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현대미술계의 르네상스를 꿈꾸다
뉴욕, 런던에 이어 차세대 예술 중심지로 급부상한 베를린. 약 340만 명이 사는 이 도시에 2만여 명의 전업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고, 문화 산업 종사자만 16만 명에 달한다. 동서로 갈라져 있던 도시가 하나로 모인 지 고작 20여 년, 그사이 베를린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늘날 현대미술의 아지트로 자리매김하며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연 도시 베를린을 집중 소개한다.
미술관으로 둘러싸인 베를린 미테 지구

콘크리트 벽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베를린 홍보대사를 해도 되겠어요.” 한국에 오면 자주 듣는 말이다. 누가 베를린에 대해 물어보면 입에 거품까지는 안 물더라도 신이 나서 자랑을 해댄다. 외국인이면서 도시 자랑? 가능하다. 베를린은 외국인이 굳이 토박이처럼 굴지 않아도 쉽게 적응해 살아갈 수 있는 도시다. 물론 누구에게나 ‘아주 쾌적한’ 환경은 아닐 수 있다. 거리는 선진국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지저분하고, 시 재정은 계속 적자다. 실업률이 10.8%(2014년 9월 기준)에 달하는 데다, 빡빡머리 신(新)나치는 변함없는 패션으로 베를린 외곽 지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랑자로 가득한 지하철을 간신히 빠져나오면 깨진 맥주병이 심심치 않게 거리를 장식하는 한편, 경찰이 코앞에 있어도 무단횡단을 하거나 보도에서 역방향으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보통이다. 게다가 2012년 6월로 예정되어 있던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공항의 개항은 기약도 없이 미뤄졌다. 세계적 대도시 가운데 대규모 공항이 없는 곳은 아마도 베를린뿐일 것이다. 규율을 잘 지키고, 지나치리만치 정확한 것을 좋아하며,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독일인에게 베를린은 ‘도무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문제아’다. 그런데도 주민은 점점 쿨해져간다. 그럼 베를린에서 ‘쿨하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우선 중고품이나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별다른 코디 개념 없이 입어야 한다. 아주 젊은 여성 혹은 남성이 조부모가 입던 모피 차림으로 거리를 휘저어도, 도무지 성별 구분이 안 되는 누군가가 나를 관심 있게 바라봐도 결코 눈동자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오토바이를 탄 브래드 피트가 눈앞에 멈춰 서도 휴대폰은 주머니나 가방 안에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고, 벌거벗은 사람이 춤을 추거나 남자 둘이 길거리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어도 괜히 하늘을 볼 필요는 없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아니, 정말로 이렇다. 건전하고 아름다운 고향을 두고 굳이 베를린으로 이주한 사람이라면, 직업이 무엇이든 이런 베를린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런 묘한 균형이 깨지는 것을 거부한다. 도시 곳곳에서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시위를 하고, 대규모 게이 퍼레이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가 매해 축제처럼 열린다. 커밍아웃한 전 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는 시민에게 ‘보뷔’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물론 베를린이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던 건 아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 이후, 유대인 외에 동성연애자 역시 많은 핍박을 받았다. 무수한 예술가가 망명 생활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1920년대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베를린의 영광은 사라지고, 대신 파리와 런던 문화 예술계가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분단된 독일에서 베를린 인구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독 영토에 둘러싸인 서베를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자구책으로 시민에게 생활 보조금을 주거나 군 복무를 면제해주었을 정도다. 이념의 날이 시퍼렇게 서 있던 1963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서베를린 시청 앞 광장에서 연설 도중 외친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리너입니다)”라는 말은 너무나 유명하다. 