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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시스하다

LIFESTYLE

“전시장에 작품을 쭉 걸고 한 바퀴 휘둘러보면 여태껏 내가 해온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파악이 됩니다. 다시 한번 반성의 기회를 마주하는 순간이죠. 작가라면 늘 크고 작은 전람회를 통해 자기를 실현해야 합니다. 산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등반가들이 수없이 많은 고개를 맞닥뜨리는 것처럼 작가는 전람회라는 고개를 끝없이 넘어야 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전시 작품을 하나하나 뚫어져라 감상하는 기자를 보며 한국의 대표 추상화가 중 한 명인 오수환 작가는 이어 “캔버스 안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안에 ‘무한’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1969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1975년 이후 추상미술에 천착하며 무의식과 무관심, 무목적을 바탕으로 캔버스에 자유로운 회화를 구사해온 한국의 대표 추상 작가 오수환이 가나아트센터에서 9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평창동 갤러리에서 전시는 오랜만이지만 지난해까지 그는 김종영미술관, 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 부산 등 거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실히 전시를 선보여왔다. 서울여자대학교 교수로 오랜 시간 재직했고, 퇴직 후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마련해준 장흥 레지던시 작업실로 출퇴근하며 일정한 생활 리듬을 유지하는 것으로 모자라 전시회마저 이토록 규칙적인 호흡으로 여는 그를 이 시대 젊은 작가들은 귀한 본보기로 삼는다.
흑백 추상에서 최근 색채 추상으로 확장된 화면을 선보이는 오수환 작가는 이번 전시회에 ‘대화’라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얌전한 제목을 붙였다. 전시장에 걸린 그의 작품에서는 인간과 자연, 그 사이에 놓인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탓에 작품 하나하나가 마치 한 편의 서사처럼 다가온다.
“저는 어떻게 하면 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작품에 생생한 기운이 드러나야 하는데 그것은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서 비롯된다기보다 사물의 뒤나 아래, 혹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본질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서 발현되죠. 형상과 형상이 아닌 것의 균형 상태라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엔 유독 여백이 많다. 순수한 여백이 아니라, 무언가를 애써 지워낸 흔적이다. “물감을 칠한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칠해 지우는 것은, 바꿔 말하면 기존의 물감을 숨긴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숨겨진 것의 바탕 위에서 보일 때 훨씬 신비롭게 다가오죠.”

미술과 철학은 따로 있지 않다
그의 아버지는 서예가 청남 오제봉 선생이다. 유교적 성향이 강한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웠다. 그의 작품이 동서양의 미를 함께 품고 있는 것이나, 평면 화면의 붓질에서 서예의 그것이 느껴지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선천적 재능보다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미술에 대한 관점을 확립한 주제, 예를 들면 전쟁, 고통, 슬픔, 인생 등에 대해 여러 각도로 생각하기를 즐긴 것이 작가가 되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예술과 철학에 관한 서적을 많이 읽었어요. 서양철학에 심취해 있던 저는 철학적 사고가 미술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미술과 철학이 결국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알았죠. 가능하면 늘 철학서를 가까이하려 애썼고 플라톤과 니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 등의 책을 유심히 읽었습니다. 그것은 제 작업 전반에 많은 도움을 주었죠.“
그는 특히 어떤 문제점이 있을 때 그것을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예술로서 접근 또한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술가로 사는 데 꼭 필요한 경험이라고 판단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이죠. 무엇보다 군인의 신분으로 전쟁을 겪으며 ‘사람은 쉽게 죽는 존재가 아니구나’라는 걸 가장 크게 깨달았어요. 총알도 가슴에 맞지 않으면 웬만해선 죽지 않죠. 전쟁터에서의 여러 경험 덕분에 삶을 대하는 자세도 도전적이고 모험적으로 바뀌었어요. 작업 마인드에도 영향을 줬죠. ‘계산하지 말자’, ‘낭떠러지에 섰을 때 밖으로 한 발짝 더 내딛자’, ‘실험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작품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없다’ 등을 배웠어요. 전쟁이 야기한 비참하고 황폐한 눈앞의 사건들이 제작업을 더욱 대담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 셈입니다.”
그는 1970년대 작업 초창기에는 문인들과의 친분으로 서정주 선생의 시화전에 새 그림을 그리고 <문학사상> 표지에 문인 초상, 주요 일간지에 삽화를 그리며 작업 재료비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20년 넘게 추상미술, 그것도 흑과 백에만 집중했다. 회화과 출신인 그가 단 두 가지 색으로 작업하는 건 신념을 넘어선, 구도자의 수행에 가까운 행위였을 것이다. 왜 ‘색’이라는 매력적인 도구를 버리고 ‘흑과 백’에 집중했을까?
“저는 형식이나 매체를 고를 때 외적 조건을 의식하지 않아요. 내가 필요하니까 하죠. 물론 한국의 현대미술 상황에서 ‘색채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이를테면 ‘대중적 요소를 가지냐, 그렇지 않느냐’와 통합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당시만 해도 흑백 그림은 대중이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저는 흑백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기존 회화 작가들과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것도 필요했다. 어쨌든 미술계에 2명의 피카소는 필요 없는 법이니까.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오수환 작가는 동양 미술의 수묵, 정과 동을 상징하는 흑과 백을 오랫동안 사용했고, 한국인의 질박한 예술 세계를 동양의 정적 기운과 서양의 힘찬 붓질에 담아내며 런던과 스톡홀름, 파리, 바르셀로나 등 유럽 개인전을 통해 해외 컬렉터들을 만났다. 이어 그는 2002년 마그 재단이 바르셀로나에서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 마그에서 한국 작가 최초로 초대전을 열며 한국 추상의 현주소를 널리 알렸다. 당시 3개월간 프랑스 마그 재단 초청으로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머물며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전시였는데, 그는 지중해의 완벽한 기후와 지상낙원과도 같은 자연환경 속에서 몸과 맘을 한껏 이완시켜 작업할 수 있었던 인생 최고의 호사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마그 재단은 마티스, 자코메티, 브라크, 레제, 보나르, 미로 등 훌륭한 작가의 작업 무대였어요. 제가 그곳에서 작업한 건 행운이었죠. 최고의 날씨와 그보다 좋을 수 없는 예술적 환경, 그곳이 생폴드방스였어요. 마그 공방에서 판화 작업을 했고, 그걸 묶어 책으로 펴내기도 했습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현재 작품을 제작하면서 다음 작품을 생각해야 한다. 그는 작가라면 새로운 매체와 색다른 방법론으로 작업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관람자를 새로운 세상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가의 역할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흑백이 난무하던 캔버스에 컬러가 등장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채색을 하되 서양 작가들과 다른 방법을 사용하고 싶었어요. 여백에서 그 차이를 찾았죠. 서양화가들은 캔버스에 여백을 남기지 않습니다. 대부분 다 덮어서 처리하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30점도 모두 여백의 실험이 드러난 작품입니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7월 15일까지 열린 오수환 작가의 <대화>전 전경.

