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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기행

BEAUTY

수도사의 손에서 탄생하는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크림 한 통이 탄생하기까지 프레쉬 창립자의 열정이 얼마나 크게 작용했는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세상에 최초로 공개한 체코의 한 수도원을 찾아가기 전에는.

수도원 가는 길에 그림처럼 펼쳐진 밀밭

Story of Crème Ancienne
한 번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수도원에 초대받는 일은 일생에 찾아오는 몇 안 되는 기회일 것이다. 관광 명소가 된 수도원조차 들러본 적 없는 내게 지난 7월 아주 특별한 기회가 생겼다. 체코의 한 마을에 자리한 수도원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온 것. 누구에게도 쉽사리 문을 열지 않는 이 수도원에 <노블레스>만 비밀스럽게 초대한다는 말을 전해온 곳은 바로 프레쉬. 브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제품 중 하나인 ‘크렘 앙씨엔느’의 광고 비주얼을 통해서만 볼 수 있던 그 수도원을 비로소 직접 방문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단, 수도원의 위치와 이름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로. 그렇게 7월 중순 드디어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레쉬는 프라하에 머무는 순간부터 크렘 앙씨엔느를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준비해두었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빨간 지붕 아래 자리한 숙소는 ‘만다린 오리엔탈 프라하’. 전 세계에 체인을 두고 있는 특급 호텔이지만 프라하에 있는 이곳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14세기 수도원이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치형 천장은 물론 호텔 곳곳에서 마주한 중세 수도원의 건축양식은 다음 날 방문할 수도원을 미리 그려볼 수 있게 했다.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를 아직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프레쉬와 수도원’, ‘크렘 앙씨엔느와 수도원’이 무슨 관계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프레쉬를 대표하는 크렘 앙씨엔느의 시작은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클라우디스 갈레누스(Claudius Galenus)는 왕의 명령에 따라 로마 검투사를 위한 크림을 만들었고, 이 레시피는 한 책에 기록되어 수세기가 지난 후 프레쉬의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Lev Glazman)에게 영감을 주었다. 1800년대부터 전해진 책 속의 특별한 레시피에 주목한 프레쉬 연구소는 오랜 연구 끝에 갈레누스가 만든 전설적인 포뮬러를 고대의 제조법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탄생한 크렘 앙씨엔느가 더욱 특별한 이유는 수도사들이 신성한 노동을 통해 핸드 메이드로 완성하기 때문이다. 성분의 효능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크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핸드 블렌딩이 최선의 방법이었고, 비법 그대로 크림을 제작하기 위해 고대부터 이 비법을 개발하고 전수해온 수도원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크렘 앙씨엔느의 광고 비주얼과 여러 자료를 통해 수도원과 관련한 스토리를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이 특별한 제품을 만드는 수도원과 크렘 앙씨엔느의 탄생 과정을 세상에 공개한 적은 없었다.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체코 수도원의 풍경. 평화로운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묵언 수행 중 기도와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체코 수도원의 풍경. 평화로운 이곳에서 수도사들은 묵언 수행 중 기도와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A Day in the Monastery
프라하에 도착한 다음 날, 드디어 말로만 듣던 크렘 앙씨엔느가 탄생하는 수도원으로 출발했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들던 빌딩 숲을 떠나 수도원으로 가는 길, 세상에 하늘과 밀밭만 존재하는 듯 끊임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마음은 그동안 간절히 바라던 천상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눈이 시릴 만큼 푸른 밀밭과 작은 마을을 몇 번이나 거쳤을까? 잠시 차를 세울 수밖에 없을 만큼 그림 같은 밀밭을 다시금 지나고 나니 1차선의 좁은 비포장도로로 진입했고, 직감적으로 수도원이 가까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체코의 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수도원은 생각보다 모던했다. 그리고 생각만큼 그 자체로 아름답고 신성했다. 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경건해지는 수도사가 이곳을 방문한 프레스를 맞았고,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우리는 실로 몇 년 만에 스마트폰 사진 탭이 아닌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인사말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톨릭 수도사입니다. 우리 수도원은 21세기에 설립했으며, 이곳에 있는 형제의 절반이 2000년대에 태어난, 20세 미만의 청년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기독교 수도원의 오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곳은 중유럽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설립됐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시대 수도사들이 지은 바로크 건축물에 가보지 않았다면, ‘고요’와 ‘고독’이라는 것에 이토록 애정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현재 많은 여행객이 드나들고 있고, 그 때문에 수도사들의 힘으로 유지하기엔 큰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죠.” 대중에게 공개한 일부 수도원과 달리 이곳은 수도원 그 자체의 일을 수행하는 곳이었다. TV도 없고, 밤에 외출도 할 수 없으며, 돈을 좇지도 않고, SNS를 사용할 수도 없는 곳. 우리를 맞은 수도사는 이곳에서 하루면 시들어버리는 꽃과 같은, 인간의 아름다움에서 멀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쫓기는 듯한 일상과 계속되는 목표 설정에 지친 에디터가 보기에 아름다움에서 멀어지려 한다는 그들은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이곳의 수도사들은 세상이 모두 잠든 새벽 3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3시 15분에 첫 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하루 일곱 번의 예배와 그 사이사이를 신성한 노동으로 채운 후 저녁 8시면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이곳의 일상에 대해 들은 후 감사하게도 그들의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지은 수도원인 만큼 모던한 형태로 완성한 순백의 채플 공간은 지붕 양쪽이 뚫려 있었고, 그 사이로 구름이 지나는 햇빛이 시시각각 웅장한 자연 조명을 만들어냈다. 해가 비치면 비치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흘러내리는 대로 두며 편리를 추구하지 않고 주어진 일상을 살고 있는 그들. 종이 울리고 예배가 시작됐다. 마이크 없이도 예배당 가득 울려 퍼지는 성가의 하모니가 조용히 마음을 어루만졌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수도사들이 먹는 식사를 대접받았다. 불필요한 사치를 부리지 않은, 그들이 매일 먹는 그대로의 차림상이었다. 수도사들이 직접 기른 재료로 만든 빵과 수프, 간단한 야채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평소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담백하다 못해 밋밋할 수 있는 그 맛에 저녁까지 배가 불렀다. 이토록 소박하고 겸손한 이들이 노동 시간의 일부에 만들어내는 크렘 앙씨엔느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은 물론이다.

