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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oung Jeong 정보영

ARTNOW

정보영은 공간을 그리는 작가다. 실재하는 세계를 화폭 위에서 초현실적 세계로 재구성한다. 공간과 오브제, 빛과 어둠 사이에 그녀가 추구하는 숭고의 세계가 있다. 군포에 자리한 작업실, 작가가 살아가고 세계에 반응하며 그림을 그리는 현실의 공간에서 정보영 작가를 만났다.

Looking, oil on canvas, 53×53cm, 2014

작업실에서 현재 작업 중인 작품과 최근작 사이에 앉은 정보영 작가

십수 년간 공간을 그려온 작가의 공간은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하면서도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질 것 같은데, 작가님에게 이곳은 어떤 공간인가요?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에요. 집에서 작업실로 출퇴근하는데, 혼자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이곳을 참 좋아해요. 예전에는 작업실 공간을 그리기도 했죠.

작품들이 연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일관된 면이 있어요. 신비롭고 낯선 분위기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법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업실처럼 말이죠. 작품 속 공간은 모두 실재하는 장소인가요?
2005년부터 최근까지 그린 모든 작품이 청주에 있는 한 미술관이에요. 건축물을 지을 때부터 봤는데 빛이 들어오는 각도나 건물의 구조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전시를 한 인연도 있어서 그곳을 본격적으로 그려보기로 하고 작업을 시작했죠.

10여 년 동안 그렇게 꾸준히 한 장소를 그려왔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꼭 그 장소였기 때문은 아니고, 제가 관찰하기 편해서 선택한 곳인데 장소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공간 드로잉을 차용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최근엔 특정 공간을 사진으로 촬영한 뒤 인화하고, 그걸 캔버스에 다시 옮깁니다. 표현적인 면이 강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영감을 받거나 어떤 충동이 일 때 좋은 작품이 나오기도 하지만 저는 스케줄에 따라 계획적으로 작업하는 편이에요. 다만 사진 작업이 만족스럽게 잘 진행됐을 때, 빨리 붓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Disappearing, oil on canvas, 162×227cm, 2006

Belonging together within, oil on canvas, 97×194cm, 2013

Still looking, oil on canvas, 116.8×91cm, 2015

1997년 첫 개인전 이후 대부분의 작품이 공간을 그린 것입니다. 과일이나 가구의 일부분처럼 사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조차 공간 속에서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어떻게 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건가요?
회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했어요.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회화를 규정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리기와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죠. 초반에는 대상물을 주로 그렸는데 정물을 그리더라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모호한 그림이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점차 관심이 회화의 구성 요소 중 빛과 공간에 대한 것으로 확대되면서 공간을 중점적으로 그리게 됐어요.

앞으로는 어떨 것 같나요? 공간에 정착할 것 같은지, 아니면 다른 것으로 주제를 옮겨갈지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공간에 정착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회화를 연구하며 공간 그림을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림을 통해 회화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지만, 점차 빛이나 색채 같은 회화 요소 외에도 공기의 흐름을 다루거나 사건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거든요. 보이지 않는 것을 공간이라는 가시적인 것으로 다시 보이게 하는 거죠.

창을 통해 실내에 직선으로 비치는 햇살, 몽환적인 촛불, 책상 위를 고요히 밝히는 조명 등 여러 작품에서 어둠과 빛의 사용이 두드러집니다. 의도적으로 이런 극적 대립을 시도하는 건가요?
공간을 관찰할 때 창문으로 빛이 떨어지는 것을 유심히 보곤 해요. 실내를 비추는 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벽의 변화를 만드는 걸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어둠과 빛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없지만 명암 대비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고 싶었죠.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바로크 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작품에 반영된 면도 있어요.

공간의 느낌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하는 힘이 있어요. 혹시 종교적이거나 명상적인 요소의 영향을 받진 않았나요?
인간이 도달하기 힘든 한 가지를 계속 추구해가는 수도자의 자세를 존경해요. 종교는 없지만 종교적 태도는 배우려고 하죠. 숭고함이 느껴지는 대성당 같은 곳이 제 이상적인 공간인데 그런 분위기가 작품에 드러난 것 같습니다.

작품 속 공간을 보며 사람이 등장하는 상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비어 있는 공간에 사람을 그려볼 생각을 한 적은 없나요?
사람을 그린 적이 딱 한 번 있어요. 2003년에 그린 자화상이에요. 그 외에도 작은 인물이 등장한 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라 유령을 그린 거였죠. 사람이 등장하면 시선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에 공간에 사람을 넣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제 작품을 감상하는, 현실 속에서 움직이는 감상자에게 공간을 열어주고 싶어요. 제 작품에서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게 아마 의자일 거예요.

2007년부터 몇 년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작품이 낙찰되기도 했고, 국내외 아트 페어에서 작품이 계속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최근 G-Seoul에도 출품하셨고요. 사람을 직접적으로 그리진 않지만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작품이 일상적 풍경이라 친근하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묘한 분위기에 이끌린다는 반응이 많아요. 컬러가 중성적이라 차분해진다는 평을 듣기도 하죠. 구상회화지만 꼭 그렇게만 규정할 수 없는 현대적 요소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것 같습니다.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작품을 보니 또 어떤 공간이 탄생할지 궁금해집니다. 가장 가까운 미래에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요?
10월 21일부터 약 3주간 이화익갤러리에서 전시를 열 계획이에요. 그동안 그룹전과 2인전에 주로 참여하다 3년 만에 개최하는 개인전입니다. 요즘 한창 개인전에 출품할 작품을 그리고 있는데 25점에서 30점 정도 전시할 예정이에요.

그땐 어떤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될까요?
공간과 빛에 관한 그림이라는 점에서는 최근 작품과 같은 맥락일 거예요. 하지만 지금까지 직선적인 빛 위주였다면 반사되거나 곡선적인 빛도 작업하려고 해요. 변화가 있겠지만 1990년대부터 꾸준히 사유하고 표현해온 주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겁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