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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외도하고

ARTNOW

세계적 아트 딜러와 톱 셰프의 만남, 그리고 결국 미술이 가장 좋았다고 고백하는 두 아티스트의 이유 있는 외도. 이 모든 것이 뉴욕이라 가능한 일.

값비싼 건축 자재와 미술품으로 채워진 카포 마사의 실내 전경 ⓒ Blackletter

카포 마사의 인기 메뉴 중 하나인 참치 타르타르 ⓒ Blackletter

다양한 칵테일과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즐길 수 있는 카포 마사의 바 ⓒ Blackletter

미술계 톱 딜러와 다이닝계 톱 셰프의 만남
세계 최정상 작가들이 소속된 가고시안 갤러리의 수장이자,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트 딜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이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뉴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마사(Masa)’의 마사 다카야마(Takayama Masa)와 함께 일식 레스토랑 카포 마사(Kappo Masa)를 선보인 것. 사실 이들이 함께 레스토랑을 열 거라는 소문은 뉴욕에서 꽤 오래전부터 나돌았다고 한다. 래리 가고시안이 스시계의 달라이라마라고 불리는 마사 다카야마의 오랜 팬이었던 것. 카포 마사는 메디슨 가에 자리한 가고시안 갤러리 지하에 총 82석 규모로 꾸렸다. 지난 10월 10일 열린 카포 마사의 오프닝엔 영화배우 우디 앨런을 비롯해 뉴욕의 미술·금융·영화계 인사들이 총출동했다는 후문. 앞으로 카포 마사는 고급 취향을 소비하며 스타일을 생명같이 여기는 뉴요커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급부상할 듯하다.
카포 마사의 인테리어는 가고시안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에 부합한다. 일례로 레스토랑 벽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화산암으로 장식했는데, 그 벽을 채운 작품들이 하나같이 미술관에서나 볼 법한 대작이다.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미국 작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의 ‘Leaving Paphos Ringed with Waves IV’가 아무렇지 않게 레스토랑 손님의 등 뒤에 걸려 있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의 판화도 별다른 제재 없이 ‘인테리어화’돼 있다. 물론 카포 마사의 수장인 셰프 마사 다카야마가 만들어내는 요리 역시 벽에 걸린 작품들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그가 얼음 위에 담아내는 신선한 초밥은 수십 년간 다져온 섬세한 손끝의 내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그런가 하면 최근엔 이곳의 평점과 관련한 재미난 사실도 전해진다. 레스토랑에 대한 평가가 매우 분분한 것. 얼마 전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레스토랑 평론가 피트 웰스(Pete Wells)는 카포 마사에서 식사한 후 별점 평가에서 0점을 줘 화제가 됐다. 요리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고르지 않고, 한 끼 식사비로 350달러(테이스팅 메뉴 20코스 기준)나 내야 하는 것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 반면 ‘역시 마사 다카야마’라는 호평도 줄을 잇는다. 다카야마의 ‘손맛’이 세계적 미술 작품과 만나 환상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 어쨌든 래리 가고시안과 마사 다카야마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느끼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미술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하는 헬무트 랭의 전시 전경 / Courtesy Sperone Westwater, New York

미술가로서의 행보를 시작하는 헬무트 랭의 전시 전경 / Courtesy Sperone Westwater, New York

2001년 발표한 비외르크의 < vespertine > 앨범 커버 이미지 / Courtesy Sperone Westwater, New York

비외르크와 헬무트 랭의 이유 있는 외도
가수 겸 배우 비외르크의 회고전이 3월 8일부터 6월 7일까지 MoMA에서 열린다. 독특한 목소리와 무대 위 퍼포먼스 그리고 영화 <어둠 속의 댄서>의 주인공으로 세계적 호평을 받은 그녀가 MoMA PS1의 디렉터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esenbach)가 기획한 전시로 뉴욕의 미술 팬을 찾는 것. 음악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영화,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온 그녀의 작품 세계를 전기적 요소와 허구를 혼합한 형태로 조명할 예정이다. 또 하나, 이 전시를 계기로 2011년 앱 형태로 발매한 비외르크의 앨범 < biophilia >가 MoMA의 디지털 컬렉션에 포함된다는 소식이다. 이 앨범은 MoMA 최초의 앱 컬렉션인 셈.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이번 전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비외르크가 주목할 만한 예술가인 건 분명하나 조명받아야 할 다른 중요한 작가들을 제쳐두고 지나치게 흥행만 염두에 둔 선택이 아니냐는 것. 이는 팀 버턴이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틸다 스윈턴 등 유명세를 한껏 강조한 일련의 MoMA 전시를 되돌아보면 수긍이 가는 지적이다. 그러나 장르 간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예술의 지형을 제시하는 다원예술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는 비외르크에 대한 기대는 이런 우려를 잠재우고도 남을 것 같다. 사운드, 영화, 영상, 악기, 의상 등 지난 20여 년간 비외르크가 탄생시킨 각종 오브제를 전시하는 이번 전시가 기대된다.
한편 시각예술가로서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패션 디자이너 헬무트 랭의 전시도 주목할 만하다. 미니멀리즘 패션 브랜드 헬무트 랭의 주인이자 디자이너였던 그는 2004년 돌연 자신의 지분을 모두 프라다에 팔고 패션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2015년 뉴욕 소호에 위치한 스페론 웨스트워터 갤러리(Sperone Westwater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여는 작가로 다시 나타났다. 늘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디자이너로서 커리어가 정점에 이른 시기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걸 버리고 10여 년의 세월을 작품활동에 매진한 것이다.
지난 1월 8일부터 2월 21일까지 열린 개인전에서 헬무트 랭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제작한 다양한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당시 전시장 벽면에 늘어서 있던 것은 가느다란 기둥과 같은 조각들. 그 작품은 2010년 헬무트 랭의 작업실에서 발생한 화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과거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사용한 물건들이 타버린 후, 그는 그나마 남은 것을 산업용 분쇄기에 넣어 갈았다. 그리고 그 부산물을 다양한 색의 합성수지와 섞어서 알루미늄 튜브 안에 넣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0~12피트(약 3~3.6m) 높이의 가는 원통형 조각.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퍼나 천 조각, 단추 등이 헬무트 랭의 과거를 증명하는 화석처럼 각인돼 있다. 그리고 최근 작품은 종이 상자를 잘라내 테이프로 감은 뒤 합성수지로 떠낸 일종의 부조 작품. 테이프에 감긴 종이 상자가 압력을 이겨내며 팽팽히 부풀어 오른 형상이다. 헬무트 랭은 압박하고 부풀어 오르는 상반된 힘의 대조에 주목했다고 전시 오프닝 당시 말했다.
헬무트 랭은 유명 패션 디자이너라는 과거를 이용해 쉽게 미술계에 안착하기보다 신진 작가의 자세를 견지하며 성실히 경력을 쌓아나가고 있다. 그와 가깝게 지낸 세계적 조각가 루이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준 교훈처럼 두려움 없이,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재료들을 담담히 마주하면서 말이다. 헬무트 랭의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황진영(독립 큐레이터, 아트 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