크렘 앙씨엔느의 레시피가 있는 고서

프레쉬 창립자 레브가 크렘 앙씨엔느 제작 과정을 시연했다.

The Making of Crème Ancienne
소박하지만 풍성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당 밖 한 건물로 향했다. 이곳은 크렘 앙씨엔느를 만들기 위해 얼마 전 신축한 건물이라고 했다. 한쪽 벽이 뻥 뚫려 마치 액자처럼 근사한 풍경이 걸린 방에 크렘 앙씨엔느의 재료가 준비돼 있었다. 크렘 앙씨엔느는 철저한 비율과 온도, 핸드 블렌딩을 통해 완성한다. 비율과 온도가 맞지 않으면 각 원료가 섞이지 않기 때문에 제작 과정의 모든 순간에 완벽함이 요구된다. 그런 만큼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모든 과정은 레시피를 잘 알고 있는 4~5명의 수도사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얀 가운을 입은 레브가 평소 수도사들이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시연했다. 크렘 앙씨엔느의 주원료는 메도폼 시드 오일과 비즈 왁스, 캐머마일 왁스, 17%를 차지하는 로즈 워터다. 최초의 레시피를 기록한 고서에는 메도폼 시드 오일이 아닌 아몬드 오일이 쓰여 있으나 피부 흡수력을 배가하기 위해 그 대체제로 메도폼 시드 오일을 선택, 제품의 효과에 보다 완벽함을 가했다. 인공적 방부제는 사용하지 않으며, 비타민 E 성분이 자연 방부제 역할을 해 제품의 부패를 막는다. 레브의 시연으로 눈앞에서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과정을 목도한 후 수도사들이 작업 중인 옆방을 찾았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규율상 하루 일곱 번의 기도 시간 외에는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데,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과정 또한 그 노동 시간의 일부다. 완벽한 배합 비율과 온도로 완성한 크림은 랩(lab)으로 이동해 패키징 과정을 거친다. 크림을 만든 후 수도사들은 바로 이 패키징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철저히 위생 상태를 검열한 이 공간에서 그들은 광고 비주얼에서 본 것처럼 스쿱과 스푼을 이용해 정량의 크림을 용기에 담고 있었다. 이렇게 완성한 제품은 이후 프랑스의 연구소로 보내 다시 검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묵언 속에 건물 밖 평화로운 새소리만 들렸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하얀 크렘 앙씨엔느는 천국에 속한 신성한 소품 같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정성(精誠)’에는 분명 힘이 있다.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에는 다른 뷰티 제품에선 찾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고, 바로 그게 성실한 마음을 담은 정성이다. 책에 적힌 레시피는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사람의 손길을 통한 온기와 마음까지 담긴 어려운 법이다. 건조함과 추위가 찾아오는 계절,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를 다시 꺼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가을 이 크림을 바르는 마음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그림 같은 수도원의 풍경 속에서 이 크림에 담기는 정성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으니까.

