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tion of Value
가격 대비 품질 좋은 와인을 만났을 때의 만족감은 비싸고 맛있는 와인이 주는 것 이상이다. 바로 이것이 밸류(value) 와인이 주는 기쁨이다.

와인의 가치는 정확히 무엇일까? 아름다움(美)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 가치의 기준이 되지는 않을 거다. 오히려 우리는 제값을 다하는 최고 품질의 와인에 더 가치를 부여한다. 가치는 매우 주관적이며, 파악하기 힘든 개념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구매를 결정짓는 요소가 ‘가격’이므로, 가격이 가치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가령 와인이 너무 싸면 ‘싼 게 비지떡은 아닐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반대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을 넘어서는 고가 와인을 만나면 거품이 끼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것이 좋은 와인이고 또 그렇지 않은지 그 차이를 알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 와인이 저 와인보다 ‘왜 좋은지’ 말로 표현하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다. 평생이 걸려도 해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와인 강의를 해온 필자는 당신도 얼마든지 더 좋은 와인과 덜 좋은 와인을 쉽게 구분해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무슨 대단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와인의 맛과 함께 가격을 따져보면 된다. 와인 맛이 우리가 지불하는 값의 2배에 달할 때 그것이 ‘가치 있는 와인’, 쉽게 말하면 좋은 와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가치 있는 와인을 고르는 일은 꽤 쉽다. 가격 상승을 부추기게 마련인 칭찬과 관심을 아직 받지 못한 지역, 혹은 포도 품종을 선택하면 된다. 미개척 와인, 사람들이 덜 다닌 길에 속한 이런 와인이야말로 지금 가장 가치 있는 와인이다.
포르투갈 와인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는 니에포르트 와이너리에서 바라본 도루 골짜기의 풍광
왼쪽부터_ 카테나 말베크, 신동와인. 오 포우르니에르의 최상급 말베크 와인 알파 크룩스, 루벵코리아. 포르투갈 도루 지역 와인인 킨타 두 크라스투 레세르바 올드 바인과 수페리오르는 모두 나라셀라에서 수입, 판매한다.
아르헨티나 최고의 가치를 대변하는 와인이나 생산 지역을 단 하나만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말베크 와인이라면 가장 강력한 도전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일관된 좋은 품질, 풍부하고 개성 강한 과일 향, 신선하고 현대적인 와인 양조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곳의 와인은 저장고에 묵히기보다 지금 바로 마시기에 알맞다. 아내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석 달을 보내는 동안 필자는 아르헨티나 와인의 가능성과 가치(특히 말베크 와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우선 아르헨티나는 말베크 품종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산지다. 이 적포도의 고향은 프랑스(보르도와 루아르 계곡이다)지만 아르헨티나 고지대인 멘도사와 살타 지역에서 원산지에 버금가는 깊이와 등급을 지닌 와인을 뽑아내고 있다. 현재 아르헨티나에선 말베크 품종을 3만3000헥타르 이상에서 재배하고 있다. 심은 지 한 세기를 넘긴 나무도 많다. 더욱이 2002년 이후 말베크 재배지는 2배로 늘어났다. 1990년부터 따진다면 3배 이상이다. 이는 곧 팔려나갈 말베크 와인이 많다는 의미. 당연히 골라잡을 생산자도 많다. 아차발 페레르(Achaval Ferrer), 카테나(Catena), 오 포우르니에르(O. Fournier), 멘델(Mendel), 콜로메(Colome)가 최상의 말베크 와인을 만든다. 테라사스(Terrazas), 니에토 세네티네르(Nieto Senetiner), 알라모스(Alamos), 돈 다비드(Don David)의 와인도 가격 대비 훌륭하다. 정말이지 틀린 선택을 하기 어렵다. 붉은 고기, 특히 바비큐를 먹을 때 아르헨티나 말베크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으니 참고하도록.
포르투갈 포르투갈에서도 기막힌, 그러나 널리 알려지지 않은 좋은 와인을 두루 생산한다. 과거 포르투갈 와인은 ‘포트’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달콤하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이 디저트용 레드 와인은 거의 모든 이에게 포르투갈 와인을 접하는 유일한 창구였다. 하지만 이런 양상이 급변하는 추세다. 오늘날 유럽의 어느 나라도 포르투갈보다 독창성 있는 와인, 양질의 다양한 와인을 (심지어 낮은 가격으로) 선보이지 못한다. 포르투갈 와인의 매력에 푹 빠진 필자는 일전에 아르헨티나에 머무른 것처럼 현재 포르투갈에서 석 달째 지내고 있다.
