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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ies but Goodies

FASHION

세월이 흐를수록 더 멋스러워지는 빈티지. 켜켜이 쌓인 매력에 흠뻑 빠진 패션 피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빈티지를 즐기는 방법을 알아보자.

최근 런던 출장길에 브릭스턴 지역의 빈티지 숍에서 구매한 Express Tricot 카디건

화이트 레더의 빈티지한 질감이 멋스러운 클래식 백 Chanel

커다란 진주와 핑크 리본의 조화가 사랑스러운 빈티지 네크리스는 개인 소장품

숨은 보물 찾기 이보현
국내 슈즈 디자이너 1세대 브랜드로 여성들의 전폭적 사랑을 받는 슈콤마보니의 이보현 이사. 슈콤마보니의 얼굴과도 같은 그녀가 슈즈 디자인을 시작하기 이전,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빈티지 편집숍 ‘지퍼(Zipper)’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스페인 슈즈를 수입하는 회사를 운영할 때였어요. <지퍼>라는 잡지를 즐겨 보곤 했는데, 해외에 예쁜 빈티지 숍이 참 많은 거예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수입하는 브랜드가 많지 않은 데다 편집숍은 전무했잖아요. 옷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워낙 빈티지를 좋아해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곧장 사업에 뛰어든 그녀는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세계 각국의 빈티지 숍을 찾아다니며 직접 물건을 바잉해 한국으로 가져왔다. “맨몸으로 무작정 뛰어들었죠. 말 그대로 봇짐 장수 같았어요.(웃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정말 빈티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을 빈티지와 동고동락했으니 이제 빈티지가 지겨워질 법도 한데, 그녀는 지금도 출장을 갈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 빈티지 숍을 방문한다. 자주 찾는 곳은 런던의 캠든 록 마켓, 브릭레인에 위치한 빈티지 셀렉 숍, 파리의 포트 드 클리냥쿠르에 위치한 레퓌스 벼룩시장. 합리적인 가격에 희귀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횡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과거의 디자인을 보며 영감을 얻거나, 현재 트렌드를 느낄 수도 있다. “빈티지 숍이라고 매일 같은 물건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시즌에 하이웨이스트 진이 유행이라면 온갖 종류와 디자인의 하이웨이스트 진이 진열된 걸 볼 수 있죠.”
그녀에게 이토록 빈티지를 사랑하는 이유를 물었다. “요즘은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디자인과 분위기, 컬러 때문인 것 같아요. 오늘 입은 샤넬 재킷만 봐도 가죽과 퍼를 사용한 리버서블 디자인으로 근래에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죠. 환절기나 추운 겨울에 얼마나 유용하게 입는지 몰라요. 스카프도 자주 구매하는데, 현재 잘 나오지 않는 비비드한 컬러가 정말 예쁘거든요.” 하지만 무턱대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빈티지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은 금물이다. 좋은 제품을 찾으려면 우선 지불할 가격에 대한 상한선을 정해놓는 것이 좋다고. 가짜 라벨을 붙여 비싼 값에 팔거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빈티지 제품으로 속여 파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이보현 이사는 빈티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의 선두에서 여성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빨리 찾아내는 그녀가 색 바래고 손때 묻은 물건의 멋에 빠져 있을 줄이야. 그녀의 진하고 오랜 사랑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있는 빛을 발할 듯하다. 빈티지처럼 말이다.

가죽과 퍼를 사용한 Chanel 리버서블 재킷에 Céline의 레더 팬츠를 매치하고, 레터링이 돋보이는 Suecomma Bonnie의 펌프스 힐을 신은 이보현 이사

화려한 주얼리일수록 화려한 톱을 매치할 것! Prada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친 나비 모양 브로치. 공장 샘플을 의미하는 메탈 태그가 그대로 달려 있는 빈티지 제품

어머니가 물려준 빈티지 타조 가죽 가방

서로 다른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원석을 엮어 완성한 네크리스 Society of Golden J.

