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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아는 남자

LIFESTYLE

파워 블로거 ‘팻투바하’로 더욱 잘 알려진 김범수. 신세계푸드 식음컨텐츠팀 팀장을 맡으며 한국 외식 산업의 트렌드를 이끄는 그를 만났다. ‘맛을 아는 남자’가 들려주는 맛과 멋에 관한 이야기.

맛은 기본인 시대. ‘맛있다’는 단어로는 2% 부족하다. 무슨 맛을 어떤 방식으로 느끼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살아남는다. 행여 해외 유명 카페나 식당을 카피하면 쉽게 들통 나 퇴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그만큼 소비자의 눈이 높아졌다. 최근 유통 업계는 고객의 깐깐한 취향과 높은 안목을 맞추기 위해 F&B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있다. 운영하는 백화점의 식품관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거나 유명 맛집을 매장에 유치하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다. 관계자들은 한국 기업의 F&B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신세계는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이다. 신세계푸드의 식음컨텐츠팀 팀장 김범수는 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성장한 F&B의 큰 그림을 그린 인물로 꼽힌다. 백화점 푸드코트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한 신세계 본점 그래머시홀부터 친환경 지정 농장의 식자재를 고집하는 한식 뷔페 올반, 공장형으로 수제 맥주를 생산 판매하는 데블스도어(Devil’s Door)까지, 신세계가 자신 있게 내놓은 F&B 프로젝트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맛과 멋, 즐거움의 공간을 만들다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데블스도어에서 김범수를 만났다. 그가 육중한 ‘악마의 문’을 열고 등장했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 옅은 갈색빛 뿔테 안경, 정장부터 줄무늬 셔츠, 신발까지 모두 파란색으로 베리에이션을 준 차림이었다. 대기업 직원의 모습이라기엔 다소 튀는 느낌이었지만, 과하지 않은 멋이 있었다. 매장 직원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데블스도어가 작년 11월에 문을 열고 나서, 한 달 정도는 매일 이곳에 와서 일도 하고 사람들과 미팅도 했어요. 제가 여길 무척 좋아합니다(웃음).” 점심 영업 전부터 손님이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자 테이블은 금방 찼다.
발길이 끊긴 한식당을 공장형 수제 맥줏집으로 바꾸겠다는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샌프란시스코에 제가 참 좋아하는 사이트글라스(Sightglass)라는 카페가 있습니다. 천장이 탁 트여 쾌적하고, 바(bar) 형식이라 바리스타와 손님의 경계 없이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하죠. 이런 공간에 로스팅 기계 대신 맥주 기계를 넣으면 어떤 풍경이 만들어질까 궁금했어요. 지금 이곳을 보고 ‘아 여기다’ 싶었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누가 여기까지 차를 끌고 맥주를 마시러 오겠느냐며 코웃음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금은 매장을 방문하면 한두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한다. 큰 성공에 그도 고무된 듯 보였다. 2층에서 매장을 조망하며 ‘소원을 이뤘다’는 표현을 여러 번 썼을 정도. “데블스도어는 그냥 술집이 아니에요. 맥주를 위한 문화 공간이죠. 백화점 컨텐츠는 ‘식음’과 ‘비식음’으로 나뉠 정도로 F&B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 일대가 힙한 문화 블록으로 변하는 모습을 상상해요.” 테이스팅 잔에 담긴 에일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그가 말했다. 그 상상이 아주 먼 얘기는 아닐지 모른다. 신세계는 2012년 10월 1조25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해 센트럴시티 지분 60%를 확보한 이후 재개발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2014년에는 데블스도어 이외에 1만4800㎡ 규모로 전 세계 유명 음식 브랜드를 한데 모은 고급 식음료 전문관 파미에스테이션도 개관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김범수는 ‘팻투바하(Pat2Bach)’라는 닉네임의 파워 블로거로 세상에 더 많이 알려졌다. 그의 이름 석 자는 몰라도 ‘팻투바하’를 아는 사람은 많다. 이 닉네임은 ‘팻 매스니(Pat Metheny) to 바하(J.S. Bach)’의 줄임말로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두루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을 의미한다. 김범수의 블로그는 한번 클릭을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다. 주요 컨텐츠는 음식, 와인, 음악, 여행. 침샘을 자극하는 맛깔 난 사진부터 실제 그곳을 방문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알토란 같은 고급 정보로 가득하다. 관련 업계 기자 중에는 그의 블로그를 예의 주시하며 취재를 위한 최신 소스를 얻기도 한다고. 그러나 그의 블로그를 찾는 팬들은 그가 올린 사진과 감각적인 글귀를 접하면서 세상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얻는 것 같다. “이 세상이 팻투바하를 통과하면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아요.” 그의 블로그에 누군가 남긴 댓글이다.
블로그를 개설한 시기는 2004년. 한 통신 회사에서 업무를 위해 공부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그곳에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스탠더드한 것만 원하는 회사 생활의 스트레스 돌파구 같은 것이었죠. 영화 <쉘 위 댄스>의 남자 주인공처럼요.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즐거웠어요.” 블로그 인지도가 쌓이자 돈을 주고 사겠다는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연락도 받았다.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치고,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블로그를 운영했지만, 일은 안 하고 놀러만 다닌다는 오해도 받았다. 특히 신세계에서 ‘팻투바하를 영입했다’ 는 식의 소문이 돌면서 억측이 난무했다. ‘파워 블로거의 승리’라는 프레임으로 그를 곱잖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4년 정도 될 무렵부터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어느 대기업이 블로그 하나 잘한다고 저를 막 채용하겠어요(웃음).”

‘팻투바하’ 혹은 김범수를 통해 보는 세상
신세계 입사 이후에도 그는 블로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1만 시간의 법칙’처럼 딱 10년을 채워보자는 마음에서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사물을 보는 감각을 키웠던 것 같아요. 트렌드에 대한 감도 잃지 않을 수 있고요. 해외 출장에서 받은 새로운 자극을 기록하는 역할도 해요.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큽니다.” 지금도 주말이면 7~8시간을 투자해 일주일 동안 블로그에 게시할 내용을 준비하고, 잠들기 전 2시간 정도 정성을 쏟는다. 그의 말처럼 ‘팻투바하’라는 개인 블로그는 김범수 팀장의 공적 업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제겐 레스토랑에 가는 일이 유명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과 같아요. 해외 출장지에서 남들이 쉽게 보지 못하는 디테일한 특이점을 캐치하고, 오감으로 느낀 그곳 특유의 공기를 글과 사진으로 전하는 일이 즐거워요. F&B 비즈니스는 이렇게 즐기지 않으면 잘할 수가 없습니다.”
김범수는 2016년 경기도 하남에 문을 열 초대형 쇼핑몰 ‘유니온스퀘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곳은 우리에게 어떤 맛과 멋, 그리고 즐거움을 선사할까? “F&B를 문화와 결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식음도 문화잖아요. 한식 뷔페 올반의 컨셉은 ‘3대가 와서 즐길 수 있어야 한다’입니다. 우리의 감성이 담긴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오래 못 가요. 그것이 시장 논리가 됐습니다. 더욱이 많은 사람이 와서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결국, 신세계에서 하니까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파괴한다는 무책임한 비판을 넘어서는, 대기업이라서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딱 재밌을 때까지만 해보자!’ 결심했는데, 아직 할 게 정말 많아요.”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서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를 향한 강한 자신감이 동시에 내비쳤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