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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아는 것이 힘이다. 대신 깊이 알고 싶진 않다. 바로 스낵 컬처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는 없을까?

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TED 강의. 최근 스낵 컬처의 영향으로 5분 분량의 편집본이 유튜브에 나돌고 있다.

우린 바쁘다. 뭔가 하는 일 없이도 바쁘다. 늘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그걸로 뭔가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증에 빠져 있다. ‘스마트폰 중독’이란 말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이 시대 우리의 문화다. 스마트폰은 특히 지금의 10대부터 30대, 좀 더 확장해 40대에게도 지극히 편하고 즐거운 주류 문화가 됐다. 이젠 드라마도 TV 정규 방송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보지 않고, 러닝타임을 다 채워 긴 콘텐츠를 보는 일도 드물다. 필요한 것만 골라 보고, 짧게 요약한 핵심 장면만 골라 본다. 인스타그램은 15초 이내의 동영상만 게시할 수 있고, 트위터는 140자까지만 쓸 수 있다. 이런 제약이 오히려 ‘스낵 컬처’에 익숙한 소비자에겐 편리하다. 아니, 근데 스낵 컬처가 뭐냐고?
스낵 컬처(snack culture)는 2007년 미국 IT 잡지 <와이어드>에서 처음 언급한 말이다. 스낵을 집어먹듯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예술 소비 트렌드를 일컫는다. 당시 패션계에서 SPA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이 한창 세력을 넓힌다고 해서 나온 말인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대중문화 전반은 물론 우리의 일상 모든 것에 적용하는 키워드가 됐다. 지금 이 스낵 컬처는 우리 문화의 전반을 휘감고 있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스낵 컬처를 만나,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문화 전반을 휘젓는 거다.

웹 드라의 인기는 지상파 방송국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간서치열전>은 KBS가 만든 지상파 최초의 웹 드라마다.

미국의 인기 웹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현재 스낵 컬처의 위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웹 드라마다. PC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는 웹 드라마는 매회 방송 시간이 10분 남짓, 편수도 10편 이내로 짧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 몇 개만 지나면 한 편이 끝난다. 웹 드라마의 특징은 빠른 전개와 호흡이다. ‘본방 사수’가 갈수록 줄고 원할 때 ‘몰아 보기’를 하는 식으로 드라마 시청 문화가 급변하자, 여러 회사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겨냥해 웹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일례로 국내 대형 포털 네이버는 2013년 배우 조윤희와 정겨운 등이 출연한 <러브 인 메모리> 시즌 1을 선보인 데 이어 네이버TV캐스트에 아예 전용관을 열어 지난해에만 총 21편을 상영했고, 올해 5월 현재까지 40여 편의 웹 드라마를 선보였다. 지난해 네이버를 통해 소개한 웹 드라마의 누적 재생 수는 2013년 대비 7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한편 이러한 스낵 컬처를 베이스로 한 웹 드라마는 기업의 홍보 수단으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웹 드라마 <최고의 미래>는 걸그룹 걸스데이의 민아와 배우 서강준이 주연을 맡아 누적 조회 수 1000만을 넘어섰는데, 이 드라마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삼성이다. 가수 지망생 ‘최고’와 삼성 신입 사원 ‘미래’가 집을 나눠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드러내놓고 기업 홍보를 하진 않지만 기업 문화와 인재상이 드라마 곳곳에 녹아 있다. 스낵 컬처에 익숙한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 기업이 웹 드라마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예로 볼 수 있다.
스낵 컬처는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금 대형 서점에 가면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란 책이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는 걸 볼 수 있다. 지식마저 스낵 컬처 형태로 소비하는 셈이다. 이 책의 저자 채사장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주제들을 선정해서 얕게 한번 파보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아예 대놓고 ‘얕게’ 파겠다고 한다. 이 책은 인문·사회·정치·역사 등 방대한 지식을 다루지만 전달 방식은 쉽고 단순하다. 특정 개념을 그림과 도표로 쉽게 설명하고 틈틈이 ‘중간 정리’, ‘최종 정리’ 코너를 넣어 독자가 모르고 넘어간 부분을 다시 한 번 짚어준다. 쉽고 빠르게, 즐겁게 지식을 얻길 바라는 ‘요즘 독자’들이 읽기에 딱이다. 스낵 컬처를 향유하는 이들은 더 이상 ‘긴 글’을 선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식과 정보의 ‘단순명료화’, ‘핵심 요약’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가벼운 문화라 취급되던 패스트 패션과 키치 문화는 지난해 모스키노의 컬렉션으로까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6초짜리 영상을 올리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 바인

