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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방인들

LIFESTYLE

뉴욕 대학 사회학과 교수이자 학자인 이 시대 최고의 지성,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저서 에서 진정한 장인정신은 인간이 지닌 기본적이고 지속적인 충동이라고 했다. 여기, 그 충동질에서 비롯된 열정과 애정으로 사라져가는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다른 나라 음식’ 치즈를 만드는 소영 스캔런 그리고 그녀가 만난 한국과 일본의 ‘치즈 전도사’들이다. 우리의 먹거리가 한층 건강하고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모든 현대인을 위해, 그들의 진지한 고민과 작은 노력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미국에서 치즈 메이커 아르티장으로 지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어떻게 동양인이 치즈를 만들게 되었나?”다. 나에 관한 초창기 기사는 그 당시 미국에서도 거의 생산하지 않던 프랑스식 연성 치즈를 한국인 여성이 만드는 데 대한 호기심에 초점을 맞추었다. 내 치즈를 유명 셰프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후에는 공학도와 과학자로서 내 경력을 치즈의 질에 대한 인증으로 여겨 성‘ 공적으로 커리어를 쌓은 동양 여자’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음악을 사랑해 음악 용어를 치즈 이름으로 쓰는 장인, 치즈를 먹고 자라지 않았으면서도 프랑스의 전문가들도 인정하는 치즈를 캘리포니아에서 만드는 여자. 치즈를 만들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나는 아직도 이런 긴 수식어가 필요한 아웃사이더다.

내가 10년 전 친한 셰프들의 요청으로 프랑스 아르티장 치즈를 수입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또 다른 ‘작은 체구의 동양 여자’ 혼마 루미코(Rumiko Honma)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루미코는 프랑스어로 ‘농장’ 또는 ‘농장에서 만든’이라는 의미를 지닌 도쿄의 치즈 가게 ‘페르미에(Fermier)’ 주인이다. 내가 방문한 많은 유럽의 치즈메이커는 ‘루미코가 내 치즈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프랑스의 유명한 가게나 셰프의 이름보다 확실한 품질보증서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목을 끈 것은 그들이 루미코에 대해 말할 때마다 감출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애정을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많은 치즈 장인이 “저 치즈는 루미코에게 보낼 것”이라며 최고 품질의 치즈만 선택한 숙성고의 선반을 자랑스레 보여주기도 했다.

루미코의 치즈 관련 저서들

페르미에 가게에서의 루미코

루미코의 치즈 여행 중인 모습

이렇듯 유럽 치즈업계에서 유명한 루미코를 만나러 도쿄를 찾았다. 페르미에 본점은 치즈 가게가 있으리라고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벚꽃나무가 우거진 아타고 신사로 올라가는 길 중턱에 자리해 있다. 루미코는 힘껏 안으면 팔 안에서 바스러질 듯한 가녀린 몸과 어린아이에게서나 볼 수 있는 순수하게 반짝이는 눈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지난해에 환갑을 맞은 그녀는 그저 곱게 늙어가는 전형적인 일본 여인이라기보다 평생을 미소 지으며 살아와 아름답게 주름진 얼굴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루미코는 몇몇 치즈 관련 책에서 사진과 함께 언급한 나를 오래전부터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참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양인으로, 타국인 미국에서 프랑스의 전통에 따라 치즈를 만드는 것. 그런 당신에 비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를 들여와 팔고 있는 치즈상에 불과해요.”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존경심을 표현할 말을 찾느라 머뭇대는 나를 맞으며 그녀가 건넨 말이다.

“치즈는 나에게 로망이었어요.” 어떻게 치즈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느냐는 첫 물음에 대한 루미코의 대답이다. 그건 내가 그간 무수히 들어온 질문이기도 했다. 나가타 현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문‘ 화적 이방인’으로 자랐다고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서양의 식자재를 수입하는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주로 원료용 모차렐라와 덴마크산 크림 치즈를 다루었다.

임실 치즈 마을의 치즈 농장과 공방 모습. 수많은 연구와 정성으로 다양하고 질 좋은 치즈가 만들어진다.

