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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맨의 부활

ARTNOW

“관습에 대항하라.” 르네상스의 태동을 일으킨 이 캐치프레이즈는 많은 영화 속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르네상스 맨들.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르네상스는 사자의 뱃속에서 태어났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에서 발원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이탈리아라는 이름조차 없었다. 피렌체와 밀라노, 베니스와 볼로냐 같은 개별 도시가 각각 도시국가처럼 번영하고 있었다. 전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활동한 곳이다. 도시국가야말로 르네상스의 자궁이었다. 이 도시국가들이 바로 사자로 인해 태어났다. 사자왕 리처드 얘기다. 잉글랜드의 두 번째 왕인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원정으로 유명하다. 십자군 원정은 정치적·군사적으론 실패했지만 경제적·문화적으론 성공했다. 무려 8차에 걸친 십자군 원정 탓에 중동의 발달한 문물이 낙후된 중세 유럽 세계로 유입됐다. 중세는 절대 종교가 경제와 문화의 발전을 저해한 시대였다. 십자군 원정은 중세 유럽인에게 기독교적 세계관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줬다.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다 돌아온 중세인은 더 이상 중세인일 수 없었다. 사자왕 리처드는 12세기 후반 3차 십자군 원정을 주도했다. 십자군 원정 가운데 가장 대규모였다. 1187년 살라딘이 이끄는 이슬람군에 예루살렘이 점령당한 탓이었다. 사자왕은 이탈리아 반도를 거쳐 중동으로 진격했다. 사자왕의 진군 경로에 바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있었다. 유럽 전역의 인력과 물자가 삽시간에 이탈리아 도시국가로 몰려든 셈이다. 십자군은 퇴각할 때도 도시국가들을 거쳐갔다. 살라딘에게 패배한 사자왕이 귀국길에 폭풍을 만나 난파당한 곳도 베니스 인근이었다. 도시국가들은 더 이상 중세인이 아닌 중세인이 모여드는 해방구가 됐다. 대규모 병력이 들고 나면서 자연히 상업과 공업이 발달했다. 동서양의 문물도 집결했다. 사자왕이 낳은 융·복합 도시국가들에서 바로 르네상스가 태동했다. 사실 르네상스는 원리만 놓고 보면 별것 아니다. 대륙 단위의 문화 융·복합 현상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2005년 작 <킹덤 오브 헤븐>은 3차 십자군 원정을 다룬 영화다. 올랜도 블룸이 연기한 주인공 발리안은 사실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다. <킹덤 오브 헤븐>은 살라딘에게 예루살렘이 정복당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발리안은 살라딘에게 맞서서 끝까지 예루살렘을 지킨 무명 무장이다. 그런데 발리안이 예루살렘을 수성한 건 종교적 신념 탓이 아니었다. 발리안은 자신이 예루살렘의 땅과 성벽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주민을 살리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민에게도 신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싸우라고 외친다. 예루살렘 공주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평민에게도 기사 작위를 내린다. 그 모습을 본 예루살렘 추기경은 기겁을 한다. 르네상스는 유럽이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로 변화한 과정이다. 그러니까 발리안이야말로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다. <킹덤 오브 헤븐>의 말미에 초야에 묻혀 대장장이로 지내는 발리안을 사자왕 리처드가 찾아온다. 사자왕은 예루살렘 전투의 영웅 발리안에게 길잡이를 부탁한다. 발리안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대장장이일 뿐입니다.” 사자왕은 말없이 말 머리를 돌린다. 뒤이은 사자왕의 3차 십자군 원정은 수많은 발리안을 만들어낼 터였다. 그들은 더 이상 신과 중세 질서를 수호하는 기사가 아니라 이성과 과학을 믿는 대장장이일 수밖에 없다. 발리안이 자신을 대장장이라고 소개한 건 단순히 겸손의 표현만은 아니었다.

