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窓
고풍스러운 옛 도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베니스의 가장 큰 축제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관람객을 변화시키려는 절실한 움직임이 가득했다. 인류의 삶을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주는, 미술사의 가장 뜨거운 현장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최초의 심사위원이자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용우 선생을 만났다.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출품한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회화 작품
전 세계 문화 예술계의 가장 큰 축제이자 교류의 장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제 56회를 맞은 베니스 비엔날레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라는 주제 아래 사상 최대 규모인 89개국이 참여했으며 특별전도 40여 개에 달했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한국관의 대표 작가였고 오쿠이엔위저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에도 한국 작가 김아영, 남화연, 임흥순이 6년 만에 초대되면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좀 더 폭넓게 보여줄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올해 특히 주목받은 특별전으로 한국의 <단색화>전을 빼놓을 수 없다. 국제갤러리가 주최한 이 전시에서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성과로 평가되는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 70여점을 소개했다. 김환기,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권영우 작가의 대표 작품이 15세기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인 팔라초 콘타리니-폴리냐크의 멋진 공간을 가득 채웠고, 국내외 언론은 이 뉴스를 앞다투어 다뤘다. 최근 놀라울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 단색화 전시를 비엔날레 기간에 맞추어 전 세계인에게 선보인 기획자는 다름 아닌 이용우 선생이다. 그는 개막 인사에서 “단색화는 어떤 특정 미술 운동이 아니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우리 사회가 겪은 인고의 역사를 표현해내려는 강한 의지가 색채로 나타난 하나의 중요한 미술사적 진화고 앞으로 더욱 진화해나갈 것입니다”라고 전시의 의미를 밝혔다. 같은 날 저녁 열린 오프닝 행사에는 국내외 미술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고, 공식 디너의 국제적 초대 인사도 140명에 달했다.
2004년에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이후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를 역임한 이용우 선생에게 이번 베니스행은 한국인 최초의 심사위원으로서, 그리고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으로서 여러모로 많은 책임을 느끼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특히 비엔날레에 출품한 수많은 작품을 심사해야 하는 바쁜 일정 때문에 매일 3시간 이상 자기도 힘들었다고. 베니스에서 그 어떤 작가나 기획자보다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한 그를 <단색화>전 오프닝 다음 날 오전 7시에 만났다. 자료를 잔뜩 넣은 천 가방을 무겁게 메고 나온 이용우 선생과 그가 미술인으로서 살아온 경험,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은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서 충분히 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_이용우”
올해 비엔날레는 역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심사위원으로서 많은 작품을 접하셨을 텐데 이번 비엔날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모든 세계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탄생 120주년을 맞았고 역대 최대 규모인 89개국이 참가했습니다. 그래서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하고 혼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가는 자국의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예술의 미학적 혹은 형식적인 면에 집착하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전략적이거나 미학적인 예술의 경향이 혼재합니다.
