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는 사람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과 향이 깊어지고, 사색과 깨달음의 친구가 되어주는 차(茶) 이야기.
Jean Metzinger, Tea Time(Woman with a Teaspoon), Oil on cardboard, 1911, Philadelphia Museum of Art
‘티타임’ (티스푼을 들고 있는 여인)
장 메챙제 Jean Metzinger(1883~1956년)
프랑스 화가로 1883년 낭트의 명망 높은 군인 가문에서 출생했다. 낭트 국립 미술학교에서 전통 회화를 공부했으나 미술의 새로운 흐름에 관심이 많은 그는 1902년 파리로 가 아방가르드 예술가 그룹에 합류했다. 한동안 신인상주의와 야수주의의 영향을 받은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다 피카소, 브라크, 아폴리네르와 만나 입체주의에 동참하게 된다. 1910년 입체주의 양식으로 그린 첫 번째 작품을 선보였고, 진보 성향이던 살롱 도톤(가을전)과 살롱 데쟁데팡당(독립미술가협회전)의 입체주의 전시에 참여했다. 1912년, 동료 화가 글레이즈와 논문 ‘입체주의에 관하여(Du Cubisme)’를 발표한 이론가로도 유명하다.
입체주의의 모나리자
‘티타임’은 프랑스의 입체주의 화가 장 메챙제가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홀로 차를 마시고 있는 여인을 그린 1911년 작품입니다. 입체주의(cubism) 란 말 그대로 큐브(cube), 즉 ‘입방체로 가득한 우스꽝스러운 그림’이라고 경멸조로 논한 데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전통적 원근법 공간을 해체하고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서 조합하는 양식으로 , 건축과 영화에까지 영향을 미친 20세기 예술 혁명이죠. 그림 속에 움직임과 시간을 담고자 한 입체주의 화가는 하나의 눈이 아니라 1000개의 눈으로 바라본 대상을 화폭에 옮겼습니다. 대상을 그리기 위해 수백, 수천 번 시선을 던지는 현실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표적 입체주의 옹호자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는 메챙제에 대해 ‘가장 순수한 화가’라며 그의 그림에 ‘숭고를 향한 형식적 아름다움’이 있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입체주의 화가들(Les Peintres Cubistes)>이란 책에서 아폴리네르는 신인상주의 점묘법과 야수주의의 강렬한 색채에 영향을 받아 작업하다 입체주의로 전향한 메챙제의 그림에 신인상주의 시절부터 보이던 세심한 디테일에 대한 취향이 남아 있다고 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메챙제의 작품은 이 시기 피카소나 브라크 같은 정통파 입체주의 그림과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 화가의 그림에 비해 무엇을 그렸는지 파악하기가 수월합니다. 메챙제는 피카소나 브라크처럼 대상의 형태를 자잘하게 분해하지 않아 화면이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살롱 도톤(Salon d’Automne)에서 처음 발표한 ‘티타임’에 미술평론가 앙드레 살몽(André Salmon)은 ‘입체주의의 모나리자’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합니다. 당시로선 혁신적 화풍으로 그렸음에도 ‘품위’(살몽의 표현)가 있다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작품을 공개하기 얼마 전인 1911년 8월, 파리 전역을 발칵 뒤집은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기도 합니다. 사라진 ‘모나리자’를 대신할 새로운 양식의 모나리자!