포르투갈은 수백 종에 달하는 적포도와 청포도 품종의 원산지다. 토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같은 적포도 품종은 이웃 국가 스페인을 비롯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포르투갈만의 오리지낼러티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런 숨은 보석을 종종 한 포도밭에서 뒤섞인 채 재배해온 것이 함정이다. 1990년대까지 포르투갈의 와인 양조 기술은 충격적일 정도로 형편없는 곳이 흔했다. 포르투갈산 테이블 와인은 김빠진 듯 흐리멍텅했으며 지나친 흙냄새와 산화한 맛이 나는 것이 많았다. 양조장 설비는 구식이었고, 대부분의 생산자가 적절한 과학적 교육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서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지라 자본 투자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어떤 야망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오늘날 포르투갈 와인은 제법 훌륭하다. 보물과도 같은 토착 품종을 재발견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가격이 놀라울 정도로 저렴해 진정한 ‘밸류 와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생산지인 도루(Douro)의 변화도 놀랍기 그지없다. 도루는 포트와인의 집산지로, 약 3만8000헥타르 규모의 포도원이 자리한다. 15년 전에만 해도 도루 지역의 포도는 거의 전량 포트와인 생산에 사용했다. 그러나 현재 도루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의 50%가 (주정 강화하지 않은) 테이블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포트와인의 판매율이 꾸준히 하락해 포도로 다른 와인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속내지만, 어찌 됐든 도루산 테이블 와인은 해마다 지속적으로 품질이 향상되고 있으며 잠재력도 풍부하다. 그렇다면 어떤 생산자를 골라야 할까? 도저히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경이로운 맛을 선사하는 카사 산투스 리마(Casa Santos Lima) 와인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도루산 테이블 와인 중 킨타 두 크라스투(Quinta do Crasto), 와인 & 솔(Wine & Soul), 니에포르트(Niepoort), 도스 발르 두 봄핌(Dow’s Vale do Bomfim), 팔레스트라(Palestra), 알타누(Altano), 렐루(Lello) 같은 생산자도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포르투갈 전역에서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고루 생산해 생산자 목록만으로 책 한 권을 채울 정도다. 뛰어난 생산자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다 외우기도 힘들 터. 다만 포르투갈 와인을 만나게 되면 무조건 2010년과 2011년 빈티지를 집어 들어라. 근래 들어 가장 훌륭한 빈티지고, 포르투갈 와인의 우수성, 나아가 세계적으로 가치 있는 와인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예시다.
호주 클레어밸리 워터베일 구역에 위치한 마운트 호록스 와이너리의 포도밭.
와인메이커 스테파니 툴과 그녀의 신작인 2013년산 리슬링 와인.
호주 클레어밸리 클레어밸리에는 석 달간 거주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호주, 정확히 멜버른에서 석 달간 산 적이 있다. 필자는 1983년부터 호주에 드나들었고 최신 빈티지를 시음하기 위해 2년마다 호주를 찾고 있다. 호주에서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곳이 클레어밸리다. 클레어밸리는 오랫동안 옆 동네 바로사밸리의 규모와 명성에 가려져 있었다. 바로사밸리는 호주 최대 와인 기업의 본거지로 포도 재배지가 클레어밸리의 2.5배에 달한다. 그러나 비록 그 크기가 미약할지라도 클레어밸리의 존재감은 남십자성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리슬링,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즈가 아주 훌륭하게 자란다. 특히 클레어밸리의 리슬링은 단연 최고다. 뒤에 남는 단맛 없이 완벽하게 드라이한 맛을 내며, 병입 후 10년간 숙성하면 맛이 극대화된다. 호주, 나아가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리슬링이다. 지난번 클레어밸리에 갔을 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이 지역 최고의 리슬링 생산자 2명을 만났다. 그로셋 와인(Grosset Wines)의 대표 겸 와인메이커 제프리 그로셋과 마운트 호록스 와인(Mount Horrocks Wines)의 대표 겸 와인메이커 스테파니 툴이다. 그들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살았고, 하나의 와인 설비를 공유해 각자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두 사람의 드라이한 리슬링이 질적으로는 대등하지만, 명백하게 구별된다는 점이 더없이 흥미로웠다. 왜일까? 제프리 그로셋은 “제 리슬링은 클레어밸리의 폴리시힐 구역에서 자라고, 스테파니의 리슬링은 워터베일 구역에서 자라니까요”라고 말한다. “테루아가 낳은 고전적 차이의 본보기죠.” 확실히 그로셋의 리슬링은 빼어난 미감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반면, 마운트 호록스의 리슬링은 라임 향이 나며 좀 더 풍부하고 꽉 찬 느낌이다. 클레어밸리의 레드 와인도 최고급이다. 호주의 국민 품종인 시라즈는 물론 카베르네 소비뇽도 탁월하다. 바로사밸리에서 난 품종에 비해 군살 없이 탄탄하며 덜 묵직해 한결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클레이밸리의 와인 가격은 최저가는 아니지만 이례적 품질 덕분에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 그로셋 와인과 마운트 호록스 와인, 여기에 팀 애덤스(Tim Adams), 스킬로갈리(Skillogalee), 라일리스(Reilly’s), 파이크스(Pikes), 짐 배리(Jim Barry), 아델리나(Adelina), 그리고 거의 손에 넣기 불가능한 AP 버크스 웬두리(AP Birks Wendouree)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즐겨보길 권한다.
