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동남아시아 미술계의 스타는?
세계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른 아시아, 그중에서도 동남아시아의 미술이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곳에서 현재 두각을 드러내는 몇몇 작가의 면면을 살핀다.

1 인도네시아 작가 틴틴 울리아의 ‘Deconstruction of the Wall’ 2 매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도네시아 작가 아디티야 노발리
2017년은 현대미술계에 대망의 ‘그랜드 투어’가 돌아오는 해다. 19세기 유럽의 상류층이 고급스러운 기차로 유럽 대륙을 여행하던 전통이 되살아난 듯, 현대미술의 그랜드 투어는 그간 10년을 주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내년 5월 베니스 비엔날레 오픈을 시작으로 6월 독일 카셀 도쿠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스위스 아트 바젤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세계 미술 관계자들은 이 행사를 따라 유럽을 여행한다. 물론 이런 대규모 미술 행사의 주인공은 주로 미국과 유럽의 예술가로 채워지지만 소수의 아시아 출신 예술가, 아시아에서도 좀 더 ‘주변부’로 인식되는 동남아시아 출신 예술가에게 이 같은 미술 축제는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길이 열리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미 국가관 전시 작가를 상당수 발표한 베니스 비엔날레와 몇몇 대규모 전시를 통해 내년에 주목해야 할 동남아시아 출신 작가들을 알아본다.
인도네시아의 아디티야 노발리와 틴틴 울리아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나라다. 현재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들이 있지만, 2015년 국가관 전시 작가 발표 당시 적지 않은 소음이 있었고 또 전시의 수준이 문제시되기도 한 만큼 이번엔 매우 신중한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네시아 국가관과 별개로 내년에 꼭 주목해야 할 작가로는 단연 아디티야 노발리(Aditya Novali)를 꼽을 수 있다. 미술 시장에선 생소한 젊은이지만 이미 컬렉터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솔로(Solo) 출신 작가로, 인도네시아 현대미술계에선 드물게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는 개념적 작업을 해왔다. 인도네시아 전통 미술과 회화, 건축을 공부하고 네덜란드에서 개념 디자인을 탐구한 그의 관심사는 사회와 경제, 종교, 예술 문제 등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다. 특히 그의 작업은 인도네시아라는 지역적 특성과 문제점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에도 서구적 혹은 국경을 넘어선 세련된 시각적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노발리의 작품은 내년 아트 바젤 홍콩 ‘디스커버리’ 섹션에서 만날 수 있으며, 현재 해외 미술관 몇 곳에서 전시를 논의중이다.
음악과 영화를 전공하고 다시 건축을 공부한 뒤 현재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틴틴 울리아(Tintin Wulia)는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전시 작가로 선정된 상태. 예술가이기 전에 다양한 분야의 학문적 배경을 갖춘 점이 아디티야 노발리와 유사하다. 이미 독일과 네덜란드, 호주 등지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스탄불 비엔날레와 모스크바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등 국제 미술 행사에도 수차례 참여했다. 틴틴 울리아와 아디티야 노발리, 이 두 작가가 이제까지 보여준 저력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인도네시아 작가들은 내년에도 동남아시아 미술계에서 주도권을 쉽게 내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작가 마리아 다니구치의 ‘Masks’
싱가포르의 자이 쿠닝
싱가포르는 이웃의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대규모 예술 지원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도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 지원을 중단한 일화로 자국 문화 예술계는 물론 국제 미술계의 비판과 야유를 받은 아픈 기억이 있다. 이후 좀 더 신중하게 기획자와 작가를 선정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싱가포르 국가관 전시는 큐레이터 준 얍(June aYp)이 소개하는 자이 쿠닝(Zai Kuning)의 개인전으로 정했다. 싱가포르의 대표적 작가군에 속하는 자이 쿠닝은 1980년대 말부터 TAV(The Artists Village)의 멤버로 활동한 탕다우(Tang Da Wu)와 리원(Lee Wen) 같은 퍼포먼스 아티스트 출신이다. 싱가포르 전위예술을 대표하는 TAV의 예술가들은 자국의 다소 복잡한 문화와 예술, 종교적 다양성 속에서 정체성을 모색하고자 했고, 동시에 싱가포르가 꿈꾸는 이상향에 대한 많은 질문을 예술로 실험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자이 쿠닝의 작품 세계는 행위예술은 물론 영화와 설치미술, 사운드, 조각 등 다양한 매체를 오가며 시각적으로도 매우 강력한 힘을 보여준다. 동남아시아에선 이미 유명인사지만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가관 프로젝트는 그를 지금보다 더 유명한 작가로 성장시킬 것이다. 말레이의 사라진 왕조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선보일 그의 새 작품이 기대된다.
필리핀의 마리아 다니구치와 라니 마에스트로
필리핀에선 온통 마리아 다니구치(Maria Taniguchi)에 대한 이야기만 들린다. 지금도 홍콩과 런던을 중심으로 국제 미술계에서 지명도를 굳히고 있는 그의 작품은 오랜 관람 시간을 요하는 명상적 성향 때문에 드러내기보다는 수줍고 조용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체구와 대조적으로 커다란 크기의 작품은 그의 개념적·기하학적·건축적 성향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런 특징은 필리핀 현대미술의 특징인 신비로운 구상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니구치는 현재 내년에 도쿄와 베를린, 뉴욕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내년 베니스 비엔날레 필리핀 국가관 전시 작가로는 필리핀계 캐나다 작가 라니 마에스트로(aLni Maestro)가 선정됐으며, 다니구치 못지않은 활약이 기대된다.

태국 출신 작가 우돔삭 크리사나미스의 ‘That’s Fucking Genius’

3,4 갓 30대가 된 태국의 젊은 작가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와 그의 볼차노 미술관 전시 중 일부
태국의 아피찻뽕 위라세타쿤과 나빈 라완차이쿨, 우돔삭 크리사나미스,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
사실 동남아시아 출신 작가 중 내년에 가장 뜨겁게 회자될 작가는 현재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는 아피찻뽕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일 것이다. 현재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태국 출신 예술가가 많진 않지만 아피찻뽕이나 나빈 라완차이쿨(Navin Rawanchaikul)만큼은 그 역량이 괄목할 만하다.
한편 방콕과 치앙마이에서 활동하는 우돔삭 크리사나미스(Udomsak Krisanamis)는 그간 선보인 대형 전시에 비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젊은 시절부터 뉴욕 개빈 브라운 엔터프라이즈(Gavin Brown’s Enterprise)와 런던 빅토리아 미로(Victoria Miro) 같은 세계적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했지만, 한때는 태국 내에서조차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새롭게 떠오른 변방 예술가들이 뉴미디어나 영화, 설치 등의 멀티미디어 작업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과 달리 우돔삭은 회화와 콜라주, 드로잉 같은 서구 미술의 전통적 매체를 사용한다는 것. 처음부터 동남아시아나 태국이라는 지역적 범주에서 자유로웠기에 세계 무대에서도 오직 ‘작품’만으로 경쟁할 수 있었고, 내년에도 세계 전시에서 그의 이름을 자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는 이제 막 서른 살이 된 젊은 작가로 뉴욕과 런던, 파리, 베를린 등 현대미술의 중심지에서 그 이름을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 그는 헬싱키의 키아스마 현대미술관(Kiasma Museum of Contemporary Art)에서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글 김정연(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