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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Hyeres & Merci Chanel!

FASHION

지난 4월 말, 칼 라거펠트를 포함한 샤넬의 주역들이 프로방스의 아담한 마을을 찾았다. 명예 게스트 샤넬과 함께 더없이 특별하게 펼친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의 30번째 에디션을 축하하기 위해서.

샤넬 파티를 펼친 빌라 라 로만 전경

쇼를 진행한 옛 소금 저장고

칼 라거펠트와 장 피에르 블랑

마스터 클래스는 대형 화면을 통해서도 소개됐다.

장 피에르 블랑, 칼 라거펠트, 비르지니 비아르가 출품작을 살펴보고 있다.

마스터 클래스 진행 장면

페스티벌을 찾은 패션 피플.

4월 23일 2:00 p.m.
파리 오를리(Orly) 공항. 남프랑스 해안에 자리한 작은 도시 이에르(Hye`res)까지 1시간 남짓 걸리는 비행의 동반자가 될 이들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985년부터 매년 봄, 아직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신인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이에르 국제 패션/사진 페스티벌(International Festival of Fashion/Photography in Hye`res)’을 찾는 사람들. 빅터 앤 롤프, 펠리페 올리베라 밥티스타를 포함한 실력파 디자이너를 발굴해낸 세계적 명성의 패션 콩쿠르임에도 화려한 쇼장 대신 소박한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열리는 탓일까. 패션업계 종사자, 포토그래퍼 혹은 그 워너비인 그들은 특유의 스타일리시함을 감출 순 없었지만 패션 위크 기간에 연출하는 그들의 화려한 룩에 비하면 훨씬 수수한(!) 차림이었다. 록 음악 하면 우드스톡, 클래식 하면 방스(Vence)를 떠올리듯 패션과 사진이라는 창의적 세계를 편안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축제로 통하는 이에르 페스티벌을 향하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4월 23일 3:30 p.m.
라벤더 비누 같은 특산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와 노천카페가 빼곡히 들어선 이에르 시내는 생각보다 훨씬 아담했다. 도시라기보다는 마을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싶을 정도로. 이 정겨운 마을이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통하게 된 것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한 남자 덕분이다. 장 피에르 블랑(Jean-Pierre Blanc)이라는 20대 청년이 1985년 창립한 ‘유럽 신진 디자이너 살롱’이 그 시초. 패션 스쿨의 졸업 작품전에서 보았을 법한 컬렉션을 소개하던 이 소박한 행사는 잠깐의 과도기를 거친 후 엄선한 10명의 신인이 그랑프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체계적 시스템을 갖추었고, 이어 존 갈리아노와 아제딘 알라이아를 포함한 거장들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쌓게 되었다. 여기에 1997년부터 사진 부문을 더하면서 자타공인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사진 콩쿠르로 우뚝 서게 된 것. 특히 2015년 에디션이 주목을 받는 것은 올해 페스티벌이 30세를 맞은 것과 더불어 이를 기념해 특별한 생일 선물을 건넨 하이패션의 대명사 샤넬의 든든한 후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샤넬은 작년부터 이 행사를 후원했는데 올해는 칼 라거펠트가 페스티벌 총괄 아트 디렉터,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디렉터 비르지니 비아르(Virginie Viard)와 이미지 디렉터 에릭 프룬더(Eric Pfrunder)가 각각 패션과 사진 부문 심사위원단 단장을 맡으며 명예 게스트로서 샤넬의 활약이 페스티벌에 명성과 빛을 더한 것이다.