그 당시 일본에는 피자와 치즈 케이크 붐이 일기 시작한 때였다. 일본어로 쓴 치즈에 관한 정보가 전무하던 1980년 처음 번역된 프랑스의 대표적 요리 사전 <라루스 가스트로 노미크(Larousse Gastronomique)>는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에서 보낸 초대장 같았다고 한다. 그 책의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정성 들여 읽고 나서, 그녀는 진정한 치즈를 알기 위해 프랑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981년, 파리행 비행기표와 45일간 유럽을 여행할 수 있는 유레일 패스를 들고 홀로 여행을 떠났다. 책에서 읽은 치즈 이름이 유래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60곳이 넘는 치즈 만드는 농장을 방문했고, 셀 수 없이 많은 치즈 가게와 시골의 장을 찾았다. 여행하는 동안 그녀는 ‘진짜 치즈’(그녀의 표현이다)와 사랑에 빠졌고, 언젠가 일본에서 이런 치즈를 팔겠다는 결심을 했다. 밤에는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낮에는 바게트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며 치즈 사업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했다.
1980년대 일본의 고급 외식 산업은 프랑스 요리가 주도했다. 많은 프랑스 셰프가 도쿄에 식당을 내기 시작하고,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일본인 요리사들이 돌아오던 때다. 그녀는 그때 만난 셰프들을 스승 삼아 치즈에 대한 지식과 정말 좋은 치즈란 무엇인지에 대해 공부했다고 한다. 일본에 수입되는 치즈의 질에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1986년 첫 가게를 열고 직접 치즈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여자라 좋은 점이 많았다고 했다. 셰프들은 정보를 공유하는 데 주저함을 보이지 않았고, 그녀도 다른 이들에게 배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자리 잡은 수입상은 여자가 하는 일을 냉소적 시각으로 바라보며 완전히 무시했는데, 그 덕분에 그녀는 실력을 쌓고 주목을 받으며 질시의 대상이 되기 전 일말의 자유로움을 누리며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100kg짜리 치즈를 2주일에 한 번 수입하던 사업이 30년이라는 꾸준한 시간을 거치며 일주일에 최소 2톤, 연말에는 4톤 정도 물량이 필요한 규모로 성장했다. 일본와인협회 건물 1층을 빌려 시작한 작은 가게는 삿포로 지점까지 합쳐 5개로 늘어났다. 2000개 이상의 외식 기업이 그녀의 고객이 되었고, 치즈 가게를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일본 전역의 수많은 치즈 애호가에게도 통신 판매를 통해 최고의 치즈를 공급하고 있다. 그녀는 일본뿐 아니라 300종이 넘는 최고의 아르티장 치즈를 구비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루미코는 지금도 유럽의 주요 아르티장 치즈 행사를 쉼 없이 찾고 있다. 새로운 생산자를 발굴하기 위해, 직접 방문해서 먹어본 후 수입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잠시의 여유도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다. 지난여름엔 스위스 치즈의 왕이라 할 수 있는 ‘에티바(Etiva)’ 치즈를 생산하는 곳, 1시간에 이르는 등반 끝에 도달할 수 있는 산꼭대기에 위치한 치즈 만드는 오두막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다음 몽블랑과 가장 가까운 높이에 위치한 라클레 공방에서도 일본의 치즈 애호가들을 이끌고 온 그녀를 만났다. 그녀 덕분에 역시 ‘작은 동양 여자’인 나도 많은 이들에게 환대를 받고 있고, 그들은 “당신이 루미코의 친구라면 우리는 이제 친구다”라며 팔을 벌린다.
치즈 사업가로 성공한 혼마 루미코는 ‘일본의 치즈 여왕’이 아닌 ‘치즈 전도사’로 불리길 원한다. 치즈에 빠져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믿는 진짜 치즈를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사업을 키우고 책도 10권 넘게 출판했다. 또 일본에 ‘치즈 프로페셔널 어소시에이션(Cheese Professional Association)’을 창립했고, 치즈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자질을 높이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과 자격증 제도를 만들었다. 일본 아르티장 치즈 대회도 주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개최하는 치즈 전문인 대회(International Cheesemonger Competition)에서 대상을 휩쓸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젊은 치즈 교육자 무라제 미유키(Miyuki Murase)와 이노우에 유코(Yuko Inoue)도 루미코 밑에서 일하며 치즈를 배운 이들이다. 미유키가 쓴 <10가지 대표 치즈로 알아보는 치즈의 모든 것>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또 루미코는 매달 발간하는 <페르미에 통신>을 통해 치즈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고, 페이스북에 자신의 치즈관련 활동을 홍보하고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치즈란 숙련된 장인이 정성 들여 만든 것이고, 숙련된 장인은 전통과 원료에 대한 존경을 치즈로 표현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또 치즈는 치즈만이 줄 수 있는 맛과 질감,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왜 수많은 치즈메이커가 그녀가 만족하는 치즈를 만드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찾는 것은 깊이 있는 맛이고, 그 맛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과 현재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이다.

