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밤의 속삭임
신비로운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여름밤의 공기를 느끼며 동서양의 세 작품을 감상해보자.
김환기, 여름 달밤, Oil on canvas, 1961, 국립현대미술관 / ⓒ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1913~1974년)
전라남도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에서 대지주의 1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일찍이 서울에서 유학했으며 1933년에는 도일해 니혼 대학 미술부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주로 향토적 소재를 추상미술 언어로 표현한 김환기는 귀국 후 서울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추상미술 그룹 신사실파를 창립하기도 했다. 1956년부터 3년 동안 파리에 체류했으며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 활동을 하던 중 1974년 뇌출혈로 별세했다. 서울 부암동에 부인 김향안의 주도로 1992년 설립한 환기미술관이 있다.
그림과 그리움
얼마 전 신문에서 한 시인이 쓴 그리움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리움이 없는 사람은 시를 쓰지 못한다”라고 말한 스승을 회고하는 내용이었죠. 그 글을 읽으면서 그리움은 비단 시의 근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림 역시 그리움에서 비롯됩니다. 어원상 우리말의 ‘그림’과 ‘그리움’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립다’는 ‘보고 싶거나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라는 뜻으로, ‘그림을 그리다’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는 마음이 간절한 상태를 말하는 ‘그리움’은 무언가를 마음에 그림으로써 떠올리는 것이죠. 김환기의 ‘여름 달밤’을 보며 새삼 이러한 그리움과 그림의 연관성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 그림은 김환기가 그리워한 고향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남도의 섬 소년으로 태어나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일본, 프랑스, 서울, 미국 등 삶의 거처를 옮긴 그에게 고향과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창작의 강력한 원천이었습니다. 평론가 오광수의 말처럼 김환기는 ‘영원한 망향의 화가’였습니다.
감상 포인트
시인이 언어로, 음악가가 음으로 소통하듯 화가는 색으로 말합니다. ‘여름 달밤’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주조로 한 그림입니다. 어릴 적 본 신안 앞바다의 푸른빛일까요? ‘환기 블루(Whanki Blue)’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그는 청색을 즐겨 사용한 화가입니다. 피카소의 청색이 우울을, 칸딘스키의 청색이 고도의 정신성을 상징한다면, 김환기의 청색은 우리의 하늘과 바다에서 온 것입니다. 그의 자연 사랑은 그의 호, ‘나무와 대화한다’를 의미하는 ‘수화(樹話)’에서도 느껴집니다. 평생 추상의 세계를 지향한 화가의 그림답게 화면 속 대상은 매우 단순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몇 소재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시기 김환기의 다른 그림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요소이기도 한데, 우선 화면 상단에는 넉넉한 느낌을 주는 보름달이 떠 있습니다. 붉은 별과 연한 하늘빛 구름도 보이는군요. 그런가 하면 아래쪽에는 2개의 섬이 사이좋게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듯 자리합니다. 나지막한 산이 있고 섬에는 맑은 물이 흐르죠. 바다의 빛깔이 하늘빛의 변화에 민감하게 조응하듯, 작은 섬을 비추는 달 속에는 섬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여름 달밤’은 김환기가 3년 동안 파리에 거주한 뒤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서울에서 그린 대표작입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수화의 그림에서 두드러지는 선적 표현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두터운 재질감은 그가 유럽에서 경험했을 전후 추상미술, 앵포르멜과의 연관성을 상기시킵니다. 이 그림의 제작 연도인 1961년 즈음 화가가 쓴 글을 볼까요. “세계적이라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 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더욱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외국 생활 끝에 그는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김환기는 ‘여름 달밤’을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했고 회화 부문 명예상을 받았습니다. 비엔날레 참여를 계기로 그는 세계 무대에서 제대로 작품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품게 되었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직을 그만둔 채 나이 쉰에 뉴욕행을 감행했습니다. 예술을 향한 끝없는 도전 의식으로 안정된 삶을 포기한 수화는 자신의 기억 속에 각인된 자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세련된 조형 언어로 표현하고자 부단히 애쓴 화가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만큼 그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존재합니다. 그가 백자를 사랑한 것이나 뛰어난 글재주, 음악과 시에 대한 감수성, 부인 김향안(1916~2004년)과의 사랑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 유명하죠.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회고에 따르면 김환기는 한마디로 ‘멋’이라는 단어에 딱 들어맞는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또 성북동에서 김환기와 가까이 지낸 화가이자 미술평론가 김용준의 말을 옮기면 그는 “예술을 먹고 예술을 입고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김환기의 고향은 목포에서 다시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안좌도입니다. ‘여름 달밤’에 그린 기좌도와 안창도, 두 섬 사이 갯벌이 매립되면서 ‘안좌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하죠. 섬 곳곳에 환기를 추억하는 공간이 존재합니다. 작년에 착공한 김환기미술관 건립 소식도 들려옵니다. 올여름에는 쫓기듯 분주한 삶에서 벗어나 안좌도의 밤하늘과 바다를 보며 ‘환기 블루’의 근원을 직접 눈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Edward Hopper, Night Windows, Oil on canvas, 1928,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 ⓒ Photo SCALA, Florence
Edward Hopper(1882~1967년)
20세기 초 미국의 풍경과 도시의 삶에 드러난 적막한 분위기를 잘 그려낸 화가로, 후세 미국의 회화 작가뿐 아니라 영화감독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882년 뉴욕 주 나이액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미술 교육을 받았고, 40세까지 무명 화가로 삽화를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 1923년 이후 빠르게 명성을 얻었고,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화단의 절대적 주류로 떠오른 시기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화풍을 고수했다. 호퍼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과 조명의 효과로 인물의 고독을 표현하며 ‘호퍼풍’이라 부를 만한 특징을 만들어냈다.