감상 포인트
‘티타임’을 한번 찬찬히 살펴볼까요. 화면 속 주인공은 상반신 누드를 드러낸 긴 머리의 여인입니다. 가볍게 티스푼을 잡은 오른손과 찻잔에 닿은 왼손이 보입니다. 팔엔 푸른색 천을 걸치고 있는데 한쪽은 오른팔에, 다른 한쪽은 테이블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자연풍경을 배경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린 초상화라면, 메챙제의 ‘티타임’은 기하학적 형태의 실내 공간을 배경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여인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각도에서 바라본 형태를 결합했다는 점입니다 . 여인의 한쪽 눈은 측면에서, 다른 한쪽은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묘사했고요. 테이블 위 찻잔 역시 이등분해 반은 정면에서, 나머지 반은 위에서 바라본 각도로 그렸습니다. 여인의 왼쪽 뒤편 초록빛 테이블 위에 놓인 붉은색 병은 어떻습니까. 반쪽은 붉은색, 나머지 반쪽은 회색빛으로 배경과 어우러져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오른쪽 아래에 남은 윤곽선으로 그나마 병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죠. 병의 붉은빛은 여성의 오른쪽 어깨 위 붉은 사각형에서, 병이 놓여 있는 테이블의 초록빛은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반복됩니다. 오른쪽 하단엔 붉은색으로 제작 연도와 작가 서명이 쓰여 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이 작품은 ‘티타임’이란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메챙제가 붙인 원제는 ‘Le Gouter’입니다. 프랑스어로 ‘간식’ 또는 ‘오후의 간식을 먹다’를 뜻합니다. 입체주의 화가 하면 우리는 피카소나 브라크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지만, 1911년엔 두 화가의 작품보다 메챙제의 작품이 훨씬 유명했다고 합니다. 당시 입체주의는 소위 ‘살롱 입체주의’와 ‘갤러리 입체주의’로 나뉘어 있었는데 메챙제는 전자에, 피카소와 브라크는 후자에 속했죠. 일반 대중에겐 살롱을 통해 발표한 이 그림이 훨씬 친숙했다는 얘기입니다. 피카소나 브라크의 그림에 비해 밝은 색상의 화면, 사실적이진 않지만 무엇을 그렸는지 알아볼 수 있다는 점도 사람들이 이 작품에 쉽게 다가간 또 다른 이유였을 겁니다.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Richard Collins, Family at Tea, Oil painting, 1727, Victoria and Albert Museum of Art
‘차를 마시는 가족’
리처드 콜린스 Richard Collins(?~1732년)
리처드 콜린스에 대해선 사실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이 그림을 그리고 5년이 지난 1732년에 사망했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가 죽고 20여 년이 지난 후 같은 이름의 화가가 태어났는데, 그는 미니어처 화가로 유명했으며 조지 3세의 초상화를 대표작으로 남겼다. 여기 소개하는 리처드 콜린스는 차 마시는 귀족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여러 점 남겼는데, 그 당시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작가가 불분명한 몇몇 작품은 그 소재나 화풍으로 미루어 콜린스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절대왕정 시대의 부유함과 교양의 상징인 유럽의 ‘다도(茶道)’
요샌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커피숍과 찻집이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언제나 차를 즐길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특히 서양은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의 아시아 국가처럼 차를 마시기 시작한 역사가 그리 길지도 앉죠. 그 때문에 서양 미술계에선 차 마시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 근세 들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홍차를 커피보다 즐겨 마시는 대표적 ‘차의 나라’ 영국에 차 문화의 씨를 뿌린 이는 포르투갈 출신의 왕비 캐서린(Catherine of Braganza)입니다 . 그녀는 1660년 왕정복고에 의해 왕위에 오른 찰스 2세의 왕비였죠. 그녀가 1662년 영국으로 시집올 때 런던 궁정에 처음 차를 소개했다고 합니다 . 이를 계기로 런던의 커피 판매점에서 차를 함께 팔기 시작했고요. 그런데 당시 영국엔 이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차의 인기로 맥주나 진 등 다른 음료를 판매하던 업자들의 수입이 줄며, 이들에게서 높은 세금을 걷어들이던 왕실의 세입도 감소하게 되었죠. 이후 차 소비 억제 정책을 폈으나 이내 실패하고는 차 소비에도 일일이 세금을 매기게 되었습니다 . 한때 하층민까지 쉽게 구할 수 있던 차가 왕실이나 귀족을 포함한 부유한 계층만 누릴 수 있는 문화 대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죠. 이 과정에서 차의 수입지인 중국의 도자기도 대량 수입돼, 유럽에선 차를 마실 때 함께 곁들이는 음식을 위한 금속 식기의 생산도 발전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선 차 문화를 일종의 고급문화로 여겼고, 특히 영국에선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음료 문화로 자리 잡습니다. 집안에서 가족과 함께할 때, 손님을 접대할 때, 그리고 귀족들의 모임이 있을 때면 언제나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셨죠. 물론 지금도 영국인은 집집마다 다양한 종류의 찻잔을 가지고 있으며, 손님은 자신에게 내준 찻잔을 보며 그 가정의 미적 취향을 가늠하기도 합니다. 차는 예부터 생활이자 문화요, 그걸 마시는 태도나 방법 또한 교양을 나타내는 척도였습니다.
