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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트, 사회가 만났을 때

ARTNOW

뉴욕과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인 뒤 새로운 협업으로 서울을 찾은 한국 디자이너, 그리고 패션 디자인과 생산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셜 패션’에 대한 이야기.

1 ‘소셜 패션’에 대한 기초 교육을 받는 디자이너들 2 성수 지역 의류 봉제 장인들의 멘토링

성수동에서 일어난 패션 협업
지난 11월 4일, 서울 성수동 유니베라 사옥 야외 무대에서 국내 최초로 ‘소셜 패션쇼’가 열렸다. ‘소셜 패션’이란 패션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 옷을 만드는 노동자의 근로 조건 개선, 디자이너와 생산자 간의 상호 존중 문화 형성, 친환경 원자재 사용 등 ‘지속 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만들자는 취지의 폭넓은 움직임이다.
서울시가 직접 나서서 준비한 소셜 패션쇼는 2020년 성수동에 3000평 규모로 조성할 패션 클러스터를 위한 ‘성수소셜패션프로젝트(Seongsu Social Fashion Project)’의 하나로 열린 행사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다양한 심사를 거쳐 패션쇼 무대에 오를 18팀의 신진 디자이너를 선정했고, 신인 디자이너들이 지역의 소공인과 협업하고, 디자인과 생산 등 산업 관련 관계자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 이전에 볼 수 없던 패션쇼를 함께 이뤄냈다.
패션쇼를 위한 사전 행사도 다양했다. 10월 한 달간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와 김호섭 국민대학교 명예교수, 진중권 동양대학교 교수, 김정후 도시 재생 전문가 등을 초청해 패션과 미학, 도시 재생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지난 11월 1일엔 패션 산업의 문제점과 위선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온 이탈리아의 소셜 패션 팀 ‘WeMake’에게 소셜 패션에 대한 국제적 담론을 듣는 자리까지 선보였다. 또 록 음악과 클럽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프랑스 출신의 젊은 예술가 엘로디 펠라도(Elodie Pelladeau)는 패션쇼 무대에 올릴 독특한 장신구를 제작했고, 프랑스의 세계적 거리 예술가 그룹 ‘SP38’은 쇼가 열리기 전부터 성수동 일대에 여러 예술 작품을 설치해 시민과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노동 집약적 성향이 강한 패션 산업은 사실 환경을 해치고 현지의 생산력을 박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틀렸으니 관행을 바꾸라’는 얘기만으론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 벌’의 옷을 소비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오래된 생태 또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는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세계적 무대에서 활동해온 예술가들이 함께한 이번 패션쇼가 앞으로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새로운 패션 생태’를 만드는 데 이바지했으면 한다.

디자이너와 소공인의 협업

1 붓 터치가 돋보이는 ‘The Cast’ 작품 설치 전경 2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브랜드 ‘Hagahi’의 2017년 S/S 컬렉션

패션 디자이너와 화가의 예술적 만남
뉴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런칭한 하가희는 미술 작가와의 협업으로 신선한 아이디어에 예술적 터치를 더한 작품을 선보이는 패션 디자이너. 해외에서 작업해온 그녀가 2017년 S/S 컬렉션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Hagahi’는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문성식, 차영석, 유재연 등 한국의 젊은 미술 작가와 함께한 데 이어, 이번에는 처음으로 벨기에 출신 작가 슈테판 페터스(Stefan Peters)와 협업했다. 국제적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더 넓은 시각으로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한 것.

1 패션 디자이너 하가희와 협업한 화가 슈테판 페터스 2 슈테판 페터스의 ‘Untitled’. 2016

최근 네덜란드 얀 판 에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 Academie)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이수한 슈테판 페터스는 지난 10월 연극 무대를 연상시키는 ‘공간’을 그린 작품으로 서울 UNC갤러리의 기획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가희는 그를 “캔버스에 자유롭고 정직하게 감정을 담아내는 아티스트”라고 표현한다. 그녀가 영감을 받은 것은 전과 ‘I Paint U’라는 비디오 영상으로, 페인팅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붓질에 대한 연구가 담긴 작업. 슈테판 페터스의 캔버스를 장식한 붓질의 율동감을 패션 디자인에 어떻게 적용했을까?
“작가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공유했고, 따스한 파스텔 톤 컬러가 돋보이게 했다. 붓 터치의 갈라짐과 그 붓이 지나간 흔적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손으로 엮은 프린지나 몸의 실루엣이 살짝 보이는 컷아웃 등 재미있는 요소를 활용했다.” 그녀의 컬렉션에서 빠지지 않는 자수 기법은 이번에도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 수작업이 필요한 기법을 동원하는 이유는 시간이 쌓여 만들어내는 것의 가치를 담고 싶기 때문이라고. 슈테판 페터스의 작품이 반복되는 터치에 따라 비슷한 듯 다른 결을 만들어내는 것과 흡사하다. 패션 브랜드에서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미술 작가의 예술성은 패션과 만나면서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재탄생하고,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기다리는 소비자는 매 시즌 지루하지 않아 오래도록 입고 간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옷을 만나게 된다. 하가희의 다음 컬렉션은 시인과 함께할 예정이라고 하니, 시적 표현이 패션 디자인으로 어떻게 거듭날지 그 또한 기대된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