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랑한 위스키
작가, 예술가, 정치가 등 각계 각층의 삶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영감을 안겨준 그들의 그 위스키.
지난봄, 사진작가 마리오 테스티노가 맥캘란 위스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마스터 오브 포토그래피(MoP, Master of Photography)’를 공개했다. 그의 렌즈에 담긴 건 위스키를 마시는 즐거운 순간. 그간 세계적 사진작가 랜킨, 앨버트 왓슨, 애니 레보비츠, 엘리엇 어윗과 함께 작업해온 MoP는 볼 때마다 새로운 시선에 놀라곤 한다. 모두 동일하게 위스키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는 제각각 다르기 때문. 5세기경 아일랜드에서 시작한 이래 생산지에 따라 스카치위스키, 아이리시 위스키, 캐나디안 위스키, 아메리칸 위스키, 재퍼니즈 위스키 등으로 불리며 각기 다른 맛과 향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술 위스키. 현재 와인 문화에 이어 술 트렌드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서 생산하고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과 향, 빛을 내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겠지만, 위스키 중 가장 대표적인 스카치위스키는 밀주 출신이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상류층의 술로 인식되어온 까닭은 왕실에서 즐겨 마셨기 때문. 조지 4세는 밀주인 위스키를 양지로 끌어올렸고, 빅토리아 여왕 역시 보르도산 레드 와인에 로크나가 위스키를 섞어 마신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위스키를 좋아했다. 현재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도 왕실 행사나 귀빈을 접대할 때 보모어 위스키를 즐겨 마신다 하며 찰스 왕세자 역시 라프로익 15년을 가장 좋아하는 술로 꼽는다.
반면, 술과 떼어놓을 수 없는 예술가에게 위스키란 접하기 힘든 고급술이었다. 예술가들이 미술 담론을 나누며 술을 즐긴 19세기에도 위스키보다 값싼 압생트가 그들을 위로하곤 했다. 그럼에도 위스키를 즐긴 예술가로 알려진 이는 천재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다. 유대계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풍족한 중산층 생활을 누리며 부드러운 와인을 즐겼다. 그런 그가 미술로 진로를 바꾸고 연인 베아트리스를 만나면서 위스키와 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후 평생의 연인 잔을 만나고, 폐결핵에 걸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위스키에 의지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독일 작곡가 브람스 역시 위스키 애음가 중 한 명이었다. 술과 담배, 커피를 유난히 좋아한 그는 위스키를 잔에 따르다 넘치면 주위에 누가 있든 상관하지 않고 잔과 테이블을 혀로 핥았다고 알려졌다. 경박해 보일지라도 위스키가 더 중요하다 여겼을 정도라고. 그 역시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 친구에게 술을 부탁해 마신 뒤 “자넨 정말 좋은 친구야. 고맙네”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렇듯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어인 게일어(gaelic)로 ‘생명의 물’이란 뜻처럼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명사들의 생의 순간에 늘 함께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집에 고이 모셔둔 보모어 21년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술이 있다. 바로 위스키 하이볼(위스키를 베이스로 탄산수를 첨가한 것)이다. 그는 싱글 몰트위스키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위스키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이다. 아내와 함께 2주간 위스키를 테마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을 여행하며 현지 증류소를 견학한 내용을 담았다. 저마다 풍미가 다른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모금 마시고 나면 당신은 ‘이게 도대체 뭐지?’ 하고 놀랄지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마시고 나면 ‘음, 좀 색다르지만 나쁘지 않은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느낀다면, 당신은 아마도 세 모금째에는 아일레이 싱글 몰트위스키의 팬이 되고 말 것이다. 나도 똑같은 단계를 밟았다.” 그는 지금도 도쿄의 단골 바에서 싱글 몰트위스키를 즐겨 마신다. 위스키를 한 입 머금을 때마다 바다에서 부는 거센 바람과 파릇파릇한 풀섶, 난로에서 오렌지 빛깔로 이탄이 타오르는 모습을 떠올린다고. 여행 당시 선물 받은 보모어 21년을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을 정도로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위스키 사랑으로 탄생한 잭 다니엘스 시내트라 셀렉트
프랭크 시내트라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프랭크 시내트라는 자타공인 위스키 애호가였다. 그는 험프리 보가트, 주디 갈런드, 딘 마틴과 함께 할리우드의 유명한 술꾼 모임 랫 팩(Rat Pack)을 만들어 밤새 위스키를 즐겼다고 한다. 테네시 위스키 올드 넘버 7을 마실 때를 삶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으로 꼽았을 정도다. 친구들과 늘 즐겨 마신 술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날 때도 제일 먼저 이 술을 권했다고 한다. 2012년에는 마스터 디스틸러(master distiller, 증류 전문가) 제프 아넷(Jeff Arnett)이 손수 작업한 ‘시내트라 배럴’을 이용해 전통의 올드 넘버 7 테네시 위스키와 혼합한 ‘잭 다니엘스 시내트라 셀렉트’가 출시되기도 했다.

첫 <007 시리즈>가 개봉한 1962년에 증류한 맥캘란 파인 앤 레어 1962
숀 코너리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제임스 본드, 여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배우 등 숀 코너리에게 따라붙는 수많은 수식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품질 좋은 싱글 몰트위스키 같은 남자’라는 것. 실제로도 스코틀랜드 출신답게 다양한 위스키를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그가 출연한 첫 제임스 본드 시리즈 <007 살인면허(Dr. No)>가 개봉한 1962년 증류한 맥캘란 최고급 빈티지 라인인 맥캘란 파인 앤 레어 1962가 6억8000여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다수의 위스키 광고에 출연할 만큼 위스키 자체와 비견되는 인물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마거릿 대처는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글렌파클라스 15년을 즐겨 마셨다.
윈스턴 처칠과 마거릿 대처
“알코올이 나에게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코올에서 얻었다”, “물은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위스키를 첨가해야 마시기 좋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윈스턴 처칠은 애주가로 유명하다. 그는 매일 점심에는 맥주, 저녁에는 차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거나 샴페인을 즐겼다. 무엇보다도 하루에 위스키 한 잔은 절대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식량이 부족할 때 스카치위스키의 생산이 중단되지 않도록 농림부 장관에게 필요한 곡물을 공급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린 일화도 전해진다. 물론 그 자신이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했으나 전후 외화벌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위스키를 전 세계에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고, 그 덕에 영국의 피해 복구 사업을 좀 더 수월하게 해나갈 수 있었다. 그가 가장 즐겨 마신 위스키는 조니워커 레드, 블랙 레이블로 알려졌다. 위스키를 사랑한 사람 중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총리 재임 시절 스코틀랜드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증류소를 방문했을 때, 글렌파클라스의 오너 존 그랜트와 저녁 만찬을 하며 글렌파클라스 15년을 접했다. 이후 관저에 늘 글렌파클라스 15년을 구비해놨다고. 그녀는 밤늦게 연설문을 쓸 때 늘 위스키를 마셨고, 다이어트를 할 때 위스키 외에 어떤 술도 마시지 않는 ‘위스키 다이어트’로 톡톡한 효과를 봤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에디터 홍유리 (yurih@noblesse.com)
일러스트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