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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적인, 너무나 르네상스적인

ARTNOW

이제 와 500년 전 그림 얘기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좋은 유산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법이다. 지금도 여전히 현대미술 작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처럼.

“저는 베아토 안젤리코의 작품을 모방했습니다. 모방을 통해 훔칠 수 있는 것은 다 훔쳤어요.”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티노 스테파노니(Tino Stefanoni)의 말이다. 고전 회화의 요소를 극한까지 강조해 새로운 현대적 회화를 완성해온 그는 자기 예술의 출발점이 르네상스 시대라고 털어놓는다. 그러니까 그는 안젤리코뿐 아니라 조토에게서도 ‘훔쳤고’ 마사초에게서도 ‘훔쳤다’. 왜냐고? 그들의 작품을 본 순간 그 안에서 자신의 그림을 발견하고 말았으니까. 콜롬비아가 낳은 세계적 거장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청년 시절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머물며 르네상스 예술에 매료된 이후 옛 거장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 그의 포인트는 ‘풍만한 신체’. 르네상스 화가들이 추구한 ‘이상적 아름다움’은 보테로의 붓 끝에서 한층 과장된 형태로 거듭났다. 라파엘로의 초상화 속 아름다운 소녀도,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도, 심지어 세기의 연인 모나리자의 얼굴도 달덩이처럼 토실토실 살이 올라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이것이 오늘날 ‘보테로모르프(Boteromorph)’라는 신조어를 낳은 보테로 특유의 스타일이다. 스테파노니와 보테로 외에도 오늘날 무수한 현대미술 작가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루벤스, 보티첼리에게서 자신의 예술적 기원을 찾는다. ‘르네상스가 근대 예술의 출발점이니 우린 모두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거야’ 같은 성급한 일반화의 수준이 아니라 이들은 정말로 500년 전 예술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품의 대상이나 구도, 분위기, 표현 기법의 재현부터 그 시대의 정신과 가치를 재해석하려는 노력까지, 이들이 과거를 현대로 끌어오는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여기, 5명의 현대미술 작가를 소개하려 한다. 사진, 조각, 회화 등 우리 눈에 보이는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이들의 작품엔 동류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단어가 특정 시대뿐 아니라 예술의 재생 또는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들의 예술은 그야말로 ‘르네상스에 의한 르네상스’인 셈이다.

마리스카 카르토
사진작가로 남아메리카 수리남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성장했다. 여성의 누드를 주요 소재로 삼는 그녀의 작품은 마치 꿈처럼 신비롭고 관능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르네상스 거장들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열렬한 고전 회화 애호가이기도 하다.

La Grande Delusione, 2014

Nostalgia, 2014

Intense, 2012

“사진인가, 그림인가?”
제 작품에는 사진과 그림이 통합되어 있어요. 그림의 부드러운 면과 사진의 날카로운 면이 공존하죠. 이 둘을 조화시키기 위해 정말 많은 연습을 했습니다. 제 작품의 이런 대조되는 특징을 계속 살리고 싶어요. 현재 하는 작업의 기본은 사진이지만, 사실 예술가로서 제 기본은 그림이에요. 20년 전에만 해도 스케치와 페인팅 위주로 작업하는 화가였고, 사진을 시작한 건 2010년부터예요. 전 이 두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 제 예술 세계에서 각각의 요소를 통합하고 싶어요. 실제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먼저 컨셉이 잡히면 스케치를 시작해요. 마지막 단계에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상상해보면서요. 그런 다음 사진을 찍어요. 가끔은 컨셉화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는데, 사실 연습 없이는 불가능하죠. 전 최대한 빠르게 생각하고, 생각이 잘 진전되지 않을 땐 사진을 찍으면서 마음속으로 이미지를 계속 그려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지만, 결국 시간이 약이더라고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보는 과정’과 ‘생각하는 과정’이 함께 이루어지고, 그럼 그때그때 중요한 포인트를 찾는 것도 쉬워지니까요. 작업의 마무리는 포토샵으로 해요. 기술적 과정을 거치며 처음의 컨셉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이럴 땐 제 자신의 느낌과 안목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런 식으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반년 이상 걸려요. 각각의 작업 방식이 다르거든요. 소요되는 시간도 마찬가지죠.

