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ver Existed Before
새로운 패션 컬렉션에는 언제나 기발한 디자인과 실루엣이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역시 처음 보는 소재다.

섬세한 세공이 돋보이는 롱드 루이 까르띠에 워치

퀴르드뤼시 소재의 모이나 가브리엘 백
Reborn Technology
기술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탄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특히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전통적 기법은 잊혀가기 마련이다. 이러한 흐름에 맞선 일부 패션 하우스는 도리어 손맛의 가치를 부각하고 그 가치를 강조한 제품을 선보인다. 특히 잊힌 기술을 복원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소재라면 우리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에 충분한데, 대표적인 예로 가방과 트렁크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브랜드 모이나(Moynat)의 퀴르드뤼시(Cuir de Russie) 소재 가방을 들 수 있다. 유연한 텍스처, 풍부한 색감과 특유의 향기가 어우러진 퀴르드뤼시는 18세기 당시 최고급 가죽으로 인식되었다. 자작나무 타르 오일을 비롯한 각종 재료와 염료를 가죽에 더해 무려 18개월이라는 시간에 걸쳐 완성하는 이 비밀스러운 기법은 1918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모이나의 아티스틱 디렉터 라메시 나이르(Ramesh Nair)의 노력 끝에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자취를 감춘 예전의 손기술을 복원하고, 이를 모이나만의 차별화된 강점으로 내세우는 데 초점을 둡니다.” 과거의 퀴르드뤼시를 그대로 재현하고, 이를 간결한 형태로 다듬은 가방에선 하우스의 남다른 혁신을 느낄 수 있다. 까르띠에(Cartier) 역시 지난 2015년 사라진 기술을 되살려 새로운 감각을 더한 제품을 소개했다. 롱드 루이 까르띠에 워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선조 세공 기법은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하던 기술로, 레이스만큼 가볍고 정교한 골드 패브릭을 만드는 것이 핵심. 금실과 은실을 그리드(grid) 형태로 녹여 고정한 뒤 특정 모티브로 다듬는 정교한 금·은세공술은 메종 까르띠에의 아틀리에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법이라고. 그 위에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고급 스톤을 세팅하면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화려함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다이아몬드와 블랙 래커로 장식한 두 마리의 팬더를 얹은 골드 레이스 워치는 한 달이 넘는 작업 시간을 요할 만큼 섬세한 동시에 더없이 가치 있는 아트 피스다.

LED 장치를 탑재한 샤넬 클러치
The New Generation
현대 기술을 완벽하게 접목한 패션은 우리의 일상에 재미를 더한다. 샤넬(Chanel)의 2017년 S/S 컬렉션, 모델의 손에 들린 LED 클러치라면 그 뜻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전 세계 여성의 로망인 더블 C로고가 반짝이는 동시에 생동하는 가방은 평범한 티셔츠와 데님 팬츠에 매치해도 빛을 발하기에 충분하니까.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는 2016년 F/W 남성 컬렉션에 태양광 패널을 부착한 재킷을 새로이 선보였다.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패치워크 디테일을 보다 실험적으로, 또 동시대적으로 재해석한 셈이다. 재킷으로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스타일을 선사한다.
Z 제냐(Z Zegna)의 아이콘 워머(Icon Warmer) 컬렉션은 오늘날의 신기술을 압축해 그 어떤 아우터보다 실용성을 강조한 점이 돋보인다. 초가을부터 한겨울까지 이용 가능한 발열 패널을 갖춰 1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29℃까지 내부 온도를 높일 수 있는 기능을 탑재한 것. 그뿐 아니라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시간차를 두고 재작동하는 영리함까지 더했다. 무선 충전 패드를 이용해 유선 충전을 하지 않고도 센서 충전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보다 현대적인 의상이 또 있을까 싶다.

1 물결을 연상시키는 이리스 판 헤르펀 드레스
2 빅터 앤 롤프만이 만들 수 있는 업사이클링 패브릭
Only for Couture
시간에 비례하는 정성이 깃든 오트 쿠튀르 컬렉션엔 기성복에선 느낄 수 없는 미학이 가득하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소재와 디테일에 감탄하는 것은 당연지사. 이리스 판 헤르펀(Iris van Herpen)은 단 하나의 컬렉션을 위한 단 하나의 소재를 개발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2016년 가을 컬렉션의 테마인 사이매틱(cymatics, 물질에 소리와 주파수를 통과시킬 때 그 진동의 시각 효과를 연구하는 학문)을 오직 패브릭만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니까.
진주로 코팅한 울퉁불퉁한 형태의 고무 패브릭부터 투명한 튈 위에 주름 장식 오간자를 엮어 물결이 흐르는 듯한 3D 효과를 선사하는 원단, 또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5배나 가는 오간자를 짜내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재까지! 빅터 앤 롤프(Victor & Rolf)의 가을 쿠튀르 컬렉션 역시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신소재로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들이 10년간 선보인 컬렉션 의상을 가늘게 자르고 꼬아 완성한 트위드나 의상 수거함에서 꺼냈을 법한 군용 재킷과 빈티지 데님을 뒤섞어 직조한 패브릭은 오직 이들만의 독창적인 소재다. “그림이나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진부한 컬렉션이 아닙니다. 오로지 의상의 원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이미 존재하는 소재를 완전히 새롭게 다듬은 빅터 앤 롤프의 ‘업사이클링(upcycling) 쿠튀르’는 오트 쿠튀르를 새롭게 정의하기에 충분했다. 일명 프레타 쿠튀르(pert a couture, 기성복과 쿠튀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컬렉션)라는 신조어로 자신을 대변하는 델포조(Delpozo)는 또 어떤가. 이들은 2016년 F/W 컬렉션에서 크리놀린(스커트의 볼륨을 살리기 위해 그 안에 겹쳐 입는 속옷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얇은 패브릭)을 전면에 노출시킨 과감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크리놀린 위에 정교한 자수를 입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표면과 내부, 겉옷과 속옷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드레스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에디터 한상은(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