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R8이란?
가질 수 없어 애타게 바라만 보던 아우디 R8. 지난달 화보 촬영으로 만난 드림카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감상.

20대엔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한강 변을 달렸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쾌속 질주하다 보면 꽉 막힌 속이 뚫리곤 했다. 30대에 들어선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차를 몰고 강변북로를 내달린다. 힐링 포인트는 두무개다리다. 한남동에서 옥수동을 연결하는 이 다리를 지날 때마다 내 차가 아우디 R8면 좋겠다는 허황된 상상을 해본다. 미래에서 온 것처럼 구조적 디자인의 R8를 타고 달리면 아치형 다리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다. 자동차 시승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어떤 차를 갖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면 단연 아우디 R8라고 말해왔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자태와 엔진음에도 안전하면서 일상 주행에 무리가 없는 스포츠카! 사실 마음속 영순위였지만 지금껏 시승 기회가 닿지 않아 R8에 대한 환상과 기대는 극에 달해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초, 기다리고 기다리던 더 뉴 아우디 R8 V10 플러스 쿠페가 출시되었다. 새로운 R8가 나오면 제일 먼저 시승하겠노라고 브랜드 홍보 담당자에게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차 키를 받은 건 3개월이 지난 후였다. 그녀가 차를 늦게 빼준 것은 절대 아니고 기획에 맞는 화보 촬영이 3월호에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의 시승과 촬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 덕분에 단물이 다 빠진 듯했지만 R8라면 언제라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슈퍼카 운전이 처음이 아닌데도 막상 운전대를 잡으니 손에 땀이 났다. 찬찬히 둘러보니 내부만 해도 버킷 시트와 다기능 퍼포먼스 스티어링 휠, 날렵함이 돋보이는 기어 레버와 알칸타라 천장 등 트랙 위에 어울리는 요소가 즐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5.2리터 V10 엔진을 품어 최대출력 610마력의 괴물 같은 힘을 분출하며 제로백 3.2초를 주파하는 차가 아니던가. 그 포스에 기가 눌려 안전 운전을 하겠다는 나의 다짐에 한 자동차 매거진 선배는 말했다. “뭔 소리야, 달리라고 만든 차잖아. 여지를 두지 말고 밟아. 그래도 안전한 차야.” 그의 조언에 따라 촬영장인 파주까지 가는 동안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힘껏 속도를 높였다. 계기반의 높은 수치만큼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시트는 몸을 단단히 조여 안정성을 확보하고,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낮은 차체는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전진했기 때문이다. 아마 제한속도 구간이라고 시끄럽게 경고를 보내는 내비게이션만 아니었다면 끝없이 속도를 올렸을지도 모른다. 짜릿한 주행 성능도 대단하지만, 사실 R8여야 하는 이유 중 8할은 바로 디자인이다. 넓고 낮은 차체, 허니콤 구조의 라디에이터 그릴, 새로운 디자인의 헤드라이트와 수직 그릴 플랩 등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인데, 우아하게 흐르는 곡선의 루프 디자인 덕분에 과도하게 사치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R8를 직접 운전해보고 깨달은 아쉬운 점 하나! 막상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그 예쁜 외모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태생적으로 예쁜 걸 알고 있는 여자처럼 우쭐한 기분이 든다. 이 차의 성능을 100% 끌어내겠다며 폭주하듯 스피드를 올리지 않아도, 굽이굽이 산길을 홱홱 돌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빛나는 차로 인해 행복한 하루였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디자인 송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