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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가 끝난 뒤

ARTNOW

지난 9월 개막한 서울·부산·광주비엔날레가 11월 막을 내렸다. 새로운 예술의 대안을 제시하며 국제 미술 행사로 자리매김한 세 지역의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남긴 건 무엇일까?

마리에 쾰백 이워슨, 거울 치료, 2015

한국 현대미술계를 움직이는 2년 주기의 힘이 있다. 그건 광주, 서울,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 비엔날레다.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의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 부산비엔날레는 모두 짝수 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개막해 경쟁에 돌입한다. 지난 9월 1일 개막한 미디어시티서울은 81일간, 9월 2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는 66일간, 9월 3일 개막한 부산비엔날레는 89일간 전시와 여타 부대 행사를 이어나갔다. 축제는 막을 내렸지만 다양한 시각예술을 선보임으로써 예술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 세 비엔날레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안톤 비도클, The Communist Revolution was Caused by the Sun, 2016 2 도라 가르시아,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 2016

광주비엔날레에서 측정한 예술의 온도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눈 예술상을 수상한 도라 가르시아(Dora Garcia)의 커미션 신작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2016년)이었다. 1977년 문을 열어 1980년 5·18 당시 주요 거점으로 기능한 녹두서점을 예술 작품으로 부활시켜 그 공간에서 크고 작은 소통의 사건을 이어나간다는 기획이 좋았다. 본전시 외에도 페르난도 가르시아-도리(Fernando Garcia-Dory)가 지역민과 함께 연극을 하고 그 기록을 영상으로 보여준 것처럼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 시민 참여 프로젝트, 지역 협력 큐레이터와 비엔날레 참여 작가 등의 인적 인프라와 광주 미술 교육기관을 활용한 교육, 연구 및 교류의 플랫폼인 월례회(Monthly Gathering) 같은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해 다른 비엔날레와 차별화한 것이 돋보였다.
하지만 2016년 광주비엔날레에도 아쉬움은 분명 존재한다. 하나는 마리아 린드(Maria Lind) 감독의 약한 비전이고, 다른 하나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다. 프레스 개막 때까지 작품 설치가 마무리되지 않아 어수선한 모습이었고, 작품 설치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일부 작가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스타 작가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은 주최 측이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자 작품 설치를 마무리하지 않은 채 돌연 출국해버리기도 했다. 지난 제10회까지 광주비엔날레재단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 사람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 이용우였다. 하지만 2년 전 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재단 대표직에서 사임한 그는 자유의 몸이 돼 훨훨 날아갔다. 그의 경험과 카리스마, 인맥 동원력 등이 사라지자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마치 지방의 국공립 미술관 조직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게 온전히 재단의 운영 미숙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예술감독의 자질을 언급해야 마땅하다.
마리아 린드 감독은 철학자 앙리 코르뱅(Henri Corbin)이 12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자이자 철학자 소흐라바르디(Sohravardi)의 망상을 차용해 이론화한 ‘제8기후대’라는 개념을 빌려 전시를 기획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제8기후대는 ‘상상을 통해 도달할 수있는 중간계’고 ‘물질과 정신, 역사와 신화의 구분에 천착하지 않고 보다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효과를 담보하며, 상상의 속성과 잠력재이 그 특성을 결정하는 인류 문화의 단계’라고 한다. 그러니까 2016년 광주비엔날레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오늘의 미술가들겐에 상상력을 발휘해 새로운 시공을 창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 되겠다.

