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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악이란 이름의 마라톤

LIFESTYLE

도전이 아름답다는 건 누구나 안다. 다만 그는 아는 것을 실천할 줄 아는 남자다.
최근 온갖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성악계의 별로 떠오른 류지상. 그와 나눈 재능보다 눈부신 도전 이야기.

Photo by Charis Akriviadis

소년의 꿈은 첼리스트였다.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덕분에 음악과 함께 성장한 그는 첼로와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중, 소년은 사고로 손목을 다치고 만다. 의사는 그의 손목에 단단한 석고붕대를 휘감았고, 적어도 석 달은 악기를 놓으라고 했다. 입시를 두 달 앞둔 때였다. 소년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성악을 전공한 이모의 제안으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예고에 합격했다. 손목만 회복되면 첼로로 전공 변경 시험을 치르려고 미리 신청도 해두었다. 소년의 운명을 바꾼 순간은 바로 그때 찾아왔다. 예고에서 치른 첫 실기 시험에서 성악으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너는 꼭 노래를 해야 한다”는 권유가 안팎으로 빗발쳤고, 소년은 그제야 새로운 음악의 길을 진지하게 마주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온갖 국제 콩쿠르를 휩쓸며 세계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성악가 류지상의 이야기다.
“아마 첼로를 계속했다면 한 번도 1등을 못했을 거예요.” 지금이야 웃으며 ‘전화위복’이란 단어를 꺼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열여섯 살 남짓한 소년에게 낯선 도전이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오랜 시간 첼리스트를 꿈꿔왔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그 길을 선택한 이상 류지상은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연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성악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이후 독일로 떠나 쾰른 국립 음악대학 석사 과정과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독일은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크고 작은 오페라극장이 반드시 있는 나라다. 휴가철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쉬지 않고 공연이 열리는 클래식의 본고장. 류지상이 독일을 택한 건 그래서였다. “성악가에게는 그만큼 기회가 많은 땅이죠. 물론 동양인이 독일 극장에서 노래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서양인의 체격 조건이나 소리가 월등하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하려면 2배, 3배 더 노력해야 하죠.” 그의 말처럼 ‘2배, 3배 노력한’ 끝에 아헨국립극장에서 데뷔 무대를 치른 것은 2009년, 유학을 떠난 지 1년 만의 일이다. 당시 지도 교수에게 하이든의 오페라 <달의 세계> 오디션 소식을 듣고 경험 삼아 참가한 그는 단숨에 주인공 자리를 따냈다. 3시간 정도 공연하는 오페라였는데, 맡은 분량이 너무 많아 3개월 동안 밥 먹고 화장실 갈 때도 악보를 외웠다. 성공적으로 데뷔 무대를 치르자 곧바로 독일 본 국립극장에서 주역 가수 제의가 들어왔다. 누가 봐도 고민의 여지가 없을 만한 제안. 그러나 류지상은 끝내 이를 거절했다. “그렇게 좋은 기회가 다시 안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렇지만 아직은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낀 것 같아요. 더 많이 배우고 또 도전하고 싶었거든요.”
이후로도 꾸준히 공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그가 무대에 선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대신 그는 콩쿠르에 집중했다. 그의 말처럼 좀 더 ‘준비된’ 성악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국제 콩쿠르 성적은 화려하다. 2011년 주세피나 코벨리 국제 콩쿠르 2위에 이어 지난해엔 루치아노 네로니 국제 콩쿠르와 마리에 크라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올해 스위스의 에른스트 헤플리거 국제콩쿠르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사실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한 거예요. 그동안 많은 실패와 좌절이 따랐죠. 제 생각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실패는 제게 늘 메시지를 줬고, 그것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밑거름이에요.” 그는 콩쿠르를 하나하나 섭렵하며 점차 스스로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10월,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성악인의 ‘꿈의 무대’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간 가장 많은 영감을 준 성악가로 마리아 칼라스를 꼽아온 만큼, 류지상에게는 다른 어떤 콩쿠르보다 특별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약 10일간 열린 올해 경연은 파이널 라운드에 오른 8명 중 4명이 한국인이었고, 남자 부문의 경우 한국인이 모두 상을 받아 현지에서도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경연이 끝나자 관객 중 한 분이 ‘Viva Korea!’라고 외쳤어요.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었죠.”

마리아 칼라스 국제 콩쿠르 본선 현장에서 류지상

지난 5월 열린 덴마크 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

콩쿠르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최근 벨기에에서 공연한 벨리니의 오페라 <노르마>다. 그는 노르마의 아버지인 오로베소 역을 맡았는데 이때 노르마 역으로 캐스팅된 인물이 세계적 소프라노 가브리엘라 모리기(Gabriella Morigi)였다. “그분과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는데, 공연이 끝난 뒤 가끔 제게 ‘아빠’라며 장난스러운 연락이 오곤 해요.” 데뷔 이후 주로 오페라 무대에 서왔지만 사실 그는 오페라와 합창,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성악가가 활약할 수 있는 모든 무대에 관심이 많다. 더불어 꿈이 하나 더 있다. “저는 일찍부터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해왔어요. 독일에서 여성 합창단을 지휘해본 경험도 있고요. 가끔 전공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합창 지휘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앞으로도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깊이 있게 공부해볼 생각입니다.”
류지상은 12월 루마니아에서 초청을 받아 송년 갈라 콘서트에 참여한다. 내년 2월에는 벨기에 겐트 극장에서 오스민 역을 맡아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를 공연할 계획이고, 5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올림푸스 국제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심포니와 협연한다. 10월에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베르디의 <레퀴엠>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한층 바빠진 일정이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 안에서 안주할 방법을 찾지 않는다. “콩쿠르는 나 자신의 기량을 시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이제 한 단계 올라섰으니,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죠.” 그는 음악 앞에서 늘 겸손하고 싶은 남자다. 한국인 성악가로서 책임감을 갖고 보다 진실된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하겠다고 말하는 류지상. 그의 음악 인생은 지금부터 진짜 시작이다. “성악은 일종의 마라톤이에요. 금메달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출발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죠.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자 하면 더 힘들어져요. 조급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분명 각자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이야말로 성악인으로서 가치 있는 모습이 아닐까요?”

에디터 류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