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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데코를 둘러싼 모험, 발루아 갤러리

LIFESTYLE

아르데코는 1925년부터 1930년대 후반 사이 프랑스를 시작으로 잠시 동안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글로벌한 예술양식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합리성과 단순성, 기능성을 요구하는 시대적 배경에서 자연스레 잉태됐다. 하지만 현재 그런 아르데코 작품을 취급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반세기 가까이 아르데코 작품을 취급해온 발루아 갤러리를 통해 아르데코에 대해 찬찬히 알아봤다.

반세기 가까이 아르데코 작품과 가구에 집중해 온 파리의 발루아 갤러리

반세기 가까이 아르데코 작품과 가구에 집중해 온 파리의 발루아 갤러리

발루아 갤러리, 그 전설의 시작
파리의 이름난 갤러리가 모여 있는 생제르맹 거리. 한낮의 햇볕을 머금은 통창 너머로 고급스럽고 화사한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반세기 가까이 아르데코 가구에만 집중해온 발루아 갤러리(Galerie Vallois). 로베르 발루아(Robert Vallois)와 체스카 발루아(Cheska Vallois)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아르데코 전문 갤러리다. 이들이 보유한 작품 리스트는 화려하다 못해 눈부실 정도다. 에밀 자크 루만(Emile-Jacques Ruhlmann)과 아일린 그레이(Eileen Gray), 쥘 르뢰(Jules Leleu), 장 뒤낭(Jean Dunand) 같은 역사에 길이 남을 쟁쟁한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부터 20세기 조형미술의 일인자로 불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까지. 이곳에 있는 가구만 한자리에 모아도 역사박물관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그런데 궁금한 거 하나. 이들은 그간 어떻게 이런 대단한 가구를 취급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전에 이들이 오랜 기간 집중해온 아르데코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르데코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1925년 세계장식미술박람회 포스터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아르데코’라는 명칭은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장식미술박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es Arts Décoratifs et Industriels Modernes)에서 처음 시작됐다. 장식미술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아르 데코라티프(Arts Decoratifs)’의 두 단어 앞 글자를 몇 개 따와 조합한 것.
하지만 아르데코가 미술 양식에서 정식 이름으로 쓰인 건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1960년대의 일이다. 아르데코는 건축과 회화, 인테리어, 패션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전반을 통틀어 가장 인기 있고 보편성까지 발휘한 스타일이지만(아르데코 건축은 특히 미국에서 빛을 발했다.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현재 뉴욕의 스카이라인 명물이 전부 아르데코 양식에서 탄생했다), 미술사가들은 그 인기가 고작 20여 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낱 깊이 없고 절충적인 장식예술 정도로만 보았다.
다시 발루아 부부 얘기로 돌아가보자. 이 부부가 아르데코에 관심을 두게 된 건 1960년 후반 파리 마레 지구의 장식미술 전문 도서관인 포네 도서관에서였다.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포네 도서관은 아르데코 가구로 채운 옛 귀족의 서재를 개조한 것으로 알찬 컬렉션을 자랑했다. 평소 오브제 아트에 관심이 많았던 로베르와 체스카 두 사람은 자연스레 도서관 서가를 거닐며 연애했다. 상어 가죽과 양피지, 상아와 금속 등 온갖 고급재료로 섬세하게 가공해 만든 도서관 내 가구는 당시 인기였던 18세기 가구에 없는 어떤 현대적인 느낌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서가 한쪽 구석에 깊숙이 꽂혀 있던 아르데코 관련 옛 신문기사를 발견했고,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아르데코에 관한 책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우린 주로 1920~1930년대에 발행한 신문이나 잡지를 들추며 아르데코 정보를 습득했죠. 1960년대에도 아르데코라는 단어는 이따금 쓰였지만, 일반 시장에 관련 서적이 나오기 시작한 건 1980년부터였어요.” 발루아 갤러리의 안주인 체스카 발루아여사의 말이다.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에밀 자크 루만의 캐비닛. 단순한 직선미와 화려한 태슬 장식 문고리가 특징이다.
Emile-Jacques Ruhlmann, Cabinet in amaranth, marquetry of ebony and ivory, Circa 1920
ⓒ Arnaud Carpentier -Galerie Vallois Paris

프랑스 태생의 미국 가구 디자이너 피에르 샤로의 책장 테이블. 풍부한 상상력과 기교로 아르데코를 시대를 풍미 했던 그는 기능성을 중시한 가구를 많이 남겼다.
Pierre Chareau, Bookcase table in walnut and iron with black patina, Circa 1928
ⓒ Arnaud Carpentier -Galerie Vallois Paris

지난 10여 년간 발루아 부부가 꾸준히 주목하고 있는 아르데코 대표 작가 장 미셸 프랑크의 캐비닛. 값비싼 상어 가죽을 사용해 오랫동안 색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이다.
Jean-Michel Frank, Cabinet in palissander and shagreen, Circa 1930
ⓒ Arnaud Carpentier -Galerie Vallois Paris

