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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로 쿠치넬리, 그 이름에 진심을 담다

FASHION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칸트. 패션 회사 오너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솔로메오에서 만난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프레스티지 레이블에 걸맞은 명백한 가치를 보여줬다. 단순함 속에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옷, 소유하는 것만으로 마음 한편에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건 그 안에 이상(理想)이 담겨 있어서다.

솔로메오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브루넬로 쿠치넬리

목표를 위해 꿈꾸다 이탈리아 움브리아 주의 소도시 페루자의 작은 마을 카스텔레고네. 농부 아버지를 둔 사내아이가 있었다. 그 시절 공장 노동자는 농부에 비해 출세한 축에 속했고, 결국 소년의 아버지도 공장에 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종일 힘들게 일하고 가족들과 보낼 시간조차 없는 아버지가 아이의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만약 경영인이 된다면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삶을 보호하겠다고 마음먹는다. 훗날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던 소년은 어느 날 갑자기 ‘컬러풀한 캐시미어 스웨터를 만들어 팔면 어떨까’ 생각한 후, 학교를 그만두고 비즈니스에 뛰어든다. 즉흥적 아이디어로 시작한 일이지만 어릴 적부터 남다른 스타일로 감각을 뽐낸 터라 확신이 있었다. 또 당시 움브리아 주는 니트 산업으로 번영을 누리던 곳으로 탁월한 스웨터 제조 기술을 갖추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네통의 비비드한 컬러 팔레트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버릴 것 하나 없는 최상의 섬유인 캐시미어 제품은 어두운 컬러가 전부인 탓에 전략은 잘 맞아떨어졌고, 사업은 즉각적인 주문량 증가와 함께 번창한다. 1978년 50만 리라(약 260유로)를 대출받아 처음 선보인 53개의 스웨터는 36년이 지난 오늘 밀라노, 뉴욕, 파리, 도쿄 등 세계 각지의 1000개가 넘는 멀티숍과 백화점에 입점했다. 2년 전 밀라노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주식은 그 가치가 2배 이상 증가하고 지난해 5월 주식공개(IPO)를 통해 알려진 자산이 10억 달러를 넘는다. 물론 올해 전망도 밝다. 꿈같은 얘기다. 그런데 동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브루넬로 쿠치넬리 역시 모든 것은 이상과 꿈이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솔로메오(Solomeo)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 오렌지 벽돌 건물과 올리브나무가 어우러져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솔로메오 마을 전경
2 니트 기술을 가르치는 솔로메오의 학교