4월 23일 6:30 p.m.
페스티벌의 오프닝 세리머니가 열리는 빌라 노아유(Villa Noailles)를 찾았다. 이에르의 정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오랫동안 예술가를 후원해온 샤를과 마리 로르 드 노아유(Charles & Marie-Laure de Noalilles) 자작(viscount) 부부의 의뢰로 건축가 로베르 말레 스테방(Robert Mallet-Stevens)이 1930년대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모던한 감각으로 완성한 곳이다. 피카소, 장 콕토, 달리를 포함한 아티스트들이 교류한 이 역사적 공간이야말로 패션과 사진을 위한 페스티벌이 열리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 순간, 칼 라거펠트가 완성한 이번 에디션의 포스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크로키 속 코코 샤넬이 하늘에서 빌라 노아유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시작한 패션의 역사를 이어갈 후예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듯한 마드모아젤의 모습에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지만, 솔직히 그 감동의 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하진 못했다. 널찍한 앞마당에서는 이미 프랑스 출신 뉴웨이브 뮤지션 그룹 카스 프로덕트(Kas Product)의 공연과 함께 신나는 파티가 열리고 있었으니까. 셀레브러티든 일반 관람객이든 초대받지 않은 곳에 찾아온 듯한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친근한 분위기를 즐길 뿐.

4월 24일 5:00 p.m.
미래의 예술가들이 발산하는 활기로 기분 좋게 들썩이던 빌라 노아유에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할 페스티벌의 아트 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연단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젊은 디자이너’라는 표현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한마디로 인터내셔널 프레스와 VIP로 가득 찬 관중석에 웃음을 선사한 그는 “단지 훌륭한 디자이너와 그렇지 않은 이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젊은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고집하는 것은 아티스트를 자처하는 일부 현직 디자이너만큼이나 위험합니다. 그 속에서 겸손함을 찾을 수 있을까요?”라고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40분간 이어진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양했다. 젊은 날의 칼 라거펠트가 응모 후 잊고 지내다 전보로 1등 수상 소식을 접한 패션 공모전이 있다는 것(상금은 쇼핑하느라 하루 만에 다 썼다고 했다), 칼 라거펠트조차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고양이’라고 칭하는 슈페트의 근황도 들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그의 말은 따로 있다. “완벽한 커리어를 쌓는 데 도움을 주는 정해져 있는 룰 같은 건 없습니다. 각자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겠죠. 하지만 패션의 앞날을 책임질 새로운 세대는 과거보다 훨씬 유쾌해 보이는군요.” 단순히 ‘젊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미래의 ‘훌륭한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패션의 황제가 남긴 조언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패션 부문 출품작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카린 로이펠트

포토 부문 그랑프리 수상자 슈니트 크니벨러르

패션 부문 그랑프리 수상자 아넬리 슈베르트가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4월 24일 7:00 p.m.
이에르 시내에서 차로 15분간 달리자 파이널리스트들의 컬렉션 쇼를 진행할 옛 소금 저장고가 자리한 휑한 공터에 도착했다. 이에르가 ‘마을’이라면, 이곳은 완전한 ‘시골’이다. 이렇듯 정겨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런웨이는 물론, 내로라하는 패션 피플들이 아스팔트 포장도 하지 않은 투박한 시골길을 기꺼이 걸어가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런웨이 장소로 활용한 소금 저장고 내부가 인더스트리얼 로프트 같은 감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 첫 번째 반전이라면, 두 번째 반전은 파리 패션 위크가 부럽지 않을 만한 수준을 보여준 쇼 자체. 본선 참가 작품과 함께 패션 하우스 끌로에의 여성상을 가장 절묘하게 재해석한 파이널리스트에게 수여하는 끌로에 프라이즈의 수상자를 가려낼 룩, 그리고 작년 우승자 겐타 마쓰시게(Matsushige Kenta)가 샤넬의 자수 공방 르사주(Lesage), 깃털 공방 르마리에(Lemarie´)를 포함한 샤넬의 메티에 다르(Me´tiers d’Art) 아틀리에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완성한 컬렉션을 차례로 만났다.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는 이 특별한 쇼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것은 백스테이지를 지키고 있던 ‘열정으로 빛나는’ 디자이너들이 등장한 순간이다. 모델들과 손잡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런웨이를 장난스럽게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칼 라거펠트가 표현한 대로, 유쾌하고 또 순수했다.

