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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de Galbert, 앙투안 드 갈베르

ARTNOW

앙투안 드 갈베르는 글로벌 기업인 까르푸 그룹의 상속자이자 개인 재단 겸 미술관인 라 메종 루주의 오너다. 그는 수십 년간 쌓아온 컬렉션을 바탕으로 라 메종 루주를 내실 있는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현재 파리엔 퐁피두 센터와 시립미술관, 팔레 드 도쿄 같은 인기 현대미술관이 있다. 하지만 어느 곳도 라 메종 루주만큼 현대미술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소개하지 못한다. 앙투안 드 갈베르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라 메종 루주 안에 있는 카페 로즈 베이커리. 이곳은 파리에서도 인기가 높다.

군데군데 원색이 돋보이는 라 메종 루주의 내부

프랑스 파리의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근처엔 ‘붉은 집’이 있다. 프랑스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이 붉은 집이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라 메종 루주(La Maison Rouge)’, 프랑스어로 붉은 집을 뜻하는 이 미술관은 컬렉터 앙투안 드 갈베르(Antoine de Galbert)가 2003년에 설립한 개인 재단이다. 예술가에게 그만의 예술을 독특하게 하는 철학과 개성이 있듯, 하나의 컬렉션 또한 그것을 만들어가는 컬렉터의 취향을 넘어 비전과 사상을 대변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컬렉터로 앙투안 드 갈베르를 꼽는 것엔 많은 이가 의견을 함께하리라 생각한다.
몇 년 전, 세계적 큐레이터이자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대표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관의 물리적 크기는 조금도 중요한 게 아니며, 그 프로그램만 좋으면 충분히 큰 미술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이 말을 컬렉션으로 바꾸어 생각하고 싶다. 드 갈베르는 자신의 컬렉션을 라 메종 루주의 기획 전시를 통해 많은 이와 함께 나누어왔다. 지난해엔 라 메종 루주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1300m2(약 400평)에 이르는 미술관 공간에 1200여 점의 소장품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무작위로 선정해 소개하는 전시 <벽(Le Mur)>을 기획해 평단과 관람객에게 찬사를 받았다. 한편 그는 미술 시장의 추이나 유행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의 소신에 따라 작품을 소장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컬렉션엔 길버트와 조지(Gilbert and George), 마틴 파(Martin Parr), 로만 오팔카(Roman Opalka), 요나탄 메제(Jonathan Meese), 벤(Ben), 프랑수아 모를레(François Morellet),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등 유명 작가의 작품도 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나 미술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활동하는 아웃사이더 작가의 작품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의 컬렉션은 어떤 특정 스타일이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대가의 작품과 무명 작가의 작품, 비싼 작품과 저렴한 작품, 현대미술과 고미술을 모두 아우른다. 그는 또한 전 세계 민족이 사용한 옛 머리 장식품의 컬렉터로도 유명하다(프랑스어로 쿠아프(coiffe)라 한다).
그를 인터뷰하기 하루 전날 파리에선 이슬람교의 모하메드를 풍자한 삽화를 실었다는 이유로 시사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기자와 편집인 12명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 그래도 세상은 예정대로 움직여야 했다. 겨울비가 제법 세차게 퍼붓는 날 도착한 라 메종 루주 미술관의 유리문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연대를 촉구하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건 바로 표현의 자유이며, 그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예술일 것이다. 새하얀 셔츠에 벨벳 재킷을 입은 드 갈베르를 만났다. 컬렉터라기보단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시인의 느낌이 더 강했다.

