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가게
최고의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한 우물만 판 장인들 덕분에 지금도 우린 수백 년 전의 그 맛, 그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것.
요행을 바라지 않고 언제나 기본에 충실해 최고가 된 오래된 가게를 만나본다.
비엔나 슈테판 광장 부근에 위치한 200여 년 전통의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
비엔나 슈테판 광장 부근에 위치한 200여 년 전통의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 제작부터 가죽 재단, 재봉과 박음질까지,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의 구두는 전 공정이 장인의 손에서 이뤄진다.
가게에 보관돼 있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구두 목형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구두를 만들 수 있다.
200여 년의 자부심_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Rudolf Scheer und Söhne)
루돌프 셰어 운트 죄네(이하 루돌프 셰어)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구두 가게다. 1816년 빈의 한 골목에서 제화공 요한 셰어(Johann Scheer)가 창업했고, 1878년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황실 수제화점’이란 칭호를 얻으며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구두 가게로 발전했다. 이들은 지금도 황제의 구두를 제작하던 옛 기술과 공정 그대로 구두를 만든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걸 손‘ 으로’ 해결하는 것. 너무 클리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 이들은 진짜 중에서도 ‘진짜’다. 손님의 개성과 취향에 맞는 구두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물론 발 모양과 치수, 몸무게, 키, 신체 특성 등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습관까지 전부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렇듯 복잡한 사전 공정으로 손님의 발 모양을 스케치한 뒤 본격적으로 구두 만들기에 착수한다. 구두 틀을 만들기 위한 목형을 제작하고, 이어 가죽을 재단해 밑창을 붙이고, 재봉과 박음질, 굽 붙이기와 밑창 색칠 등 하나부터 열까지 장인의 손을 거치는 것. 이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하나의 구두가 완성되기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린다.
그런데 ‘품질 경영’으로 승부하는 루돌프 셰어라고 늘 승승장구해온 건 아니다. 1대와 2대 오너가 가게의 기틀을 잡고, 3대 오너 루돌프 셰어(Rudolf Scheer)가 가게를 크게 키웠지만(현재의 상호 ‘루돌프 셰어’는 가게가 가장 번창한 당시의 오너 루돌프의 이름을 딴 것이다) 4대 오너가 운영한 당시 찾아온 공업화 물결 때문에 가게가 존폐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5대 오너 카를 페르디난트 셰어(Carl Ferdinand Scheer)는 이내 새로운 경영 철학을 내세워 위기를 헤쳐나간다. 그가 내세운 모토는 ‘건강을 위한 구두’. 황제가 신는 것처럼 화려하고 값비싼 재료만으로 구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신기 편하고 건강에 좋은 구두를 만들기로 한 것. 그렇게 이들의 구두는 수제화의 장점을 잃지 않으면서 건강을 고려한 구두라는 믿음이 확산돼 특유의 명성을 되찾으며 오늘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내년이면 창업 199주년이 되는 루돌프 셰어는 1990년부터 7대 오너 마르쿠스 셰어(Marcus Scheer)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발이 편해야 사람도 편하다’라는 선조의 경영 철학에 따라 1년에 단 250켤레만 생산한다는 고급화 전략을 더해 고급 수제화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한 켤례에 최소 3000유로(약 400만 원)나 하는 이들의 구두는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수제화 브랜드 존 롭(John Lobb)의 가격대와 비슷하다. 루돌프 셰어의 오너 마르쿠스는 오랫동안 가게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우리 브랜드가 최고라는 생각과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흔히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 이들은 무려 200년이다.
모든 손님에게 최고 품질의 신발을 제공하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Webwww.scheer.at
디 올디스트 스위트 숍 인 잉글랜드의 사탕은 전부 영국 정통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가게문을 연 1827년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디 올디스트 스위트 숍 인 잉글랜드의 사탕은 전부 영국 정통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가게문을 연 1827년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주말이면 늘 아이가 있는 가족들로 북적대는 디 올디스트 스위트숍 인 잉글랜드. 이들이 쓰는 건물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 좋은 사탕 세트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탕 가게_
디 올디스트 스위트 숍 인 잉글랜드(The Oldest Sweet Shop in England)
1827년 노스요크셔에 문을 연,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탕 가게. 가게 이름을 애초 ‘올디스트’로 지은 게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어찌 됐든 이곳이 영국 사탕 가게 최고의 ‘올디스트’다.