흠잡을 데 없는 옻칠공예로 유명했던 장 뒤낭의 암체어. 직선과 곡선이 간결하게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 매력이다.
Jean Dunand, Lacquered wood armchair, 1930
ⓒ Arnaud Carpentier-Galerie Vallois Paris

두 사람이 파리에 아르데코 전문 갤러리를 연 것은 1971년. 하지만 그 시절 파리지앵은 아르데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둘은 싼 가격에 아르데코 작품을 대량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아르데코 초기의 이름난 작가들의 가구를 찾아내는 것 또한 지금보다 훨씬 수월했다. 현재 수십에서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아일린 그레이나 뒤낭의 가구도 마찬가지. 그런데 어느 날 아르데코 가구에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름 아닌 패션 디자이너들이었다. 얼마 후, 발루아 갤러리에선 이브 생로랑이나 칼 라거펠트 같은 당대의 최고 디자이너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이브 생로랑은 한 달에도 서너 번씩 갤러리로 찾아와 아래와 같은 아르데코 가구의 매력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고 한다. 그들은 클래식하게 균형 잡힌 형태에서 재료로만 그 아름다움을 살린 아르데코의 매력에 푹 빠졌다. 또 장인들이 만드는 아르데코 특유의 수공 기술도 좋아했다. 그럼 여기서 잠깐, 그 시절 패션 디자이너에게 사랑받은 아르데코 가구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진 기하학 형태를 띠는 것(기본 형태의 반복, 동심원(同心圓), 지그재그 등이 수 없이 쓰였다), 둘째, 장식보다는 소재에 중심을 둔 것(형태는 단순해졌지만 소재는 역사상 최고라고 할 만큼 화려했다. 중국의 칠기, 인도의 티크, 일본의 목재 등 온갖 이국적인 소재가 쓰였다), 셋째, 광채를 중시한 것(아르데코 시대에는 화려한 영화를 드러내기 위해 광채를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단순하게 형상화한 해돋이 패턴이 이 시기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였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 시절 패션 디자이너들의 안목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아르데코 가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런가 하면, 아르데코는 새로운 건축에 어울리는 실내 인테리어를 고민하면서부터 비롯된 양식이라는 얘기도 있다. 로베르 발루아는 프랑스의 전설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독일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 등 아르데코 시대 건축가들이 1920년대 중반에 보여준 건축물은 죄다 직선적인 데다 장식이 없는 간결한 디자인이었는데, 그것이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으로도 이어진 거라고 말했다. 때문에 아르데코 가구 작품은 기계적인 추상 형태나 직선을 대칭으로 배열해 공간을 장식하고, 전체 틀을 이루는 형태 자체도 대칭을 이룬 것이 많다. 또 이러한 대칭 구도는 직선 그리고 기하학 패턴과 함께 기능적이면서 단단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아르데코 이전의 미술 양식인 아르누보(식물의 잎과 줄기에서 영감을 받은 가늘고 긴 선적인 요소를 주로 쓴, 1890년대부터 1910년 사이 세계적으로 유행한 미술 양식)가 건축에 종속된 것으로 여겨졌다면, 아르데코 시대에는 실내 디자인이 더 주목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독립된 직업이 생긴 것도 바로 그 시기다.

에밀 자크 루만이 직접 디자인한 테이블 커버. 아르데코를 대표하는 기하학적인 사각형 무늬가 돋보인다.
Emile-Jacques Ruhlmann, Cabinet in amaranth, marquetry of ebony and ivory(cover), Circa 1920
ⓒ Arnaud Carpentier-Galerie Vallois Paris

