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古음악
그 어느 때보다 고음악 연주회가 활발히 개최되는 요즘, 공연장을 찾을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의 패러다임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관객이 고음악 연주에 매료되는 이유는 음악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좇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10월 3일 한국에서 소프라노 임선혜와 함께 공연하는 바로크 오케스트라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 굳이 영화 <킹스 스피치>에 삽입됐다는 정보를 덧붙이지 않더라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에겐 너무도 유명한 선율이다. 잘 알려진 곡이니만큼 국내외 오케스트라의 실연을 들을 기회도 많다. 지난 6월 처음 한국을 찾은 ‘18세기 오케스트라’도 예술의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다. 연주자들의 교감, 홀의 울림, 음악을 빚어내는 현장의 상황과 공기에 따라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것이 클래식 음악이지만 이날 객석에는 2악장을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개량하지 않은 악기로 작곡가가 곡을 만든 그 시대의 소리와 정서를 최대한 살린 시대 연주가 많은 관객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진 까닭이다.
시대 연주를 영어로 표현하면 H‘ IP(Historical Informed Performance)’라 한다. 즉 정통성을 찾는 역사주의 해석으로, 곡을 작곡한 당시의 악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연주법 또한 최대한 그 시대의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바로크 음악의 경우 고전음악과 달리 악보에 지시어가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연세대학교 음악연구소 전문연구원이자 바흐 솔리스텐 서울의 음악감독인 박승희는 “모던 음악(고음악의 관점에서는 일반 클래식 음악을 상대적으로 모던 음악이라 한다)이 연주 스타일에 집중하는 쪽이라면 고음악에서는 거꾸로 악기의 특성이 연주 스타일을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모던 음악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하나의 기교인 비브라토를 절제하고 필요한 부분에만 적절히 사용하므로 장식적인 면도 덜하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와 달리 셈여림을 조절할 수 없고, 현악기는 금속 현이 아니라 양의 창자를 꼬아 만든 거트 현을 사용해 작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등 요즘 악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다루기도 어렵다. 습도에 예민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수시로 조율해야 하니 관리부터 연주까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고, 작은 소리를 살려줄 수 있는 공간의 울림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수할 정도로 음색의 매력에 빠져든 이들이 고음악 연주자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면 고음악 감상을 즐기는 이들은 어떤 사람일까? 감상자의 취향을 쉽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예를 들 수는 있다. 대체로 말러나 브루크너의 교향곡처럼 스케일이 큰 곡을 좋아하는 이들은 고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편이다. 선이 굵고 화려하며 웅장한 연주에 끌리는 이들은 음량이 작아 답답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 반면에 학구적이고 무엇이든 근본을 알고자 하는 이들은 시대 악기와 서양 음악의 뿌리를 탐구하는 즐거움에 빠져 고음악 애호가가 되기도 한다.
지난봄 금호아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한 하프시코드 연주자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올해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리리아르떼 앙상블
요즘 들어 특히 고음악의 매력에 빠졌다는 관객이 늘어난 만큼 고음악 연주회를 접할 기회도 많아졌다. 지난 7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를 한국에서 처음 공연한 것은 특히 의미 있는 일. 400여 년 전 역사상 처음으로 작곡한 이 오페라 작품이 한국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도 고악기 연주자가 늘어난 덕분이다. 그러고 보면 올해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는 손열음이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하프시코드로 연주하는 시도를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한 공연도 활발한데 지난봄 세계적 하프시코드 연주자 안드레아스 슈타이어가 내한해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파르티타, 푸가의 기법, 그리고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을 들려주었고, 몇 년 사이 에우로파 갈란테, 조르디 사발과 에스페리온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고음악 연주 단체가 모두 한국을 찾아 성공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올가을에도 다양한 고음악 기획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10월 3일 소프라노 임선혜가 바로크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무대에 서고, 올림푸스홀에서는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인 고음악 콘서트 시리즈 ‘앤티크’가 내년 2월까지 이어진다. 그뿐 아니다. 11월 3일부터 21일까지 제6회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을 개최해 세계 고음악의 흐름을 소개하며, 올해 18세기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한화클래식은 내년 봄 마르크 민코프스키와 그가 창설한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초청해 고음악 공연을 개최한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은 한국의 바로크 음악 연주 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연주 장면
바로크 음악 전문 연주 단체인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리더 김지영은 지난 5년간 한국에서 고음악이 급속도로 퍼지며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고 말한다. 사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40~50년 전에 유행하기 시작했으니 한국에서는 매우 늦은 셈. 물론 1990년대에도 소수의 애호가는 고음악 전문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접하며 비발디, 바흐, 헨델의 음악을 시대 연주로 감상하곤 했다. 이후 한국의 고음악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반, 해외에서 고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온 연주자들이 활동을 시작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2005년에는 한양대학교 음악 연구소에서 서울 국제 바흐 페스티벌을 처음 개최했고, 성악 앙상블 바흐 솔리스텐 서울과 기악 앙상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이 창단해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그 외에도 현재 알테 무지크 서울, 바흐 콜레기움 서울 등 서울만 해도 여러 고음악 단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고개를 든다. 왜 새삼스럽게 지금 고음악 전성시대가 찾아온 걸까. 바흐 솔리스텐 서울의 박승희 음악감독은 클래식 음악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요즘은 일반 오케스트라 역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할 때는 고악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연주 스타일을 따르며 어느 정도 절충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모던 음악 연주자들이 고음악을 별개의 영역으로 여기곤했지만 지금은 그 시대의 연주 형태를 따르는 것을 오히려 건설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다.
또 한편으로는 고음악 감상을 힐링을 위해 자연을 찾는 것과 비교하기도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리 자체가 주는 편안함은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김지영 리더는 고음악이 현대인의 지친 귀에 편안한 안식을 주는 소박한 자연의 소리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고음악을 감상하는 이들 역시 완벽함이나 세련미를 찾기보다는 스스럼없이 자연에 동화될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갖길 권한다. 마치 자연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시골에 갔을 때 신발에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는 것처럼 말이다. 과한 포장이 없다고 해서 그것이 초라한 것은 아니다. 고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고 원래 존재했지만 잊힌 음악 세계를 이 시대에 새롭게 발견하는,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