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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여행

LIFESTYLE

우리가 살면서 평생 한 번쯤은 도전해도 좋을, 이런 여행.

 

“느긋하게 분수 쇼를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밤샘 야근에 시달리며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짊어진 듯했던 모습은 지금 이 순간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_<시간을 멈추는 드로잉> 중

한창 팝에 빠져 용돈 대부분을 음반 사는데 쏟아부은 시절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일주일 용돈은 2만 원이었다. 라이선스 음반이 1만 원, 직수입 음반이 1만5000원 정도라 일주일에 하나 이상 사 모으긴 어려웠지만 매주 되풀이하다 보니 책장에는 꽤 많은 음반이 모이게 됐다. 공부를 하다가도 빽빽하게 들어찬 음반을 보면 뿌듯함에 미소가 떠올랐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그 무렵 상상한 미래의 모습은 이런 거다. 북적북적한 도시를 떠나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살것 같은 작은 마을에서 아기자기한 카페를 차리고 단골손님과 수다나 떨면서 좋은 음악을 그들에게 마음껏 들려주리라. 해가 갈수록 꿈에서 반 발자국씩 멀어지고, ‘알고 보면 그렇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정하며 살고 있지만 <새로운 오키나와 여행>을 떠나는 순간, 착각 속에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다. 일주일에 두 번만 문을 여는 빵집, 하루에 3시간만 채소를 파는 채소 가게, 이웃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틈틈이 남는 시간에 작업하는 도예 공방의 주인은 모두 더 이상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아서, 내 아이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어주고 싶어서, 돈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서 오키나와를 선택한 사람이다. 그곳에서 각자 개성을 살려 공간을 꾸미고 소소한 행복을 요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 ‘오키나와에서 영원한 여행자로 사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싶을 정도다. 이토록 소박한 여행을 위해 일본까지 갈 시간이 없다면 대신 <하루쯤 성당 여행>을 떠나면 된다. “아름다운 성당이 왜 유럽엔 있고 한국엔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여행엔 총 8명의 작가가 함께했다. 벽돌 성당, 석조 성당, 한옥 성당 등 우아하고 단아한 기품이 깃든 35개의 성당 모습을 구석구석 전하는 이 책은 명동성당이 한국의 첫 세례자 이승훈과 정약용 삼형제가 천주학을 연구하던 ‘명례방공동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성전이고, 성공회서울성당은 세계 건축가 100인이 뽑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나바위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입국한 당시 그의 첫발이 닿은 곳에 세운 성당이라는, 한국인이라면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을 시원하게 콕 집어 전한다. 이렇듯 한국 근대사 여행까지 가능케 하는 까닭에 독자들은 한국 천주교의 200년 역사에 깃든 슬픔과 아픔까지 맘껏 공감할 수 있다. 새로운 감성을 자극하는 여행은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도 만만치 않다.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대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살던 저자는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타의에 맡기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종이와 펜을 챙겨 여행길에 오른다. 이름도 멋진 ‘드로잉 여행’. 두 손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캐리어 대신 45리터짜리 거대한 배낭을 메고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터키 등지를 여행한 그는 단상에 젖어들 만한 곳을 만나면 여지없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스케치에 몰두했다. 그림을 그리던 스케치북 위로 떨어진 빗방울이 모호한 얼룩을 만든 스위스의 성당 스케치에서 전해지는 비 내음은 세상을 기록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는것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알게 한다.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있는 당신에게도 주어진 빈 도화지가 새삼 반가운 계절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