‘백과사전’을 주제로 진행한 2013년 비엔날레와 비교해 어떤 점이 다른지요? 2년 전에는 실험적 요소가 아주 강했습니다. ‘예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전통적.관념적으로 이해하던 부분을 과감히 깼죠. 반대로 이번에는 ‘예술은 예술이다. 그러나 순수 미학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표명하는 것 같아요. 예술의 내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소셜 미디어의 성격이 훨씬 강해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올해 심사위원으로서 수상자를 결정하셔야 하는데(인터뷰는 심사 발표 전날 진행했다),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지요? 이번 심사의 기준은 심사 기준을 정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잣대로 보겠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순수하게 그 예술 작품과 소통하기 힘들어지거든요. 작품을 대할 때는 ‘이 작가가 왜 이 작업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술은 참 다양합니다. 옛날에는 흔히 ‘미술’이라고 했잖아요. 과거의 미술을 예술로 바꾼 것이 비엔날레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 이것도 예술인가?’ 또는 ‘예술이여, 예술로 돌아와라’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의식의 문을 활짝 열어야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감수성과 만날 수 있다고 웅변하는 작품이 많거든요. 그래서 가급적 예민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내가 지닌 지식과 경험의 세계를 해체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심사위원끼리 하루에도 여러 번 회의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의견이 서로 잘 맞나요?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분들은 이미 예술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대로 자신의 의견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갈등이나 충돌은 없어요. 다만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토론을 많이 하죠. 예술이 사회운동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예술이 특정한 형식을 가지고 있는가 등에 대해서요.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은 국가관이나 작품은 무엇인가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적 환경과 조건에서, 예술이 사회적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보여주는 작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언어 능력이나 구술 능력을 지닌 작품이죠. 가령 벨기에관의 경우 유럽의 식민 치하에 피 흘린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 작가의 기획전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벨기에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다른 국가 작가의 작품이 더 많았습니다. 국가관에서는 자국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열린 마음으로 예술자를 수용하는 포용력을 보여준 전시였습니다. 또 하나는 작가 얀 보(Danh Vo)의 작품을 선보인 덴마크관입니다. 커다란 창문이 전시장 바닥에 넘어져 유리가 깨진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가 모두 파괴된 걸 상징합니다. 깨진 창문은 지식과 경험과 시각적 요소를 수용하는 통로를 파괴하고, 안에서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줍니다. 미술은 ‘시각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미술의 언어적 기능을 생각하게 해준 앞서가는 전시였습니다. 이라크관의 한 작가는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파괴되는 문화유산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영상을 선보였는데, 마지막에는 필름을 거꾸로 감아 이를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광기와 부조리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가 참여한 한국관에 대한 찬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출이 돋보인 전시였습니다. 1995년에 한국관을 지을 때 ‘그란드 카날(대운하)의 전경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어요. 그 해결책으로 한국관을 유리로 짓게 됐죠. 유리 공간은 전시를 연출하는 큐레이터나 작가에게 매우 큰 난관으로 작용했어요. 유리 공간을 아예 차단하거나 이를 이용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번에는 영상 작품을 유리벽에 투사해 전시장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시를 선보였습니다. 하나의 영화 세트 같은 느낌을 주면서 시각적 요소의 실험성을 적극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해석의 자유를 주면서 다른 국가관과 차별화되는 좋은 작품과 기획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세계비엔날레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 세계비엔날레협회는 어떤 필요성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앞으로 하게될 가장 중요한 사업이나 프로젝트는 무엇인지요? 세계비엔날레협회는 한마디로 ‘정보 교환소’입니다. 전 세계에 현존하는 280개 비엔날레의 상호 교류와 정보 교환을 원활히 하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특히 최근 20년간 비엔날레의 양적 진화가 두드러졌습니다. 각 비엔날레의 긍정적인 면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협회가 필요한 시점이죠. 그리고 비엔날레가 탄압이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중재하고 지원해주는 역할도 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하신 탄압이라는 것은 주로 정치권력에 의한 것인가요? 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아예 비엔날레를 강제로 폐지해버리는 경우도 있고, 비엔날레가 막을 올렸는데 중단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예술 작품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비엔날레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시가 중단되어 전시 작품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물론 예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예술은 예술로 남아 있습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와 ‘상상력’입니다. 세계비엔날레협회는 이 둘을 봉쇄하는 것에 대해 대응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다시 미술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으신지요?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전향한 게 아니라 단지 관심의 영역을 넓힌 것뿐입니다. 원래 글을 썼고, 시도 썼습니다. 문학은 언어적이고 미술은 시각적이니 이 둘을 합하면 훨씬 작품 세계가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로 말을 해놓고 ‘아, 이 말로는 불충분하다’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시각적인 것은 시각언어가 있는데 그 언어가 말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표현하고 구체적인 의미를 내포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언어는 침묵할수록 힘이 강해지기도 하는데, 시각언어는 뭉쳐놓으면 그 응집력이 매우 강해집니다. 이 두 세계의 질서는 매우 다양하지만 내통하는 면이 많아요. 그래서 이 두 세계에 모두 몸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글쟁이고 전시 기획도 합니다.
