은 가수들이 부른 곡입니다. 이 멋진 노래가 계속 사랑받고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앨범을 듣고 원곡에 최대한 충실하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맞아요. 저는 원곡의 어법을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접근 방식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버전과 최대한 가깝기를 바랐어요. 위대한 가수가 과거에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 국제적으로 널리 찬사를 받은 곡을 해체하거나 혁신하는 것은 무의미해요. <시네마> 앨범은 객관적으로 볼 때도 고무적이고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해요. 최근 녹음 기술이 큰 발전을 이뤘잖아요. 이런 혁신은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가능하게 했어요. 최신 녹음 기술을 통해 우리 모두 알고 사랑하는 곡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었습니다.
오페라와 대중음악 두 영역에서 사랑받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을 노래할 때와 오페라를 할 때는 어떻게 다른가요? 모든 예술 형식은 각각 다른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르는 지켜야 하는 특징을 구현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하지만 영화음악과 오페라 사이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어요. 둘 다 연극성을 중심으로 서술적 줄거리와 밀접하게 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연관돼 있습니다. 뮤지컬 영화의 노래와 오페라의 아리아는 더욱 그 차이를 구분하기 힘들죠.
이번 앨범의 또 다른 특징은 아주 다양한 언어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모든 언어엔 고유의 표현력과 특정한 음악성이 잠재돼 있죠. 이번 앨범에서 저는 영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와 시칠리아 방언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어떤 노래를 어느 언어로 부를지 정하느라 많이 고민했어요. 가끔은 창의성을 발휘해 임의로 가사의 반은 영어로, 반은 이탈리아어로 조합했습니다. 노래 중 하나는 제가 직접 번역해 개사하기도 했고요. 가장 많이 사용한 언어는 영어지만, 스페인어는 아주 유혹적이고, 환기적인 언어로 이번 음반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앨범 수록곡과 관련해 그동안 노래하면서 재미있는 일화는 없었나요? 각 곡에 특별한 감정과 많은 추억이 스며 있어요. 2007년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이애나 비 추모 공연에서 ‘The Music of the Night’를 부르기로 했죠. 전에도 자주 듣고 흥얼거린 노래지만 가사를 전부 외우진 못했어요. 그래서 아내인 베로니카에게 헤드폰을 통해 프롬프트(prompt)를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통제실로 향하던 아내가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했어요. 결국엔 상황이 잘 정리됐는데, 그러는 동안 저는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를 무대 뒤 불과 몇 발짝 떨어진 곳에 두고 무대에 올라 전 세계 카메라 앞에서 벙어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요.(웃음) <시네마>에 실린 곡을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들으면 또 다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를 순간이 기다려져요. 모두 오케스트레이션이 아주 풍부한 인상적인 곡이라서요. 또한 평소에 부르는 레퍼토리와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번 앨범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습니다. 저는 20세기 음악에 크게 이바지한 작곡가가 만든 세계 최고의 히트곡으로 구성한 환상적인 앨범을 늘 구상해왔어요. 편곡을 새로 하고 최신 녹음 기술을 사용해 이 노래의 아름다움을 기리고 싶었죠. <시네마>의 수록곡은 다채로운 색채와 빛의 태피스트리입니다. 영화가 ‘꿈의 공장’이라면, 영화를 받쳐주는 음악은 마법과 감정의 세계를 감싸고 농축하죠.
아주 기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드릴게요.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수는 이미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멜로디의 내적 의미를 꿰뚫기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고 감정을 새로 일깨우죠. 음악에서 무작위로 일어나는 것은 없어요. 각 곡은 끝없는 모험이 펼쳐지는, 바닥이 보이지 않은 무한한 우물이자 원천입니다. 물론 특정 지점에 다다르면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적어도 아직 여기까지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곡을 콘서트에서 수십 번씩 노래하고도, 나중에야 약간의 변화로 그 곡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돼요. 언제나 새로 발견하고, 탐구하고, 심도 있게 연구할 부분이 남아 있는 거죠. 팝 음악의 영역에서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감성과 직감, 창의적 상상을 위한 여지가 많이 있으니까요.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