아르세니 질리야예프, Cradle of Humankind, 2015

한데 마리아 린드는 마치 소설을 쓰듯 자신이 생각하는 전시의 서사적 구조를 상상하곤 그에 얼추 부합하는 작가와 작품을 타입 캐스팅했다. 작업이 자신의 서사 체계에 달라붙는 삽화가 된 형국이다. 그가 작성한 시나리오적 서사 체계에 맞춰 구성한 완성도 높은 전시 도록은 개막 전날 무사히 출간됐다. 전시는 채 완성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결국 도록은 전시 연출의 대본이고, 전시는 거기서 도출한 해상도 낮은 연출작이 된 셈. 1인 디자인 프로젝트 그룹 메타헤이븐(Metavhean)이 디자인한 도록은 까닭 없이 몹시 화려해 그것만 보면 전시가 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전시 자체는 약간 엉성했고 맥빠진 모습이었다. 심지어 곳곳에서 강한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예컨대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눈 예술상을 수상한 안톤 비도클(Anton Vidokle)은 작년부터 올 초에 걸쳐 화제를 모은 작업 ‘공산주의 혁명은 태양이 일으켰다(The Communist Revolution was Caused by the Sun)’(2016년)를 출품했는데, 이는 히토 슈타이얼의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이자 이번 광주비엔날레 초청작인 ‘태양의 공장(Factory of the Sun)’(2015년)에서 영향을 받은 작업이다. 아르세니 질리야예프(Arseny Zhilyaev)는 <이-플럭스 저널(e-Flux Journal)>에서 안톤 비도클을 인터뷰하며 자신의 작품으로 역시 이번 광주비엔날레에 재전시된 ‘인류의 요람(Cradle of Humankind)’(2015년)과 연결해 담론한 바 있다.
광주비엔날레 측은 이번에 37개국의 101팀(총 120명)이 참가하고 신작 비율이 40%에 이른다고 발표했지만, 눈에 띄는 주요 작품은 대개 구작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구작으로 구성한 비엔날레가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검증된 작품으로 구성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어떤 시대적 특성을 포착해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예술감독이 작가들의 작업을 중첩시키고 대립시킴으로써 정치적 스펙터클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는 전반적으로 잔잔하고 평이했다. 마리아 린드는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동시대 예술의 온도를 측정”한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측정 결과는 미지근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빅 판 데르 폴, Married by Powers, 2016

1 크리스틴 선 킴, 기술을 요하는 게임 2.0, 벨크로, 자석, 주문 제작 전자 장치, 작가의 할머니 김인삼의 목소리, 가변 크기, 2015
2 크리스틴 선 킴, 웃긴 이름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찬 방에서 역사로 칠하기 3, 싱글 채널 비디오, 24분 55초, 2015

서울이 보여준 키르르한 현대미술의 미래
제9회 미디어시티서울을 이끈 백지숙 예술감독은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Shuntaro Danikawa)의 시 ‘이십억 광년의 고독’에서 화성인의 대사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를 따서 전시 제목으로 삼았다.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에 정확한 뜻은 없다고 했지만 실제론 ‘내일은 길하리라’처럼 들렸고, 또 “고도성장과 민주화 시기를 거쳐 성장해온 한 도시가 생애 최초로 봉착한 머뭇거림 앞에서, 미래 시제로 고안해보는 미술 언어를 총칭”하는 뜻으로 이번 전시에 인용했다고 하니 주제의식으로 보면, 미디어시티서울은 광주비엔날레와 퍽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질적 변환을 경험한 세계에서 미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자문자답하는 것.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으로 연출됐다. 서소문 본관, 남서울생활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등 서울시립미술관 전관에 걸쳐 24개국 61팀의 작가가 참여해 신작 30여 점을 포함한 총 76점을 제시해 현대미술의 경향을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끼어든 경사로’라는 작품을 만든 세라 헨드렌(Sara Hendren)과 이 경사로에서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춘 안무가 앨리스 셰퍼드(Alice Sheppard), ‘개 같은 날은 끝났다’에서 여섯 빛깔 무지개 텍스트 간판 작품으로 대중을 위한 시적 언어를 선보인 우고 론디노네(Ugo Rondinone) 등의 외국 작가와 김실비, 김천희, 이미래 등의 국내 작가가 참여했다. 그중 김희천의 ‘썰매’는 동시대의 서울과 서울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는 세계를 탐구한 비디오 작품이다. 작품 속에 담긴 세 가지 이야기는 서로 맞물려 현재의 한국을 드러내는데, 그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 VR(가상현실)과 Face Swap(얼굴 바꾸기) 애플리케이션을 한국을 읽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했다.
하지만 미디어시티서울도 전시 구성의 조화로움이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일설에 따르면, 백지숙 감독은 피에르 위그(Pierre Huyghe)의 구작 ‘무제(인간 가면)(Untitled(Human Mask))’(2014년)를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았다고 한다. ‘무제(인간 가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사람 가면을 쓴 채, 과거에 ‘음식점 보조 종업원’으로서 익힌 행동패턴을 반복하는 원숭이의 모습을 담은 19분짜리 영상물. 아마 예술감독은 이 작품을 폐허에서 계속되는 무의미한 삶과 공회전에 대한 묵시론적 논평으로 독해한 것 같다. 한데 내 생각에 피에르 위그는 텅 빈 구조를 만들고 유희하며, 자꾸 유의미한 메시지를 해독하려 드는 관람객의 시각뇌를 비웃어왔다. 그래서 피에르 위그의 ‘무제(인간 가면)’는 이번 비엔날레의 중심축이면서도 전시 전체와 약간은 부딪치는 느낌이 들었다.
서소문 본관에서 가장 돋보인 작품은 전시 속 전시 프로그램, 2인조 그룹 빅 판 데르 폴(Bik van der Pol)의 <삼생가약(Married by Powers)> (2016년)이었다. 미디어 연구자 마정연이 고른 작품으로 전시를 시작해 SF 소설가 정소연이 큐레이팅한 미니 전시로 교체되고, 불문학자 윤경희의 전시와 미술가 박현정의 전시, 영화감독 장준환과 미술가 김연용의 전시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마정연, 정소연, 윤경희, 박현정, 장준환, 김연용이 골라놓은 작품의 구성과 조합이 기대에 못 미친 것. 한편, 남서울생활미술관과 북서울미술관에서는 마치 비엔날레와 무관한 기획전이 열리는 듯했다. 미디어시티서울의 과정 중심 프로그램으로 제시한 ‘불확실한 학교’(작가 최태윤 기획)가 8월 내내 거점으로 삼은 곳이 북서울미술관이지만, 막상 비엔날레가 개막한 뒤 보니 ‘불확실한 학교’와 전시 사이의 연계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부산비엔날레 F1963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