“르네상스 미술 애호가라고?”
맨 처음 영감을 받은 건 카라바조였어요. 제게 정말 강한 인상을 남겼죠. 사실 몇 년 전, 제 마음속에 밝고 어두운 감정이 공존하는 관능적이고 신비로운 꿈의 세계가 생겼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전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죠.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한 그 엄청난 꿈의 세계를 시각화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저는 아주 강렬한 감정을 느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요. 그것이 제 영감에 힘을 실어줬고, 덕분에 저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어요. 카라바조와 그의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요. 그는 정말 힘든 인생을 살았고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했어요. 그의 작품에는 그런 작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루벤스 역시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게다가 그는 누드 작품으로 유명하잖아요. 개인적으로 그가 그린 사람들의 풍경과 강렬한 감정 표현력을 좋아해요. 실제로 루벤스는 거대한 스튜디오에서 대형 작품을 만들었어요. 안트베르펜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보니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빼놓을 순 없죠. 예술가로서도 존경하지만, 발명가로서 그의 엄청난 재능에 늘 감탄하게 돼요.

“그들이 왜 중요한가?”
그들의 작품에는 소위 ‘상징성(symbolism)’이라는 게 있어요. 상징성이란 말은 참 신비로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에요. 작품이 정말로 강력하고 힘이 넘친다면, 그것이 스스로 이야기를 건넬 테니까요. 삶의 몇몇 순간에 이르면 누구든 자신의 삶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잖아요. 그들의 작품은 그런 삶에 대한 질문에 어떠한 해답도 주지 않지만, 때로 관람자에게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어요. 예술가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삶의 신비로운 면을 시각화해 보여주죠. 예술적 자질은 물론, 말이 아닌 또 다른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어요. 삶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또 방황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저에게 굉장히 중요해요.

사진 제공 Grachten Galerie

제이크 배들리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난 초현실주의 작가. 유럽 전역을 여행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정착한 이후 그곳에서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 네덜란드 작가, 각종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한다.

Aries, Oil on canvas, 90×70cm, 2014

Libra, Oil on canvas, 90×70cm, 2014

Virgo, Oil on canvas, 90×70cm, 2014

“이 여인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작품 제목이기도 한 ‘Virgo’는 그리스어로 데메테르(Demeter)라고 알려진 수확의 여신이에요. 15세기 대부분의 화가에게 영향을 미친 존재죠. 전 이 작품에서 15세기 작가 필리포 리피 특유의 흘러내리는 듯한 선과 색채 배합을 시도하려고 노력했어요. ‘Scorpio(전갈자리)’나 ‘Aries(양자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상징주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했지만,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인에 의해 특히 발달했죠. 이를테면 산드로 보티첼리의 ‘The Birth of Venus’는 제가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접해온 작품이자 오랜 시간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특히 섬세한 선이나 비현실적 아름다움이 제게 강한 영감을 줬어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예술과 과학 분야를 모두 다룬 인물이죠. 제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작가이기도 하고요. 그의 상상력에는 경계가 없어요. 엔지니어링과 지도 제작, 페인팅 등 모든 것이 하나의 창의력에서 발현됐죠. 이는 오늘날 인위적으로 경계를 나누는 생각이 모두 거짓임을 드러내요. 저 역시 스스로를 예술가라든지 화가로 구분 짓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그저 ‘창조자’예요.

“그것이 당신의 철학인가?”
많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 철학에 대해 얘기하지만, 사실 ‘철학’이라는 단어는 고정된 생각을 갖게 해요. 제 작품은 주로 무의식이나 꿈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에요. 모든 선입견을 버린, 직관적이고 무한한 사고를 통해서만 성공적으로 구현할 수 있죠. 그러니까 제 작품 철학은 ‘철학이 존재하지 않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물론 생각하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사색이야말로 창조의 과정을 이루고, 완성 단계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니까요. 다만 제게는 전통에 대한 포용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과거의 숭고한 목표를 위해 헌신하고, 그것을 현재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예술 작품은 지적 호소이면서 동시에 감정적 호소이기도 해요. 여기엔 기술이 필요하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an Francesco d’Assis, 이탈리아의 수도사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시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손을 쓰는 사람은 노동자고, 손과 머리를 쓰는 사람은 기술공이다. 그리고 손과 머리, 가슴을 쓰는 사람은 예술가다.”

