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부활
마이바흐가 돌아왔다. 2년 만이다. 이름하여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익숙하고도 새로운 이름과 더 친숙해졌지만 여전히 품격 있는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냈다. 지난 1월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글로벌 런칭 현장에서다. 겨울에도 화창하기 그지없는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받고 서 있는 새로운 마이바흐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구 들뜨는 것 같았다. 먼 발치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남자가 어느 날 자세를 낮추고 내게 고백하려는듯한 눈빛을 날린다면 이런 기분 아닐까? 그것도 멋지고 배려심 가득한 모습을 더하고서 말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 데지뇨 에디션의 사이드 뷰. 전체적인 밸런스가 조화롭다.
마이바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곡선미가 날렵하게 넘실대거나 엔진음을 방방거리며 달리지 않아도 절로 뒤돌아보게 하는 차.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뒤꽁무니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 정도는 아니었다. 대단한 차인 건 분명하지만 탐날 정도로 갖고 싶은 차는 아니었다는 의미다. 어쩌면 ‘감히’ 위시 리스트에 올릴 생각을 하지 못한 차여서 그럴 수도 있다. 범접하기 힘든 가격이기도 했지만, 나 같은 평범한 젊은 여자보다는 대기업 회장님이나 한류 스타 정도는 되어야 어울리는 차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마이바흐가 단종된 지 2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LA 오토쇼와 중국 광저우 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한 후 두 달 만인 1월 초,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새로운 마이바흐를 만났다. 그 2년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일단 이름이 바뀌었다. 개명한 풀네임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메르세데스-AMG처럼 메르세데스-벤츠의 서브 브랜드가 된 것이다. 본래 같은 회사이긴 했지만 집안 호칭과 서열 정리를 한 모양이다. 독자적 브랜드가 아닌, 플래그십 모델인 S 클래스보다 특별한 차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상위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앰비언트 라이트로 분위기 있는 실내가 연출된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은 전용 휠도 특별하다. 최고급차에만 쓰이는 단조로 만든 경량 알로이 휠을 장착했다. 넓은 휠스포크가 플래그십 모델의 고급스러운 면모를 강조해준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태생부터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최고의 명차라는 수식어가 붙는 마이바흐와 역대 그 어떤 모델보다 완벽하게 메르세데스-벤츠의 가치를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S 클래스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2013년에 출시한 신형 S 클래스는 정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도 좋을 만큼 잘 만든 모델이다. 특히 최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 ‘인텔리전트 드라이브’는 기술의 진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처음 공개할 때 디터 제체 회장이 언급한 “인텔리전트하고 최강 성능을 갖췄으며 아름다우면서 효율적인” 모든 것을 최고 수준으로 집약한 프리미엄 카가 바로 신형 S 클래스고,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그런 S 클래스 세단 포트폴리오에 추가된, 한 단계 높은 버전의 최상위 세단이다. 5980cc V12 엔진을 얹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과 4663cc V8 엔진을 적용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 2가지 버전이 있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프로덕트 개발 담당자는 “신형 S 클래스를 출시할 때부터 새로운 마이바흐의 부활을 염두에 뒀다. 그래서 휠베이스도 S600과 S500의 쇼트 휠베이스와 롱 휠베이스, 그리고 롱 휠베이스보다 길고 큰 마이바흐까지 3가지 버전으로 나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 클래스 세그먼트에 추가되었지만 마이바흐라는 이름이 붙느냐 아니냐에 따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먼저 익스테리어의 변화가 눈에 띈다. 