왼쪽부터_ 완숙하고 파워풀한 짐 배리의 아르마시라즈, 나라셀라. 팀 애덤스의 리슬링. 스페인 화이트 와인 품종 고데요로 만든 GBG와 디베르나, 베르데호 품종의 산뜻함이 가득한 파소 아 파소는 큐리어스와인에서 수입한다.
스페인 화이트 와인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 중 정말 가치 있는 와인을 찾을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예스’다. 그 이유는? 스페인의 와인 양조업은 지난 20년간 극적인 발전을 이뤘고, 화이트 와인의 경우 다른 어떤 곳보다 크게 진화했다. 과거 스페인 화이트 와인은 산화된 맛과 과도한 오크 향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오늘날 싱그럽고 깔끔한 맛을 선사하며 오크 향도 완벽히 털어냈다. 알바리뇨(Albarino), 고데요(Godello), 베르데호(Verdejo) 같은 독특하고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만들어내는 토착 청포도 품종도 다양하다. 식전주로 마시거나 간단한 생선, 조개류 요리에 곁들일 향이 좋으며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찾는가?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이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밸류 와인을 고를 때도 이상적인 선택이다.
1 보졸레 지방에 위치한 소박한 느낌의 루이 자도 샤토 외관 2 왼쪽부터_ 장 포야르의 모르공 와인, 큐리어스와인. 루이 자도 물랭아방 ‘샤토 데 자크’, 까브드뱅. 마르셀 라피에르의 모르공 와인.
크뤼 보졸레 요즘 미국과 프랑스의 와인업자가 가장 주목하는 와인이다.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서 사들이고 마시는 와인이다. ‘크뤼’는 보졸레 지방에서 가장 뛰어난 와인을 만드는 모르공(Morgon), 물랭아방(Moulin-a-Vent), 플뢰리(Fleurie) 등 10개 지역에서 난 와인에만 붙이는 수식어. 물론 포도 품종은 예외 없이 가메 100%다.
보졸레 지방은 보졸레 와인의 수요가 감소한 탓에 심각한 경제적·심리적 불황을 겪었다. 세계는 보졸레의 열악한 품질, 특히 (몇 주 지난) 보졸레 누보의 천박한 매력에 싫증을 냈다. 그러나 이제 이 10개 크뤼에 속한 소규모 재배업자들이 만든 진정한 깊이와 개성, 심오함까지 갖춘 최상급 보졸레 레드 와인으로 재기를 꿈꾼다. 정녕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가격은 아직 합리적인 수준이지만, 앞으로 10년 뒤 최고 생산자들이 현재 받는 값의 2배를 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오늘날 미국에서 크뤼 보졸레는 레스토랑 소믈리에가 가장 선호하는 와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훌륭한 부르고뉴 레드 와인(보졸레도 행정구역상 부르고뉴 지방에 속한다)이 상시 저가에 팔린다는 건 비밀이다. 장 포야르(Jean Foillard), 조제프 샤모나르(Joseph Chamonard), 마르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 장-폴 브륀(Jean-Paul Brun), 루이 자도(Louis Jadot), 장-폴 테베네(Jean-Paul Thevenet), 기 브레통(Guy Breton), 미셸 테트(Michel Tete), 장-루이 뒤트레브(Jean-Louis Dutraive), 피에르-마리 셰르메트(Pierre-Marie Chermette), 다니엘 불랑(Daniel Bouland), 샤토 티뱅(Chateau Thivin), 이본 메트라(Yvon Metras) 등이 빼어나다. 다만 크뤼 보졸레는 10년 혹은 그 이상 세월이 지나면 더 근사하게 숙성할 수 있으므로 저장과 보관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할 것.

Matt Kramer 38년 경력의 세계적으로 저명한 미국의 와인 평론가다. 마이크 스타인버거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통찰력 있고 유쾌한 와인 평론가’로, 휴 존슨이 ‘게릴라 같은 지식인(intellectual guerrilla)’으로 그를 묘사했을 만큼 그의 글은 쉽고 흥미롭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힘이 있다. 1985년부터 매달 <와인 스펙테이터>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글 맷 크레이머(Matt Kr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