서베를린 시민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이 연설은 당시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1990년, 분단의 벽이 허물어지자 독일은 한동안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성적이기로 유명한 독일인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모르는 사람과 어깨동무하며 춤을 췄다. 그 뜨거운 감동도 잠시, 현실에 충실한 서독인은 곧 동베를린 지역의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유럽 대부분의 부동산 가격이 땅을 치고 있을 때도 베를린은 꾸준히 상승세를 탔다. 이 시기에 약 170만 명이 베를린을 떠났고, 180만 명가량이 이주해왔다고 한다. 물이 확실히 갈린 셈이다. 기존의 동베를리너는 자유로운 서독에서 살고 싶어한 반면, 이른바 ‘베를린 바이러스’를 보유한 이들은 부유한 서베를린 대신 낙후된 동베를린 지역으로 모여들었다. 부동산 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긴 했지만, 도시의 면적이 워낙 크다 보니(총 891.85km²) 인기 지역인 미테에서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작업실을 구할 수 있었다. 미술관처럼 천장이 높고 영감이 쑥쑥 솟아날 것 같은 옛 공장을 개조해 스튜디오로 사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더불어 런던, 파리, 뉴욕의 비싼 집세와 물가에 지친 미술가나 영화인, 음악가, 건축가, 디자이너가 베를린으로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뒤따라 전 세계 갤러리스트도 이 도시에 전시 공간을 마련했고, 영화인들은 베를린 근교의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를 찾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세계 3대 레코드 회사 중 하나인 유니버설뮤직 그룹의 독일 자회사가 함부르크에서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 지구로 거처를 옮겼다. 과거 동독 주민이 서베를린으로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놓은 1.3km 길이의 무시무시한 콘크리트 벽이 야외 전시관인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로 변모하기도 했다. 독일의 청담동과 같은 도시 뒤셀도르프가 위치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의 전 정부위원장 위르겐 뷔소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의 베를린이 존재하는 건 전부 저렴한 부동산 가격 덕분이에요.” 반쯤은 맞는 말이다. 물론 나치 정권 이후 뉴욕과 런던으로 예술의 바통이 넘어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베를린에 예술의 씨가 마른 건 아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동독 시절에도 분명 펑크족이 존재했고, 동베를린을 비롯한 몇몇 도시에서는 미술인과 음악인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활동이 있었다. 서베를린 역시 동독 한가운데에 고립되어 있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독특한 예술적 환경과 키츠(Kiez, ‘동네’란 뜻으로, 1900년대부터 베를린은 여러 비공식적 키츠로 나뉘어 각각 독특한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형성했다)의 특성을 유지했다. 통일 후엔 키츠에 전 세계의 인종이 섞였는데, 그중 다수가 예술인이었다.
마르크 세일런(Mark Seelen)이 촬영한 소호 하우스 베를린

오픈 하우스 행사가 열린 도이체 방크 쿤스트할레 내부

2010년 최정화 작가의 < in the mood for love >전이 열린 안도 파인 아트 외관, Courtesy of Aando Fine Art

쿤스트하우스 타헬레스의 외관
예술과 합치면 만사형통! 미테 지구
▶ 예술가들의 사랑방, 소호 하우스
통일 독일 초창기에는 미술관, 음악당, 극장을 비롯해 공공건물이 많은 미테 지구에 예술가와 창작인이 모여들었다. 미테에는 특히 팔자 센 건물이 많은데, 동독 시절 음산한 독일사회주의통일당(SED) 본부였던 소호 하우스 베를린(Soho House Berlin, 현재 호텔로 운영하고 있다)이 대표적 예다. 로비에서 데이미언 허스트가 전시를 열기도 한 이곳은 오늘날 세계적 예술가들의 사랑방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베를린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2월이면 투숙객 중 일반인이 더 드물 정도다. 까다로운 회원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레이디 가가, 메건 폭스, 마돈나, 조지 클루니, 맷 데이먼 등이 베를린에 오면 먹고 마시고 노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하 극장과 바에서는 시사회나 아티스트 토크, 지식인 인터뷰 등 각종 문화 예술 행사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 럭셔리한 예술 성형, 쿤스트하우스 타헬레스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상징 쿤스트하우스 타헬레스(Kunsthaus Tacheles)가 결국 예술을 가미한 럭셔리 호텔로 변모한다. 