전면 라디에이터 트림에 들어간 세 줄의 더블 크롬 루브르와 그 가운데 다시 들어간 크롬 세로줄, S 클래스보다 늘어난 휠베이스와 강렬한 사이드 캐릭터 라인, 미끄러져 내리는 듯한 돔 형태의 루프 라인 등 특유의 디자인 요소를 더해 최고급 리무진의 위용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이 차는 완벽하게 뒷좌석을 위한 쇼퍼드리븐 카다. 디자인과 성능의 변화 대부분이 뒷좌석 탑승자를 위한 배려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휠베이스가 롱 휠베이스 버전의 S 클래스보다 207mm나 길어졌는데 그중 200mm가 B 필러와 C 필러 사이를 넓히는 데 쓰였다. 결과적으로 뒷좌석이 더 넓고 여유로워졌다. 또 뒷좌석에 앉았을 때 윈도 시야가 왠지 넓고 시원해 보인다 했더니 S 클래스 롱 휠베이스 버전과 달리 뒷좌석 도어 윈도에서 삼각형 창문이 없어졌다. B 필러와 C 필러 사이가 늘어남에 따라 삼각형 창문이 C 필러 뒤쪽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휠베이스가 늘어났음에도 뒷좌석 도어의 길이는 오히려 66mm 짧아졌고, 뒷좌석 시트 자체도 도어 윈도가 위치한 자리보다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러한 구조는 뒷좌석 승객의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게 한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하는 프레데리크 노테(Frederik Knothe)는 “시트에 기대앉으면 밖에서 탑승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문을 열 때도 바로 탑승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지극히 개인적이고 안락한 라운지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간결한 설계, 고급스러운 소재, 스타일리시한 디자인의 컨트롤 장치가 어우러진 앞좌석. 나파 가죽으로 선택 가능한 팔걸이, 가죽에 새긴 마이바흐 엠블럼, 대시보드의 IWC 아날로그 시계 등으로 감각적인 우아함이 느껴진다.
실제 타보면 어떨지 궁금한 마음에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의 뒷좌석에 먼저 올랐다. 다른 자동차 시승과 달리 운전 대를 잡을 때의 느낌보다 뒷좌석에 대한 기대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감싼 시트에 앉자 푹 파묻히는 듯한 감각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내부 곳곳에서 최상급 퀄리티로 마감한 디테일이 눈에 띈다. 익스클루시브 트림 패키지를 기본으로 적용해 치장한 덕분이다.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을 시트 등받이 라이닝과 도어, 노즐 커버 등에 넣어 한층 감각적인 느낌을 준다. 장인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박음질한 도어트림도 기본 사양. 최고급 사양인 우드/크롬 트림과 가죽으로 감싼 도어 패널, 크롬을 두른 트위터 그릴, 광섬유 케이블을 적용해 환상적 무드를 더하는 앰비언트 라이트 등도 특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앞좌석 뒤에 부착한 8인치 모니터를 켜고 메르세데스-마이바흐에 관한 동영상을 감상하다 음악을 틀었다. 옆자리에 앉은 탑승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용 헤드폰을 머리 위에 얹었다. 부메스터(BurmesterⓇ)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이엔드 3D 서라운드 사운드가 마치 가슴을 공중에 붕 띄우는 듯한 환상적인 음색을 선사한다. 모든 메르세데스-마이바흐에 기본으로 적용하는 이그제큐티브 시트의 등받이를 뒤로 조금 젖혔다. 일반 시트와 달리 등받이 각도와 요추 받침, 다리 부분을 각각 따로 조절할 수 있다. 전동 좌석 시트로 이루어진 등받이는 19도에서 최대 43.5도까지 기울어진다. 침대처럼 더 낮게 눕히지 않는 이유는 사고가 날 경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종아리 부분을 받쳐주는 기능이 있어 다리를 편안하게 올릴 수 있다. 다리를 뻗으려고 하니 운전하던 미국인 쇼퍼가 앞좌석의 동승석 시트를 대시보드 쪽으로 최대한 밀어준다. ‘쇼퍼 패키지’를 기본으로 적용해 ‘쇼퍼 포지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레그룸이 77mm나 늘어났다. 뒷좌석을 더 눕히려면 앞좌석 동승석 시트와 헤드레스트를 완전히 접으면 된다. 쇼퍼 패키지에 포함된 발목 받침대까지 사용해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을 수 있다. 특히 헤드레스트 부분에 달린 쿠션은 집에 가져가고 싶을 정도로 부드럽고 폭신한 감촉이 일품이다. 앞좌석과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도 쇼퍼와의 대화가 단절될 걱정은 없다. 앞좌석 마이크와 뒷좌석 스피커를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음성 증폭 기능 덕분이다.
