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 본 ‘세계의 미래’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제 미술계의 가장 중요하고 특별한 행사로 꼽힌다. 동시대 미술을 움직이는 힘의 축이 총집결하기 때문이다. 미술을 향한 무한 애정과 좋은 작가와 작품을 확보하려는 욕망이 교차하는 뜨거운 현장 속으로.
이탈리아 베니스 카스텔로 공원 내 아르세날레에서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5월 9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1895년 이탈리아 국왕의 은혼식을 기념해 시작한 베니스 비엔날레는 올해 탄생 120주년을 맞으며 개최 시기를 6월에서 5월로 변경했다. 아트 바젤 홍콩이 5월에서 3월로 개최 시기를 앞당긴 이유가 베니스를 찾는 글로벌 아트 피플의 빡빡한 일정을 고려한 궁여지책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11월 22일까지 열리는 행사는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 한국을 포함해 각국 작가와 커미셔너가 ‘미술 올림픽’처럼 경쟁 구도로 펼치는 국가관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 재단의 로고가 박힌 공식 병행 전시 등 세 부문으로 구성했다.
본전시가 열리는 자르디니의 전시관 전경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

카타리나 그로세(Katharina Grosse), Das Bett, 혼합 재료, 가변크기, 2004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황금사자상의 주인공은?
본전시를 감독한 오쿠이 엔위저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를 일찌감치 제시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인 그는 국제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유명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다. 2011년부터 뮌헨 하우스 데르 쿤스트의 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제11회 카셀 도쿠멘타, 제7회 광주비엔날레, 파리 라 트리엔날레 등 전 세계에서 열린 굵직한 미술 행사를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그의 특기는 미술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 그래서 특정 정치 담론을 배경으로 삼는 그의 큐레이팅에 대한 반감도 높은 편이다.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의 감독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작가 리처드 프린스는 SNS에서 ‘최악의 선택’이라며 빈정거렸을 정도다.
오쿠이 엔위저는 격동의 세계사와 120년 동안 함께한 비엔날레의 역사적 궤적을 동시대 미술과 급진적 사회 변화를 살피는 ‘필터’로 삼았다. 감독 선임 후 전 세계를 돌며 선별한 53개국 136명의 작품을 일상과 미술의 영역이 교차하는 ‘생동감: 서사의 지속’, 국가관과 참여 작가가 경쟁하는 자르디니를 메타포로 상정한 ‘무질서의 정원’,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자본: 생생한 읽기’로 나눠 본전시에 소개했다. 그중 89명이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하는 작가로, 세계 최고령 미술 축제에 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이를 통해 그는 ‘작가, 사상가, 작곡가, 안무가, 가수, 음악가 등 오늘의 예술가는 현재 격변하는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상대로 본전시에선 세계 각국의 첨예한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이슈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전시에 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비엔날레라는 거대한 미술 행사가 마땅히 갖춰야 할 공공성의 의미를 재확인했다. 그럼 올해 황금사자상의 영광을 차지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비엔날레에 처음 참가한 아르메니아가 받았다. 국제전 황금사자상은 에이드리언 파이퍼(Adrian Piper, 미국), 특별 언급상은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 독일), 아보우나다라 콜렉티브(Abounaddara Collective, 시리아), 마시니사 셀마니(Massinissa Selmani, 알제리)와 조앤 조너스(Joan Jonas)가 참가한 미국관이 수상했다. 한편 본전시에 참여한 임흥순이 한국 작가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아시아 여성의 노동 문제를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풀어낸 ‘위로공단’을 출품했다. 김아영·남화연도 6년 만의 한국 작가 본전시 초청으로 화제를 모았다. 김아영은 설치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제페트, 그 공중 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셸3’로, 남화연은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튤립 파동을 소재로 삼은 영상 ‘욕망의 식물학’으로 국제 미술계에 눈도장을 찍었다. 전시가 열리기 전 발표한 평생공로상 수상자는 가나 작가 엘 아나추이, 아트 서비스 특별상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컨템퍼러리 아트 파트 비상근 큐레이터 수전 게즈가 받았다.
본전시에 선보인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의 ‘Eat Death’ 설치 전경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베니스, 한국 미술의 홍보 플랫폼
본전시에서 동시대 미술의 한 경향을 엿봤다면, 자국의 미술을 프로모션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국가관 전시로 발길을 옮겨보자. 처음 참가하는 카브리 해 남쪽의 그레나다,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모리셔스,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와 세이셸공화국, 몽골을 비롯한 89개국이 미술 올림픽의 우승을 거머쥐기 위해 각축전을 벌였다. 베니스는 처음 참가하는 국가에 관대한 편이다. 올해 아르메니아처럼 마시밀리아노 조니가 감독한 지난 전시에서 첫 참가국 앙골라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관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 한국관 개관과 함께 전수천 작가가 특별상을 받은 데 이어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 작가가 연속으로 특별상을 받으며 한국 동시대 미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2014년에는 조민석 커미셔너가 감독한 건축전의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받기도 했다.
퍼포먼스와 영상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인 노장 조앤 조너스의 미국관, yBa와 페미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세라 루커스의 영국관, 초현실주의적 상상력이 돋보인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의 프랑스관, 실을 활용한 스펙터클한 설치 작품을 제작해온 지하루 시오타의 일본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탄생 20주년을 맞은 한국관은 이숙경이 커미셔너로 선정돼 문경원·전준호 듀오와 함께했다. ‘축지법과 비행술’이라는 독특한 제목으로 10분 30초 분량의 7채널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총감독이 제시한 ‘모든 세계의 미래’라는 주제에 맞춰, 베니스가 물에 잠기고 한국관만 남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베니스의 한국관을 나주의 촬영장에 그대로 재현해 촬영한 이 작품은 한국관의 역사뿐 아니라 베니스 비엔날레의 가장 독특한 전시 시스템인 ‘국가관’의 의미를 되짚었다.
비엔날레 시즌에는 본전시와 국가관 외에도 90개국에서 준비한 총 44건의 수많은 병행 전시가 일제히 열린다. 프랑수아 피노가 운영하는 팔라초 그라시의 마르샬 레스 개인전, 덴마크관 작가로 참여한 얀 보가 푼타 델라 도가나에서 피노의 컬렉션으로 기획한 < Slip of the Tongue >, 퀘리니 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새로운 오브제 작품을 선보인 지미 더햄 개인전, 코레르 박물관의 제니 홀저, 두칼레궁전의 앙리 루소, 페기 구겐하임의 잭슨 폴록, 가고시안 갤러리가 후원한 카 페사로의 사이 톰블리 개인전 등 다른 볼거리도 풍성하다. 베니스에서 만나는 한국 미술은 유난히 반갑다. 더욱이 단색화라니.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냐크에서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이 주최하고 국제갤러리가 후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이용우가 기획한 <단색화>전은 단연 화제였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정창섭 등의 작품에 전 세계 미술인이 관심을 보였다.
문경원·전준호, 축지법과 비행술, HD 필름 설치, 10분 30초, 2015
Photo by Alessandra Chemollo Courtesy of la Biennale di Venezia

테레사 부르가(Teresa Burga), Fuerzas Operacionales(FOES), 종이에 잉크와 펜, 21×29.7cm, 2012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Barbara Thumm, Berlin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베니스 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