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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의미

LIFESTYLE

잠의 계절, 봄이 찾아왔다. 난데없이 침입한 잠의 공격을 떨칠 수 없다면, 적의 속성을 파악하는 일이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 아니겠는가. 잠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쏟아진다.

커브드 디스플레이로 처리한 비전 메르세데스-마이바흐 6

헤르만 헤세의 에세이집 <잠 못 이루는 밤>에 실린 동명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잠은 자연이 준 가장 값진 선물 중 하나고, 친구이자 보물이며, 마법사이자 나직이 위안을 주는 자다.” 그의 말처럼 잠은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무엇이다. 일평생 우리는 잠과 함께 산다. 헤세는 이어 이렇게 덧붙인다. “장기간 지속되는 불면의 고통을 아는 자, 겨우 반 시간 정도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운 자는 누구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러나 나는 살면서 하루도 불면의 밤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사랑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화주의자인 그는 ‘잠’을 말하며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고백한다. 눈을 감고 잠시 잠깐 다른 세계로 향하는 미지의 영역에 관한 대문호의 철학이 느껴진다. 누군가 마음 졸이며 하얗게 밤을 지새운 불면의 의미를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잠을 둘러싼 진실 혹은 거짓은 무수하다. 그 실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데이비드 랜들은 <잠의 사생활>에서 잠이 우리의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이라 설명한다. 이 책은 작가의 소름 돋는 경험담에서 출발했다. 그는 20년 넘게 자신을 괴롭힌 고약한 잠버릇 때문에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알고 보니 잠결에 자신도 모르게 걸으며 복도 바닥을 뒹군 것. 두손 들고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잠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꿈의세계(dreamland)’라는 원제처럼 그곳에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흥 미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는 역사, 문화, 인지과학, 신경학, 정신의학, 수면의학 등 각계의 전문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꼼꼼하게 조사해 잠의 실체를 하나 둘 밝힌다. “잠은 삶에서 단절된 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전체 퍼즐에서 빠져 있는 3분의 1이다”라는 그의 선언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잠을 그저 쓸데없는 낭비나 잉여의 시간으로 취급하는 21세기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지 않는 삶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우려는 현실의 한 조각이 됐다.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이 대표적이다. 인문학자 조너선 크레리가 쓴 <24/7 잠의 종말>은 밤과 낮을 바꾸거나 낮을 연장하며 잠을 추방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책의 제목 ‘24/7’은 ‘하루 24시간, 주 7일 내내’를 의미한다. 이 책은 7일간 잠을 자지 않고 밤낮없이 활동하는 흰정수리북미멧새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동물의 왕국>에서 볼 법한 에피소드는 반전을 거듭한다. 미국 국방부가 속한 과학-군사 복합체가 이 새에 대해 연구하며 ‘불면 병사’를 만들려는 연구를 진행한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만약 연구가 성공한다면 인간은 잠을 자지 않는 기계와 다름없을 것이다. 이 불면은 헤르만 헤세가 상찬한 불면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에 산다. 잠을 자다가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온/오프를 반복하는 우리는 이미 그런 세계에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잠은 ‘테크노자본주의’ 시스템의 비인간성에 제동을 거는 저항의 몸짓이 됐다. 문득, 수많은 패러디물을 양산한 또 다른 책 제목이 떠오른다. ‘지금, 잠이 옵니까?’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