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미술품 비즈니스
2012년 뮌헨의 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발견한 1400여 점의 나치 약탈 미술품으로 지금 유럽은 떠들썩하다. 이와 관련한 독일 현지의 사정을 찬찬히 짚어봤다.
지난 3월, 238점의 나치 약탈 미술품이 추가로 발견된 구를리트의 오스트리아 주택
2010년 9월 22일, 81세의 백발 노인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는 취리히에서 뮌헨으로 가는 열차에 탔다. 그는 국경을 넘은 뒤 세관원의 불심검문에 걸리자 현금 9000유로를 보여줬다. ‘국경 통과 소지 한도액’이 1만 유로였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직업도 없는 그가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세관원의 의심을 샀다. 돈세탁과 탈세 혐의였다. 그 때문에 세관 측은 1년 이상 구를리트를 감시하다 2012년 2월 28일 수사관과 함께 그의 아파트를 급습했다. 돈뭉치를 기대한 수사관들은 경악했다. 닫힌 방 안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미술품이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구를리트가 보관하고 있던 1400여 점, 시가로 10억 유로(약 1조5000억 원) 상당의 미술품을 모두 압류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듬해 11월 독일 일간지 <포쿠스>가 검찰 수사 사실을 기사화하기 전까지 이 사건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 독일 정부는 나치 약탈 미술품을 발견하고도 2년 가까이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다. 거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역사적 실수를 바로잡기 위한 독일 정부의 시스템 정비 작업이 완벽히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었다.
독일 현행법상 도난당한 지 30년이 지난 예술품에 대해서는 소유권 주장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를리트는 법적으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미술품의 소유주임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나치에 미술품을 빼앗긴 이들이나 그들의 후손은 이를 돌려달라고 주장할 수 없다. 이 법의 타당성과 도덕적 명분 등에 대한 논쟁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독일 정부 차원에서 몇 차례 고려했으나 지방자치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매번 보류되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독일 국회에선 나치 약탈품에 한해 공소시효를 없애는 ‘구를리트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독일 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독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약탈 미술품의 출처를 조사하는 기관을 만들 예정이다. 구를리트 사건을 바라보는 독일 국민 대다수도 나치 약탈 미술품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독일 내 여론과 전 세계의 요구에 답하기 위한 독일 정부의 구체적 조치가 나와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쯤 되니 사건의 중심에 있는 구를리트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아파트에서 두문불출하던 그는 3명의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웹(www.gurlitt.info)을 개설했다. 그의 변호사가 이 웹을 통해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의 골자는 “독일 당국이 구를리트의 집을 수색한 건 명백한 불법 행위”고, “그들이 압수해간 미술품의 합법적 소유권 또한 구를리트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약탈 미술품이라는 증거가 있다면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작업을 진행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독일엔 구를리트 컬렉션보다 많은 약탈 미술품을 소장한 개인 컬렉터나 미술관이 있지만 그들에겐 아직 그 어떤 법적 조치도 취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사실 구를리트 사건의 경위는 그의 아버지 힐데블란트 구를리트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사가이자 유능한 큐레이터였던 힐데블란트 구를리트는 할머니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나치 정권 시절 근무하던 미술관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곧이어 히틀러의 부름을 받고 나치가 몰수한 퇴폐 미술품(당시 히틀러는 거의 모든 현대미술품을 퇴폐 미술로 규정하고 소각하거나 경매에 넘겼다)의 매각 처리를 위임받았다. 그는 1만6000여 점의 약탈 미술품 중 수천 점을 외국에 헐값으로 매각하는 공을 세웠다.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에 있는 예술품을 압수한 1941년부터 1944년 사이(이 기간에 힐데블란트는 파리에 아파트를 두고 독일과 프랑스를 왕래했다) 프랑스에서 독일로 들여온 미술품은 10만 점이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힐데블란트 구를리트는 1956년 자동차 사고로 돌연 사망했다. 그의 미술품을 관리하던 부인도 6년 후 사망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무명 화가로 활동하던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는 당연히 이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뮌헨으로 돌아와 약 45년 동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직 그림을 돌보며 살았다.
구를리트는 최근 3명의 변호사를 선임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웹을 개설했다.
구를리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대체로 이중적이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그림을 지키며 고립된 인생을 산 구를리트를 동정하는가 하면, 나치로부터 문화유산을 ‘지켜낸’ 힐데블란트 구를리트의 영웅적인 면을 은근히 부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각은 인류의 광기와 전쟁이 낳은 문제를 후세가 풀어가야 하는 복잡한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웹을 통해 약탈 미술품이라는 증거가 있으면 순순히 돌려주겠다고 한 구를리트의 결심, 그 첫 번째 혜택을 받은 이는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의 전처 안네 싱클레어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1940년 파리에서 마티스와 피카소 등의 그림을 파는 화상을 운영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독일군에게 다수의 미술품을 압수당했다. 그중 하나가 구를리트가 숨긴 미술품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마티스의 ‘앉아 있는 여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이 작품 가격이 수천억 원에 이른다고 본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 다른 나치 약탈 미술품에 대해서도 반환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BBC는 최근 “제2차 세계대전의 끝나지 않은 미술품 비즈니스”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미술품의 원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또 다른 뉴스가 떴다. 구를리트의 오스트리아 주택에서 추가로 238점의 미술품이 발견된 것. 그중엔 모네가 1903년 런던탑을 그린 유화와 고갱의 그림도 포함되어 있다. 추정가는 1000만 유로(약 150억 원). 이번에 추가로 발견된 미술품을 계기로 구를리트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독일 언론은 힐데블란트 구를리트의 미술품 수장고가 최소 여섯 곳에 달한다고 전했다.
얼마 전 독일의 한 TV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선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가 미술품을 압수당했을 때 느낀 슬픔은 몇 해 전 동생이 죽었을 때보다 더한 것이라고 전했다. 구를리트에게 그의 아파트에 있던 미술품은 평생의 반려자였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경로로 소유하게 된 그 많은 작품의 운명에 대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독일 세관의 검문이 없었더라면 구를리트 사건과 그 미술품의 행방은 역사의 그늘에 완전히 묻혀버렸을 것이다. 구를리트 사건으로 전면에 드러났지만 나치 약탈 미술품인 줄 알면서도 숨기고 살아가는 제2, 제3의 구를리트에게 세상의 도덕적 의무를 묻는 일은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현재 구를리트에겐 세금 횡령죄 말곤 딱히 적용할 만한 죄목도 없다. 최근 세계적 미술품 컬렉터이자 에스티 로더 그룹 회장인 로널드 로더는 <베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유대인에게 약탈한 미술품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복역수”라고 표현했다. 구를리트가 돌려주기로 한 미술품뿐 아니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수많은 복역수 미술품을 풀어주는 이 과제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구를리트의 소장품을 어떻게 해결하든 앞으로 나치 약탈 미술품은 계속 발견될 것이다. 나치 약탈 미술품에 대한 독일 정부 차원의 반환 운동이 하루빨리 전개되어야 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글 최선희(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