디 올디스트 스위트 숍은 오픈 직후부터 커다란 구리 냄비에 설탕을 잔뜩 넣고 (보통 불로) 주걱으로 저어가며 사탕을 만드는 영국 정통 방식을 고수해왔다. 1866년 영국의 제과업체 J.S. 프라이 앤 선스가 세계 최초의 초코바를 출시해 히트했을 때도 오로지 사탕에만 집중했고, 이후에도 끈질기게 사탕만 연구·개발해온 덕분에(물론 훗날 초코바와 과자의 상품성을 깨닫고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영국 내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라고. 이들은 상품 라인업도 대단하다. 근세부터 인기가 좋았다는 박하사탕부터 눈깔사탕, 콜라 맛 사탕, 알사탕, 롤리팝, 팝핑캔디, 말린 과일, 젤리빈 등을 비롯해 입맛에 안 맞는 사람에겐 구강 테러가 되기도 하는 계피 맛이나 생강 맛까지 당최 없는 게 없으니 말이다. 오너 케이스 토도프(Keith Tordoff)는 가게를 오랫동안 이어온 비결에 대해 “사탕과 초콜릿 등 아이들의 영원한 애증의 친구인 군것질에만 집중한 덕”이라고 곰살궂게 답했다. 지난 2세기 동안,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를 떠올리게 하는 좁은 실내와 알록달록한 과자로 수많은 어린이를 유혹한 이 가게가 앞으로도 변치 않고 지금과 같은 역사를 이어갔으면 한다.
Webwww.oldestsweetshop.co.uk
1808년 당시의 트루핏 앤 힐을 그린 그림
귀빈을 상대하던 이발소_
트루핏 앤 힐(Truefitt & Hill)
영국 런던의 트루핏 앤 힐은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윌리엄 프랜시스 트루핏(William Francis Truefitt)이 1805년에 열었으며, 그 시절부터 영국 궁전을 드나드는 귀빈을 상대로 영업해왔다. 영화 <조지 왕의 광기>(1994년)로 유명한 조지 3세가 이곳에서 가발을 손질했는가 하면(조지 3세는 이곳을 왕실 이발소로 지정했다),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 공, 찰스 왕세자, 윈스턴 처칠, 로런스 올리비에, 프랭크 시내트라, 앨프리드 히치콕, 폴 매카트니 등이 한때 이곳을 제집 드나들듯 다녔다.
이들의 경영 철학은 남성이 지위에 맞는 품격을 갖출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평범한 남자를 ‘신사’로 만들어주는 것. 그래서인지 이들은 지금도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클래식한 옛 스타일 그대로 손님을 맞는다. 이발사가 머리카락을 자른 뒤 구레나룻이나 뒷머리 끝을 면도해주는 것. 면도솔에 하얀 거품을 묻히고, 큰 면도칼을 두툼한 가죽끈에 쓱쓱 문지른 뒤 쓱싹 잔털을 밀어주는데, 200년 이상 이어온 이들의 수준 높은 잔털 손질 스킬에 빠지면 결코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고. 커트와 샴푸, 면도까지 하는 기본 이발 비용이 110파운드(약 19만 원)나 되는데도 여전히 이곳이 북적대는 이유다.
트루핏 앤 힐은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문을 닫지 않았다.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단골이 되고, 그 아들의 아들이 다시 단골이 되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단 하루도 그럴 새가 없었다고. 전통을 이어가는 작은 이발소, 앞으로 세계적 브랜드로서 모든 대도시에 체인을 내는 게 꿈(이미 토론토, 베이징, 쿠알라룸푸르, 뭄바이 등에 체인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이라는 오너 앨런 브러턴(Alan Broughton)의 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왜일까? 이왕이면 좀 더 멋진 곳에서, 한 달에 한 번 자신을 멋지게 변신시키려는 남성이 존재하는 한, 트루핏 앤 힐의 문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Webwww.truefittandhill.co.uk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단골이 되고, 그 아들의 아들이 다시 단골이 되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가진 트루핏앤 힐은 시대의 부흥에 발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건 면도기를 런칭하기도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단골이 되고, 그 아들의 아들이 다시 단골이 되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가진 트루핏앤 힐은 시대의 부흥에 발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건 면도기를 런칭하기도 했다.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 단골이 되고, 그 아들의 아들이 다시 단골이 되는 선순환의 사이클을 가진 트루핏앤 힐은 시대의 부흥에 발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건 면도기를 런칭하기도 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