<단색화>전을 위해 베니스에 모인 하종현 작가, 이우환 작가, 이용우 선생, 박서보 작가(왼쪽부터)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and studio Ufan Lee
이우환은 <단색화>전과 연계해 대규모 야외 조각 설치 작품 ‘Dialogue, 관계항’ 연작을 선보였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바위와 돌, 자갈을 이용한 작품이다.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박서보, Ecriture(描法) No. 89-79-82-83, 마포에 연필과 유채, 194.5x300cm, 1983
Photo by Sangtae Ki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하종현, Conjunction , 종이에 유채, 120x175cm, 1974
광주비엔날레를 오랫동안 이끌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광주비엔날레에 6년 3개월간 있었는데 ‘광주’라는 도시의 지역적 환경에 의한 토론의 장과 그 속에서 자라고 있는 문화적 토양의 힘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5 .18 민주항쟁이 광주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광주에 깃든 5.18 정신의 넓고 깊음, 즉 외적 환경을 수용하는 포용력을 광주비엔날레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광주비엔날레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문화의 장을 활짝 열어 다양한 예술적 놀이를 하게 했고, 5.18 정신과 소통하는 미학적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외부인도 자유롭게 들어와 함께 놀 수 있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도록 말이죠.
반대로 아쉬운 점은요? 광주비엔날레를 만든 사람으로서 광주비엔날레가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누구든 비엔날레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오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으면 합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깨끗한 마음으로 일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외적 환경 변화에 따라 비엔날레 내부의 환경이 변하고 관계자나 직원의 변화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을 좀 더 안정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국도 이제 문화 선진국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사실 그 내부에 들어가보면 너무나 문화 후진국적 요소가 많습니다. 대표적 예로, 하나의 문화기관을 책임져야 할 사람의 임기가 2년이라는 것은 매우 무식한 정책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미술관의 관장직 임기가 2년에서 3년밖에 되지 않죠. 행정기관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투명성과 정직성을 위해 주요 보직의 임기 순환이 빨라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를 문화와 예술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생각이 짧은 행위입니다. 문화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죠. 그리고 한국인은 하나의 실수가 나오면 가차 없이 비판하고 그것을 당장 해결하는 데만 급급합니다. 상황이나 맥락에 대한 이해와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태도가 부족하죠. 기다릴 줄 아는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필요합니다. 무언가를 빨리 해결하고 이루고 바꾸기 위한 문화는 100m 달리기엔 유용할 수 있지만 장거리 달리기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베니스에서 <단색화>전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전시를 계기로 보다 깊은 조명이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도 하게 됩니다. 반면 세계 유수 공공 기관의 진지한 뒷받침 없이 시장에 의해 그 위상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자각도 있어요. 미술 시장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마초적입니다. 그 속에는 시장이 지닌 생생함도 있지만 담합과 야합의 속성도 많습니다. 미술계를 시장의 속성에 내맡기면 위험합니다. 크게 잘못된 점은 단색화의 역사적.미학적 가치에 대한 이해는 결여되고 자본적 가치만 상승한다는 것입니다. 그건 결코 건강하지 않은 겁니다. 예술에는 역사적 가치, 미학적 가치 그리고 자본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그 가치가 탄탄해야 시장적 가치도 따라갑니다. 단색화의 경우 외국인도 함께 기획해야 그 허리가 두터워집니다. 기획자로서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색화를 외부에 적극 알리는 거예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 전시를 통해 그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니 결과를 지켜봐야겠지요.
이번 비엔날레 이후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계신지요? 4월 15일부로 상하이의 히말라야 미술관 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3년 임기인데, 비엔날레 폐막 이후 곧 상하이에 가야 합니다. 히말라야 미술관은 이미 글로벌화된 사립 미술관이지만 앞으로 내부와 외부 세계의 예술을 함께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강화할 생각입니다. 물론 중국 미술과 해외 미술을 다채롭게 보여줄 계획입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글 최선희(아트 컨설턴트) 사진 Donald Gjoka(인물)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베니스 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