“과거의 목표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저는 단순히 지나간 시대를 복제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제 작업은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과거의 것과 지금의 새로운 것을 통합하기 위한 시도죠.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15세기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예술이 가톨릭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어요. 과학의 발전을 이루긴 했지만, 예술 작품은 여전히 오래되고 순수한 전통에 속해 있었죠. 즉 신의 계시였던 거예요. 그러나 이후 예술과 인간은 하늘에서 땅으로 관심을 돌렸고, 돈이나 권력, 섹스 그리고 다른 세속적 요소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와 미래 사이에는 철의 장막이 생겼어요. 건축과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고요. 예술가들은 미래만 바라보며 과거의 것은 그저 파괴하려고 했어요. 전쟁에 의한 트라우마가 예술의 방향성에도 영향을 미친 거죠. 하지만 이제 이런 벽을 허물고 우리의 문화적 유산과 보다 폭넓은 형태의 예술을 포용해야 할 때가 됐어요.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나 북유럽 사람들이 그랬듯 우리도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나가야 해요. 과거의 더러운 쓰레기통 속에서 아름다움과 이상주의, 신의 축복을 꺼내야 해요. 물론 그것들이 지금 이 시대와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과제겠죠. 기도하는 행위로서 그림을 그린 15세기 수도사이자 화가 베아토 안젤리코의 작품은 제게 예술가로서 아주 중요한 목표를 일깨워주었어요. 예술이란 늘 진실과 아름다움의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요.

사진 제공 Grachten Galerie

마리나 라디우스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나 현재 네덜란드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는 화가 겸 조각가. 사람과 동물, 자연풍경 그리고 삶을 테마로 섬세한 유화와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클래식한 작품 형식을 고수하며, 특히 동물과 인간을 주제로 한 옛 거장들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Nautilus, Bronze, 13” high

Winged figure, bronze, 9.8” high

“르네상스 미술의 가치가 정말 현대미술에 유효한가?”
물론이죠.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이 현재의 작가들에게 여전히 가치 있는 건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거나 영감의 근원이 되는 것뿐 아니라 그 놀라운 테크닉과 기교 때문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 현대미술은 아직 그만한 가치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제게 처음으로 영감을 준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인데, 아마도 말이 등장하는 몇몇 작품이었을 거예요. 지금까지도 다빈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예요.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자유롭게 붓질을 하면서도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그린 ‘모나리자’의 뒷배경을 특히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즐기는 기법이지만, 이미 오래전 그가 그런 기법을 사용했다는 걸 처음에는 몰랐어요. 정말 알면 알수록 그와 그의 작품을 존경하게 돼요. 물론 그 밖에도 많은 르네상스 거장이 저를 이끌어주었죠. 설화석고를 조각한 ‘Angels’ Hands’는 특히 미켈란젤로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이에요. ‘Nautilus’의 경우는 조금 다른데, 사실 앵무조개(nautilus) 껍데기는 사람들이 소위 ‘신적 형상’이라든지 ‘황금 비율’로 묘사하며 오래전부터 일러스트 형태로 많이 그렸잖아요. 그걸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재발견한 거죠. 작업 당시 미리 정보를 알아보고 계획한 건 아니지만, 이런 형태를 좋아하는 저의 성향 자체가 르네상스 시대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Winged figure’도 마찬가지예요. ‘날개’나 ‘비상’은 어릴 때부터 유독 좋아한 소재 중 하나지만, 이 또한 당시 접한 그리스 신화와 그걸 활용한 르네상스 시대 작품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

사진 제공 Grachten Galerie

스테판 보르다리에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회화 작가로 1980년대 이후 색상과 캔버스 표면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페인팅의 본질적 특성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국내 두 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25. V. 2011, Oil on canvas, 100×200cm, 2011

작업 중인 스테판 보르다리에의 스튜디오 내부

작업 중인 스테판 보르다리에의 스튜디오 내부

“아니, 대체 어디가 르네상스?”
대략 1980년대 말부터 제 작업의 기술적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아주 적은 양의 템페라 물감으로 캔버스를 칠하는 방식이었죠. 이렇게 하면 템페라가 응고되는 동안 색상의 변화를 거치게 되거든요. 이때 외부에서는 작품에 어떤 수정도 가할 수 없어요. 말하자면 템페라가 응고되는 시간이 곧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인 거죠. 시간이 흘러 템페라가 완전히 굳은 순간, 제 작품도 완성되요. 이 변화의 과정에는 작가의 어떤 미적 판단도 개입할 수 없어요. 이런 제 작업 방식은 실제로 르네상스 대가들의 프레스코화 작업과 닮았습니다. 프레스코는 덜 마른 신선한 벽면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 작업의 즉흥성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방식이에요. 물감이 스며드는 속도와 마르는 정도에 따라 농담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색채 고유의 느낌이 더욱 선명히 나타나죠. 물론 전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현대 회화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어요. 그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제 작업을 풍부하게 해줬다고 믿고 있죠. 결국 제 목표는 혼합된 색들이 캔버스 위에서 완전히 새로운 색을 창출해내는 거예요. 이런 색의 창조는 일단 한 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형태를 만드는 데서 시작되죠. 그 외의 부분은 색으로부터 순결한 상태로 남겨놓고요. 여백과 같은 이 부분이 바로 저의 그림을 완성하고 기존의 색에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는 핵심 요소예요. 색은 빈 공간을 지나 캔버스 가장자리까지 펼쳐지고, 액자의 틀 너머로 나아가 결국 그림이 걸려 있는 벽에까지 다다르게 되죠.