도시의 밤, 모퉁이 방
어둠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본능적으로 빛을 발하는 곳을 향해 시선이 움직입니다. 무심결에 ‘저 사무실에 저런 벽시계가 걸려 있구나’, ‘저 집에는 가족사진 액자를 걸어놓았구나’ 같은 사실을 알게 되죠. 도시의 일상에선 흔한 일인데, 도시의 삶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을 화폭에 곧잘 담아내는 에드워드 호퍼가 이런 것을 놓칠 리 없습니다. 1928년에 그린 ‘밤의 창’은 스스로 어둠 속에 묻힌 채, 안전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엿보는 시각적 욕망을 제법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그림의 중심에는 인공조명 아래 피부가 하얀 여자의 뒤태가 보입니다. 핑크색 천으로 감싼 허리와 엉덩이의 윤곽은 크림색 벽과 녹색 바닥, 침대나 라디에이터 등의 사물처럼 단순명료합니다. 여자가 몸을 숙인 짧은 순간을 사진처럼 포착해 오래도록 시선을 붙잡네요. 더운 날씨 탓인지 그녀는 창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왼쪽 창의 하얀 커튼은 밖을 향해 나부끼고, 환하게 불을 밝힌 방 주변은 모두 적막한 도시의 어둠에 잠겨 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가 방 안에 혼자 있지만 관찰자는 조용히 지켜볼 뿐 서둘러 만나러 가지는 않을 겁니다. 마치 연극 무대 위에 선 여배우를 바라보듯, 직접 다가가지 않는 그의 고독과 욕망은 계속됩니다.
감상 포인트
이 그림은 언뜻 보면 빛으로 가득한 3개의 창과 나머지 어둠이 대조를 이루는 단순한 구도 같습니다. 하지만 방의 크기나 구조, 그림자의 방향과 각도를 천천히 살펴보면 다중적 시공간을 세심히 구성해 연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퍼의 그림에서 벽이나 창문 같은 건축적 요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심리나 주제를 대변하는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조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그림에선 밤의 어둠과 실내 인공조명의 밝음이 빚어내는 극렬한 대비가 작품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조도의 차이 때문에 원근법적 거리감은 애매모호해지고, 욕망의 시선이 더욱 솔직하게 드러나죠.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조금 경박하게 말해볼까요? “만약에 저 창문, 그리고 여름밤의 짙은 어둠과 방 안의 눈부신 빛이라는 장치가 없다면 그녀의 엉덩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요. 앨프리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흑백영화 <이창>도 이러한 응시와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호퍼는 유난히 영화와 인연이 깊은 화가입니다. 영화관을 소재로 한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고, 20세기 초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서도 특히 필름 누아르 감독들의 작품은 호퍼의 시각적 표현 형식을 많이 따랐습니다. 2013년에는 아예 호퍼의 회화 작품을 소재로 제작한 <셜리에 관한 모든 것(Shirley: Visions of Reality)>이라는 영화도 나왔죠. 오늘날 호퍼의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영화에 익숙한 요즘 세대가 호퍼의 작품을 친근하게 느끼고 좋아하는 이유일 겁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녀
이 그림을 보며, “저렇게 훔쳐보는 건 범죄 아니에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죠. 페미니즘 이론가들은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하는 시선에 대해 공격했습니다. 여성에 대한 호퍼의 태도는 요즘 관점에서 보면 구시대적이고 남성우월적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호퍼가 활동한 시기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시작되며 남성들이 위기감을 느끼던 때입니다. 그의 개인사에도 이런 시대상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비슷한 연배의 여성 화가 조세핀 니비전(Josephine Nivision)과 결혼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녀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고,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거의 그녀를 모델로 했습니다. 매우 낭만적인 남녀 관계 같죠? 하지만 호퍼 부부의 미묘한 갈등에 대해 주변의 증언이나 조세핀이 쓴 글에 세세히 남아 있습니다. 아내는 다소곳한 내조자의 역할을 넘어서는 갈망을 품고 있는데, 호퍼는 이에 대해 은근히 탐탁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아내가 자동차의 핸들을 잡으면 역시 여자는 운전 실력이 남자보다 못하다고 트집을 잡는 식으로 말이죠. 다시 ‘밤의 창’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림 속 여자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두 눈을 빤히 뜨고서 이쪽을 뚫어져라 마주 보는 순간을 상상해보세요. 숨죽이게 하는 적막감이 느닷없이 들려올 비명 소리를 예고하는 느낌이죠. 호퍼의 여름밤은 뜨거운 공기 속에 오싹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 더욱 매력적입니다.
