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과학의 접점, 김윤철
끊임없이 과학적 물질을 만지고 그 성질을 연구하며 쌓아가는 기가 막힌 예술의 레이어. 과학자의 시선과 보통의 시선을 잇는 예술 감각. 과학과 예술 두 분야의 선두에 걸터앉아 있는 김윤철이 만들어내는 세계다.

자신의 스튜디오 책상에 앉은 김윤철. 그 뒤로 그의 끊임없는 연구와 넘쳐나는 아이디어가 담긴 드로잉의 흔적이 보인다.
김윤철
Kim Yunchul
전자음악 작곡가이자 시각예술가 김윤철. ‘스튜디오 로쿠스 솔루스’설립자이기도 한 그는 프로젝트 그룹 ‘Fluid Skies’의 멤버이자 빈 응용미술대학 예술 연구 프로젝트 ‘Liquid Things’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현재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매터리얼리티’ 책임자로 있다.
김윤철의 최신작 ‘Cascade’(2016)의 정면 뷰. ‘콜라이드 국제상’ 수상 후 세른에서 연구하며 이 작업을 더 발전시킬 예정이다.
Cascade, Microfluid dynamics installation, PDMS, motor, micro tube, micro- controller, acrylic,
non-pulsating pump, solenoid valve, 500(h)×200(w)×50(d) cm, 2016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세 입자와 자기장, 납, 수은. 예술 재료라고는 믿기 힘든 물질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김윤철은 시각예술가이자 전자음악가지만, 과학자라 해도 손색없다. 최근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세른)가 수여하는 콜라이드 국제상(Collide International Award) 수상자로 지목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철학이나 이론적 담론에도 관심을 두지만, 무엇보다 물질을 직접 만지는 체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상상하며 드로잉 북이 닳도록 연구한다. 최근 유체역학의 예술적 잠재성과 메타물질(포토닉 크리스털), 전자유체역학에 매료돼 더욱 다양한 재료를 작품에 접목하고 실험하는 김윤철 작가를 만났다.
‘콜라이드 국제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수상 후 물리학자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되나요?
수상자는 3개월간 세른에서 과학자, 입자물리학자와 공동 작업 차원에서 생각을 나눌 수 있어요. 영광이죠. 뛰어난 과학자와 예술가가 같은 주제로 깊이 있는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그동안 과학적 방법을 고민해온 저만의 재료와 물질, 생각을 교환하고 싶어요. 과학자라고 해서 다 같은 정답을 갖고 있지는 않아요. 세계관, 우주, 입자에 대한 생각이 다 달라요. 과학적 진리뿐 아니라 인류학 차원의 교류도 하고 싶습니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롭게 탄생할 작업이 궁금하네요. 그곳에서 특별히 작업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신작 ‘캐스케이드(Cascade)’를 더 발전시키는 게 목표예요. 시각적 작업이지만 정신, 지식, 과학, 기술적 담론을 정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 후 한 달간 일정으로 리버풀 프랙티스 베이스 스튜디오 ‘팩트’에 가요. 미디어 아트와 다원예술이 활발한 곳인데, 강연과 실험을 하고 한국에 돌아와 제대로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다른 차원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접하고 작업에 집중하려고요.

관람객이 ‘Effulge’ 속 물질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Effulge, Acrylic, glass, aluminum, photonic crystal, neodymium magnet, motor, micro controller, electromagnetic field generator, air pump, muon detector, 410×160cm(variable dimensions, 상부), 2012~2014

