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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비로소 어둠으로부터 이해된다

ARTNOW

국내에서 7년 만에 열린 비디오 예술의 거장 빌 비올라의 전시가 지난 5월 초 막을 내렸다. 최근 2년간 작업한 7개의 주요 영상을 선보인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은 고통과 파괴, 사랑과 회생, 죽음과 구원의 문턱을 오가며 영상 미학의 진수를 만끽했다.

Night Vigil, video installation, 2005/2009 Installation View at Kukje Gallery, Seoul, South Korea, 2015





Night Vigil, 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6 ft 7 in×17 ft 4 in (2.01×5.28m); room dimensions variable, 18:06 minutes, 2005/2009, Performers: Jeff Mills, Lisa Rhoden

빌 비올라는 우리가 인생을 살며 누구나 느낄 법하지만 정작 결론을 내기 어려운 삶의 여정에 대해 탐구하는 작가다. 이는 ‘자아 성찰’이란 단어와도 일맥상통하는데, 사실 자아 성찰이란 의미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라 그 뜻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함축하긴 매우 애매하다. 우선 쉽게 나, 개인의 존재부터 그 관점을 시작해보자.
지난 5월 3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빌 비올라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중 ‘내면의 통로(Inner Passage)’는 화면 안 사막에서 한 젊은 남자가 관람자의 시점을 향해 홀로 걸어오는 모습을 담았다. 이 작품에는 빌 비올라의 아들 블레이크가 등장한다. 그의 몸이 화면을 통과하는 동시에 극단적 장면 전환이 이루어진다. 강렬한 사운드를 배경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이 담긴,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동시에 슬프고 어두우며 추악한 것이 뒤섞여 등장한다. 그러다 영상 말미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평온한 사막을 걷는 뒷모습으로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는 내면의 고통과 두려움, 동시에 희망과 사랑 같은 이질적인 감정이 혼돈 속에서 요동치는 인생의 여정을 반추한다. 계속 한 지점을 향해 걷는 사람의 움직임은, 현실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 엉켜버릴지라도 이를 되돌아볼 여유 없이 지속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피곤한 삶의 여정을 짐작하게 한다. 빌 비올라는 그간 꾸준히 탐구해온 ‘나는 누구고,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거부하고 이를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또 다른 작가의 주요 연작 ‘신기루(Mirage)’도 다양한 관계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해 끊임없이 걷는다. ‘걷는다’는 행위가 함축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내면의 통로’가 개인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한다면 ‘신기루’ 연작은 개인에서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 집중한다. 관계란 크게 인생의 첫 공동체인 가족 안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 나이 든 자와 젊은이의 세대 관계(스승과 제자), 그리고 남과 여(연인)의 관계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개인의 관계는 타인과 조우할 때 실제적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 그리고 근본적 인간애는 그런 관계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미디어와 각종 드라마, 광고에서 그리는 인간관계와 그에 따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경험한 것이야말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간접경험보다 실로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빌 비올라는 누구나 느끼지만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미묘하면서도 단순한,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인간의 기본 감정을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궁극적으로 삶은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은연중에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세뇌되고 있는 남녀 관계는 표면적인 로맨스, 곧 단편적이고 찰나적인 감수성에 의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랑은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 남녀의 관계는 사랑을 하는 화자인 개인과(성의 구분을 배제하고) 사회의 관계로 확장시켜볼 수 있다.

Martyrs (Earth, Air, Fire, Water), video installation, 2014 Installation View at St. Paul’s Cathedral, London, UK, 2014

Night Vigil, 2005/2009, Color rear-projection video diptych, two large screens mounted on wall in dark room, overall projected image size: 6 ft 7 in×17 ft 4 in (2.01×5.28m); room dimensions variable, 18:06 minutes, Performers: Jeff Mills, Lisa Rhoden