이참에 스낵 컬처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이번엔 나라 밖 이야기다. 지난 몇 년간 20분쯤 하는 TED 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으로 짧은 강연이 유행했는데, 최근 유튜브엔 5분 분량으로 편집한 TED 강의도 많아졌다. 그 짧은 몇 분 안에 무슨 얘길 다 하겠느냐만, 그 정도로도 충분히 파괴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또 트위터가 만든 동영상 서비스 ‘바인(Vine)’은 6초짜리 영상을 올리는 동영상 공유 서비스인데, 그 짧은 시간에도 담을 수 있는 건 많다. 현재 이 서비스의 최고 스타는 약 1160만 명의 팔로워를 지닌 17세 소년 내시 그리어(Nash Grier). 길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친구들과 장난을 치는 일상생활을 담은 소년의 영상은 지금껏 25억 회 이상 재생됐으며, 각 기업에서 그에게 톱스타 수준의 광고 협찬을 하고 있다. 또 근래 유튜브에선 5초 이상 광고에 ‘건너뛰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검색한 동영상을 보려면 의무적으로 5초 동안 광고를 봐야 하는데, 그 때문에 지금 유튜브에선 그 짧은 시간에 소비자의 시선을 잡기 위한 광고주들의 아이디어 경쟁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한편 지난해 구글과 애플은 뉴스를 잘게 쪼개고 재조립해 60개 단어로 제공하는 ‘써카(Circa)’를 최고의 뉴스 앱으로 선정했다. 써카는 자체적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대신 언론사들이 만든 뉴스를 잘게 쪼개고 재조립해 다시 제공하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헤드라인 위주로 뉴스를 전달해 그들이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팩트만 습득할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뉴스도 짧으면 더 쉽게 보고,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다. 몇 분도 아깝다는 사람들, 보자마자 바로 반응이 나올 만큼 우린 더 이상 기승전결 따위는 필요 없고 바로 결론을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트렌드가 그렇듯 지금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스낵 컬처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스낵 컬처를 너무 맛있게 집어먹기만 하고, 그 깊이나 사색은 굳이 지적하려 들지 않는다는 거다. 서울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과의 주창윤 교수는 저서 <허기사회>에서 지금의 스낵 컬처 유행을 “각 세대에 맞는 허기진 정서를 채우기 위한 퇴행의 한 단편”이라고 진단했다. 그가 말하는 스낵 컬처의 유행에 공통으로 흐르는 심리 기저는 ‘퇴행’. 정리하면, 지금의 스낵 컬처 유행은 자신의 주체성을 사회와 역사에서 분리하고 그저 개인인 자신으로 귀환해 삶이 여전히 ‘살 만하다’고 위로받고 싶은 거라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이런 문제도 제기한다. 문화 콘텐츠의 2차 창작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진 이 시점에, 우리가 모두 무의식중에 ‘한 줄’만 요구해서 과연 성숙한 문화 콘텐츠 향유가 가능하느냐는 질문 말이다. 이 또한 일리 있다.
갈수록 많은 이가 지식을 필요로 할 때 검색해서 찾아보면 된다는 식이다. 또 작은 즐거움을 찾아 틈틈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긴 호흡 속에 많은 사고의 여백을 담은 긴 글이나 영상을 완벽하게 한 줄로 정의하고 요약할 수 있다고 보는 것엔 분명 문제가 있다. 스낵 컬처가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생각하는 것’이 방해거리에 지나지 않는 시대에 살면 안된다는 말이다. ‘질’보다는 ‘양’과 ‘스피드’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경쟁력이 된 이때, 진정한 문화 향유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