감상 포인트
리처드 콜린스는 ‘차를 마시는 가족’을 1727년에 제작했습니다. 유럽에선 절대왕정과 귀족 문화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죠. 정적으로 보이는 이 작품은 오른편에 황색의 화려한 톤으로 드러난 부인이 정면으로 우리를 응시하고 있고, 뒤편 남편과의 사이에 V자 형태의 공간을 남겨두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시선은 자연스레 남편과 딸 앞의 식탁에 놓인 다양한 식기로 향하게 됩니다. 이 식기들은 테이블 위에서 평행을 이루며 오른편의 부인을 묘사한 황색 톤과 어울려 안정적이고 균형 잡힌 구도를 잡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 이렇게 잘 짜인 안정적 구도 속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채는 건 바로 단호한 표정으로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부인의 자세와 시선입니다 . 왼손은 찻잔 받침을 쥔 채 무릎 위에 있지만, 오른손은 찻잔을 들고 마치 우리에게 찻잔을 올바로 들고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이에 반해, 뒤편의 남편은 아직 어딘가 어색한 자세로 찻잔을 들고서 부인을 바라보며 차 마시는 법을 따라 배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맨 왼쪽의 딸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교양 있는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을 완전히 터득해 능숙하게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십니다. 이처럼 이 시기를 전후해 완성한 차 마시는 그림은 대개 가정이나 모임에서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만, 일상의 모습에서조차 계몽주의 시대의 교훈적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차 마시는 자세와 찻잔 쥐는 법을 아주 정확하게 그려냄으로써 그림 속 대상의 교양과 품격을 나타내려 했죠. 이런 묘사는 시민혁명을 거친 19세기를 지나며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의 어원
유럽인, 특히 영국인에게 차의 인기는 너무도 대단해 18세기 무렵 무려 500여 개에 이르는 차 판매점이 영국에 생겨납니다. 차를 마시려면 꼭 물을 끓여야 하는데, 가족의 건강을 고려할 때 영국인에게 차는 매우 위생적이고 바람직한 식품이었죠. 그 때문에 목욕 문화, 향수 문화와 함께 차는 영국인의 식생활과 건강을 책임지는 중요한 음료가 됩니다. 그러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라는 차도 생겨났고요. 아침식사로 번역되는 ‘breakfast’는 원래 ‘깨뜨리다, 끊다’는 의미의 break와 ‘단식’을 뜻하는 fast의 합성어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대부분 저녁식사 후 다음 날 아침까지 공복 상태가 되는데, 그 상태를 깨뜨리는 게 바로 아침식사 (breakfast)라는 거죠. 영국인은 간밤의 공복을 깨고, 그날 하루 가장 먼저 섭취하는 음식물로 차를 선택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커피로 아침을 시작하는데, 영국인처럼 차를 마셔보는 것은 어떨까요?
글. 장원(미술평론가)
심사정, 송하음다(松下飮茶), 종이에 수묵담채, 18세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송하음다(松下飮茶)’
심사정(1707~1769년)
숙종대 최고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의 역모 사건에 발목이 잡혀 평생 불우하게 산 문인 화가다. 당시 중국에서 들어온 산수화 중심의 양식인 남종화풍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화가가 많았지만, 심사정은 고유의 조선적 미감으로 남종화를 재해석할 줄 아는 높은 안목의 소유자였다. 산수화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화조화에서 빛을 발했다. 그가 그린 풀벌레와 온갖 꽃나무는 마치 우짖는 소리와 코를 간질이는 향내가 들리고 보이는 듯하다. ‘송하음다’처럼 기법에서도 동시대 화가들의 속 좁음과 달리 매우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를 보여준 수작을 많이 남긴 그는 후대의 지남(指南)이 될 만한 화가다.
시인처럼 즐기는 차
찻물 끓는 모양, 혹 눈여겨본 적 있으신지요. 그릇 밑바닥이 열을 받으면 물이 슬슬 뜨거워지며 표정이 바뀌기 시작하죠. 그 모습을 단계별로 나누어 재미난 이름을 붙인 옛 사람이 있답니다. 처음 물방울이 살짝 돋기 시작할 무렵을 ‘해안(蟹眼)’이라 했어요. 즉 ‘게 눈’ 같다는 거죠. 그다음이 ‘하안(蝦眼)’, ‘새우 눈’입니다. 그다음은 ‘어목(魚目)’입니다. ‘물고기 눈 ’ 정도로 물방울이 커졌다는 거죠. 더 뜨거워지면 방울이 불쑥불쑥 올라오는데 그것은 ‘연주(連珠)’, 즉 ‘꿴 구슬’입니다. 마지막으로 와글와글 물이 들끓는 꼴은 뭘까요? ‘등파고랑(騰波高浪)’이랍니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물이랑’ 이죠. 까마득한 옛날, 차 끓이는 아이가 탕관을 들여다보며 심심풀이로 붙였을 법한 별명 같지요? 그게 아니라, 시인들의 시구에까지 버젓이 오른 전문 용어라고 하니 신기합니다. 시인의 감성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물이 세차게 끓으면 물방울 모양도 모양이지만, 소리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죠 . 찻물 끓는 소리 중 시인들이 듣기 좋아한 소리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송풍회우(松風檜雨)’라고 하네요. ‘솔가지 스치는 바람 소리와 전나무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라는 뜻입니다. 이 소리 나기를 기다리며 찻잎을 만지작거리는 산중 도인들을 머릿속에 떠올려보십시오. 그들이 자아내는 풍경을 생각하노라면 차 마시는 일이 물 마시는 일이 아님은 자명해집니다 . 색과 향 그리고 맛이 차의 모든 것이라 아는 사람들은 차를 모르는 바보나 마찬가지입니다.