유기적 구성이 돋보인 부산
그렇다면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 3개의 프로젝트로 구성한 2016 부산비엔날레의 모습은 어땠을까. 무엇보다 예년에 본전시, 특별전으로 나눠 진행하던 것을 프로젝트로 분류해 하나의 주제 아래 서로 어우러지도록 유기적으로 엮은 것이 인상 깊었다. 전시는 1990년대 이전의 한중일 아방가르드 미술을 다루는 프로젝트 1과 1990년대 이후에 대두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을 다루는 프로젝트 2, 학술 프로그램과 세미나 등의 프로젝트 문화 예술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3으로 구성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프로젝트 1: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는 한중일 아방가르드 미술 회고-특별전으로, 각국의 주요 자료를 비치해 세계 미술사 속 아시아 3국의 전위예술 흐름과 그 배경을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중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사는 궈샤오옌(Guo Xiaoyan)의 큐레이팅에 의해, 일본의 아방가르드 미술사는 사와라기 노이(Noi Sawaragi) 등의 큐레이팅에 의해,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사는 김찬동의 큐레이팅에 의해 각각 전시로 물화됐는데, 한중일의 자생적 전위예술 영역을 재확인하고 전 세계 미술사의 일부분으로 복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윤재갑 감독의 예술 철학, 그 정수가 드러난 것은 옛 고려제강 수영 공장을 레노베이션한 F1963에서 열린 <프로젝트 2: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었다. 2008년까지 와이어 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에서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여 미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한데 상당수의 출품작이 2000년대 초·중반에 유행한 비엔날레용 설치미술의 유형에 부합하는 것이었고, 또 기존 전시의 파편을 그러모아 재활용한 느낌이 들었다. 2011~2015년에 제작한 작품들이 전시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가운데 국내 작가들의 신작을 추가한 양상이었던 것.
윤재갑 감독은 고려제강의 새로운 다목적 문화 공간 F1963의 개관에 많은 공을 들인 것 같았다. 그간 부산비엔날레의 가장 큰 문제는 부산시립미술관과의 원활하지 않은 협업 관계였다. 부산비엔날레는 광주와 달리 재단법인이 아닌 사단법인에 의해 운영되는 행사로, 사실상 (사)부산미술협회에서 조직위원회를 꾸린다. 따라서 부산비엔날레조직위는 현재 을숙도에 부산시의 예산으로 건립할 예정인 부산현대미술관을 비엔날레 전용 전시관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 되려면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수췬, Absolute Principle No.2, Oil on Canvas, 150×200cm, 1984

시행착오 속에서 배우는 예술
2016년 광주와 서울과 부산의 비엔날레는 전반적으로 공히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각각 아쉬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어떤 결과도 성공이라고 평하긴 어렵지만, 요즘처럼 현대미술의 작동 방식과 존재 방식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엔 실패로 단정해 힐난하기도 어렵다. 현대 예술과 예술계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과 정치적 지형이 변화하고, 미디어 테크놀로지 환경과 인간의 행동 방식이 변화하는 시기에 몸살을 앓는다.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시각예술의 방향성이 도출되는 것을 고대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2020년대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명료한 시기에 문화 예술 기관들은 교육·학습 기능을 강조하면서 버티는 법. 서울과 광주의 비엔날레가 동시에 과정 중심의 프로그램을 표방하며 평생 학습 개념의 교육을 이야기한 것은 그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세 비엔날레가 변화의 촉매제가 되어 현대미술이 그 존재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 사진 제공 광주비엔날레재단,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