타헬레스란 ‘자신의 주장이나 견해를 명확히 말하다’라는 뜻의 유대어다. 좀 더 쉽게 풀면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 의미. 사실 1908년 백화점으로 완공한 타헬레스 건물은 한때 나치 당원의 행정과 조직 관리를 위한 공간이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폐허가 되어 창고로 쓰였고, 동독 시절 일부 소매업체나 여행사, 군인들이 자리를 잡았다. 통일 전후 철거 대상으로 지정되거나 무단 거주자들이 점령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후원을 통해 부분적으로 보수되어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이곳은 젊은 관광객의 ‘머스트 고’ 장소였다. 2012년 건물이 매각되어 올해 다시 뉴욕 투자자에게 팔렸는데, ‘예술이 공존하는 건물로 재탄생할 것’이라는 홍보 때문인지 2012년부터 이어지던 반대 시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린 상태다. 결국 예술은 만병통치약인가 보다. 새로운 출발을 앞둔 쿤스트하우스 타헬레스가 앞으로도 예술적 명소로서 오랜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뼛속까지 투자가, 도이체 방크 쿤스트할레
세계적 금융 위기 당시, 독일에서도 뱅크스터(bankster, ‘banker’와 ‘gangster’의 합성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투자은행이기도 한 도이체 방크 역시 뱅크스터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다만 타헬레스처럼 다소 문제적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보다는 1997년 구겐하임 재단과 협력해 도이체 구겐하임을 건립했다. 2013년부터는 도이체 방크 쿤스트할레 (Deutsche Bank KunstHalle)로 이름을 바꾼 뒤 단독 운영하고 있으며, 국적을 불문하고 주로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신진 작가의 작품을 전시한다. 독일 작가 요제프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시그마 폴케 등의 최고가 작품을 소장하는 한편, 네오 라우흐와 토마스 루프, 안드레아스 거스키가 세계적 스타가 되기 전부터 이미 이들의 작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도이체 방크는 뼛속까지 투자가다. 금융뿐 아니라 예술 역시 공들여 키운 뒤 제대로 수익을 낼 줄 아니 말이다.
▶ 미테의 블루칩 갤러리
미테 지역에는 독일의 블루칩 갤러리가 몰려 있다. 특히 바젤 아트 페어와 베를린 위크엔드의 빅브러더 갤러리인 노이게림슈나이더(Neugerriemschneider)의 팀 노이거, 갤러리 노르덴하케 (Galerie Nordenhake)의 클레스 노르덴하케, 마이어 리거(Meyer Riegger) 갤러리의 요헨 마이어와 토마스 리거 등의 갤러리스트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갤러리 아이겐+아트(Galerie Eigen+Art) 역시 유명한 화랑 거리인 아우구스트슈트라세에 자리 잡았으며, 독일 신라이프치히 화파의 대표적 작가 네오 라우흐, 팀 아이텔, 카르스텐 니콜라이 등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변원경 대표가 운영하는 안도 파인 아트(Aando Fine Art) 역시 주목해야 할 갤러리다. 벌써 5년째 명확한 갤러리 프로파일과 진취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 이곳은 설치 작품 전시를 주로 진행하는데, 한국 작가 이창원·권오상·최정화, 타국 작가로는 이스라엘 출신 아야 벤 론과 독일 작가 아드리아네 부흐홀츠 등이 작가군에 포함된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앞에서 휴식을 취하는 베를린 시민들

포츠다머슈트라세의 갤러리 단지

요한 쾨니크 갤러리의 내부 전시 공간

갤러리 블레인 | 서던 외관
종합예술 지역, 크로이츠베르크
이슬람계 이민자 밀집 지역인 베를린 동부 크로이츠베르크 지구는 현대미술 관련 갤러리나 미술관 외에도 대안 공간, 공공 전시 공간, 쿤스트페라인 (Kunstverein, 미술협회) 전시장 등이 들어서며 양적·질적인 면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순수예술가는 물론 여피, 배우, 영화인 등이 모여 살고 있는데, 얼마 전까지 셔터를 내린 채 벽면이 그라피티로 가득하던 이름 모를 가게가 갑자기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보수하지 않아 콘크리트와 벽돌이 드러난 공간 속 오래된 가구와 식기, 탁구공만 한 구멍이 난 의자, 색이 바랜 소파 등이 예술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시크한 카페나 바의 인테리어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카페는 주로 예술 공간 주변에 생기는데, 베를린미술협회(NGBK)가 위치한 오라니엔슈트라세 일대가 대표적이다.