고서의 비법 그대로 만드는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

고서의 비법 그대로 만드는 프레쉬 크렘 앙씨엔느

프레쉬 창립자 레브 글레이즈먼(Lev Glazman) & 앨리나 로잇버그(Alina Roytberg)와 나눈 이야기

Noblesse(이하 N) 크렘 앙씨엔느를 만드는 곳이 왜 반드시 수도원이어야 했나요?
Lev Glazman(이하 L) 크렘 앙씨엔느의 귀한 성분이 각각의 성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독특한 텍스처를 내야 하는 게 가장 큰 고심거리였습니다. 아마 고대의 갈레누스도 이 부분을 가장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구성하는 원료가 손상되기 쉬운데다 정밀한 혼합 과정과 온도가 필요했기 때문에 기계로 만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죠. 그래서 사람 손을 생각했고, 그중에서도 수도사를 떠올렸어요. 중세의 많은 책이 불에 탔음에도 갈레누스의 레시피가 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이 책(지식)을 지키려는 수도원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수도원은 약제상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먹거리를 위해 농산물을 기르기도 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육체노동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는 규율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을 통해 핸드메이드로 크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발상이 아니라, 이 레시피의 역사를 기본으로 한 당연한 생각이었죠.

N 그런 만큼 원료뿐 아니라 핸드메이드라는 제작 방식도 크렘 앙씨엔느를 구성하는 대표적 요소라 할 수 있겠어요.
Alina(이하 A) LVMH의 연구소조차 이 크림을 위한 정교한 작업을 핸드메이드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끊임없이 제기했죠. 그럴수록 저희는 수도사에 의한 핸드메이드 공정을 더욱 고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여러 기술을 결합해 탄생하는 제품도 많지만, 크렘 앙씨엔느는 그런 인공적 결합법이 아니라 수세기를 거쳐 이어진 ‘핸드메이드’라는 유산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레시피만 차용해 다른 방식으로 제작하는 것은 이 크림 본연의 가치를 해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었죠.

N 하지만 크렘 앙씨엔느가 지금의 수도원에서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A 물론이에요. 저희는 영어와 프랑스어로 직접 쓴 편지를 곳곳의 수도원에 보내기를 수차례 반복했지만 아무 답장도 받을 수 없었어요. 이후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그마저 실패했고, 직접 찾아가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성과 없이 1년이 지난 어느 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소개받은 벨기에의 수도원에서 노르웨이의 한 수녀원으로 인도해주었죠. 그곳에서 비로소 크렘 앙씨엔느 제작을 허락받을 수 있었어요. 1년에 겨우 1000개가량만 생산할 수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보다는 상황이 나았죠. 하지만 지난 2003년 크렘 앙씨엔느 런칭 후 3개월 만에 제품은 금세 품절됐고, 대기자 명단이 생겨났습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크림을 경험해보길 원한 저희는 그 상황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어요. 수녀들도 기도 시간과 제품 생산 시간의 균형을 맞추는 걸 점점 힘들어했고요. 그래서 찾아낸 수도원이 바로 이곳입니다.

N 이 수도원과는 이제 운명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요.
L 처음부터 우리는 강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레시피를 전달하고, 이들과 함께 지내며 이 크림이 이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매우 특별할 수밖에 없어요.

수도사와 나눈 이야기
Noblesse(이하 N) 수도원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Monk(이하 M) 이곳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뜻을 이어받아 그 규율을 지키고 있는 수도원입니다. 모든 일상은 묵언으로 이루어지고, 하루의 일정은 짜인 시간표에 따라 기도, 노동, 식사 등으로 이어집니다. 자유를 박탈당한 구속이 아니라 불필요한 생각이 만들어내는 번잡한 고뇌를 차단하기 위한 시간표죠. 점심시간의 20분 정도만 대화를 허용하며, 그 외의 모든 시간은 오직 기도와 노동으로 채웁니다. 묵언의 고요한 시간은 나와 상대방 그리고 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죠.

N 수도원이 생각한 것보다 모던한 느낌이에요.
M 공산주의 시절 체코의 수도원은 문을 닫아야 했고, 많은 수도사가 프랑스로 망명했습니다.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체코에 새로운 수도원 건립을 추진했죠. 이 흐름에 따라 8명의 수도사가 당시 폐가나 다름없던 수도원에 정착했고, 이후 직접 노동을 통해 새로운 건물을 지어 올리고 공간을 확장해 지금의 수도원을 만들게 됐습니다.

N 일반 사람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장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의문을 품는 세속인도 있을 것 같아요.
M 우리 수도사들은 지나온 것을 내려놓고 인내하는 법을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젊음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 관심사가 아닙니다. 오직 신만이 중요하죠. 신의 존재 안에서 사는 것은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됩니다. 크림을 만들어내는 일은 그저 우리가 해야 하는 노동의 일부일 뿐입니다.

N 노동은 곧 소명이라 생각하는 거겠죠?
M 이 크림을 만드는 일도 우리 소명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그리고 부지런히 살아가기 위해 일합니다. 일하는 마음은 기도에 헌신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프레쉬는 이러한 정신을 존중해줍니다. 그것이 이들과 신뢰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에디터 이혜진 (h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프레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