감상 포인트
눈썰미 있는 분은 이 그림에서 터치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을 겁니다 . 그렇습니다. 그림 속에 적힌 ‘지두법(指頭法)’이란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손으로 그린 것이라 묘한 감흥을 일으킵니다. 화가는 손톱과 손바닥 그리고 손가락에 먹을 묻혀 경물을 그렸지요. 붓 터치와는 사뭇 다른 흔적이 여기저기 나타납니다. 손은 붓처럼 먹을 오래 머금고 있지 못하죠. 길게 획을 끌지 못하니 재빨리 그려야 합니다. 그림을 잘 보십시오. 짧은 선으로 툭툭 끊어 친 획, 손가락 살로 부드럽게 문지른 선염, 손톱으로 콕콕 찍은 자취 등이 선연히 느껴집니다. 옆 페이지에선 확인할 수 없지만, 이 그림은 화첩 속에 든 것이라 여러 사람이 감상평을 남긴 글까지 함께 붙어 있습니다. 심사정과 같은 시대를 산 김윤겸이란 화가는 이런 평을 달았네요 . “점이나 획이 굳세거나 사납고, 뾰족하거나 날카롭다. 속된 모습은 적고 , 예스러운 맛이 두드러진다.” 서양의 핑거 페인팅도 그렇지만 지두화는 세밀한 묘사보다 격정적 표현에 적합합니다. 무엇보다 스피디한 맛을 살리는 데 어울리지요. 심사정은 지두법에 매우 능한 화가였는데, 솔잎이나 바위에 난 풀과 이끼에서 그야말로 일격(逸格)의 솜씨를 보여줍니다. 차가 검소하고 소박한 삶의 여유로운 풍취를 대변한다고 할 때, 손가락으로 표현한 이 작품의 한 경지 또한 그러한 차의 세계와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속됨을 떠나게 하는 그 이름, 차
동양에서 차에 관한 이야기를 다 끌어모으면 태산조차 그 아래일 겁니다. 다 걷어치우고 하나만 얘기하자면, 술은 ‘망우물(忘憂物)’, 곧 근심을 잊게 하는 것이요, 차는 ‘해번자(解煩子)’, 곧 번민을 풀어주는 것일 테지요. 차는 여섯 가지 정을 넘어섭니다. 기쁘거나 성내거나, 슬프거나 즐겁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그 붙들린 마음자리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 차라는 것이죠.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말, 곧 ‘다선일미(茶禪一味)’의 경지는 쉽사리 체득하기 어렵습니다. 많이 마신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옛 그림에서 차 마시는 장면은 뜻밖에도 드뭅니다. 차 끓이는 그림은 흔한데, 차 마시는 그 순간을 포착한 그림은 별로 없어요.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이 그린 ‘송하음다 (松下飮茶)’를 볼까요. ‘소나무 아래서 차를 마신다’는 제목처럼, 찻잔을 높이 들어 그 매혹적인 향취를 막 목구멍으로 넘기는 찰나를 담은 그림입니다. 차 마시는 자리가 보다시피 집 안의 다실이 아닙니다. 저기 부윰한 산맥은 멀찌감치 물러났는데,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 어드메 펑퍼짐한 곳에서 도인풍의 사내 둘이 마주 앉았습니다. 허리 휘청한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드러냈네요. 이 멋스러운 나무가 있어 급조한 산중 다실이라도 꼴사납지 않게 보이는 겁니다. 머리에 쌍상투를 튼 머슴이 손을 땅바닥에 짚고 화로의 불길을 유심히 살핍니다. 찻주전자에서 전나무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사내들 무릎께에 익은 차가 든 다관 하나, 따라 마실 찻잔 하나만 보입니다. 둘이 마시는 차를 일러 ‘한적(閑寂)’이라 했지요. 혼자 마시는 차는 ‘이속(離俗)’입니다. 혼자서 , 또는 둘이서 차를 마셔야 속됨을 떠나거나 한가한 고요를 얻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다선일미’가 여기서 비롯됐지요.
글. 손철주(미술평론가)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