▶ 가난한 예술가의 천국, 베타니엔
마리아넨 광장에는 마치 성처럼 묵직하게 자리 잡은 건물이 있다. 바로 베타니엔(Bethanien)이다. 밤에 보면 마치 공포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 같은 이곳은 낮 동안 예술가나 힙스터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크로이츠베르크의 명소다. 1847년 건립한 베타니엔은 본래 약국이 있는 종합병원 건물로, 현재 비영리 전시 공간 쿤스트라움 크로이츠베르크를 비롯해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음악학교, 자유연극·연출협회 등이 들어서 있다. 물론 무단 거주자도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현재 코트부서담 역 근처로 이사한 한국 작가들의 로망 레지던시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Kunstlerhaus Bethanien)이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 무서운 30대, 요한 쾨니크
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신진 갤러리를 말할 때 요한 쾨니크(Johann Konig) 갤러리를 빼놓을 수 없다. 우선 이곳은 오너의 가족부터 심상치 않다. 모친은 갤러리스트 바바라 바이스, 부친은 유럽 현대미술 비엔날레 마니페스타의 예술감독 카스퍼 쾨니크, 삼촌은 막강한 예술 서점 체인의 오너 발터 쾨니크이니 이쯤 되면 이미 게임 끝 아닌가. 이런 부담스러운 배경이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요한 쾨니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갔다. 캐나다 작가 제러미 쇼, 이탈리아 작가 모니카 본비치니, 덴마크 디자이너 예페 헤인, 폴란드 출신 믹스 미디어 아티스트 알리차 크바데 등 최근 세계적으로 핫한 작가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 있다. 한국 주요 갤러리도 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아트 바젤,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 프리즈 아트 페어 등을 헤집고 다니는 30대 청년, 그의 행보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 파티도 작품이다, 크바드라트
마르틴 크바데가 운영하는 크바드라트(Kwadrat)는 베를린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갤러리다. 우선 크바데는 폴란드 이민자 출신으로, 파티를 유난히 좋아해 킹 사이즈 바에서 ‘Artist Night’라는 파티를 정기적으로 연다. 그에게는 파티도 일종의 작품이다. 갤러리의 작가군 역시 다양한데, 설치미술가 최수환과 독특한 풍경화를 그리는 볼프강 루크마이어 등이 여기 속한다.
▶ 갤러리 벤트루프
크로이츠베르크 북서쪽에 위치한 갤러리 벤트루프(Wentrup)는 독특한 창고 형태의 건물이다. 2004년 프렌츠라우어베르크에 처음 문을 열었다가 2009년 현재의 위치로 이사했고, 오픈 10년 만에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와 갤러리 위크엔드 베를린에 참여하는 갤러리로 성장했다. 팀 울리히와 올라프 메첼, 플로리안 마이센베르크 등 다양한 세대의 독일 작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특히 베를린 출신인 마이센베르크는 아우디 아트 어워드부터 쿤스트폰즈 재단상까지 최근 몇 년간 국제 미술계에서 신진 작가에게 주는 상을 휩쓸었다. 올해 갤러리 위크엔드에선 그의 작품이 완판되기도 했다.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의 중간 지점, 체크포인트 찰리
분단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의 검문소,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항상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이 일대에는 40여 개의 갤러리가 있다. 특히 코흐슈트라세, 루디두치케슈트라세, 린덴슈트라세 지역을 ‘갤러리 디스트릭트’라 부르는데 콘래드 피셔 갤러리(Konrad Fischer Galerie), 갤러리 레비(Galerie Levy), 갤러리 크로네(Galerie Crone), 갤러리 카프리스 호른(Galerie Caprice Horn), 알렉산더 레비(Alexander Levy), 갤러리 게브르 레만(Galerie Gebr. Lehmann)은 미술 애호가라면 꼭 들러야 하는 갤러리다.