붉은 실내가 돋보이는 라 메종 루주에서 앙투안 드 갈베르

먼저 어제의 테러로 충격을 받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만화에 대한 애착도 크다고 들었거든요. 목숨을 잃은 삽화가들이 프랑스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참 슬픈 일입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프랑스인이 어릴 적부터 <샤를리 에브도>의 만화를 보며 자랐습니다. 게다가 더 받아들이기 힘든 건, 어제 테러를 당한 카뷔(Cabu)와 볼랭스키(Wolinski) 같은 시사만화가야말로 그간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해온 이들이란 점입니다. 어제의 테러로 프랑스 사회는 아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민자 사회의 문제와 이를 받아들이는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 태도나 실질적 방안에 대한 매우 복잡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가 있는가 하면 자괴감이나 무기력감에 빠지는 작가도 있는데요, 예술가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지요?
작가야말로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들이 작업을 포기하지 말고 이어가야 합니다. 근 몇 년간 작가들이 자본주의사회의 상업 시스템에 너무 길들여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술가의 존재 이유는 이 사회를 향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부조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도전정신을 잃으면 안 되죠. 불행하게도 현대에는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들의 힘이 너무 부각되고 있습니다. 어렵겠지만 이 사회의 부정적 가치에 대항하는 작가의 본분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이 시대엔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와는 다른 작가들이 필요하니까요.
작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이 이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미술계의 구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술관이나 컬렉터처럼요. 현대의 컬렉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 취향이 있겠지만 요샌 많은 컬렉터가 작가의 유명세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유명하고 비싼 작가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문제는 너무 많은 컬렉터가 하나같이 같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단지 유명 작가의 비싼 작품을 소장한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컬렉션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전 한 컬렉터의 컬렉션을 관람할 때, 앤디 워홀이나 리히터처럼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옆에서 처음 접하는 무명 작가의 작품을 함께 발견하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컬렉션은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제가 어느 날 한국을 여행한다면 제프 쿤스의 작품보다는 한국 출신 예술가의 작품을 보며 그 문화적 배경이나 개념 등에 대해 질문하는 게 훨씬 즐거울 것 같습니다. 컬렉션은 컬렉터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근래에 들어 불행히도 이 둘 사이의 연관성이 사라져버린 컬렉션이 늘고 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당신은 자신의 소신과 취향에 따라 컬렉팅을 해온 것 같습니다. 라 메종 루주의 프로그램이 여느 미술관의 그것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겁니다.
저도 나름 노력하긴 했지만, 제가 원하는 대로 컬렉팅을 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은 사실 너무 큽니다. 요샌 미디어의 힘이 너무 세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전시를 할 경우 관람객을 끌어들이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리고 미술계에서도 그 유행이 너무 빨리 바뀌고 있습니다. 마치 오늘 입은 옷이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유행에 뒤처지는 것처럼 미술도 쉽게 소비되고 다른 유행으로 대체돼버리곤 합니다. 사실 제 주위엔 이러한 이유로 컬렉팅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컬렉터가 몇몇 있습니다. 이런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 미술 시장의 변화에도 애정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작품을 찾아내며 소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알리는 것이 컬렉터의 역할입니다. 라 메종 루주는 개관 이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무명 작가를 많이 소개해왔기에 소수의 사람만 전시를 보러 왔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우리가 기획하는 전시의 진정성이 많은 대중에게 전달됐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요. 어쨌든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라 메종 루주의 전시를 찾는 관람객입니다.
라 메종 루주를 개관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재단을 열었을 땐 사실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운영 전략이 없었죠. 그저 제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고 그것을 관람객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전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특별한 전략 없이 그저 주관적이고 자유로운 아이디어로 기획한 전시가 서서히 관람객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연간 관람객이 10만 명에 이릅니다. 소규모 개인 재단으로선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죠.
앞으로 재단의 규모를 늘릴 계획은 없으신가요?
제게 물질적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적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댓 개의 재단을 여는 건 전혀 관심이 없죠. 물론 재정적 여력도 안 되고요. 제가 추구하는 건 재단이 문화적으로 성장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인정받고 명성을 쌓아가는 겁니다. 지난 10년간 많은 전시를 기획해왔는데, 몇몇 전시는 아직도 많은 이가 기억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라 메종 루주의 전시를 통해 재발견한 작가도 많고요. 앞으로도 계속 탐구하고 생각하고 긍정적 비평을 하는 역할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늘 마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컬렉팅을 시작한 후, 재단을 차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한 30년 전쯤 갤러리를 운영했습니다. 전시 작가의 작품을 1~2점씩 소장하고 지인의 소개로 작품을 사 모으다 보니 그 수가 점점 늘어났죠. 한데 당시 전 작품을 파는 일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후 갤러리를 닫았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가진 재산을 좀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운 좋게도 제겐 자금의 여유가 있었고, 사실 돈을 벌기 위한 돈엔 관심이 없었죠. 그래서 이 돈을 흥미롭게 쓰는 동시에, 제 삶 또한 흥미롭게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이렇듯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됐습니다.
미술 분야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아티스트가 살고 있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본인의 마음속에도 아티스트가 존재하는지, 작가의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에선 이런 대화에 대해 ‘실패한 예술가의 주제’라고 합니다. 사실 유명 미술관의 관장을 비롯해 미술계의 많은 이가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비밀의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들에겐 종종 억누를 수 없는 창작 욕구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전 이 실패한 예술가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지 작품이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다고, 그들을 실패한 작가라고 정의할 순 없습니다.
지난해 라 메종 루주의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 <벽>은 정말 화제였습니다. 이를 직접 기획하셨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실은 제가 기획한 게 아니라 컴퓨터가 기획한 겁니다(그의 컬렉션에 컴퓨터를 이용해 무작위로 번호를 매기고, 벽에 여러 점을 섞어 걸어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저는 이런 디스플레이를 통해 제가 그간 소장해온 모든 작품이 저에겐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모든 작품의 가치가 똑같다는 유토피아적 생각을 어필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단지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다니엘 뷔랑에 이르는 제 컬렉션이 저에겐 마치 생의 긴 강과도 같다는 것 그리고 각각의 작품이 모두 제 친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나하나 모든 작품이 제겐 특별한 이유가 있는 만남이었고, 그때그때 주관적 느낌이나 판단에 따라 미래적 가치와는 상관없이 제 컬렉션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한 작품을 소장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당신에겐 어떤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하나요?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치며 습득한 지식과 첫눈에 반하는 감정은 늘 함께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느낌은 제가 소장한 작품 하나하나에 모두 서려 있죠. 이 얘긴 제가 앞서 말한 자화상의 개념과도 같습니다. 컬렉터가 작품을 컬렉팅하는 데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무명 작가의 작품을 사는 게 두려워 다른 사람들이 사는 걸 따라 사는 이, 돈을 벌고 싶어 투자가치가 높은 작품을 사는 이,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사는 이입니다. 이 중 마지막 유형,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사는 건 필연적으로 스스로에 관한 이야기죠. 제가 이야기하는 자화상의 개념은 이 경우를 가리킵니다.

