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로잘리 킴의 바람

LIFESTYLE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의 한국관 큐레이터 로잘리 킴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세계 최대의 장식미술과 디자인 전문 미술관으로 알려진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미술관(V&A) 한국관엔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세라믹 유물을 비롯해 종이, 금속, 텍스타일 등 한국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공예와 디자인 제품이 전시돼 있다. 이 모든 오브젝트를 관리하고 전시·기획하는 건 한국계 벨기에인 큐레이터 로잘리 킴(Rosalie Kim). 그녀는 V&A 한국관을 통해 관람객이 단순히 많은 유물을 보는 것을 넘어, 다양하고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
V&A 한국관 큐레이터라니, 직함이 참 거창합니다. 미술관에선 어떤 일을 하세요? 딱히 직무가 정해져 있진 않아요. 주로 V&A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관리하고,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죠. 새로운 유물이나 의미 있는 현대의 오브젝트를 수집해 전시도 열고, 그걸 만드는 디자이너나 공예가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이곳의 큐레이터가 됐나요? 전 원래 건축 전공자예요. 벨기에에서 태어나 거기서 대학을 다녔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등 유럽 문화권에서 공부하고 일했죠.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건축보다 디자인과 예술 등 건축을 아우르는 어떤 문화적인 면에 더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사실 V&A에서 일하게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주로 이곳 도서관에서 박사 논문을 썼는데, 그때 우연히 벽에 붙어 있던 V&A 한국관 큐레이터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했으니까요.
그래도 한국 문화엔 평소 관심이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어릴적 늘 부모님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들으며 자랐어요. 그래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레 동양 문화와 한국 문화, 건축 등에 관심을 두게 된 거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전 그때부터 유럽과 한국을 아우르는 어떤 공간에서 일하길 꿈꾼 것 같아요.
건축가로서 쌓은 경험이 큐레이터로 일하는 데 도움을 주진 않나요? 하나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디자인과 소재, 경영, 역사 등 방대한 요소가 필요해요. 하나의 컨셉에 맞춰 모든 걸 함께 진행하다 보면, 작은 요소를 큰 그림 안에 넣는 구조적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죠. 또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며 마감 날짜를 지켜야 하는 건축 프로젝트는 역시 다양한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 큐레이팅과도 많이 닮았어요.
한국관의 컬렉션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요샌 역사적 유물을 컬렉션하는 일이 드물어요. 미술관에서도 유물 하나를 사려면, 그간 누가 어떤 경로로 그걸 샀고, 어떤 과정을 거쳐 경매에 나왔는지 등 그 히스토리를 꼼꼼히 살펴봐야 하거든요. 근데 최근엔 이 부분에서 감별사와 기관 사이에 잡음이 자주 발생해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죠. 대신 그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한국의 현대 공예품이나 디자인 제품을 많이 수집하고 있어요.
디자인이라면 한국에서도 국가적 차원으로 많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요. 네. 맞아요. 광주디자인비엔날레나 DDP만 봐도 한국이 현대의 디자인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있죠. 하지만 V&A에선 이름 있는 한국 작가의 디자인 작품뿐 아니라 대량생산 제품에도 관심이 많아요. 누구나 사용하는 주전자라든지 어느 집에나 하나씩 있는, 존재가치를 드러내지 않고 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제품이 어쩌면 한국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디자인 제품일 수 있다 여기죠.
V&A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한국에 대한 관람객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걸 느끼나요? 물론입니다. 가장 가까운 피드백은 강의를 들으러오는 이들을 통해 얻을 수 있어요. V&A에선 한중일 3개국의 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애초 단 2주에 불과하던 한국 문화 강의가 지금은 6주까지 늘어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사실 중국과 일본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주로 듣는 수업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 대한 피드백이 가장 활발하죠. 강의가 끝난 뒤 한국에 대해 좀 더 알기 위해 직접 방문하고 싶다거나,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아요.
그럼에도 한국 문화가 아직 드라마나 K-Pop 같은 ‘한류’에 치중해 있는 건 어딘가 아쉬워요. 중국과 일본 문화가 예술과 문학, 전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알려진 것에 비하면 더더욱 말이죠. 물론 외국에 알려진 한국 문화가 대개 가볍고 유행에 치우쳐 있는 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에요. 하지만 한류가 한국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죠. 개인적으로 전 한류 같은 대중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요. 이 시대의 대중문화가 실제 지닌 가치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사실 따지고 보면 여기 V&A에 전시돼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유물도 당시엔 대중문화를 상징한 것이 많아요.
벨기에에서 태어나 유럽 문화권에서 자라고 공부했습니다. 그런 배경이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나요? 어려서부터 한국 문화를 가까이한 탓에, 유럽에 살면서도 늘 한국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이런 질문에 답해온 경험이 지금 제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는 거요.
그런 건 이른바 ‘스킬’인가요? 사실 그런 설명은 간단해요.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유럽의 관람객이 더 쉽게 한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와 비교하거나 예시를 들어주는 거죠. 일방적으로 이게 좋으니 한번 보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한국 문화를 알고 싶어 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좀 더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거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확신할 수 있어요.
네, 그럴 것 같네요. 한데 정작 한국에선 너무 한국적인 것만 강조한 나머지 ‘고립’되는 경우도 많아요. 저도 그걸 감지하고 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전에 한국의 건축사무소에서도 일했죠? 맞아요. 일도 많고, 놀기도 정말 잘 노는 곳이었죠. 내일이 마감인데 팀원들과 볼링장이나 노래방 같은 데에 가서 실컷 놀고 함께 밤새 즐기며 일을 마무리했죠. 여행도 많이 다녔고요. 당시 회사 동료들과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며 많은 걸 보고 배웠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일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 것도 있고요.
지금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릴 적 전 늘 스스로 유럽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어머니가 강조한 것과 달리, 제가 한국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한동안 제 자신의 정체성이 이건지 저건지 정의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고요. 하지만 이젠 ‘이게 아니면 저거’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 함께(both)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알고 싶어요. V&A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에요. 가능하다면 전통 공예가와 현대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어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로잘리 킴(Rosalie Kim)
벨기에에서 태어나 벨기에 UCL과 이탈리아 토리노 대학에서 건축과 철학을 전공한 후 서울, 브뤼셀, 안트베르펜, 파리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 이후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고, 런던 UCL 바틀릿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논문 ‘동양의 전통적 공간에 대한 컨셉과 서양 현대건축의 사례 간 접목’은 2012년 RIBA President’s Award에서 우수박사 연구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2년 11월부터 V&A 한국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양혜숙(기호 리서처, semiotics researcher)  사진 Rei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