자연 속을 걷고 보고 마침내 해방하라
이 시대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각 나라는 전쟁뿐 아니라 종교, 외교, 정치, 무역 등 어느 것 하나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에겐 어떤 예술가가 필요할까? 그는 “예술가는 순수한 눈으로, 투명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연이 거기 있음을 인정하고 인간이 그 안으로 들어갈 때 가능한 일이다. 오수환 작가는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한 집에서 양주시 장흥의 작업실까지 매일 4시간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한다. 출퇴근길에 만나는 자연의 생명력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기 위해서다.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나서는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어 왕복 4시간의 산책이 더욱 즐겁다. 길가의 꽃과 나무, 곤충과 새,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이 선사하는 순수의 시간을 맘껏 즐긴다. 10년째 비슷한 길을 걷지만 어느 것 하나 같은 풍경이 없다.
“시간적 제약 없이 자연을 경험하다 보면 맘이 평안해집니다. 우리의 작업은 평안하고 고요한 것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없어요. 특히 제 작업에서는 자연을 통해 얻는 깨우침이 훌륭한 역할을 합니다.” 10년을 출퇴근하다 보니 걷기의 급수도 높아졌다. “옛날 사람들이 ‘나는 새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것처럼 저도 요즘 그 경지를 느낍니다. 그건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세계가 하나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 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건 분명해요.”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또 다른 넓은 세계가 있다는 걸 잘 모른다. 대개 모르는 채 죽어간다. 좀 더 멀리 보고 크고 깊게, 골똘히 생각하면서 의식을 확장하다 보면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우리에겐 늘 시간이 부족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하이테크놀로지의 도움을 받고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생활하는데도 자연, 아니 우리 주변을 돌아볼 시간조차 점점 사라져간다.
“허공은 말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허공을 향해 외치며 의미를 찾고 즐거움을 구합니다. 없는 걸 자꾸 찾는 거죠. 파도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허공이 말을 합니까? 자연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존재하나요? 저는 작품도 그렇다고 봅니다. 작품에서 억지로 이야기나 즐거움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예술을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순간적 감각이 중요합니다.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분석하다 보면 예술은 사라지고 전쟁이 그 자리를 대신할 거예요.” 오수환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건 하나다. ‘자유롭게 보고 자유롭게 생각하라.’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해방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카타르시스이며 40년 가까이 평면 화면에 구축해온 유토피아, 즉 ‘자연’의 본질이다.

1Dialogue, Oil on canvas, 193.8X130.2cm, 2017.
2Dialogue, Oil on canvas, 145.7X112cm, 2018.
3Dialogue, Oil on canvas, 116.8X91cm, 2018.
4Dialogue, Oil on canvas, 101X100cm, 2018.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