신진 갤러리의 새로운 둥지, 포츠다머슈트라세
과거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 지구의 임대료가 급등하자 건물 오너들은 환호했지만, 젊은 갤러리스트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새로운 장소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주요 화랑가 아우구스트슈트라세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 브루넨슈트라세가 대표적 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곳 역시 카페와 바, 디자이너 브랜드 숍 그리고 친환경 상품 전문점으로 가득하다.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며 포츠다머슈트라세가 ‘새로운 브루넨슈트라세’가 되었고, 약 12개의 갤러리와 프로젝트 스페이스가 둥지를 틀었다. 그중 전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총장 마르쿠스 뤼페르츠의 딸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아나 일 뤼페르츠 갤러리(Anna Jill Lupertz Gallery)는 회화 외에 설치나 사진 등을 주로 전시하는 공간. 비주얼 아티스트 폴라 지페르딩, 영국 설치미술 작가 로버트 몽고메리 등이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갤러리 탄야 바그너(Galerie Tanja Wagner)의 갤러리스트 탄야 바그너 역시 유망주로 꼽힌다. 한편, 런던과 뉴욕에 전시장을 둔 블레인 | 서던(Blain | Southern)은 갤러리 콤플렉스인 포츠다머슈트라세 77-87에 자리 잡았다. 미술관급 분위기와 전시를 자랑하는, 꼭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다.
‘파티 존’ 프리드리히스하인에도 현대미술이 있다!
프리드리히스하인은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와 MTV, 유니버설뮤직 그리고 유럽 클러버들의 성지 베르크하인이 위치한 지구다. 크로이츠베르크와 함께 예술가가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인데, 크로이츠베르크에 이슬람계 주민이 많은 반면 이곳은 유럽과 북미에서 온 젊은이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 명소는 뉴욕의 페첼 갤러리와 쾰른의 갤러리 기젤라 카피타인이 힘을 모아 2008년 카를마르크스 대로에 문을 연 카피타인 페첼(Capitain Petzel). 독일 작가 나탈리 체코, 쿠바 출신 드항고 에르난데스, 그리고 1990년대 뉴욕 포스트모던 화단의 기수인 로버트 롱고가 갤러리 프로그램에 속해 있다. 한편, 하우브로크 파운데이션 대표 악셀 하우브로크는 소장품에 관한 한 미술 학자도 울고 갈 만큼 전문 지식을 갖춘 인물이다. 노련한 사업가이자 독일에서 손꼽히는 컬렉터인 그는 소장품도 사업처럼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덴마크 출신 올라푸르 엘리아손, 독일 출신 토비아스 레베르거와 티노 세갈, 그레고어 슈나이더 등 걸출한 설치미술가의 작품이 그의 소장품 리스트에 속해 있으며, 한국 작가 양혜규가 국제적 명성을 얻기 전 그녀의 작품을 구매하기도 했다. 악셀 하우브로크 같은 소신 있는 전문 컬렉터와 요한 쾨니크처럼 패기 넘치는 갤러리스트,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신진 작가 플로리안 마이센베르크 등 수많은 문화 예술 종사자가 베를린을 새로운 르네상스의 무대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에디터 류현경
글 Jung Me Chai(독립 큐레이터, 디스쿠어스 베를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