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디의 새 둥지
이탈리아 패션 하우스 펜디가 최근 본사를 이전했다. 20세기 초반 이탈리아 문화의 중요한 한 축인 로마의 그 건물로 말이다.
펜디 본사가 새롭게 들어선 이탈리아 문명관
펜디가 최근 로마의 역사적 건축물 중 하나인 이탈리아 문명관(Palazzo della Civilta‵ Italiana)으로 본사를 옮겼다. 이 건물은 1930~1950년대에 로마 시내 남쪽에 조성한 신도시 ‘에우르(E.U.R)’에 자리 잡았다. 에우르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일산이나 분당 같은 곳이다. 로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과거 유적지에서 벗어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어쨌든 그 나름 짧지 않은 역사(1937년 착공해 1943년 완공했다)를 이어온 이 건물은 콜로세움과 창의 형태가 비슷해 그간 ‘사각의 콜로세움(Colosseo Quadrato)’으로 불려왔다. 건축 초기 단계부터 이탈리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건축가 조반니 구에리니(Giovanni Guerrini)와 에르네스토 브루노 라 파둘라(Ernesto Bruno la Padula), 마리오 로마노(Mario Romano)를 데려와 설계한 탓에 지금까지도 아주 훌륭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건축가 삼인방은 옛 로마 건축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이 건물에 투영했다. 로마 콜로세움의 유명한 아치 형상을 가져와 과거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한 것은 물론, 새로 조성한 신도시에서 화려한 시작을 기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4면의 건물 입구 앞에 모두 28개의 동상을 세웠다. 수천 년간 이어온 이탈리아인의 유구한 철학과 상업, 고고학, 발명, 건축, 법률, 조각, 연극, 언론, 의학, 시 등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이들은 건물 꼭대기 외벽에도 진중한 문구 하나를 새겼다. “시인, 예술, 영웅, 성도, 사상가, 과학자, 항해사, 이민자가 가득한 나라(Un popolo di poeti di artisti di eroi / di santi di pensatori di scienziati / dinavigatori di transmigratori)”라는 문구는 어딘가 모르게 예술과 정의, 자유를 갈구하는 듯하다. 한데 이는 사실 펜디가 이 건물을 본사로 결정하게 된 이유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쉽게 말해 펜디는 이 건물을 본사로 사용함으로써 과거 이탈리아인이 이루고 누린 예술성을 좀 더 숭고하게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최근 펜디는 이탈리아 문명관으로 이전을 시작하면서 건물 1층 한 부분을 갤러리로 만들었다. 본사가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6층 건물 각층의 건축적 특성과 오브제도 모두 그대로 유지했고, 건물로 자연스레 스며드는 빛이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던 아트리움 역시 건축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기로 했다. 얼마 전 펜디의 CEO 피에트로 베카리(Pietro Beccari)는 본사 이전에 앞서 “이탈리아 문명관을 대중에게 돌려주게 되어 기쁘며, 또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을 돋보이게 해 모든 이가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펜디가 추구하는 가치”라고 밝혔다.
펜디는 앞으로 15년간 이탈리아 문명관을 본사로 사용한다. 이는 역사적 유산에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지원하고자 하는 펜디의 오래된 의지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또 이탈리아의 독창성과 장인정신을 다시 한 번 기념하기 위한 대대적 캠페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문명관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잠시 동안 노동자연맹(Federazione Nazionale dei Cavalieri del Lavoro)이 둥지를 틀었을 뿐, 그외엔 단 한 번도 특정 회사의 사무실로 사용된 적이 없다. 펜디는 이번 본사 이전 프로젝트를 통해 역사적 건축물을 거주나 사무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보여준 셈이다. 로마의 푸른 하늘과 완벽하게 어우러진 펜디의 새 공간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기대된다.
이탈리아 근대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천장
건물 완공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내부
Mini Interview with Karl Lagerfeld(Fendi CD)
당신에게 로마는 어떤 도시인가? 로마는 아름다운 도시다. 아마 파리 다음으로 내가 가장 잘 아는 도시가 로마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자주 방문한 도시이기도 하다. 또 로마는 오랫동안 고유의 색깔을 유지해온 도시다. 사실 유‘ 지한다는 것’에 대해 별로 동조하지 않지만, 분명 이곳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도시다. 로마엔 대충 헤아려봐도 420번 정도는 와본 것 같다.
펜디의 새 공간이 위치한 에우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적으로 볼 때 에우르와 이탈리아 문명관이 생겨난 1930~1940년대는 사실 그리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난 그 시대의 이탈리아 건축물을 정말 좋아한다. 조 폰티(Gio Ponti) 같은 건축가도 그 시대 사람이다. 나는 20세기 초반 패션과 건축 분야에서 표현한 아방가르드 문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좋은 예가 지금 펜디 본사가 들어서 있는 이탈리아 문명관이다.
패션 디자이너 겸 사진가로서 펜디의 새 본사 건물을 어떻게 보는가? 이곳을 처음 봤을 때, 난 자연스레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가 1940~1950년대에 완성한 작품을 떠올렸다. 그의 작품은 내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
키리코의 작품 외에 이탈리아 문명관을 보고서도 영감을 받았나? 펜디의 2015년 S/S 컬렉션은 이탈리아 문명관을 비롯한 다양한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펜디는 이번에 본사 이전을 계기로 그간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직원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충분히 반길 일 같다. 물론이다. 덕분에 직원들도 한결 편해졌다. 게다가 이탈리아 문명관은 규모도 매우 크고 건축적으로 무척 아름답다. 직원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펜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