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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ng a Culture of Quality

FASHION

브랜드에 대해 자세히 알고 난 후 가슴뿌듯할 때가 있다. 이탈리아 보르고세시아에 자리한 콜롬보 노블 파이버 공방을 돌아본 후가 그랬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F/W 여성 컬렉션

* 우리나라에는 2개의 콜롬보가 있다. 고급 원단을 선보이는 콜롬보 노블 파이버와 가죽 소품을 전문으로 하는 콜롬보 비아 델라스피가. 지금부터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콜롬보 노블 파이버다.

보르고세시아로 가는 길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1시간을 달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본사가 위치한 보르고세시아(Borgosesia)에 도착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밀라노에서 멀리 온 것 같지 않은데 한적한 전원 마을이 펼쳐지니 의외의 기분이 들었다. 사실 보르고세시아는 조금은 생경한 지명이다. 한데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원단 브랜드의 제조 공장이 자리한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 본사에서 10km 거리에 에르메네질도 제냐, 30km 떨어진 곳에 로로피아나 공장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단 가공을 위해선 좋은 물이 필요한데, 유럽 대다수 지역의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아 섬유 세탁에 알맞지 않다. 그에 반해 이곳은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세시아(Sesia)강으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해 수질이 청정하다. 섬유산업 입지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역사 그리고 정체성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역사는 1960년대에 창립자 루이지 콜롬보가 고급 울, 캐시미어, 비큐나, 과나코, 캐멀 등을 생산하며 시작됐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명망 높은 섬유 회사의 오너를 삼촌으로 둔 루이지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소재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이후 성인이 되어 고급 소재와 원단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에르메스, 루이 비통, 프라다, 구찌, 휴고 보스 등 다수의 패션 하우스에 최고급 소재를 공급,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 맞춤복을 즐겨 입는 남성이라면 양복지를 고를 때 콜롬보 원단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바로 그 콜롬보 원단이 콜롬보 노블 파이버다. 이렇게 회사의 규모는 확장됐고, 1970년대부터 루이지의 두 아들 로베르토와 잔카를로가 합류해 가족 경영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여기서 잠시 이탈리아 기업의 가족 경영 방식에 대한 자부심을 언급하면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급속한 성장을 원하진 않습니다. 좋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를 통해 천천히 가더라도 정확하게 바른 길로 가고 싶습니다. 지금이 아닌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로 이어갈 사업이니까요”라는 CEO 로베르토 콜롬보의 말처럼 외부적 요소에 흔들리지 않고 지금껏 쌓아온 노하우와 고유의 장인정신을 지켜내는 일, 브랜드 정체성을 이어가는 것이 이들의 최우선 목표다.

과나코.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고대의 전설적인 동물 혹은 문명을 상징하는 동물로 불린다.

비큐나. 태양의 신, 인티의 선물로 불릴 만큼 그 가치가 높다. 일반적인 털의 색은 적갈색이며 흰색 혹은 알비노 컬러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캐시미어의 원사를 제공하는 숫염소들

인정받는 가치의 이유 약 3만㎡ 규모의 공장에 3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총 94단계의 생산 공정을 거쳐 원단을 제조한다. 전 세계적으로 흩어진 소재별로 특화한 산지에서 가져온 재료로 실을 만들고 이를 다시 방직해 원단을 직조하는 전 과정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한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하나의 천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18번이나 품질 확인 단계를 거치고, 각 단계마다 콜롬보 가족이 직접 참여해 세세하게 관리한다는 사실. 열정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다양한 소재를 채취하고 가공하는 방법도 눈에 띈다. 일례로 페루어로 ‘인티(태양의 신)의 선물’이라 불릴 만큼 진귀한 소재로 꼽히는 비큐나는 현재 CITES(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로 보호받고 있는 동물. 그 때문에 이를 채취할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한 손에 꼽힐 만큼 한정적이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는 1990년대부터 페루 정부와 협약을 맺고 야생동식물 국제 협약 기준을 준수해 원료를 공급받고 있다. 한데 털을 채취하는 방법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인위적으로 깎는 것이 아니라 1년에 한 번, 오직 털갈이철에 빗질을 통해 자연적으로 빠지는 털만 모은다는 것이 아닌가! 동물의 털로 만든 옷은 동물 학대의 결과라는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에 반하는 즐거운 이야기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털의 양은 비큐나 한 마리당 250g 내외. 겨울철 스웨터 한 장의 무게를 떠올려본다면 얼마나 귀한 소재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득 비큐나가 특별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앞서 말한 것처럼 희귀성이 한몫한다. 하지만 단순히 쉽게 구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가치가 높을 순 없다.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동물은 대개 추운 환경에 적합한 가늘고 치밀한 털이 나는데 이 털의 굵기는 12~15미크론 정도(비큐나는 12미크론)다. 사람의 머리카락이 평균 80~120미크론이니 얼마나 가는지 짐작할 수 있을 터. 그 덕분에 이를 활용한 섬유는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광택도 좋다. 실제 현장에서 본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비큐나 스카프는 막 만들어낸 솜사탕 같았다. ‘중력 제로(0)’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촉감이 부드러워 손에서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에서 선보이는 비큐나 스카프, 무게가 가벼워 ‘중력 제로(0)’로 불리는 제품이다.