1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완성한 ‘Triaxial Pillars’는 과학 물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심미적으로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선사한다. Triaxial Pillars, Glass cylinder, aluminum, photonic crystal, neodymium magnet, motor, micro controller, electromagnetic field generator, air pump, Daisy Chain : 150(h)×10(d)cm, Morpho : 150(h)×10(d)cm, Pulsar : 120(h)×10(d)cm, 2010~2011
2 뛰어난 조형성을 자랑하는 2014년 작품 ‘Flare’ Flare, Flare solution, micro controller, double jacket reactor, 130(h)×50(d)cm, 2014
과학자나 물리학자와의 교류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서로 어떤 영감을 주고받죠?
기본적으로 언어의 간극을 극복해야 해요. 과학 용어뿐 아니라 과학자들만의 언어가 있어요. 과학자는 기본적으로 이성적이고 실질적 지식을 중시해 예술 언어는 잘 이해하지 못하죠. 그런 언어의 조율 없이는 협업이 어려워요. 과학자의 언어 체계와, 세계관을 공부하지 않으면 질문도, 답도 없어요. 그런 간극을 좁힌다면 과학자도 예술가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물질을 만들면서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미학이잖아요. 제 물질은 미학과 문화의 테두리 안에 있어요. 아무리 분자나 과학 지식을 말해도 미를 추구하고 미적 가치를 중시하죠. 하지만 과학자는 사실 여부를 더 중요하게 여겨요 저는. 체험과 정신, 감각 세계에서 물질을 다루지만, 그들은 감각을 초월한 본질적이고 현상학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그것이 서로에게 영감을 줘요. 요즘 과학자는 대부분 시뮬레이션이나 기계에 대입해 실험하기 때문에 물질을 다루면서도 실제로 물질을 만질 일은 거의 없어요. 실제로 느낄 수 없는 물질을 탐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술가인 제가 물질을 계속 만지는 걸 보면 거기서 또 다른 영감을 얻죠.
물질을 만진다니, 흥미롭네요. 당신의 작품을 말할 때 유체역학과 메타 물질 등 질료에 대한 연구를 빼놓을 수 없는데, 물질이나 질료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너레이티브 같은 프로젝션 작업을 많이 했어요. 미디어 아트의 세계도 재미있지만, 어느 순간 무언가 만지고 싶은 욕망이 생겼죠. 외국에서 지내며 물질적 향수를 많이 느꼈어요. 어릴 때 보던 나무나 벌레 같은 게 거기엔 없잖아요. 오히려 문화적 차이보다 자연적인 다름을 느꼈어요. 땅이나 강, 산 등 자연이 주는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레 물질 쪽으로 관심이 갔어요. 만약에 화가였다면 저만의 물감을 만들어 그려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겠죠.
특별히 주목하는 질료는요?
작품에 맞는 새로운 성질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물질을 만드는 것보다는 물질의 성질에 관한 이야기죠. 구조색(structure color)이라는 게 있어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분자의 거리를 조정하면 색을 만들 수 있거든요. 열과 자력, 전기 등을 이용해 색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어요. 물질이나 재료의 개념은 어디서나 중요하기 때문에 향후 10년 안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 같아요. 요즘 메타 물질, 스마트 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예요. 저는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색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을 주목하고 있어요.