생각을 나누다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도착한 페루자의 솔로메오. 1985년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지금의 아내 고향인 이곳에 14세기에 지은 성을 구입해 정착한 후 회사를 옮겨오고 교회, 극장, 학교, 가게를 열며 마을 재건에 열심이다. 패션 회사의 오너가 마을 재건? 의아할 수도 있지만 솔로메오는 로마 시대에 교통의 요충지이자 수공예의 중심지였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16세기에는 마을의 규모가 성 밖까지 확장될 정도로 황금기를 누렸다. 그래서 그 지역을 복원하는 것은 오래된 것의 가치를 되살린다는 의미와 더불어 전통을 잇는 이탈리아 사람 특유의 정신을 살린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또 그는 인본주의에 관심이 많아 포럼을 열고 대학과 민간 기관을 지원한다. 알면 알수록 그가 패션 비즈니스 외의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부동산이나 건물을 구매하는 건 나 역시 그 장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사랑과 존경으로 보살펴야 할 대상이죠. 그것이 제 삶의 첫 번째 약속이고 꿈이었어요. 저는 사업을 통해 1300년에 걸쳐 성장하고 번영한 솔로메오의 생명선을 복원하고 싶습니다.”
작은 마을의 대규모 재건 프로젝트는 중세에 지은 성에서 시작됐다. 수년간 방치해온 기념물이 본사 건물로 탈바꿈할 즈음 사업이 확장되어 또 다른 사무실이 필요해졌다. 첫 번째와 달리 삼나무와 소나무로 빼곡한 정원이 있는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새 건물을 지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어릴 적 아버지를 보며 결심한 인본주의적 회사 경영을 시작한다. 직원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는 매일 아침 현지 재료로 만든 움브리안 전통 홈메이드 음식을 제공하고, 관료주의적 관행인 출퇴근 카드를 찍는 제도 대신 자율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물론 형식적 조직 내 계급도 폐지했다. “오후 5시 30분이면 모든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희 직원도 마찬가지죠. 일거리를 집에 싸 들고 가지도 않습니다. 저녁시간은 가족의 일원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티베트 요가, 수영, 축구 등을 하죠. 사람은 삶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가 균형을 이룰 때 가장 창조적 힘을 발휘하고 열정을 쏟을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집중했는가입니다. 칭기즈칸이 역사상 가장 넓은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강하고 빠른 속도 덕분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열여덟 살 때부터 칸트의 철학에 빠져들기 시작해 청년기에는 근심 없는 삶(la dolce vita)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보낸 때문일까? 대화가 이어질수록 방대한 역사와 인문학적 지식의 깊이가 느껴졌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역사, 예술, 윤리 서적을 전부 읽었다는 말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독서를 좋아해요. ‘책은 열정이다’라고 말한 2세기 로마 통치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제 영감의 원천이죠. 그의 저서 <생각(Thoughts)>은 휴머니즘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것인데,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에요.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용기를 내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등 그분이 남긴 숱한 명언을 늘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어요. 매일 아침 그날의 목표를 정하고 이를 정확히 지키는 습관도 그분의 가르침에서 시작됐죠.”
현학자들의 지혜를 논하는 그의 얼굴에 들뜬 표정이 감돌았다. 특히 자신과 같은 기업가들이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오롯이 문화와 정신뿐이니 욕심을 버리고 세월이 흘러도 가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할 때는 마치 무소유의 가치를 설파하는 위대한 철학자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궁금했다. 그런데 대답이 의외다. 단 한 번의 어려움도 없었단다. “무일푼의 청년이 성공하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꿈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구체화할 수 있는 계획이 있어야 하죠. 저는 목표를 믿었고 매사에 진심을 다했어요. ‘마케팅은 물건을 파는 판매가 아니라 팔리는 물건을 만드는 기획이다’라는 미국 경제학자 시어도어 레빗(Theodore Levitt)의 이론에 동의하고 디자인, 상품 제작, 판매까지 모든 부분에 열정적으로 관여하죠. 사람들은 고가의 물건을 팔 때 마치 그것이 영원히 최고인 듯 포장합니다. 그러나 지구상에 영원한 제품은 없어요. 세상은 거의 비슷합니다. 그 안에서 나만의 독창적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올해 60세인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사무실을 이곳저곳 돌며 신념과 인간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1시간이 넘도록 풀어낸 삶의 철학은 한 권의 도덕책보다 이상적인 현실처럼 다가와 감동을 줬다. 마치 멘토에게 긴 인생 수업을 들은 것처럼.

진정한 가치를 찾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모든 제품은 솔로메오 공장에서 생산한다. 최상급 소재 가벼운 디테일, 최고의 장인 기술을 접목한 의상은 스포티브, 클래식, 모던 등 다양한 분위기를 오가는데 특유의 절제미와 더불어 기품 있는 세련미가 흐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기 요인이자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강조하는 독창성이다. “이 시대의 명품은 품질과 디자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기업의 윤리에 높은 가치를 두는 소비자가 많아졌습니다. 힘들고 지친 노동자가 좋은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요? 사람은 인간적 삶을 영위할 때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가장 행복한 상태에서 최고 퀄리티의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사업은 한두 해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두 세기를 앞서 먼 미래를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만의 목표를 찾고 그 목적을 믿으세요.”
다가오는 4월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기념해 올 가을 열리는 이벤트를 위해 방한한다는 브루넬로 쿠치넬리.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울 여행을 앞두고 설레지만 자신은 농부의 자식인 탓인지 여유롭고 푸근한 농촌이, 자연이 좋다고 말하며 도시를 향한 여정에 대한 긴장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그는 오후 5시 30분이 되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 모든 스트레스를 잊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길 거다. 그리고 내일 아침 6시에 눈을 떠 오늘 아침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 일과를 계획할 거다.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신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