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ssage from Lee Hyun Se_ 젊은 게 아무것도 아닌 이유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남자의 마음을 뒤흔든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 이현세가 석 달 동안 <노블레스> 독자를 위해 뜻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첫 번째로 순수한 사랑을 모르는 안타까운 젊음을 위한 조언을 전한다.
나는 자연주의 문학을 좋아한다. 잔인하고 처절한 야생의 삶을 통해 스스로 극복하고 생존하는 자연의 본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니스트 톰슨 시튼의 <늑대왕 로보>를 처음 읽고 통곡한 기억이 있다. 말하자면 시턴은 나를 자연주의 문학에 처음 발 들이게 한 작가인 셈이다. <늑대왕 로보>의 주인공 로보는 1889년경에 뉴멕시코 주 북부의 넓은 초원이자 목축 지역인 커럼포 일대에 출몰해 5년 가까이 군림하며 늑대왕으로 불린 교활한 회색 늑대다. 인간의 문명 개발 때문에 먹잇감을 빼앗긴 로보는 부하 다섯을 거느리고 하루에 소 한 마리씩 사냥하며 목장주를 공포에 빠뜨린다. 왕으로 군림한 늑대왕 로보는 어느 누구도 자기 앞을 질주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마리, 눈부신 은빛 털을 지닌 아내 블랑카만은 예외였다. 이것이 비극이 된다.
경쾌하고 경솔한 아내 블랑카가 조심성 없이 로보 앞으로 달려나가다 사람들이 쳐둔 덫에 걸린다. 50kg짜리 소 대가리 모양의 덫을 발에 달고 달아나던 블랑카는 그것이 계곡의 바위틈에 끼어 결국 사람들의 손에 잡혔다. 작가 시튼은 죽은 블랑카의 발을 잘라 초원 곳곳에 발자국을 찍고 로보를 유인하지만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죽은 줄 알면서도 몇 날 며칠을 울부짖으며 찾아 헤매던 로보는 블랑카의 냄새를 맡고 시체를 향해 거침없이 뛰어든다. 마침내 커럼포의 계곡과 초원을 버리고 달려온 로보의 발목을 4개의 덫이 물어뜯었다. 덫에 걸려 잡힌 로보는 시튼이 주는 물과 고깃덩이를 끝내 거부하고 사랑하는 블랑카 곁에서 숨을 거둔다. 한마디로 <늑대왕 로보>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하기 위해 스스로 잡혀서 굶어 죽은 로보를 지켜본 시튼의 기록이다.
순수하고 맑은 사랑을 그리는 대표적인 작품을 또 하나 꼽자면 황순원의 <소나기>가 있겠다. 서울서 온 소녀가 시냇가에서 조약돌을 던지며 장난을 친 후, 소년의 마음속에는 소녀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피어난다. 어느 날 개울가에서 우연히 만난 그들은 함께 놀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하고, 물이 불은 도랑을 소년이 소녀를 업어서 건너준 이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다.
며칠 후 소년을 다시 만난 소녀는 소나기를 맞아 많이 앓았다며, 아직도 아프다고 말한다. 이때 소년에게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보여주며, 옷에 무슨 물이 들었다고, 개울물을 건널 때 묻은 것이라는 말을 던진다. 이후로 소녀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소년은 우연히 마을에 갔다 온 아버지를 통해 소녀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게 된다. 소녀가 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 했다는 유언을 남겼다는 사실과 함께. 소년과 소녀 사이에 일어난 몇 가지 작은 사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사랑의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소년과 소녀에게는 아마도 그것이 첫사랑이었으리라. 처음으로 느끼는 그들의 순수한 감정, 애틋함은 지금 읽어도 감성을 자극한다.
만화가 이현세는… 1956년 경북 울진 출생. 1978년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저 강은 알고 있다>로 데뷔했으며 <공포의 외인구단>, <남벌>, <버디> 등 뛰어난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로 인정받았다. 최근 불확실한 세상에서 고민하는 청춘을 위한 진지한 조언을 담은 <인생이란 나를 믿고 가는 것이다>를 출간했다. 평생을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온 이현세가 전하는 조언이기에 더 솔직하고 현실적이며 가슴에 깊게 와 닿는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막 읽은 다음, 예민한 감성으로 울 준비가 되어 있던 나는 이 숭고한 러브 스토리에 또 엉엉 울고 말았다. 사랑하는 아내 곁에서 숨을 거둔 로보의 순정이, 생애 처음으로 느낀 설렘을 마음속에 간직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요새 보기 드문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러브 스토리에 비하면 요즘 젊음은 목숨을 거는 사랑은 촌스럽다 하고, 연애할 때 주고받은 선물도 헤어질 때 돌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쿨하다’는 말로 각자의 감정을 포장하고 뒤돌아선다. 100년을 함께하자고 약속한 두 사람이 혼수 때문에 헤어지기도 하고, 또 헤어질 땐 손바닥 털듯이 미련도 없다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닐 텐데, 요즘의 젊음은 사랑을 두고 계산을 넣고, 서로의 손익을 따진다. 하지만 이와 같이 사랑에 관해서만큼은 요즘의 젊음이 멋진 것은 아니다. 거짓말이다. 속에 이기심을 가득 채우고 겉으로 무심함을 내뱉는 거짓 젊음이다.
30년 전, <공포의 외인구단>은 야구 만화이기 전에 남자들의 성공 신화인 동시에 지독한 사랑 이야기였다. 엄지와 까치와 마동탁의 길고 긴 갈등 끝에 엄지는 남편 마동탁을 위해 연인 까치에게 단 한 번만 져달라고 부탁한다. 타석에 선 마동탁은 원하는 수비수를 죽일 수도 있는 필살 타법을 준비하고, 까치는 기어코 공을 받아야 하는 필살 수비를 각오한다. 마침내 투수의 손에서 공이 날아가고 마동탁은 필살 타법으로 까치를 향해 타구를 보내는데, 까치는 엄지의 행복을 빌며 글러브 대신 이마를 타구에 갖다 댄다. 이처럼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까치는 “엄지, 네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한마디 말로 모든 여성을 감동시켰다. 나는 지금도 까치가 말한 이 헤드 카피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변해 “어떻게 사랑이 변하지 않나요?”라는 말이 쿨하게 들리고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라는 말은 집착으로 들린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건 말건, 그래서 사랑도 변하건 말건 분명히 사랑에는 신의라는 것이 있다.
아내는 내가 신인 작가일 때 근거 없는 확신 하나로 나와 결혼했다. 그때 나는 땡전 한 닢 없는 빈털터리였다. 결혼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50만 원을 가불하고, 친구들과 50만 원짜리 ‘번호 계’를 만들어 내가 첫 번째로 곗돈을 탔다. 그렇게 만든 100만 원으로 지금의 광명 철산리에 방 한 칸을 전세로 마련했다. 결혼식을 위한 새 옷도 없었다. 평소에 입던 양복에 늘 매던 넥타이 차림으로 예식장에 갔다. 신혼살림도 마찬가지. 젓가락 두 짝과 숟가락 두 벌이 전부였다. 지금처럼 사랑이 쉽게 신다 버릴 수 있는 고무신과 같다면, 사랑이 끝날 때 지금처럼 지질하고 차가운 계산만 남는다면, 사랑은 오로지 즐겁기만 할 뿐 책임 따위는 없다고 한다면, 헤어지는 젊은 사랑에 신의 따위는 없다 한다면, 젊다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차라리 상처 입은 한 마리 늑대가 더 의미 있다.
에디터 고현경
글 이현세(만화가) 일러스트 장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