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 걸린 옷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를 압도하는, 예술 정신이 담긴 패션을 만나다.

Junya Watanabe inspired by Sonia Delaunay
캔버스에 크고 작은 원을 생동감 있게 표현한 소니아 들로네의 작품을 떠올려보자. 이번 시즌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는 소니아가 오래도록 구현해온 오르피즘(orphism)에 패션의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 결과 탄생한 PVC와 튈, 펠트처럼 빳빳한 소재를 패치워크한 톱은 그림의 2차원적 특징과 사람의 몸에 어울리는 입체적 실루엣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과장된 방식으로.

Coach collaborated with Gary Baseman
클래식하면서 정제된 매력이 돋보이는 브랜드 코치는 이번 시즌, 보다 문화적이고 재미있는, 한마디로 강력한 한 방을 원했다. 사랑스러운 파스텔 컬러를 배경으로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외모의 캐릭터를 장식한 가방이 그 결과물이다. 이 캐릭터는 으스스하고 어두운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티스트 게리 베이스먼이 코치를 위해 탄생시킨 앙증맞은 괴물로,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운 생명력이 느껴질 것.
Aquilano Rimondi inspired by Henri Matisse
앙리 마티스가 그려낸 아름다운 곡선은 언제나 많은 이에게 영감을 선사한다. 듀오 디자이너 아퀼라노 리몬디는 마티스의 예측 불가한 선의 움직임이 캔버스에는 물론 의상의 장식으로도 제격이라 판단했다. 특히 매 시즌 정교한 자수 디테일로 여성을 눈부시게 만드는 그들에게는 더더욱 알맞다. 보다시피 부드러운 가죽 위 잠자리와 꽃 그리고 마티스의 붓 터치 스타일까지 재현해 수놓은 미니 스커트는 꿈처럼 아름답지 않은가.

J.W. Anderson (by 10 Corso Como) collaborated with John Allen
아티스트 존 앨런에게 영국 시골의 조용하고 광활한 풍경은 아름다운 카펫을 만드는 원동력이다. 그의 작품에 푹 빠진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은 집 안 곳곳에 카펫을 깐 것은 물론, 그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의상까지 만들어냈다. 자연에 머무는 찰나의 햇빛과 바람의 컬러까지 니트 톱 한 장에 그대로 구현했는데, 이는 울과 모헤어, 실크를 섞은 고급스러운 원단의 공이 크다.
Moschino inspired by René Magritte
디자이너 제러미 스콧은 매 시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방대한 컬렉션을 만들어내고, 이를 현시대에 들어맞는 문화로 제안한다. ‘이것은 모스키노 티셔츠가 아니다’라는 타이포그래피로 도배한 역설적인 의상과 액세서리 역시 마찬가지. 브랜드 이름이 노골적으로 적힌 티셔츠 백에서 드러나듯 스스로를 부정하는식의 유머에서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와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을 듯.

Brioni collaborated with James Welling
빛을 이용해 일상적인 사물을 회화적으로 조명하는 것으로 알려진 포토그래퍼 제임스 웰링. 특히 유명한 그만의 플로럴 패턴이라면 평소 브리오니의 우아함을 좋아하던 이들에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서정적인 꽃이 살포시 내려앉은 매끈한 실크 타이는 격식을 갖춘 슈트에 점잖은 포인트로 손색없으니까.
Acne Studios collaborated with Raquel Dias
이번 시즌 아크네 스튜디오는 ‘젊은 사람과 하이엔드는 대체 어떤 관계일까?’라는 의문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풀어냈다. 날렵하게 다듬은 제트셋 룩과 아티스트 라켈 디아스의 사실적 프린트가 교차하는 의상은 이에 대한 직설적인 대답이다. 고로 시큼한 열매, 여성의 손가락과 립스틱처럼 관능적인 오브제를 반복적으로 찍어낸 실크 베스트와 스커트는 디자이너 조니 요한슨이 해석한 유스 컬처(youth culture) 그 자체인 셈.
에디터 한상은 (hanse@noblesse.com)
사진 정원영 스타일링 권진영(프리랜서) 어시스턴트 김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