세월을 품은 빛 김호진
“제게 빈티지는 그저 낡고 오래된 물건이 아니에요.” 미술 작가이자 주얼리 브랜드 소사이어티오브골든제이(Society of Golden J.) 디자이너 김호진은 빈티지 주얼리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심미안을 지닌 인물이다. 어릴 때 어머니의 옷장을 뒤적이던 것을 시작으로 이후 뉴욕 유학 생활 중 앤티크 마켓을 찾는 것을 취미로 삼았고, 지금은 언니 김호정과 함께 전개하는 소사이어티오브골든제이에서 빈티지 원석만 사용하는 비바라빈티지(Viva La Vintage) 라인을 따로 전개하고 있다. 비바라빈티지 라인은 디자인에 맞춰 스톤을 구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직접 뉴욕 빈티지 마켓을 돌아다니며 구입한 스톤에 맞춰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제품이 탄생하는 점이 독특하다. 촬영을 위해 착용한 목걸이 역시 이미 단종된 1970년대 글라스 비즈와 1980년에 생산한 일본 진주를 촘촘히 엮은 것이다. “생산 공장이 오래전 도산하여 지금은 소량만 남은 비즈처럼 귀한 것들로 제작해요. 이것으로 새로운 주얼리를 만들면 여기에 담긴 세월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이죠.” 그녀에게 주얼리는 금속과 원석으로 그리는 그림과 같다. 순수 미술 활동을 할 때 더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싶었는데, 문득 주얼리가 순수 예술의 면모를 갖춘 동시에 많은 이에게 접근 가능한 영역이라고 느껴 본격적으로 주얼리 디자인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김호진 작가는 왜 유독 빈티지 주얼리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나 켜켜이 쌓인 시간도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빈티지 주얼리에선 허투루 만든 구석을 찾기 어려워요. 같은 디자인의 비즈라도 지금처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과 달리 섬세한 세공 방식으로 탄생했으니까요. 빈티지 주얼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죠.” 그녀가 가장 아끼는 나비 모양 브로치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낸 작품. 녹슨 플레이트에 담긴 푸른 원석은 오히려 더욱 반짝반짝 빛이 난다. 시간을 품은 빛깔이 주얼리에 고스란히 녹아든 것이다. 원석 하나하나에 긴 이야기가 담긴 만큼 독특한 모양의 빈티지 주얼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돌체 앤 가바나처럼 화려한 의상이 주얼리의 매력과 형태를 잘 부각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자이너 구호처럼 모던한 의상 위에 곁들이는 스타일 역시 아주 아름답습니다.”
김호진 작가는 빈티지 라인 외에 소사이어티오브골든제이의 다른 라인을 디자인할 때도 빈티지를 대하는 태도로 임한다. 완전히 새로운 소재로 세공한 것이지만, 이것이 훗날 빈티지 제품으로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주얼리를 만드는 그녀에게 2015년을 맞아 바라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주어진 365일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으며 더 많은 고객과 소통하는 것, 그리고 그 이상의 빛을 머금은 빈티지 주얼리를 만드는 것!”

다크 그린 컬러 원피스 Carven, 네크리스와 반지는 모두 Society of Golden J.

다양한 빈티지 패브릭 조각을 엮어 만든 컬러풀한 빅 백은 J.Augur

1920년대 실제 인디언이 만든 실버 브레이슬릿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인스피레이션’ 행사에서 구매했다.

1950년대 생산한 멋스러운 원목 오디오는 Barker 88 제품.

오랜 가치를 알아보는 일 이조셉
“빈티지라 불릴 만한 제품인지, 단지 쓰레기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추바스코, 오르픽, 이레귤러 등 다양한 해외 의류 브랜드 제품을 수입·유통하는 조이라이드앤코(Joyride & Co.)의 이조셉 대표가 입을 뗐다.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단종 모델이거나, 희귀한 소재로 만들었거나, 혹은 현재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소장 가치를 지닌 제품이라면 빈티지의 범주에 들어가겠죠. 하지만 단순히 손때 묻은 오래된 물건이라면, 그건 남이 쓰다 버린 것에 불과해요. 빈티지와 구제를 혼동하지 말고 선별적인 구매를 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두 발로 뛰며 직접 의류 제품을 바잉해온 지 4년째. 날카로운 감각을 자랑하는 이조셉 대표는 현재의 디자인과 원단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빈티지 제품 고유의 느낌이 좋아 이를 즐기게 되었다. “빈티지에는 그것이 만들어진 당시를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들어 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디테일조차 모두 시대적 상황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많아요. 그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은 색감, 텍스처는 재현하거나 모방할 수 없는 고유의 매력이 있죠.”
그는 빈티지 제품 중에서도 신발, 가방, 주얼리를 즐긴다. “오늘 신은 이레귤러의 슈즈는 빈티지 제품을 완전히 분해하고 밑창과 굽 부분만 교체해 새롭게 만든 거예요. 가죽은 빈티지 본연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렸죠.” 평소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스타일링을 즐기는 그에게 빈티지 아이템은 그 특별한 분위기와 존재감으로 완벽한 포인트 아이템이 된다. “훌륭한 빈티지 제품을 구매하려면 실제로 제품을 많이 보고 사용하며,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해요. 많은 경험이 곧 좋은 눈을 갖게 해주죠. 더불어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관심이 높아야 합니다. 아무런 기반 지식 없이 무조건 빈티지 제품을 본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요즘 그는 단순히 옷을 넘어 빈티지 소품과 가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비즈니스차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할 때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로즈볼’ 벼룩시장에 들러 다양한 소품을 구매한다. 집 안 한쪽을 장식한 1930년대의 싱거 재봉틀, 1976년과 1977년에 발행한 <플레이보이>도 이곳에서 구매한 아이템. “가장 아끼는 건 외할머니가 영국에서 사오신 빈티지 의자예요. 어머니를 거쳐 제가 물려받았는데, 이 제품을 계기로 빈티지 가구의 매력에 눈뜨게 됐어요. 저희 가족의 추억과 시간을 공유하는 의자라 더 뜻깊기도 하고요.”
시간을 초월해 가치 있는 물건을 알아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삶에 녹여내는 이조셉 대표. 그에게 빈티지 제품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즐기는 또 다른 방식이다.

이너웨어로 매치한 카디건과 싱글브레스트 코트는 Kaptain Sunshine, 아랫단을 밴딩 처리한 배기팬츠는 Juun.J, 스터드 장식이 돋보이는 빈티지 소재 레이스업 슈즈는 Irregular, 빈티지 모자와 터틀넥은 개인 소장품

에디터 한상은 (hanse@noblesse.com) 이혜미 (hmlee@noblesse.com)
사진 정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