사진 제공 리안갤러리

정해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동양화가. 문화재 수리 기능자로서 고려 불화와 초상화 등 전통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비단 앞뒤로 천연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리는 한국의 전통 채색화 ‘진채’ 기법을 특히 즐겨 사용한다.

프리마베라, 비단에 채색, 75×105cm, 2013

결혼의 조건, 비단에 채색,82×60cm, 2014

Leopard Beauty, 비단에 채색,52×40cm, 2014

호피 사과를 든 청년, 비단에 채색, 58×42cm, 2014

Tiger Skin Dress, 비단에 채색, 58×42cm, 2014

“왜 호피 무늬인가?”
과거 문화재 수리 및 복원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무수한 초상화에서 무인과 함께 그린 호피를 보게 되었는데, 그 표현 기법이 정말 다양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무척 세밀하게 묘사한 데다 질감에 따라 털을 표현하는 기법도 전혀 다르고, 특히 유명한 화원이 그린 호피는 각각의 무늬와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죠. 어느 순간 이걸 나만의 작품으로 발전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호랑이는 단군신화부터 등장하잖아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과 아주 친밀한 동물이자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맹수죠.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은 영험한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고요. 그런 호랑이의 이중적 특성에 끌렸어요. 게다가 호피는 결국 터럭이잖아요. 그건 ‘생명’을 뜻하는 거예요. 생명이 없는데 털이 자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과거의 그림을 재해석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의미로 호피 무늬를 활용했어요. ‘호피 사과’도 마찬가지예요. 호피로 된 상징적 아이템을 만들고 싶었는데, 호랑이란 존재 자체가 지닌 이중성처럼 이 아이템도 뭔가 이중적 느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강렬한 호피와 대조되는 연약하고 매끄러운 무언가, 그게 풋사과였어요. 재미있는 건, 제가 문화재 수리·복원을 하며 오랜 시간 진채 기법을 익혔는데 실제로 털의 질감과 느낌을 표현하기에 그만큼 좋은 기법도 없더라는 거죠. 저는 호피를 그릴 때 비단의 뒷면에 물체를 그리고 앞면에는 물감으로 털을 한 올 한 올 심어요. 이게 제 채색의 포인트예요.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평면이면서도 묘하게 입체적으로 보이죠.

“왜 르네상스 미술인가?”
호피 시리즈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암웨이미술관 개관 기념 특별전에 초청받았어요. <프리마베라: 여성의 르네상스가 시작된다>라는 전시였죠. ‘프리마베라(Primavera)’는 사실 보티첼리의 대표작이잖아요.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하기도 해서 전시명을 듣자마자 ‘보티첼리의 작품을 진채로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래는 호피 사과를 그리기로 했는데, 결국 보티첼리의 대작에 손을 대고 말았죠. 꼬박 4개월이 걸렸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그림을 그리면서 고려 불화와 르네상스 미술의 무수한 공통점을 발견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면 르네상스의 종교화는 대상을 부각시키기 위해 뒷배경을 어둡게 처리하잖아요. 고려 불화도 똑같거든요.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 역시 우리나라 화원 제도와 유사하고, 무엇보다 비단의 앞뒤로 채색하는 진채는 동양화 기법 중 서양의 유화와 가장 비슷한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프리마베라’를 그리며 새로운 호피 시리즈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우리의 진채 기법이 이토록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죠. 동서양의 예술이 제 작품 속에서 만나 새로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쁨도 컸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얀 반 에이크의 ‘The Arnolfini Portrait’를 소재로 한 ‘결혼의 조건’이에요. 가장 오래, 힘들게 그린 작품이자 제 재해석을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이기도 해요. 어떤 것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나름대로 추측해보세요. 이건 작가로서 추천하는 감상법이에요.

사진 제공 아다마스253 갤러리

에디터 류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