LUCIO FONTANA

이탈리아를 주 무대로 작품 활동을 한 루치오 폰타나(1899~1968년)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조각을 배웠다. 1939년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전위예술 운동을 조직하며 기존 미술의 미학을 타파하고 시간과 공간의 통일에 기초를 둔 새로운 예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이듬해에 밀라노에서 ‘공간파(空間派)’를 결성해 ‘공간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캔버스에 날카로운 칼자국을 낸 커팅 작품을 통해 2차원적인 회화와 3차원적인 조각의 경계를 없앤 새로운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 Etienne Pottier
앙투안 드 갈베르의 수집품인 19세기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한 부족의 왕관

ARNULF RAINER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바덴에서 태어난 아르눌프 라이너(1929년~)는 격식을 따르지 않는 추상 작품으로 국제적 관심을 받았다. 1978년 오스트리아 국가 공로 대훈장을 받았으며, 1980년엔 베니스 비엔날레에 오스트리아 대표 작가로 참가했다. 초기엔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작업했으나, 1954년 이후 그의 화풍은 형상의 파괴라는 스타일로 변형됐다. 빈 미술사 박물관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 Marc Domage
2007년 라 메종 루주에서 열린 앙투안 드 갈베르의 컬렉션 전시 < Muntatis, Mutandis >의 전경

ⓒ La Maison Rouge
오스트리아 작가 아르눌프 라이너의 ‘Angst’(1969년)

ⓒ La Maison Rouge
‘공간주의’ 운동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 루치오 폰타나의 ‘Concetto Spaziale’ (1967년)

FRANÇOIS MORELLET

프랑스 미니멀리즘의 선구자이자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인 프랑수아 모를레(1926년~)는 1950년대부터 몬드리안이 추구한 선과 면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을 둔 추상미술을 선보였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네온을 이용한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그간 건축물과 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에 직접 설치하는 장소 특정적 작품을 주로 작업했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재료와 형태로 관람객에게 추상 언어에 담긴 유희와 유머, 다의성, 부조리함 등을 발견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 Jana Ebert
2011년 베를린의 미 컬렉터스 룸(Me Collectors Room)에서 열린 앙투안 드 갈베르의 컬렉션 전시 < My Paris >의 전경

ⓒ La Maison Rouge
네온 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모를레의 ‘10 Tubes de Neon au Hazard N°4’(2008년)

CELESTE BOURSIER-MOUGENOT

프랑스 니스 출신인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1961년~)는 원래 음악교육학 전공자다. 1985년부터 1994년까지 파스칼 랑베르 극장에서 아방가르드 작곡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이렇게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 동시대 미술을 한다는 것은 실로 흥미로운 일. 그는 오랫동안 실험 음악과 조형예술의 교차점에 주목해왔는데, 음향과 설치미술이 만난 그의 작품은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인 소리를 빚어내는 동시에 시각적으로도 훌륭한 미감을 만든다.

ⓒ La Maison Rouge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가 유대인과 이슬람교의 융합을 제안한 작품 ‘from Here to Ear’(2009년)

ⓒ Marc Domage
스테판 티데의 ‘Sans Titre(le Terril)’(2008년)

ⓒ La Maison Rouge
베를랑드 드 브뤼케르의 ‘Aaneen’(2003년)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최선희(아트 컨설턴트) 사진 김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