시트 길이와 각도를 적당히 조절해 몸을 릴랙스시키고 쿠션에 머리를 댔다. 항공기 퍼스트 클래스를 능가하는 좌석에, 좌우양쪽 개별적으로 조절하는 온도와 공기 순환 모드로 쾌적한 실내, 게다가 전용 향수를 딱 기분 좋을 만큼 분사하고, 센터 콘솔에 있는 보온·보랭 기능을 갖춘 컵홀더와 실버 샴페인 플루트(선택 사양이다)까지…. 갑자기 머릿속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사무실에서 처리하지 못한 일, 다음 달에 예정된 특집 칼럼 같은 것이 바람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친구와 만나기로 한 며칠 후의 약속도, 미처 추스르지 못하고 온 여러 감정까지 희미하게 뒤엉켰다. 그렇게 몇 분쯤 흘렀을까. 1월임에도 화창하고 따스한 샌타 바버라의 햇살이 사이드 윈도를 타고 이마에 살짝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며 꿀처럼 달콤한 기분에 취해 눈을 떴다. 문득 캘리포니아 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 앉아 새삼스럽게 드는 생각. 아, 황홀한 단잠이란 이런 거구나.
모던 럭셔리의 정수를 표현한 뒷좌석
실버 플루트에 샴페인 한 잔 따라 마시는 라운지 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다.
차는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100km/h를 넘나들며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잠든 채 거의 속도감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양옆과 후면 윈도가 꽤 큰데도 바람 소리는 물론 타이어 소음과 진동도 거의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제품 프레젠테이션에서 프로덕트 마케팅 담당자는 “특히 뒷좌석은 탑승자가 머리를 사이드 윈도, 삼각형 창문, 뒷유리 등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음향 상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탑승자의 여러 가지 자세를 세심하게 고려했다”라고 들려줬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큰 차체에 걸맞게 힘이 넘쳐났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은 최고 530마력의 출력을 갖추고 이미 1900rpm부터 830Nm, S500 버전은 455마력에 700Nm에 달하는 최대토크를 발휘하면서도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휘청거리는, 품위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직접 시승도 해보았다. 잔잔하게 달리다 속도를 높여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핸들을 꺾어보기도 했지만, 역시 이 차의 진가는 뒷좌석에 대한 세심한 배려심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서 운전대를 잡고 싶은 차는 아니다.
프로덕트 개발 담당자와 디자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아직 적극적으로 개척하지 않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세그먼트라며 한결같이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롤스로이스 고스트나 팬텀보다는 가격이 낮아(올해하반기에 출시 예정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풀만이 롤스로이스보다 고가의 최상위 버전으로 나올 예정) 비교하기 힘들고, 벤틀리의 세단 모델 정도가 경쟁 상대가 될 수 있겠다. 메르세데스-벤츠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 BMW와 아우디에는 아직 이런 급의 세그먼트가 없다.
무엇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클래스의 최대 중요 포인트는 가격이다. 4월 국내 출시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과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00은 기본 가격이 현행 메르세데스-벤츠 S 클래스보다 좀 더 높은 2억 원대 중반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S 클래스급 세그먼트를 구입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혹은 쇼퍼드리븐 카가 어울리는 라이프스타일을 향유하는 사람에겐 새롭게 출현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성능과 기술력, 이전 마이바흐에 비해 훨씬 분명해진 개성까지 거의 풀옵션으로 채운, ‘잘 차려입은’ 최고급 세단을 이 가격에 만날 수 있다는 건 기대하지 않은 고백을 들을 때만큼 ‘황홀한(!)’ 일임이 분명하다.
에디터 이정주(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