섬유 직조 과정. 그린 럭셔리를 꿈꾸며 환경친화적 방법을 고집해 털 가공부터 염색까지 모든 공정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공기도 쾌적하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CEO 로베르토 콜롬보

콜롬보 노블 파이버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서는 비큐나 외에도 캐시미어, 과나코, 밍크, 친칠라, 세이블, 어민, 얀지르, 낙타모 같은 다양한 원재료를 활용한 최고급 원단을 만날 수 있다. 낯선 이름, 과나코와 얀지르에 눈길이 간다. 우선 과나코는 페루 고원지대와 남미 지역에 서식하는 낙타과 동물. 건조한 기후에 잘 적응하며 고온과 강추위에도 잘 견디고, 털의 두께가 12.5~13미크론으로 비큐나 그리고 캐시미어에 견줄 만큼 부드럽다. 얀지르는 염소의 일종인 시베리안 아이벡스종으로 히말라야 고도 6700m에 서식하는데, 털의 두께가 13.5미크론으로 캐시미어처럼 포근한 감촉과 금빛 윤기가 감도는 것이 특징. 무척 고급스럽다. 두 소재 모두 차세대 고급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고. 또 이곳에서 만난 독특한 원단이 있다. 밍크, 친칠라, 세이블과 같은 퍼를 첨가한 직물이다. 일반적으로 퍼를 떠올리면 털이 보송보송한 이미지인 것에 반해 캐시미어 또는 낙타모로 직조한 원단에 위에 모피 한 올 한 올을 고온고압의 방법으로 붙였다. 퍼 특유의 광택이 무광의 소재 위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효과를 낸다. “동물에서 채집할 수 있는 소재의 품질은 이미 최상위까지 도달했습니다. 앞으로는 여기에 어떤 가공 기술을 더해 고급화할지가 관건입니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에서 다루는 소재와 원단을 돌아본 후 로베르토 콜롬보의 설명을 들으니 앞으로 브랜드에서 선보일 신제품이 기대됐다. 한편 공장을 돌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본 캐시미어는 누구나 아는 하이엔드 소재인데, 최근 SPA 브랜드에서는 캐시미어 제품을 무척 저렴한 값에 판매한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하는 점이다. “캐시미어는 중국 신장 지역과 티베트, 몽골 지역의 숫염소에서 채취한 파일(pile)을 말합니다. 언제 어느 부위에서 채취해도 캐시미어라고 부를 수는 있죠. 하지만 양질의 캐시미어는 가슴 부위의 털(duvet)로 6월경 채취하는 것이 특히 좋고 귀합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내몽골의 염소털이 15미크론 굵기로 비단처럼 부드러워요. 콜롬보 노블 파이버는 매년 초여름 오직 내몽골에서 기른 염소의 가슴 부위에서 최고 품질의 캐시미어만 채취합니다. 동물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양은 300g 정도에 불과하죠. 확실한 품질 차이가 있습니다.” 로베르토 콜롬보는 답한다. 더불어 좋은 제품이 보이는 미묘한 차이와 이를 구별할 줄 아는 안목을 키울 것을 강조하며 좋은 캐시미어 제품을 고르는 방법으로 첫째 첫눈에 보았을 때 광택이 좋으며 짜임에 입체감이 있다, 둘째 손으로 만졌다 폈을 때 구김이 가지 않는다, 셋째 털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모든 원단은 보르고세시아의 공장에서만 제작한다.

여성 컬렉션의 인기 아이템인 케이트 재킷(왼쪽, 가운데)과 남성 컬렉션의 메인 제품인 윌리엄 재킷

특별함에 정성을 더한 컬렉션 콜롬보 노블 파이버는 2000년대에 들어 최상급 소재에 대한 브랜드 가치를 기반으로 고품격 캐주얼웨어를 런칭하고, 2010년 9월에는 밀라노의 명품 거리 비아델라스피가(Via della Spiga) 33번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레디투웨어 디자인은 콜롬보에서 25년 넘게 일해온 디자이너이자 로베르토 콜롬보의 아내인 케이트와 2013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한 제인스 워드론이 담당하고 있다. 고급 원단을 사용한 의상을 통해 하이엔드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는 것이 이들의 목표. 아이코닉 제품으로는 여성 라인에서 선보이는 미디엄 길이의 싱글브레스트 케이트 재킷을 들 수 있다. 눈치 빠른 이들은 짐작했겠지만 디자이너 이름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최고급 캐시미어와 실크를 혼방해 부드럽고 착용감이 편하며 원단을 이룬 실의 두께가 가늘고 원사 안에 공기를 포함하는 구조로 제작해 구김이 잘 가지 않는다. 형태 복원력도 뛰어나 실생활에선 물론 여행 시에도 편하게 입을 수 있어 유용하다. 매 시즌 컬러를 바꿔 신상품을 선보이기 때문에 여러 개의 케이트 재킷을 모으는 고객도 많다고. 한편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는 캐멀, 에크루, 블랙 등 기본 컬러를 바탕으로 딥 퍼플, 오렌지, 그린 등을 포인트 컬러로 더한 아이템으로 이탈리아 감성을 세련되게 풀어냈다. 물론 소재 개발에 집중하는 브랜드답게 신소재를 사용한 제품도 눈길을 끈다. 본사에 위치한 쇼룸에서 2017년 S/S 시즌에 선보일 남성용 아우터를 미리 만날 수 있었다. 한 장의 천인데 앞은 캐시미어, 뒤는 나일론으로 이루어져 완벽하게 방수가 된다는 점이 놀라웠다. “기술 분야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독보적인 소재들을 보유하고 있죠. 저는 사람들이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탁월한 원단으로 만든 옷을 입었을 때 스스로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자부심은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 좋은 소재로 잘 만든 옷을 입었을 때 오롯이 착용자만이 아는 든든한 기분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로베르토 콜롬보의 말에서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났다. 더불어 그 신념이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F/W 남성 컬렉션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사진 제공 | 콜롬보 노블 파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