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matic Encounter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패션계는 뮤지션과 사랑에 빠져 있다. 아주 깊고 진하게.
샤넬의 단편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퍼렐 윌리엄스
윌 아이엠과 구찌 CEO 마르코 비짜리
버버리 프로섬 컬렉션 런웨이에서 공연중인 팔로마 페이스
모아나의 트레인 백
상상해보건대 비틀스에서 파생한 모즈 룩이 없었다면 1960년대를 추억할 레트로 스타일도 없었을 것이고, 데이비드 보위로 대변되는 1970년대의 글램 룩이 아니었다면 디올 옴므, 생 로랑, 구찌의 컬렉션을 물들인 수많은 펑크록 무드의 의상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음악과 패션은 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어왔다. 1970년대의 디스코, 1980년대의 펑크, 1990년대의 힙합이 그러했듯 이들의 긴밀한 관계는 대중에게 무엇을 따라야 할지 그 지표를 제시해왔다. 상황은 현재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욱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듯 보이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컬래버레이션. 1849년 설립한 유서 깊은 트렁크 브랜드 모아나는 최근 미국 최고의 팝 아이콘 퍼렐 윌리엄스와 함께 스페셜 에디션을 런칭했는데, 클래식의 대명사가 가장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음악을 선보이는 뮤지션과 조우했다는 사실은 이색적인 것을 넘어 다소 놀랍기까지 했다. 하지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인 ‘기차’ 모티브를 창의적으로 해석한 ‘트레인 백’을 봤다면 이 둘의 만남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 한편 구찌 타임피스는 윌 아이엠과 디자인적·기술적 협업을 통해 올해 안에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패션 액세서리, 다시 말해 패셔놀로지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발표해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단발적 만남이 아니라 패션 하우스와 뮤지션이 서로의 영역에 보다 깊이 개입해 영감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 광고 캠페인이나 패션 필름을 통해 뮤지션이 브랜드의 정신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 것. 샤넬의 칼 라거펠트는 퍼렐 윌리엄스를 새로운 뮤즈로 낙점한 듯하다. 2014~2015년 파리·잘츠부르크 공방 컬렉션에 맞춰 퍼렐 윌리엄스를 남자 주연으로 한 단편영화 ‘환생(Reincarnation)’을 공개했고, 퍼렐은 영상의 OST를 만들기도 했다. 칼은 “완벽한 캐스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퍼렐은 천재라는 수식어로는 부족합니다”라는 말로 그에 대한 찬사를 표했고, 평소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두 사람의 예술적 협업을 위한 완벽한 기회였다는 업계의 평도 이어졌다. 퍼렐은 2015년 프리폴 컬렉션 캠페인에서도 모델로 등장해 진정한 ‘샤넬의 남자’로 거듭났다. 한편 뮤지션에 대한 사랑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바로 생 로랑의 에디 슬리먼. 1990년대 후반 생 로랑, 2000년대 초반 디올 하우스에서 데이비드 보위, 믹 재거, 리버틴스 등 수많은 뮤지션을 위한 옷을 디자인하며 록, 펑크 문화에 대한 소속감을 다진 그다. 그간 생 로랑의 의상을 입은 록 스타를 피사체로 ‘뮤직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선보여왔는데, 올해 1월에는 전설적 싱어송라이터 조니 미첼과 작업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뮤지션을 그의 카메라에 담을 예정. 버버리 프로섬을 이끄는 크리스토퍼 베일리의 음악 사랑도 그에 못지않다. 2010년 6월 런칭해 벌써 6년째 이어온 있는 프로젝트 ‘버버리 어쿠스틱’을 통해 그가 직접 선정한 영국의 뮤지션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함께 필름 영상을 제작하거나 버버리의 패션쇼를 비롯한 행사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음악을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견고히 하고 있다. 이처럼 패션계가 뮤지션을 사랑하는 데에는 그들이 서로에게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컬렉션과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 창작의 세계를 음악의 선율이 채워주고, 또 음악으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화려한 시각적 자극은 패션이 도맡으면서, 이들은 계속해서 발걸음을 맞춰나갈 것이다.
에디터 이혜미 (hmle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