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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재료와 대단한 작품

ARTNOW

미술을 완성하는 원재료의 확장 그리고 콜라주, 어셈블리지, 레디메이드를 통한 사물의 적극적인 활용. 미술 재료는 이렇듯 현대미술의 역사와 함께해왔다. 미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재료의 사회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 설치미술가 차이 궈창이 작업실에서 화약을 이용해 대형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 모습

<회화론>으로 잘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이론가 알베르티(Alberti)는 “금을 묘사할 때 금 대신 물감을 사용하라”라고 조언했다. 이전에 금빛을 표현하기 위해 금을 직접 사용한 장인들의 관습과는 차별화되는 주문이었다.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전이 실재와 환영, 사물과 재현의 구분이 없던 시기였다면 그 이후는 환영주의에 의한 재현, 즉 예술적 착시 효과를 통해 실재를 재현한 이미지를 만드는 시기로 넘어가면서 실재와 환영, 사물과 재현은 구분되었다. 우리가 흔히 회화의 재료로 떠올리는 캔버스나 물감, 조각의 재료로 떠올리는 플라스터(plaster) 틀, 브론즈(bornze) 캐스팅은 환영과 재현을 위한 재료로 기능하는 것이다. 현대미술에서 ‘재료’의 의미는 사물과 재현, 실재와 환영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기존 미술 재료의 의미와 일반적 미술 재료가 아닌 새로운 미술 재료, 나아가 비미술적·비물질적 재료까지 포섭하는 현대미술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시각적 미를 지닌 물질 덩어리’로 기능하는 미술의 태생적 물질성을, 현대미술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실험하고 변화시켜왔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점점 비미술을 포함하게 되었고, 비미술을 미술로 전환하면서 종국에는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는 데 일조했다. 그 과정을 통해 ‘시각적 미를 전달하는 물질 덩어리’로서 미술은 시각적인 것도, 물질도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거듭났다. 익히 알고 있는 입체파,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주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 다양한 사조의 변천을 포함한 현대미술 역사는 기존 재료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미술의 재현과 환영의 역사에 직접적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작품에 미술 재료가 아닌 실제 사물을 사용한 입체파 시기부터일 것이다.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화가는 파피콜에레, 콜라주 등을 통해 신문이나 잡지를 비롯한 인쇄물로 직접 2차원의 화면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콜라주를 다다이스트도 활용하면서 대중사회 속 다양한 인쇄물을 미술 작품에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인쇄물은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실제 현실의 조립 과정이었다. 다다이스트 쿠르트 슈비터스는 사용 가능한 모든 재료를 이용한 그림을 메르츠(Merz)라고 불렀다. 유모차 바퀴, 철망, 노끈, 솜 등 일상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그는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가 없는 총체적 미술을 지향했다.

요제프 보이스가 펠트 천과 기름 덩어리를 사용해 제작한 작품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비미술적 재료를 끌어들이면서 미술을 재정의한 현대미술에서, 레디메이드 오브제의 출현은 결정적 사건 중 하나다. 현대미술의 기원을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세상에 알린 마르셀 뒤샹에게서 찾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뒤샹은 1917년 남성용 소변기에 ‘리처드 머트(R. Mutt)’라는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에 출품하며 미술을 비미술의 영역으로 내동댕이치는 역사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다. ‘샘’을 전시한 순간 뒤샹은 대량생산된 공산품을 단순한 서명만으로 예술품으로 격상시킨 예술가가 되었다. 그는 예술이 노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뒤흔들었으며 ‘샘’의 원본과제 복품을 제작하게 허락함으로써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에서 작가의 지위가 유일무이한 기준이 되도록 했다. 이렇듯 레디메이드는 현대미술의 원본성과 그 원본성을 합리화하는 작가를 중심으로 미술의 제작과 유통 과정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오브제다.
사물을 작품에 도입한 중요한 예로 레디메이드뿐 아니라 어셈블리지를 들 수 있다. 콜라주의 3차원 버전으로도 소개되는 어셈블리지는 다양한 사물을 마치 콜라주처럼 작품에 부착하는 작업 방식을 말한다. 라우션버그는 베개와 이불을 통째로 벽에 붙이거나 폐타이어를 끼운 박제 동물을 제시한 어셈블리지를 ‘콤바인 페인팅’이라고 불렀다. 현실에서 접하는 아주 범평한 사물이 작품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제시하는 어셈블리지는 예술에 현실을 끌어들이는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아르망의 정크아트나 장 탱글리의 폐품을 활용한 키네틱 아트가 그 예다. 사물의 속성이 미술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고 여기에 예술가의 선택과 가공을 더해 현실을 연결하는 예술,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에 대한 직접적 제스처라고 할 수 있다.
레디메이드, 어셈블리지 오브제를 포함해 비미술적 재료들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현대미술계로 편입되면서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비미술적 재료와 비물질로 이루어진 작품이 등장했고, 이에 힘입어 현대미술은 개념미술과 대지미술, 뉴미어디 아트 등으로 그 권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레디메이드를 포함한 미술 재료의 변천에 대한 논의는 2016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돌, 나무, 철, 동 등 기존의 전통적 소재를 뒤로하고 새로운 조각의 기류를 만들어낸 젊은 조각가 세대는 재료뿐 아니라 조각의 개념에 대해서도 이전 세대와는 생각을 달리한다. 조각가 권오상이 좀 더 다루기 쉽고 옮기기 쉬운 조각을 상상하면서 단단한 스티로폼을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스토리는 잘 알려져 있다. 조각은 이처럼 새로운 재료와 함께 비미술적 재료인 사운드, 비디오, 빛 등 다양한 미디어를 받아들이며 현대미술의 확장과 탈물질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매체가 되었다.
익숙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측면에서 최근 젊은 작가들이 대량생산된 값싼 소재를 이용해 수공예적 조각과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경향이다. 이들은 자라(Zara) 같은 다국적 SPA 브랜드의 의류나 이케아(Ikea)의 리빙 제품과 가구, 조화, 다이소(Daiso)의 키치한 제품, 촌스러운 PVC 현수막과 리놀륨 장판 등 대량생산된 공산품에 열광한다. 이런 재료는 규격에 맞게 제작되어 분리하거나 설치하기 쉽고, 가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다. 이에 더해 대량생산 제품 특유의 색 재과질, 무엇보다 싼 가격이 매력이다.
젊은 작가들이 주변의 대량생산품을 이용해 작업하는 것은 이들이 즐기는 SNS, 게임, 뉴스 앱, 드라마 등의 대문중화와 무관하지 않다. 대량생산된 물품을 사용하고 규격화된 계층별 일상을 누리는 이들이 획일화된 미디어를 이용해 자신을 드러내고 반사하는 세상에서 미술은 더 이상 그 자체의 논리로 탐구하는 대단한 예술가의 영역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의 작품을 천재성에 의해 제작된 유일무이한 예술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 이미지가 인스타그램의 수많은 사진 중 하나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트위터 100자 멘션의 일부이며, ‘선택과 집중, 변형과 맥락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는 존재하지만 ‘대단한 재료에서 대단한 작품을 탄생시키는 유일무이한 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금까지 현대미술사에서 재료의 변천 과정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제시했다. 현대미술이 환영, 재현, 제시, 변형 등 다양한 과정을 거치면서 그 재료는 미술 재료라는 한계를 넘어 재료 자체의 특성이 미술 작품에 혹은 미술의 전략과 작가, 작품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건과 대단한 미술 작품이 넘쳐나는 시대다. 이를 이용하고 연결 짓는 우리는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류정화(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