아르데코 가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지난 10여 년간 발루아 부부가 꾸준히 주목해온 아르데코 작가를 한 명 꼽으라면 단연 장 미셸 프랑크(Jean-Michel Frank, 1895~1941)다. 장 미셸 프랑크는 아르데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1930년대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그간 작품의 수요에 비해 그수가 많이 풀리지 않은 인기 작가다. 2000년대 들어 아시아에도 이름이 꽤 알려졌지만 여전히 전 세계의 아르데코 컬렉터는 그의 작품에 목말라 있다. 한데 발루아 부부는 수년 전 그간 쌓은 내공으로 그의 작품 수십 점을 한곳에 모았다. 부부는 파리 앤티크 비엔날레(Biennale des Antiquaires)에 그의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유럽 전역을 돌았고, 마침내 30점의 오브제를 사들였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장 미셸 프랑크의 작품 수십 점이 비엔날레에 출품된다는 소식에 연일 뜨겁게 뉴스를 내보냈다. “제 기억으로는 아르데코에 대한 관심이 대중에게 최고점을 찍은 건 2000년대 들어서입니다. 장 미셸 프랑크의 작품 또한 그즈음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 몇 점 출품됐죠. 상어가죽으로 만든 그의 작은 소파 한 점이 역대 최고 수준인 49만 파운드(약 8억4500만원)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후 파리의 한 경매에서는 랑방 아파트를 장식한 아르망 알베르 라토(Armand-Albert Rateau)의 테이블도 약 200만 유로(약 27억4100만 원)에 거래됐고요. 사실 제가 갤러리를 처음 연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아르데코의 대표 작가인 에밀 자크 루만의 옷장도 1000프랑(현재 약 150유로, 약 20만 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라토의 작품도 1만 유로(약 1370만 원)에 살 수 있었죠” 로베르 발루아의 말이다. 물론 아르데코 작품의 가격‘논란’에 대한 로베르 발루아의 사연은 이것말고도 더 있다. 심지어 그 사례의 주인공이 본인인 것도 있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사망한 다음 해에 열린 2009년의 파리 크리스티 경매. 그해 로베르와 체스카는 일생일대의 사고를 쳤다. 이브 생로랑과 그의 애인 피에르 베르제의 소유로 출품한 아일린 그레이의 작품 ‘용(龍) 안락의자’를 무려 2190만 유로(약 424억 원)에 낙찰받은 것. 이는 20세기 가구 경매 역사상 단일 품목으론 최고가를 갱신한 것이다. 한데 부부가 낙찰받은 의자엔 사연이 숨어 있었다. 그 의자는 바로 1970년대 당시 발루아 갤러리를 방문한 이브 생로랑에게 발루아 부부가 싼값에 판 것. 발루아 부부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그저 “갈망에 대한 대가”라는 말로 낙찰의 기쁨을 표현했다.
사실 표면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을 뿐, 아르데코의 영향은 지금도 건축과 회화, 인테리어, 패션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내재해 시대와 함께 발전하고 있다. 또 많은 예술사가가 입을 모아 말하듯 아르데코는 19세기까지 이어진 옛 양식과 결별한 ‘최초의 모더니즘’, 동시에 컬렉터들의 구미를 새롭게 자극하는 가장 ‘최신판’ 앤티크로 그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최고의 가구와 오브제만 엄선하기로 이름난 발루아 갤러리. 앞으로도 아르데코에서만큼은 리더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듯하다.

로베르와 체스카 발루아 부부

Mini Interview with Vallois couple

반세기 가까이 아르데코에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오직 열정과 정신으로만 버텨왔다. 앤티크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은 무엇보다 열정이 중요하다.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살다보니, 사실 어느 순간에도 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이따금 갤러리에서 특별한 가구를 만나면, 그간 흘린 땀과 수고한 노력은 싹 잊는 편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1971년 파리에 첫 갤러리를 열고, 미술 중개상이 신비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일린 그레이의 가구 2점을 갤러리로 가져왔다. 하나는 소파였고, 다른 하나는 래커 칠을 한 사이드 보드였다. 우리 부부가 처음으로 아르데코의 명작을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 한데 아일린 그레이는 당시 지금만큼 유명하지 않았다. 우린 그녀의 작품을 싼값에 사고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당시 우리는 그녀의 창의성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가.
지금껏 발루아 갤러리에서 거래된 아르데코 가구 중 최고의 작품은? 단 하나의 작품을 고르는 건 어렵다. 갤러리에 있는 모든 작품이 우리 취향에 맞고, 우린 지난 45년간 명작과 역사적인 작품을 포함해 매우 엄선한 작품만 다뤄왔기 때문이다.
아르데코 전문 갤러리를 운영하는 동시에, 한쪽에서는 현대미술 조각도 취급한다. 이는 대세를 따르려는 시도인가? 갤러리에는 가구만큼이나 조각품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그리고 1971년 갤러리를 열 당시에도 우린 가구보다 현대 조각을 먼저 전시했다. 지금도 발루아 갤러리에는 가구와 조각이 늘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더 보기 좋아서일 뿐이다.
아르데코 시절에 실제 유명했던 작가가 아닌, 발루아에서 발굴해 유명해진 작가도 있나? 아일린 그레이와 아르망 알베르 라토를 재발견한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그들의 창의성을 처음으로 칭찬해준 갤러리스트이자 좋은 동료였다.
오늘 처음 발루아 갤러리를 방문한 이가 있다. 그에게 어떤 작품을 추천할 것인가? 먼저 좋아하는 작품을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말할 것이다. 이후 그가 고른 작품을 보고 어떤 작품을 선호하는 지 파악한 뒤 그와 함께 차분히 작품을 고를 것이다. 우리 갤러리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활짝 열려있다.
갤러리를 열기 전과 후, 발루아 부부의 삶은 어떻게 변했나? 갤러리를 열기 전 우린 젊지만 어른이었다. 하지만 갤러리를 열고 나서 우린 나이 들수록 더 어려졌다. 필요한 게 있으면 손에 넣으려 했고, 좋은 작품 앞에서 깔깔 웃으며 서로 껴안았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애가 된 것 같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발루아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