 

 

임실 치즈 마을의 치즈 농장과 공방 모습. 수많은 연구와 정성으로 다양하고 질 좋은 치즈가 만들어진다.

 

소영 스캔런과 그녀가 만든 모차렐라 치즈

서양 음식에 대한 동경과 선진 문화 수용을 통해 발달한 일본의 치즈 제조 사업과 달리, 한국의 첫 치즈 생산은 벨기에에서 온 벽안의 신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미 잘 알려진 지정환 신부의 임실 치즈 이야기다. 한국의 첫 치즈는 농토가 거의 없고, 소를 키울 목초조차 재배할 수 없던 척박한 땅에서 ‘가난한 자의 우유’라고 불리던 산양 젖으로 만들었다. 그 시도는 그에게 익숙한 외국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민의 가난을 구제하고자 한 안간힘에 가까웠다.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선사하고 육체노동을 수행의 일부로 삼는 천주교의 전통을 따른 것이기도 했다. 산지가 많아 대표적 낙농업 국가로 발전한 스위스와 프랑스 알프스의 목초지를 개발한 이들도, 치즈 만드는 방법과 낙농 기술의 기본을 기록으로 남겨 다음 세대에 전달한 것도 천주교의 사제였다. 이제 임실 하면 가난에 찌든 오지가 아닌 치즈를 떠올리고, 피자 치즈로 유명한 임실 치즈 농협 이외에도 체험장을 갖춘 11개 치즈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임실 농협은 값싼 수입 치즈와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올해 27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고, 주변의 작은 공방은 16만 명이 넘는 치즈 체험 방문객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 기관인 국립축산과학원을 통해 농가형 치즈 공방의 지원이 지속되고 있고, 배인휴 교수가 주도하는 순천대학교 부속 소규모 유가공연구센터의 유가공 교육 프로그램은 지난 17년 동안 600명에 이르는 ‘미래의 유가공 장인’을 양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치즈 수입량 7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의 치즈 소비가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인이 소비하는 치즈는 가공 치즈와 수입 피자 치즈가 대부분이다. 전국에 산재한 작은 치즈 공방의 주요 생산 품목도 요구르트나 스트링 치즈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제외한 개인이 운영하는 치즈 상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출산율 감소로 남아돌게 된 우유소비를 위해 많은 기업이 치즈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자생력을 갖추고 발전할 수 있는 유가공 산업의 미래에 대해 그 누구도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루미코와의 인터뷰 말미에 페르미에를 인수하고자 하는 대기업의 수많은 제의를 어떻게 뿌리치는지 농담처럼 물었다. 그녀는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손이 많이 가면서도 이익이 쉽게 나지 않는 일인데 어떤 대기업이 사겠다고 하겠어요? 관심을 보이다가도 실상을 알게 되면 다시는 연락을 안 해요.”
전 세계를 통해 아르티장을 진정으로 지지하는 이들은 언제나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상점이었다. 이제 영국 아르티장 치즈 산업의 대명사가 된 닐스야드 데어리(Neal’s Yard Dairy)도 런던의 코번트 가든 구석에 위치한 15평짜리 상점으로 시작했다. 여전히 건재한 이 상점은 지하 저장실에서 일일이 손으로 치즈를 나른다. 최고의 전통과 품질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유명한 치즈 가게도 20평 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모든 일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슬로푸드와 현지에서 생산한 재료를 쓰려는 의지가 일반화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곳에서 오고 있다. 이 산업에 오래 종사한 아르티장들은 미래의 건강한 식문화를 위한 가장 큰 도전은 끊임없이 ‘What’s new?’를 찾는 소비자의 인식 변화,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 위해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지속성을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디에 호소할 수 있을까? 낡았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지지 않기 위해 전통을 새롭게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할까?
오랜 시간 이 산업에 몸담고 있는 치즈메이커로서 바람이 있다면 현대인의 삶에 남다른 의미로 자리 잡은 농업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길 기대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문화적 이방인들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용기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치즈에 대한 열정이 식을 줄 모르는 루미코, 그리고 타국에서 치즈 하나로 무지개를 그린 지정환 신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
소영 스캔런(Soyoung Scan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