글. 신혜성(미술평론가)
Marc Chagall, Midsummer Night’s Dream, Oil on canvas, 1939, Grenoble, Musee de Grenoble
Marc Chagall(1887~1985년)
1887년 7월 7일, 벨라루스 비텝스크에서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모이셰 샤갈(Moyshe Shagal)이며, 마르크 샤갈은 프랑스식 표기다. 그는 20세기 유럽과 미국 등 현대 화단의 가장 진보적 흐름을 누비며 독창성과 일관성 있는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발전시킨 화가다. 판화, 도자기, 성경 삽화, 랭스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파리 오페라극장 천장화 등 세계 곳곳에서 눈부신 색채 예술을 구현했다. 1977년 프랑스 정부에서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 훈장을 받았고, 생존 화가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이 걸리는 영광을 누렸다.
사랑을 꿈꾸기 좋은 한여름 밤
혈기왕성한 젊음의 계절입니다. 이런저런 몽상으로 열정을 달래며 밤을 기다려봅니다. 더위를 식히러 내려온 선녀를 사랑한 나무꾼처럼 용기와 집념으로 하늘까지 올라가보고,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극성스러운 사랑처럼 오작교를 놓고 천상의 사랑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셰익스피어처럼 마법에 걸린 연인의 엇갈린 사랑싸움으로 일대 소동을 벌이는 꿈같은 이야기를 펼치거나, 멘델스존처럼 짝을 찾은 행복한 연인에게 결혼행진곡을 울려주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여름 밤은 사랑을 꿈꾸기 좋은 시간입니다. 샤갈의 ‘한여름 밤의 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샤갈은 붉은 숲 속 요정이 뿌린 마법꽃의 즙으로 인해 당나귀와 사랑에 빠진 신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당나귀 신랑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신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미소를 띤 채 붉게 상기된 얼굴의 당나귀는 신부의 하얀 어깨를 감싸고, 신부는 얼굴을 가리던 부채로 신랑의 몸을 덮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어떠한 편견이나 의심도 끼어들 틈이 없어 보입니다. 황금빛 밤하늘과 붉은 꽃즙, 열매즙을 머금은 요정이 신랑과 신부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사랑의 결실과 축복이 어우러진 숲 속의 한 장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주인공은 “나는 당나귀와 사랑하는 꿈을 꾸었어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마법으로 당나귀를 사랑한 왕비는 자신의 사랑을 잠깐의 꿈으로 돌리며 왕의 품으로 되돌아가버립니다. 그러나 샤갈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당나귀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고 보니 당나귀 신랑의 모습은 샤갈의 다른 작품, ‘생일’이나 ‘산책’, ‘에펠탑의 신랑 신부’에 등장하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자와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감상 포인트
한여름 태양과 겨룰 만큼 패기와 열정으로 불타는 젊은 샤갈은 고향 비텝스크에서 아홉 살 연하의 벨라와 만났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에 화가 지망생인 샤갈은 초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벨라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죠. 하지만 그는 이후 파리와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열고 고향으로 돌아와 벨라와 당당히 결혼했습니다. 비텝스크 미술학교 교장을 지내고, 세계 곳곳의 현대미술 중심지를 종횡무진 누비며 예술가로서 명성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혁명과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유대인인 샤갈은 늘 감시의 대상이었고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유랑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8년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이미 4년 전 벨라는 세상을 떠났죠. 샤갈은 벨라가 평생토록 자신의 그림이었다고 고백했고,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며 벨라와 사별한 후 40년을 더 살았습니다. 사랑을 그린 샤갈의 작품 속 남자는 대부분 샤갈 자신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는 이중국적자로서 그리고 유대인으로서 어디에도 정착할 수 없는 시기에‘한여름 밤의 꿈’을 그렸습니다. 여느 작품과 달리 이 작품에서 샤갈은 당나귀의 모습에 자신의 사랑을 이입했습니다. 그림 속 신부는 당나귀가 살짝 가린 얼굴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죠. 신부의 깊은 눈빛과 당나귀의 얼굴에 선명한 초록 눈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전합니다. 당나귀 신랑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초록빛 작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샤갈의 사랑을 세상에 들려주려는 듯합니다.
샤갈과 벨라의 꿈과 사랑
“사랑은 맹목적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한 구절은 ‘한여름 밤의 꿈’의 모티브가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합니다. 그것은 허깨비 장난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반면 샤갈은 사랑이라는 맹목적인 감정 때문에, 언제나 그 사랑과 만나는 꿈을 그립니다. 샤갈은 생전에 “고향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향에서 나는 낯선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유럽이 나와 나의 조국, 고향을 사랑해줄 것이다”라고 한결같은 짝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샤갈은 벨라와 함께 고향의 풍경과 민속적 주제, 유대인의 성서 이야기를 추억하고 기억하며 원초적 향수와 동경,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 등을 그립니다. 그리고 샤갈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글. 조성지(미술평론가)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