영화 <셰익스피어 인 러브>

셰익스피어는 16세기 영국 런던에서 활약했다. 16세기는 이탈리아 융·복합 도시들에서 기원한 르네상스의 기운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시기다. 유럽의 변두리에 위치한 런던은 오히려 뒤늦은 편이었다. 셰익스피어가 런던 연극 무대에서 입지를 굳힌 1590년대 즈음에야 비로소 르네상스에 제대로 눈을 떴다. 그때부터 런던은 빠르게 거대도시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특히 런던의 자유 구역은 영국 르네상스의 산실이 됐다. 자유 구역은 정부의 관할도, 교회의 관할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문화적 자유로움이 넘쳐났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운영한 글로브 극장도 템스 강 남부의 자유 구역에 자리 잡았다. 셰익스피어의 글로브 극장은 템스 강 북부 자유 구역의 극장 레드 라이언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런데 적잖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배경이 이탈리아 도시국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베니스의 상인>이 대표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은 이탈리아 베로나다. <베니스의 상인>은 당연히 베니스다. 오늘날 한류처럼 당대 런던에서 이탈리아류 같은 유행이 불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두리 런던인에게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오늘의 뉴욕처럼 첨단 유행의 발원지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당대 런던 사람에겐 베로나판 <섹스 앤 더 시티>쯤 됐다. 첨단 유행의 도시 베로나에선 청춘 남녀들이 부모님이나 신부님이 정해준 상대와 정략결혼을 올리는 대신 자유연애를 꿈꾼다는 내용이다. 사랑이야말로 인간 중심 사고의 정점에 있는 가치였다. 중세시대에 사랑이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은총일 뿐이었다. 르네상스인은 인간도 다른 인간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고 믿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주어진 운명에 맞서는 무모한 남녀의 이야기다. 운명은 모든 것이 정해진 중세적 세계관이다. 셰익스피어는 오래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운명에 맞서 사랑을 나눈 젊은이들이 있다며 런던 사람을 도발했다. 성스럽기만 하던 중세 런던을 사랑이 가득한 르네상스적 런던으로 바꿔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여러 차례 영화화됐지만 프란코 체피렐리 감독의 1968년 작과 배즈 루어먼 감독의 1996년 작이 가장 유명하다. 프란코 체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줄리엣을 연기한 올리비아 허시가 화제였다. 배즈 루어먼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로미오를 연기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목을 끌었다. 올리비아 허시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14세기로 추정되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모습을 정교하게 재현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경제·상업 중심지 베로나는 지금까지도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도시로 유명하다. 정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외모는 중세의 복식과 예법을 따르고 있지만 내면은 이미 르네상스적 청춘이었다. 배즈 루어먼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현대극으로 각색했다. 배경과 복식에선 중세나 르네상스풍을 엿보기 어렵다. 대신 배즈 루어먼 감독은 로미오와 줄리엣에게 프라다를 입혔고, 반목하는 두 가문 사람들의 의상으론 돌체 앤 가바나를 선택했다. 프라다와 돌체 앤 가바나는 모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다. 셰익스피어가 당대 유행의 첨단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적 소재를 찾아왔듯이 배즈 루어먼도 유행의 첨단인 이탈리아 패션에서 영화의 비주얼을 찾아냈다. 현대극으로 재해석했지만 본질은 셰익스피어와 일맥상통하는 셈이다.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벗어나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문화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좋게 말해서 돌아가자는 얘기였다. 결국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복제하자는 뜻이었다. 르네상스의 본질은 카피 앤 페이스트다. 인간이 복사기가 아닌 다음에야 똑같이 복제하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씩 다른 복제물이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재해석이 이뤄지고 결국 재창조가 일어난다. 프란코 체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연극을 영화로 재생산한 것이었다. 배즈 루어먼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를 프라다와 돌체 앤 가바나로 재해석한 영화였다. 결과적으로 배즈 루어먼이 훨씬 르네상스적이었던 셈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년)에선 16세기 르네상스의 세례를 막 받기 시작한 런던의 생활상을 재현했다. 십자군 원정으로 잉태되고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발달한 르네상스는 16세기 무렵 프랑스와 독일, 영국으로 확산된 상태였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셰익스피어야말로 르네상스인이었다고 주장한다. 희곡과 시만 쓴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로미오처럼 줄리엣의 방 난간 아래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을 거라고 상상한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조지프 파인스가 연기한 셰익스피어는 반골 기질이 넘쳐나는 패기만만한 남자로 그린다. 당대의 관습과 맞서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요체다. 가장 유명한 르네상스인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역시 당대의 과학적·예술적 믿음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 인물이었다. 사실 셰익스피어는 이전까지 이어져온 연극의 관습을 비튼 작가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의 문제작 가운데 하나인 <법에는 법으로>는 장르적으론 로맨틱 희극인데도 극 중 남녀가 억지 결혼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동시에 극의 배경은 빈인데도 분위기는 당대 런던 같아서 세태 풍자극의 느낌마저 준다. 오늘날 르네상스 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재다능하고 박식한 사람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박학다식한 건 단순히 책벌레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관습적 믿음에 대한 문제의식, 상관없어 보이는 정보를 융·복합하는 호기심, 그렇게 얻은 지식을 사람을 위해 쓰는 인간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은 <킹덤 오브 헤븐>부터 <셰익스피어 인 러브>까지 르네상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셰익스피어가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발리안과 닮은꼴인 건 우연이 아니다. 발리안이 최초의 르네상스인이라면 셰익스피어는 르네상스인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신기주(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