전시장 2관 2층, 어두운 공간에 들어서면 두 비디오 화면을 나란히 설치한 작품 ‘밤의 기도(Night Vigil)’가 있다. 이 작품은 기존에 작가가 제작한 작품을 미국의 저명한 극작가 피터 셀라스(Peter Sellars)와 협업해 바그너의 19세기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로 재구성한 것이다. 셀라스 감독의 지휘 아래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를, 빌 비올라와 키라 페로브가 공동 프로듀스를 맡은 이 특별한 작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사에 따른 강렬하고 깊은 사랑’에 대한 전설을 다룬다. 요즘엔 사랑의 깊고 심오한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이 사실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극단적인 단어로 남녀 간의 관계를 쉽게 비하하곤 하는데, 그 단어를 접할 때마다 인간관계의 가치까지 추락하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사랑의 가치를 비하하는 이면에는 근래에 사회의 가역적이고 압박적인 기현상이 만들어낸 사랑의 강렬함이, 속도의 측면으로만 조명하는 분위기가 관련되어 있다. 여러 사회문제가 야기한 불안정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반대급부적으로 더욱 사랑을 갈망하지만,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아름답기 전에 조심스럽게 마련이고, 이는 결론적으로 사랑 표현에 대한 의욕까지 떨어뜨리곤 한다.
‘밤의 기도’의 영상은 한 여성이 어두운 방에서 촛불을 하나씩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금씩 밝아지면 이 장면과 병치된 또 다른 장면에서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관람객은 남자가 걸어오는 속도에 집중하게 된다. 이후 촛불을 모두 켠 여성은 물을 건너 화면으로 향하고, 남성도 타는 불꽃 더미를 지나 여성이 향하는 그곳을 향해 걷는다. 그들의 만남으로 영상은 끝난다. 슬로모션의 이 작품은 심오한 사랑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현실적 상징성을 품고 있다. 남녀의 극적인 사랑을 ‘가장 원초적인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립과 조화’로 상징화하며, 화면 안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남녀의 단순한 행위, 곧 초를 켜고 화면을 향해 걷는 움직임 등을 통해 미학적 관점을 조명한다. 남녀의 세밀한 심리묘사를 어둠과 빛으로 해석한 이 영상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어둠은 검지 않으며, 빛은 어둠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나는 물질적 메타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빌 비올라는 작품을 통해 실제 사랑이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표현의 한계를 위로한다.
당시 이 오페라는 바그너가 18세기 독일의 드레스덴 혁명에 가담한 후 체포를 면하고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의 삶을 바탕으로 했다. 그곳에서 바그너는 후원자와의 불륜으로 본처를 잃었고, 그런 비극적 경험이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잘 녹아 있다. 실제로 바그너의 욕망과 이기적 자아(ego)가 만들어낸 불륜은 죄지만, 채워지지 않는 허무와 분별없는 욕망 속으로 바그너를 내몬 당시 사회의 실패한 혁명사와 시대적 환경은 그 책임을 개인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빌 비올라가 차용하는 비디오 예술의 개념은 정치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성향이 짙다. 그러나 여전히 보수적이고 관념적인 해체를 지향하는 전위적 예술을 표방하는 것이 빌 비올라의 특징이다. 그가 언급한 ‘욕망’의 의미는 관점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편차가 있다. 여기선 본능적 욕구를 뜻한다기보다 개인이 염원하는 현실이 순수한 자기 욕망과 결합한 새로운 어떤 지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우리는 ‘현실적이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현실이 지닌 한계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부정적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시대가 말하는 현실주의자, 곧 리얼리스트(realist)는 그 누구보다 한계의 여건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는 동시에,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앞을 향해 움직이는 존재다. 그 때문에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무엇을 봐야 할지, 그리고 마주해야 할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주제”이며 나아가 “이 주제는 삶에서 예술의 필요성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개인은 사회에 존속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나약한 동시에 불안정한(vulnerable) 존재’라는 생각을 강렬한 비주얼로 나타낸 ‘순교자(Martyrs-Earth, Air, Fire, Water)’(2014년) 시리즈다. 애석하게도 전시장에는 ‘물의 순교자’ 한 작품만 설치했으며, 언급한 네 작품의 완결본은 현재 영국의 세인트폴 성당 내 비디오 작품으로 영구 설치 중이다.
철학적 관점에서 사랑의 본질은 ‘희생’이다. 희생은 상대적이긴 하나 개인의 회복을 위한 한 걸음이며, 다음 세대에 그것이 어떻게 회복의 유산으로 작용하는지 목도하게 하는 힘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희생은 강요당한 희생인가, 아니면 개인의 선택적 희생인가? 희생이라는 단어가 지닌 무거움(heaviness)은 본능적으로 희생이라는 역할을 거부하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어 어원이 ‘증인’을 의미하는 순교자라는 단어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적 입장을 초월, 실시간으로 수많은 뉴스와 미디어에서 전송되는 사건을 통해 오늘날 우리를 타인이 겪는 고통의 증인으로 만들어낸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자를 위해 암묵적으로 희생하는 일종의 동시대 ‘순교자들’은 신념을 위한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궁극의 고통은 종래에 회복과 아주 가까이 닿아 있으며, 회복을 위한 고통이 주는 가치는 절대적 미학으로 승화된다. 그 때문에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실질적 회복이 이번 빌 비올라의 개인전에서 실현되지 않았을까? 나 또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전민경(국제갤러리 대외협력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