4월 25일 3:00 p.m.
오전에는 사진 부문 파이널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10명의 신진 포토그래퍼를 만났다. 환생을 믿는 인도 출신 작가가 소개한 독특한 초상화 시리즈, 바람을 앵글 속에 담아낸 네덜란드 사진가 등 패션 부문만큼 놀라운 창의력과 감수성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갤러리스트, 사진가, 크리에이션 디렉터 등으로 구성한 사진 부문 심사위원단과 함께한 피크닉을 마치고 패션 부문 심사위원으로 초빙된 카린 로이펠트와 짧은 만남을 가졌다. 발산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에 반비례하는 따스한 눈빛이 인상적인 그녀가 이에르 페스티벌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30년이나 된 행사에 샤넬의 초청으로 처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샤넬과 인연이 깊은 이들로 구성한 심사위원단 덕분에 마치 시골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남들 앞에 군림하는 화려함이 아니라 친근한 자연환경에서 이토록 편안한 방식으로 패션을 마주한 경험은 저에게도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사실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제처럼 프로페셔널한 쇼를 보게 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젊은, 아니 칼의 표현에 따르면(웃음) 새로운 디자이너들이 보여준 활기 넘치는 에너지는 저를 포함해 어제 쇼장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전해주었습니다. 페스티벌의 성격만큼이나 심사위원단의 분위기도 화기애애하지만, 수상자를 논할 때만큼은 다들 너무나 진지해져요. 10명의 파이널리스트를 선정할 때부터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니까요. 재미있게도 남자 심사위원은 순수한 창의력에 초점을 맞췄고, 여자 심사위원은 조금 더 감성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도 제가 즐겨 입을 수 있는 옷인지 고민했으니까요.(웃음) 제 나름 가장 중요한 심사 기준은 ‘개성’이에요.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지진 않았더라도 디자이너 특유의 감수성이 스며든 컬렉션에는 엄청난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믿으니까요.”

4월 26일 6:00 p.m.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의 섬세한 자수를 담당하는 르사주 공방 장인들에게 자수 기법을 배우는 흥미로운 워크숍을 마치자 2015년 이에르 페스티벌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감각적인 신(scene)으로 꼽고 싶은 소금 저장고에서 열린 시상식. 사진 부문에서는 바람을 사진 속에 담아낸 슈니트 크니벨러르(Sjoerd Knibbeler)가 대상을 거머쥐었고, 끌로에 프라이즈는 쿨한 룩을 선보인 아나 보른홀트(Anna Bornhold)에게 돌아갔다. 이어서 1만5000유로의 상금과 르사주를 포함한 샤넬의 메티에 다르 공방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릴 패션 분야의 그랑프리 수상자를 발표한 순간, 관중 사이에서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에이프런이라는 이름의 여성스러운 우아함이 돋보이는 컬렉션을 소개한 아넬리 슈베르트(Annelie Schubert), 기자들끼리 장난 삼아 해본 베팅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그녀였다. 균형 잡힌 컬러의 사용과 다양한 소재가 어우러진 구조적 실루엣에 담긴 디자이너의 감각뿐 아니라 겸손한 마음가짐까지 눈여겨봤다는 심사위원단의 설명은 그들의 선택에 믿음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전 세계 모든 여성의 ‘로망’으로 통하는 샤넬이 아름다운 내일을 위해 준비한 이 특별한 축제가 끝났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며 해변의 바에서 진행한 애프터 파티는 역시나 유쾌하고 흥겨운 분위기를 새벽까지 이어갔다. 그날 밤, 아넬리 슈베르트와 슈니트 크니벨러르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의 앞날에 축복이 가득하길 기원하는 멘트만큼이나 자주 들려온 것은 바로 이 말이다. “Bravo Hye`res & Merci Chanel!”

에디터 유은정 (ejyoo@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샤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