김윤철의 아이디어와 부단한 실험의 결과물이 탄생하는 스튜디오 전경. 마치 과학자의 실험실과 예술가의 작업실을 섞어놓은 듯하다.
그럼 작품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요?
주로 자연에서 얻어요. 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지만 그 또한 실은 모두 자연 물질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시 같은 문학이나 고전 회화도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쳐요. 없으면 안 될 정도로요. 제가 하는 작업은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과학도, 예술도 아닌 것일 수 있어요. 그것을 지탱해주는 건 다른 예술이 주는 힘인 것 같아요. 또 제가 원래 음악을 전공했고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음악과 시, 그림 등이 많은 힘을 줘요.
그런 다양한 영감 덕분인지, 구상 스케치도 상당히 자세하고 다채롭더군요. 스케치가 작품이 되기까지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상상의 파편을 토대로 브레인스토밍하듯 꾸준히 이미지를 그려요. 글도 쓰고 관찰도 하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면서 확률을 공부하고, 실체를 만들어요. 실험하는 거죠. 논문도 읽고,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스케치로 남기면서 다른 영감을 얻기도 해요. 스케치, 실험, 제작을 거쳐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몇 년씩 걸리죠. 하나에 집중하면서 다른 작업도 구상해요. 물질을 완성해도 기술적 디스플레이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신작을 하기가 어려워요. 물질을 만들고 물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보면 시간이 걸리죠. 또 과정 자체를 모두 아카이브하기 때문에 드로잉이 곧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전자음악을 전공했는데, 어떤 계기로 지금 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게 됐죠?
전자음악을 할 때 애니메이션, 영화음악, 스튜디오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각예술, 연극, 무용 등 다른 분야의 사람과 깊이 교류했어요. 다른 언어를 배우고 그 세계를 경험하다 보니 제 세계를 넓히고 싶었죠. 지금도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음악은 곧 시간의 이벤트잖아요.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이기 때문에 지금 추구하는 유체나 물질도 곧 음악과 같아요. 제가 물질에 대한 작업을 펼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법은 음악적이에요. 음악이 제 몸에 자연스레 녹아 있으니까요.
다양한 영감, 경험, 교류가 작업에 복합적으로 녹아들겠네요. 최근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 사례가 많잖아요. 두 분야가 만나 어떤 시너지를 내는 걸까요?
과학과 예술이 만난다고 해서 다 작품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서로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예술이 전적으로 과학의 이론이나 결과물로 비치는 건 경계해야 해요. 예술이 과학의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해야죠.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 자신의 우주론을 구축해야 해요. 일방적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융·복합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봐요. 오랫 동안 서로의 언어를 연습하고 세계관을 겹치려 노력해야죠. 융·복합은 중요한 개념이고 물론 여러 접근법이 있지만, 보통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융·복합이 꿈꾸는 건 다름을 극복하는 차원이잖아요. 과학과 예술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세계관을 분명히 인지해야 해요.
과학과 예술의 융·복합에 대한 생각을 더 듣고 싶어요.
물리학자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이 2개의 테이블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어요. 하나는 일상의 테이블, 하나는 원자구조를 생각하는 과학자의 테이블이죠. 그중 한쪽만 강요해서는 안 돼요.

1 하나의 질료가 추락할 때 다른 하나의 질료는 부상하는 ‘Vertigo’(2014년)’ Vertigo, Flare solution, motor, micro controller, double jacket reactor, 250(h)×60(w)cm, 2014
2 플루이드 키네틱 아트 작품 ‘Whiteout’(2014년) 설치 전경 Whiteout, Hydrogel, glass, polyvinyl acetal, variable dimensions, 2014
작품을 만들 때 관람객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요?
감상보다는 체험을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한 시공간에서 움직이는 물질을 보는 건 감상을 넘어선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제 물질을 체험하는 순간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예술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는 뭔가요?
과학자와 똑같이 분자와 나노 입자를 다루지만 제가 말하는 건 감각이에요.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요. 감각은 전적으로 제가 하는 실험이나 만지는 물질과의 교감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 나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빨리 끝내고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이끌어준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불안감이 없어요. 물론 누구나 불안을 느끼지만 저 자신을 흔들 정도의 걱정은 하지 않은 것 같아요. 힘든 상황을 만나도 걱정하면서 보내진 않아요. 고독이나 외로운 감정은 느낄 수 있지만, 제작비가 없더라도 가진 것으로 작업할 수 있는 것을 계획하지 다른 걸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오히려 제작비를 많이 쏟아부을 수 있을 때도 있고요. 앉아서 고민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만들고 무언가 하려고 하는 편이죠.
세른 이후의 계획을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이론 기초과학 연구기관 고등과학원(KIAS)의 초학제연구단 책임자로 있는데, 내년 여름에 그간의 활동을 전시장으로 끄집어내고 싶어요. 일반 관람객을 위해 심포지엄, 전시, 출판 등 큰 계획을 그리고 있어요. 준비한 지는 꽤 됐죠. 그리고 유럽에서 전시를 몇 차례 열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동시대 주요 예술가 중 한 명으로서 예술을 위해 달리는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자율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를 곁에 두는 것이 좋아요. 솔직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친구가 있다면, 절대 길을 잃을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지식이건 문화건 예술이건 동료 이상의 친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 사진 김제원(인물, 작업실) 사진 제공 송은아트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